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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만평/사진 > 펼쳐진 세상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6년09월26일 제6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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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는 나의 운명

카크토비크 마을 이누이트 주민들이 고래 사냥을 떠나는 떠들썩한 풍경… 가문마다 보트에 작살을 실고 바다로 나가면서 시작된 24시간의 사투

▣카크토비크(알래스카)=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글·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북극해는 알래스카에 보퍼트해를 품고 있다. 여름의 햇살은 북극점을 두른 해빙을 부숴 점점이 보퍼트해로 보낸다. 보퍼트해 동남쪽에는 카크토비크라는 이누이트 마을이 있다.


△ 고래잡이가 성공하자, 이누이트 마을 카크토비크는 공휴일을 선포했다. 모든 주민은 바닷가에 나와 고래를 구경하고, 고래 고기를 요리하기 시작한다.

9월3일, 마을은 일요일인데도 분주했다. 내일이 바로 올 들어 처음으로 고래를 잡으러 나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제임스 파코닥(82)은 새벽부터 마을 동쪽의 카크토비크곶에 나가 바다를 관찰했다.

이누이트의 생계를 위한 사냥은 허용돼

“북극에서 밀어보낸 빙산이 너무 많으면 보트의 이동이 쉽지 않거든. 바람이 서쪽으로 불어서 빙산을 치워줘야 할 텐데….”

제임스는 점심을 먹고 내일 타고 갈 보트를 점검했다. 예전처럼 물범 사냥도 자주 나가지 않아 몇 달 만에 만져보는 보트였다.


△ 고래잡이는 거대한 동물과의 인내력 싸움이다. 고래가 보트를 치면 보트가 뒤집히면서 인명사고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걱정이 된 마을 주민들이 바닷가로 나와 고래잡이배를 기다리고 있다.

보트의 기름을 채우고, 먹을거리와 보온 장구를 실었다. 제임스의 배에는 파코닥 가문의 젊은이 5명이 탈 것이다. 제임스가 키를 잡고, 젊은이들은 고래 수색과 포획을 맡는다. 팀은 이렇게 가문별로 구성된다. 파코닥, 브라우어, 트리트…. 고래잡이배는 모두 8척이다.

고래잡이배는 우람한 포경선이 아니다. 한국의 유원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모터보트다. 보트의 맨 앞에는 작살이 걸려 있다. 작살에는 폭약이 들어 있다. 젊은 사수가 겨누어 쏜 작살은 고래의 가죽 밑으로 깊게 꽂히고 이내 폭발해 내장에 상처를 입힌다. 그 다음부터는 사람과 고래의 인내력 싸움이다. 고통에 겨워하는 고래가 요동치며 빙산 속으로 도망가기 때문에, 이누이트들은 작살을 붙잡고 고래가 탈진할 때까지 따라가야 한다. 작살을 놓치면 고래도 죽고 이누이트에게도 남는 게 없다.

12살 때부터 고래잡이배를 탄 제임스는 “지난해에는 아픈 이 때문에 나가지 못했다”며 한껏 들떠 있었다. 제임스의 나이는 이미 여든둘. 죽을 때까지 바다에 나가겠다고 하지만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나는 노회한 선장이 됐지만, 젊은이들이 잘해줄 거야. 내일 분명 고래를 잡아올 거야.”


△ 12살에 고래잡이배를 처음 탄 브래드 타나브룩(47)은 허리를 다쳐 몇 년째 배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그는 바다에 나가는 친척들을 마중나왔다.

이튿날 아침 6시 항구가 부산해지기 시작했다. 보트는 따로따로 출발한다. 8척의 선장과 선원들은 두 손을 모으고 안전을 기원했다(이누이트의 대다수는 기독교도다). 8대의 보트마다 “아멘” 하는 낮은 소리가 울리고, 보트들은 하나둘씩 얼음 바다로 향했다.

각 보트에 6~7명씩 모두 51명의 이누이트가 고래 사냥에 참가했다. 마을의 인구가 250명이니, 젊은 장정들이 모두 나선 셈이다. 보트는 두 떼로 나눠 보퍼트해를 수색한다. 3대의 보트가 서쪽을, 5대의 보트가 동쪽을 맡았다.


△ 이누이트 아이들의 친구는 자연이다. 아이들은 시설이 부족한 놀이터에서도 즐거이 논다.

국제포경위원회는 고래 사냥을 금지하고 있다. 다만 이누이트들의 생계 목적의 사냥은 허용한다. 미국은 알래스카의 이누이트 마을별로 한 해 잡을 수 있는 쿼터를 지정한다. 반면 캐나다는 이누이트에게도 고래 사냥을 금지하고 있다. 카크토비크 주민들은 한 해 세 마리를 잡을 수 있다. 인구가 많아 할당량이 많은 다른 마을은 봄과 가을에 나누어 잡지만, 카크토비크는 가을에만 잡는다.

“브라우어 가문이 잡았다!”

이누이트들이 잡는 고래는 큰머리고래(Bowhead whale)라고도 불리는 북극고래다. 1993년 조사에서 북아메리카 북부 연안인 보퍼트해, 추크치해, 베링해에 6900~9200마리가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극고래는 이 밖에 그린란드와 북해에도 서식한다. 북극고래는 긴 수염을 가지고 있으며, 100년 이상을 사는 장수종이다. 포유류 중에는 가장 오래 산다고 한다. 이들은 무리를 지어 북극이 뻗어내린 해빙의 끝을 따라 철 따라 이동한다. 가을철 카크토비크 앞바다에 보이는 고래들은 캐나다 북부 연안에서 베링해로 가는 무리들이다.


