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집위원회 독자편집위원클럽 독자와함께 이번호목차 지난호보기 독자마당 기사의견

한겨레21 구독신청 sitemap

e-Book
표지이야기 특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문화/과학 인터뷰 스포츠/건강 사진/만평 칼럼 독자마당
Home > 독자마당 > 보도그뒤 목록 > 내용   2007년08월23일 제674호
통합검색  검색
전자호구는 독점계약이었다

WTF·라저스트사 〈PD수첩〉 통해 본지 667호 보도 내용 부인… 계약 내용은 ‘실질적인 독점성’ 띠고 있어

▣ 최은주 기자 flowerpig@hani.co.kr
▣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태권도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세계태권도연맹(WTF)의 전자호구 공인계약을 둘러싼 잡음이 확산되고 있다.

공인 협정 안에 ‘공인’ ‘독점’ ‘오직’

전자호구란 상대방의 공격으로보터 몸과 얼굴을 보호하는 ‘호구’(護具)에 전자센서 시스템을 장착한 도구를 뜻한다. 태권도 경기에서 상대방을 쳤을 때 센서가 이를 인식하고 점수를 측정한다. 전자호구 도입 사업은 각종 국제대회 때마다 불거진 판정 시비로 올림픽 종목 탈락 위기에 몰린 태권도를 구하기 위한 대안으로 손꼽혀왔다.


△ 3월5일 강원도 춘천 호반체육관에서 열린 전자호구국제태권도대회에서 사용된 라저스트사의 전자호구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사진/ 연합)

논란은 <한겨레21>이 지난 7월10일치(667호)에 보도한 ‘전자호구 싸움은 누가 말리나’라는 기사로 시작됐다. <한겨레21>은 기사에서 “WTF가 전자호구 개발업체 라저스트사와 ‘불투명한 방식’으로 ‘독점 계약’을 맺어 태권도의 국제적 위신이 추락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WTF 쪽은 “라저스트사와 독점 ‘공인’ 계약은 맺은 바 없다”고 <한겨레21>의 보도 내용을 부인했고, 문화방송 〈PD수첩〉은 지난 8월14일 방송된 ‘태권도, 올림픽 퇴출 기로에 서다’에서 “계약서 내용 중 자신들을 독점적 스폰서로 한다는 내용이 오해를 불러일으켰을 것으로 추정한다”는 라저스트사 쪽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한겨레21>의 보도가 사실과 다르다고 단정했다.

같은 사안을 두고 <한겨레21>과 〈PD수첩〉은 왜 정반대의 보도를 했을까. 쟁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WTF와 라저스트사가 맺은 계약이 독점적인가이고, 두 번째는 그 과정이 투명했는가이다. <한겨레21>은 WTF 쪽의 부인과 〈PD수첩〉 쪽의 반론에도 불구하고 WTF와 라저스트사가 맺은 계약은 ‘독점 계약’이고, 계약 체결 방식 또한 지극히 불투명했다고 판단한다. 물론, WTF 쪽의 자료 공개 거부로 2005년 7월20일 열린 1차 시연회와, 2006년 3월25일 열린 2차 시연회의 평가 결과를 전달하는 데 일부 잘못이 있었음은 인정한다.

먼저, 독점성 여부를 보자. 모든 논란의 해답은 2006년 9월11일, WTF와 라저스트사가 맺은 ‘전자호구에 관한 공인 협정’(RECOGNITION AGREEMENT) 안에 녹아 있다. 22개 항으로 구성된 A4용지 6쪽짜리(표지 제외) 계약서의 주요 내용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 WTF는 라저스트사가 만든 전자호구의 전세계 배급을 공인한다(1조). 둘째, WTF는 라저스트사를 ‘독점적’ 스폰서로 임명한다(2조). 셋째, WTF는 WTF가 승인하고 주최하는 경기에 ‘오직’ 라저스트사의 전자호구만 사용하도록 조치를 취한다. 올림픽 경기에서도 ‘오직’ 라저스트사의 전자호구만 추천한다(3조). 넷째, 계약 기간은 2007년 5월18일부터 5년 동안이고, 이 계약은 양쪽의 합의가 있으면 자동적으로 5년 동안 연장된다(5조). 즉, 계약의 유효기간은 2007년 5월18일부터 최장 2017년 5월17일까지다.


