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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캠페인 ] 2000년08월23일 제323호 

[캠페인] ‘진정한 명예’를 위한 긴급제안!

한 참전군인이 평생 괴로움에 시달려온 ‘베트남전 전우’들에게 드립니다


(사진/ 김영만/ 해병 중박격포중대 출신·짜빈동전투 참가)


<한겨레21> 321호에 자신의 베트남전 경험을 털어놓았던 김영만(55·마산희망연대 고문)씨가 글을 보내왔습니다. 그는 이제 베트남전 민간인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비는 일에 참전군인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말합니다. 뜻을 함께 하는 참전군인들이 힘을 모아준다면 그가 앞장을 서겠다고 합니다. 그는 ‘전우’들을 위하여 자신의 연락처를 남겼습니다.

편집자

베트남전 참전전우 여러분!

이 각박하고 힘든 세상을 지금 다들 어떻게 살아가시는지요? 우리 서로 얼굴이 다르듯이 생각도 직업도 살아가는 모습도 각양각색일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어떤 운명적인 연대의 끈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끈은 젊은 시절 머나먼 이국땅 정글 속에서 ‘자유와 민주 수호’를 위해 베트콩이라는 적과 목숨을 걸고 싸웠던 베트남전 참전군인이었다는 전력과 그때 우리가 함께 했던 전쟁의 경험들입니다.

짜빈동, 오 일병의 마지막 한마디

물론 병과와 보직, 그리고 부대에 따라 개개인의 참전 경험이 조금씩 다를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전선없는 전쟁터, 도대체 누가 적이며 누가 아군인지 구분조차 할 수 없었던 낮선 이국땅에서 적을 발견하지 않으면 내가 먼저 죽는다는 두려움이 그림자처럼 우리를 늘 따라다니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겁니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적들에 대한 증오심이 뒤섞인 흥분상태에서 우리의 신경은 늘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었습니다. 잠잘 때도 품에 안고 자던 M1소총의 방아쇠에 노상 손가락을 걸어놓은 채 온몸을 엄습하는 두려움을 떨쳐버리기 위해 눈알을 번득이며 우리는 죽일 것을 찾는 일에만 골몰했습니다. 이건 생존 본능이었습니다. 그러나… 전투의 경험이 쌓이고 전쟁에 익숙해지자 우리는 어느새 적들이 치를 떠는 공포의 전사들로 변모했습니다.

33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저는 그때를 생각하기만 하면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많은 회한과 분노가 되살아나기 때문입니다. 제가 사랑했던 많은 전우들 중 오 일병이라는 후배가 있었습니다, 그가 짜빈동전투에서 전사하기 직전 유언처럼 저에게 남긴 마지막 한마디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김 수병님! 우리 비겁하게 싸우다가 용감하게 귀국합시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에 다니다가 해병대에 입대한 그는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감이라도 했는지 전사하기 얼마 전부터 그처럼 역설적인 말을 저에게 자주 했습니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니 그의 말이 정말 옳았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뿐인 아까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비겁하게 몸을 사리는 군인이었더라면 그날 밤 그는 헛된 죽음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고 저도 평생 죄의식에 시달리며 살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점점 말과는 반대로 되어갔습니다, 전투는 잦아졌고 총소리와 포탄이 고막을 찢는 소리와 함께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 전우의 시체와 팔다리가 잘린 채 피투성이 돼 울부짖는 전우를 부둥켜안고 우리는 제 정신을 잃어갔습니다, 그뿐 아니라 불과 몇달 사이에 인근 3개 중대가 베트콩의 기습을 받고 전멸되었다는 비통한 소식과 함께 입대동기들이 전사했다는 비보를 들으면서 우리는 더이상 자유와 민주 따위의 고상한 것을 지키는 용사가 아니라 증오와 복수심에 불타는 전쟁의 화신으로 변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즈음 우리는 베트남인이라면 어른이고 아이고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베트콩 용의자이거나 가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베트남 군인이나 경찰이라 해도 우리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암거래 시장에 무기나 빼돌려 팔아먹는 부패한 인간들이거나 베트콩 내통자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참전군인의 ‘명예’에 관하여


(사진/참전당시의 김영만씨)


전우 여러분! 여러분 중에 “나는 전투병이 아니어서 모르겠다”고 하는 분은 지금부터 제 글에 신경을 쓰지 마십시오. 그러나 불행하게도 베트콩들과 총구가 벌겋게 달아오르도록 총을 갈겨대며 서로 죽고 죽이는 상황 속에 있어야 했던 전우 여러분! 그 당시 과연 우리가 무장 베트콩과 비무장 민간인을 구별할 수 있는 이성과 판단력을 가졌던가요?

