기사섹션 : 이슈추적 등록 2002.02.06(수) 제396호

[이슈추적] 헌재는 감옥문을 열 것인가

최초의 양심적 병역거부 위헌법률심판제청…이제 젊은이들의 운명은 헌법재판소의 손에

양심을 가둔 감옥문은 열릴 것인가? 1월29일 저녁 7시. 서울 영등포구치소의 문이 열리고 양심적 병역거부자 이경수씨가 걸어 나왔다. 병역거부 혐의로 구속된 지 꼭 40일 만이다. 이날 오후 2시.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형사 단독 1부 박시환 판사가 이씨의 변호인이 제출한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받아들인 결과다. 이씨의 석방은 63년 동안 1만여명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투옥된 이래 최초의 ‘사건’이다. 이씨를 맞이하는 가족들과 여호와의 증인들 눈에는 얼핏 물기가 비쳤다. 위헌법률심판제청이란 법률의 위헌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되는 경우 법원의 직권 또는 당사자의 신청에 의하여 헌법재판소에 위헌 심판을 제청하고, 헌법재판소(헌재)가 그 위헌 여부를 심사해 판단하는 제도이다. 법원이 위헌심판을 제출하면 헌재의 결정이 나올 때까지 해당 사건의 재판이 중지된다. 이에 따라 이씨는 판사 직권의 보석 결정으로 풀려났다.

예고된 ‘사고’

박 판사는 결정문에서 “양심적·종교적 병역거부자들의 경우, 병역의 의무와 사상·양심의 자유 및 종교의 자유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게 돼 양자를 적절히 조화·병존시킬 필요가 있다”고 전제한 뒤, “현행 병역법은 입영거부에 대해 처벌 규정을 두면서도 아무런 예외적 조처를 두지 않아 양심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위헌성이 의심되는 이유를 밝혔다. 병역의 의무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을 예외적 조치인 ‘대체복무제’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위헌법률심판제청을 받아들인 결정이 돌출 ‘사고’는 아니다. 이번 결정은 법원이 병역거부자들에게 1년6개월형을 선고하면서 어느 정도 예고돼왔다. 2002년 2월4일까지, 민간재판을 받은 254명의 병역거부자 중 211(83.1%)명이 1년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1년6개월형은 재징집을 피할 수 있는 ‘최소형량’. 현행법상 1년6개월 이상의 형을 받으면 징집이 면제되지만, 그 이하의 형을 받으면 징집영장을 다시 받게 된다. 1년6개월형은 군사재판의 획일적인 3년형 선고와 대비되는 판결이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양심적 병역거부가 공론화된 지난해 하반기부터 입대 뒤 군형법상 항명죄로 처벌받아오던 관례를 깨고, 입대 자체를 거부해 병역기피죄로 민간법정에서 재판을 받아왔다.

유죄 선고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 법정 현실은 희극적인 풍경을 낳았다. 2001년 10월30일 서울지법 항소심 재판정에서 피고인 김진석씨가 “형량을 높여달라”며 1년6개월형을 ‘자청’한 것이다. 김씨는 병역기피죄로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터였다. 김씨의 어려운 가정형편을 고려해 선의로 내린 형량이었지만, 오히려 또 한번의 징집과 재판을 불러올 것이 뻔했다. 1심이 끝난 뒤, 김씨는 검사에게 항고해줄 것을 탄원했다. 피고인이 항소해서는 형량을 높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김씨의 ‘호소’를 받아들여 1년6개월형을 선고했다. 1심에서 2년형 이상을 받은 이들도 항소심에서 대부분 1년6개월형을 받고 있다. 2002년 2월4일까지, 고등법원은 2년형 이상을 받고 항소한 19명 중 17명에게 1년6개월형을 선고했다. 서울지법 재판부 관계자는 “1심에서 1년6개월 이상의 형이 선고된 경우 병역면제가 가능한 수준에서 형량을 조정하자는데 서울지법 형사 항소부 재판장들 사이에 상당한 공감대가 이뤄져 있다”고 전했다.

군사재판에서는 군검사가 판사를 향해 피고인의 선처를 호소하는 일이 벌어졌다. 2002년 1월27일 육군50사단 군사법원에서는 항명죄 위반자 이지엽씨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대부분 입대거부로 민간재판을 받는 상황에서 입대 뒤 항명죄로 재판을 받는 마지막 사례였다. 이 재판에서 검사는 “입영을 거부해 병역기피로 재판을 받는 경우 대부분 1년6개월형을 선고받는다”면서 “죄명은 다르지만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라는 측면에서 동일한 이들에게 3년형을 선고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논고를 펼쳤다. 이어 검사는 대체복무제가 없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며 피고인의 부모가 제출한 탄원서를 그대로 낭독했다. 심지어 변호사가 “검사께서도 말씀하셨다시피…”로 변론을 시작할 정도였다. 긴 논고 끝에 검사는 3년형의 관례를 깨고 2년6개월을 구형했다. 결국 검사의 ‘양심’에 따른 선고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3년형이 선고됐다.

사법부의 전향적인 판결과는 달리, 행정부의 태도는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다. 2001년 6월9일, 창원 병무사무소는 각 산하 기관에 보내는 공문에서 “소집 기피자에 대한 고발시 군입대 뒤 집총거부자는 통상 3년의 형을 구형하므로 군입대자와의 형평적 사법처리를 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기재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결과 유독 창원지법에서만 최장기형인 2년2개월형이 피고인 7명 전원에게 선고됐다. 실제 6월15일 부산에서는 입영 당일 병무청 직원 8명이 여호와의 증인 집에 들이닥쳐 강제 연행을 시도했다. 출두 요구서도 발부되지 않은 상태에서 벌어진 ‘불법 연행’ 시도였다. 국방부의 ‘대체복무 불가’ 입장은 위헌법률제청신청이 받아들여진 뒤에도 변함이 없다. 국방부는 “정부차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책을 논의할 계획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이런 입장은 헌재의 판결에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헌재가 심리 과정에서 관계기관의 입장을 묻는 까닭이다.

행정부는 뒷걸음질만…

이제 공은 헌재로 넘어갔다. 헌재의 판결을 가늠하기 힘들지만, 지난해 민주당 천정배 의원이 보낸 질의서에 대한 헌재의 답변은 예측의 실마리가 된다. 천 의원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것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 아닌지”를 물었다. 헌재는 “우리 헌법의 경우 독일 헌법과 같은 방식으로 양심의 자유에 따른 집총거부권을 명문화하지 않고 있어 논란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독일 기본법 제12조에 대한 판례와 학설을 통해 헌법적 해결의 윤곽을 잡을 수 있다”고 답변했다. 독일 기본법 제12조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를 명시하고 있다.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낸 오종권 변호사는 “법논리로 따지면 틀림없이 위헌임을 자신한다”면서도 “헌재가 ‘특수한 분단상황’이라는 정치논리의 벽을 넘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전망한다.

병역법 88조에 대해 합헌 결정이 내려지면 풀려난 이경수씨는 다시 감옥에 갇힌 채 재판을 받게 된다. 반면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지면 해당 조항의 효력이 정지되고, ‘대체복무제’를 수용한 새로운 입법안을 만들어야 한다. 이제 수감중인 병역거부자 1600여명의 운명은 헌재의 손에 달려 있다. 헌재의 결정은 해마다 600여명씩 양산되는 미래의 감옥행도 막을 수 있다. 감옥 문의 열쇠를 헌재가 쥐고 있는 셈이다. 평화인권연대 최정민 활동가는 “양심을 가둬놓은 세월은 63년이면 충분하다”고 호소한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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