△ 고래를 잡으면 피하지방층인 묵툭(muktuk)을 삶아 먹는다.

오후 6시40분 황급한 목소리가 무전기를 통해 마을에 퍼졌다. “브라우어 가문이 잡았다!” 맨 처음 고래에 작살을 꽂은 이는 샐던 브라우어(36). 브라우어 가문의 촉망받는 청년이다. 곧바로 달려간 다른 배들도 작살을 던져 고래를 포위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브라우어는 “빙산이 가로막혀 고래를 끌고 돌아가는 데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밤 12시에서 새벽 3시 사이에서 도착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밤 11시. 리처드 마누(25)와 친구들은 고래잡이배를 맞으러 카크토비크곶에 나갔다. 하얀 빙산을 뒤로 멀리 고래잡이배의 불빛들이 보였다. 무거운 고래는 몇 척의 배들이 작살을 꽂아야만 비로소 끌려온다. 하지만 노란 불빛은 쉬이 가까워지지 않았다. 리처드는 “날이 어두워져 보트가 속도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보트가 빙산에 부딪히면 끝장이다. 얼음 바다에 빠지면, 아무리 강인한 사람이라도 3분을 버티지 못하고 쇼크사로 숨지기 때문이다.

리처드의 친구 챈들러(25)는 마른 나뭇가지를 모아 불을 피웠다. 챈들러는 이틀 전 고향인 이곳으로 돌아왔다.


△  주민들은 북극고래의 고기를 다 떼어내고 남은 뼈는 바닷가에 그대로 놔둔다. 북극곰이 와서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어릴 적 백인 부모에게 입양돼 오리건주에 살았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에 입대해 한국 포천에서 근무하다가 2년 전에 제대했죠. 그런데 고향을 잊을 수가 없었어요….”

챈들러를 환영하듯 초록색 오로라가 하늘을 휘감기 시작했다. 친구 집에 머무르고 있는 챈들러는 이곳에서 직장을 잡고 내년엔 고래 사냥에도 따라갈 생각이다. 그동안 잊어왔던 이누이트의 삶의 방식을 하나씩 배워가는 것이다.

사실 마을 사람들에게 이번 고래잡이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원래 카크토비크 주민들은 석유 개발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왔다. 특히 주민들은 마을과 북쪽으로 맞닿아 있는 1002구역(북극야생동물보호구역)의 석유 시추를 추진하는 석유회사와 보조를 맞춰 환경운동가들의 눈총을 받아왔다. 마을의 현대화된 학교 시설, 정비된 상하수도관,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해주는 발전소 등 공공시설이 석유회사의 지원으로 이뤄졌고, 일부로부터 “카크토비크 주민들은 석유 부호를 꿈꾼다”는 뒷말을 들어야 했던 것이다. 언론과 환경단체의 등쌀에 시달린 론 손살라 카크토비크 시장은 마을 홈페이지에 “주민들의 땅은 주민들의 의사에 따라 결정한다”는 의견을 올리기까지 했다.

셸의 지진파 시험에 반기 들다

그러던 중 사건이 일어났다. 올여름 네덜란드계 석유회사인 셸이 마을 앞바다에서 지진파 시험을 추진했던 것이다. 지진파 시험은 석유 시추의 전 단계였다. 주민회의는 “셸이 주민과의 충분한 의논 없이 지진파 시험을 추진하고 있다”며 반대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손살라 시장도 이를 토대로 셸에 유감을 표명했다.


△ 고래 고기를 맨 처음 해체할 수 있는 권한은 첫 번째 작살을 꽂은 사람에게 돌아간다. 브라우어 가문의 샐던 브라우어가 영광을 안았다.

주민들이 처음으로 석유회사에 반기를 든 이유는 고래 때문이었다. 해저에 음파를 쏘는 지진파 시험이 북극고래를 교란시킨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셸은 “지진파 시험 장소에 해빙이 쌓여 있어 진행이 어렵다”며 시험을 내년으로 미뤘다.

고래잡이배들은 아침 6시가 돼서야 마을에 도착했다. 24시간의 긴 사투였다. 북극의 냉혹한 한파를 버틴 선원들은 말없이 배에서 내렸다. 길이 15m, 몸 둘레 8m. 고래는 집채만큼 거대했다.

카크토비크 초등·중학교장은 휴교령을 내렸다. 마을 사람들도 일을 접고 바닷가로 나와 고래 고기를 나눠 먹는 축제를 준비했다. 젊은이들은 고래 위에 올라가 펄쩍펄쩍 뛰었다. 꼬마들이 고래수염을 당기니 오르골 소리가 났다.


젊은 장정들이 잡아온 북극고래는 긴 수염을 가졌다. 100년을 넘게 사는 장수종이다.

고래잡이배는 물범의 가죽으로 만든다.‘우미아크’로 불리는 이 배는 주로 얼음이 많은 봄철 사냥에 이용된다.

마을의 꼬마들도 숙련된 고래 축제 준비자들이다. 꼬마들이 해체한 고래를 나르고 있다.


△ 고래잡이배는 거창한 포경선이 아니다. 작은 모터보트로 이누이트들은 고래와 생존을 건 싸움을 벌인다.


△ 중장비를 동원해 고래 가죽을 씻는다. 바다로 흘러가는 고기 냄새는 갈매기와 북극여우, 북극곰을 불러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