우리 솔직하게 이야기 한번 해봅시다. 우리는 그때 비무장 베트남 민간인들까지도 상황에 따라 죽일 수 있었고 까놓고 말해 더러는 죽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총만 들지 않았을 뿐 다 똑같은 베트콩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까요.

최근 우리 사회에서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문제가 불거져 나와 고엽제 동지들을 극도로 흥분시킨 이야기가 바로 이것 아닙니까? 전쟁을 해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 더욱 화가 나지요.

전우 여러분! 맞습니다,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게 전쟁입니다. 다만 우리가 느끼지 못했던 것은 전쟁이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키면서 광기 속으로 몰고 갔다는 사실입니다. 오 일병은 바로 이 전쟁의 광기 속에서 빠져 나올 수 없는 우리의 운명을 감지했던 것입니다.

전우 여러분! 감히 말씀드리건데 저는 여러분들의 진심을 알고 있습니다. 아무에게도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하지만 그때 아무런 저항력이 없는 어린이나 노약자들까지 죽인 것을 지금은 뼈아프게 후회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사람에겐 누구나 양심이란 게 있기 때문에 분명히 그럴 거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고엽제 전우회 여러분! 진정 베트남 민간인 학살 이야기 때문에 그렇게 화가 나던가요? 그래서 베트남 참전용사들의 명예가 훼손당하는 것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 건가요? 전우 여러분! 너무 화내지 마십시오. 슬프게도 우리는 처음부터 불명예스러운 군대였습니다. 뒤늦게 알았지만 베트남전쟁은 베트남인들의 민족해방전쟁이었습니다. 마치 살인강도가 침입한 남의 집에 도와준다고 뛰어들어가 주인에게 내쫓기고 있던 살인강도를 도와 주인 가족을 죽도록 두들겨패고 온 꼴이었습니다.

가지 않아야 할 전쟁에 가게 된 것부터 잘못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때 그런 사실을 아무도 몰랐고 오직 용감하게 싸우는 것만이 조국의 명예를 지키고 자유와 민주를 지키는 일인 줄 알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우릴 보고 마치 양민들이나 학살하고 돌아온 것처럼 말하니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지요. 그렇다고 화를 내봐야 애초부터 없었던 명예가 생길 리 없는 일입니다.

베트남 피해자들이 있다는 걸 인정합시다


(사진/화랑무공훈장 상훈기록카드. 그는 상해1급 대상자였지만 당시를 기억하기 싫어 거부했다)


하지만 우리도 그 시절 지금 어느 세대보다 꿈 많고 사랑 많은 아름다운 청년들이었습니다. 고향에 두고 온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형제처럼 사랑하는 전우들, 내 조국 대한민국. 우리가 그때만큼 많은 것을 사랑했던 시절이 일생을 통해 또 있었을까요?

눈물겹도록 진정 조국을 사랑하고 부모 형제 동포 모두를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우리 사랑의 무게만큼 또다른 사람들을 이유도 없이 증오하기를 강요당했습니다. 그 어처구니없는 증오로 인해 대를 이어 불행과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베트남 피해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먼저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역시 불행한 전쟁의 피해자들이었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됩니다.

저는 33년 전 베트남전쟁에서 있었던 일로 평생 괴로운 마음을 떨쳐버리지 못했습니다. 이제 용서를 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우선 내 마음의 평화만이라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우 여러분! 32만명이나 되는 베트남 참전용사 중에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 분들이 있다면 저와 함께 합시다. 혼자보다는 열이, 열보다는 백이 함께 한다면 개인적인 의미를 훨씬 뛰어넘어 베트남과 한국민들의 화해와 용서로, 나아가 평화운동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국가를 상대로 잃어버린 우리의 청춘을 조금이라도 보상받을 수 있는 길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진실을 말하는 자는 모든 것을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저는 지난번 <한겨레21>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식들에게만은 차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솔직히 자식들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특히 31살된 큰아이는 저와 평소에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습니다. 지 어미를 이 아비가 늘 고생만 시켰다는 원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제 아침 큰아이가 출근길에 나서는 내 어깨를 살며시 감싸더니 조용히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는 정말 용기있는 분입니다, 저는 아버지를 존경합니다.” 아! 얼마나 고맙고 감격스러웠던지….

전쟁은 사람을 짐승으로 만들었지만 참회는 다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인간의 숭고한 노력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전우 여러분! 진정한 용기만이 사랑과 명예를 지킬 수 있습니다. 저에게 연락주십시오(연락처 055-222-7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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