△ 조정원 WTF 총재는 2006년 9월11일 라저스트사와 맺은 공인 협정서에 사인했다(왼쪽사진/ 연합). 〈PD수첩〉은 8월14일 방송에서 태권도 전자호구 공인계약을 다룬 <한겨레21>의 보도가 “사실과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WTF의 해명대로 WTF와 라저스트사가 맺은 계약은 ‘독점 공인’계약은 아니다. 전자호구 개발업체인 ‘아디다스’(Adidas)와 ‘대도’(Daedo) 쪽에서도 WTF가 정한 기준을 맞추면 공인을 받을 수 있고, 현재 그 절차가 진행 중이다. 지난 7월 보도 당시 <한겨레21>도 그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계약의 실질적 내용이다. 계약서는 WTF가 주최하는 모든 대회(세계선수권대회, 월드컵선수권대회 등)에는 라저스트사의 제품만 쓸 수 있고, 올림픽이나 WTF 승인대회(대륙별 선수권대회 등)같이 WTF가 기구 사용을 강제할 수 없는 대회에는 WTF가 나서 라저스트사의 제품‘만’ 추천한다고 못박고 있다. 이는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 출전을 목적으로 하는 선수들은 앞으로 ‘국제 표준’과 비슷한 지위를 획득한 라저스트사의 제품만 사용하게 되며, 아디다스와 대도 쪽의 제품은 WTF의 공인을 받는다 해도 시장에서 선택되기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 김종대 라저스트 부회장도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WTF와 전자호구를 사용할 경우 라저스트사의 전자호구만 사용한다는 전용사용 계약을 맺었다. 특정 기간에 가장 우수한 제품 한 가지만 사용해야 한다”며 제품 공급의 독점을 인정했다. 문제의 핵심은 ‘독점 공인’ 여부가 아니라, 계약의 ‘실질적인 독점성’ 여부인 것이다.

계약 체결 방식 또한 지극히 불투명

공인 과정은 투명했는가. 그렇지 않다. 전자호구 공인 계약을 둘러싼 잡음을 다룬 <한겨레21>의 첫 보도가 나오기까지 일부 WTF 핵심 관계자들과 아디다스 등의 시장 참여자들은 WTF와 라저스트사의 계약 내용을 알지 못했다. 라저스트사 전자호구가 최장 2017년까지 WTF가 주최하는 모든 대회에 독점 공급되며, 올림픽이나 연맹 승인대회에도 독점 공급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은 아디다스 같은 전자호구 업체들에게 즉시 알려져야 하는 중요한 시장 변화다.

프랭크 마이어 아디다스 이사가 7월26일 WTF 쪽에 보낸 공문을 보면, 아디다스 쪽에서는 현재 한국체육과학연구원(KISS)에서 진행 중인 기술 검사가 빨리 끝나면 2008년 올림픽을 준비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공인 절차가 신속히 진행되길 바랐던 아디다스의 기대와 달리 WTF는 아디다스 호구의 공인 절차를 7개월째 진행하지 않고 있다.

지난 3월4일부터 이틀 동안 춘천에서 열린 ‘춘천 WTF 전자호구국제태권도대회’는 태권도 역사에 두고두고 회자될 재앙으로 기록될 것 같다. 선수들은 WTF의 공인 절차를 통과한 라저스트사의 전자호구를 입고 경기를 치렀다. 경기가 별 탈 없이 잘 끝났다면, 공인 계약을 둘러싼 여러 잡음들은 찻잔 속의 태풍으로 가라앉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결정적으로 호구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라저스트사의 전자호구를 찬 선수들은 경기장에서 뒤엉킨 채 주먹을 주고받으며 이상한 경기를 펼치기 시작했다. 어려운 발차기 공격은 점수로 체크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던 데 견줘, 손쉬운 주먹 공격에는 센서가 쉽게 작동했기 때문이다.

이종우 전 국기원 부원장은 2002년 4월치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어떤 운동이든 스포츠로 발전하려면 뭔가 독특한 것이 있어야 했다”며 “그래서 우리는 발 중심으로 가자고 결정했다”고 말했다. “만일 태권도를 서로 엉겨붙어서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고 하는 경기로 만들었다면 아주 지저분한 싸움이 됐을 거예요.” 대회장에서 선수들이 벌인 것은 바로 그 지저분한 싸움이었다.

결국 WTF는 전자호구 도입 시기를 베이징 올림픽 이후로 연기하는 중대 결단을 내리게 된다. WTF는 2006년 9월11일 자신들이 라저스트사와 맺은 공인 계약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린 것이다.

성의 있는 응답을 기다린다

이제 공은 다시 WTF와 〈PD수첩〉 쪽으로 넘어갔다. WTF는 라저스트사와 공인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왜 불필요한 오해와 의심을 살 만한 일을 저질렀는가. 〈PD수첩〉은 여전히 <한겨레21>의 보도가 핵심적인 내용에서 사실과 차이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생각하는가. WTF와 〈PD수첩〉의 성의 있는 응답을 기다린다.

  • 관련기사

    ▶전자호구 싸움은 누가 말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