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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국제 > 세계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8년07월31일 제7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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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총리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미국 보수파의 지지를 등에 업은 말리키가 오바마 후보를 지지하고 전투병력 철수를 못박은 이유는?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미군은 언제쯤 철수가 가능할 것으로 보나?”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지난 7월20일 발행된 최신호에서 누리 알 말리키 이라크 총리를 인터뷰했다. 7월23일 말리키 총리의 독일 방문을 앞두고 마련된 자리였다. 말리키 총리는 이렇게 답했다.

“우리 입장에선 빠를수록 좋다. 버락 오바마 미 민주당 대선 후보는 (당선된다면) 취임 뒤 16개월 안에 미군 전투병력을 철수시키겠다고 공약했다. 약간의 변화 가능성을 인정하더라도, 그 정도라면 썩 괜찮은 철군 계획이라고 생각한다.”


△ ‘뭔가, 실제로 달라질 수 있을까?’7월21일 이라크 바그다드를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미 민주당 대선 후보(왼쪽)가 데이비드 페트레이어스 이라크 주둔 미군 사령관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REUTERS/ LORIE JEWELL)

절묘한 <슈피겔>과의 인터뷰 시점

말리키 총리의 발언은 두 가지 점에서 워싱턴과 바그다드를 분주하게 만들었다. 이라크 주둔 미군의 철군 시한을 못박은 것으로 볼 수 있는데다,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듯한 발언으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민주당 쪽에선 ‘환영’ 일색이었지만, 공화당 진영에선 ‘분노’의 목소리가 들끓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알리 알다바그 이라크 총리실 대변인이 나서 “<슈피겔>의 보도는 말리키 총리의 본뜻과 다르다”며 “일부 오해와 오역이 있었다”고 발표했다. 물론 ‘오해’와 ‘오역’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발언의 시점은 절묘했다. 7월21일 잭 리드(민주당·로드아일랜드주), 척 헤이글(공화당·네브래스카주) 등 상원 동료 의원들과 함께 오바마 후보가 이라크 남부 도시 바스라에 도착한 게다. 지난 2006년 1월 이후 이라크를 처음 방문한 오바마 후보는 그동안 달라진 현지 상황에 대한 브리핑을 받은 뒤 말리키 총리 등 이라크 정치인들을 잇따라 만났다. 〈AP통신〉은 7월21일 타리크 알하세미 이라크 부통령(수니파)의 말을 따 “(오바마 후보와) 이라크 주둔 미군 철수 시점과 관련해 공통의 이해를 넓혔다”며 “이를테면 2010년 12월31일까지 이라크 주둔 미군 전투병력이 철수한다는 식의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말리키 총리와 비슷한 뉘앙스다.

말리키 총리는 사담 후세인 정권 시절 시리아와 이란에서 망명 생활을 한 인물이다. 시아파 이슬람다와당을 이끌고 있는 그는 애초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두 손 들어 환영하지도 않았다. 부시 행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2006년 5월 이라크 총리에 올랐지만, 미 보수 진영은 그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아왔다. 취임 이후에도 말리키 총리는 “조만간 미군이 철수하고 이라크군이 자체적으로 치안을 유지하게 될 것”이란 발언을 되풀이해왔다. 현재 이라크에 주둔 중인 미군은 14만7천여 명에 이른다.

논란을 부른 <슈피겔> 인터뷰에서도 말리키 총리는 미 보수파의 공분을 살 만한 발언을 했다. ‘이라크의 치안 상황이 최근 개선된 이유가 뭐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그는 “종파를 초월한 정치적 화해 노력과 이라크 치안 인력의 적극적인 활동, 이라크 국민 사이에서 알카에다와 무장세력에 대한 거부감이 커진 점도 한몫을 했다”며 “경제가 회복기에 접어든 것도 중요한 요인”이라고 말했다. 병력 증파 등 미군의 적극적인 공세가 치안 상황을 안정시켰다는 부시 행정부의 주장은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존 매케인 공화당 대선 후보의 외교정책을 보좌하는 맥스 부트 미 외교관계위원회(CFR) 선임연구원이 7월23일치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꼬집은 것은 말리키 총리에 대한 미 보수 진영의 ‘뒤틀린 심사’를 여과 없이 드러내준다.

두 번의 선거와 SOFA 협상

“민주당 쪽에선 지난 2년여 동안 끊임없이 말리키 총리의 무능함을 비판해왔다. 말리키 총리가 오바마 후보의 철군 계획을 지지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그에 대한 평가를 달리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다. 말리키 총리의 그같은 발언은 정치적 동기가 있다는 의심을 살 만하다. …말리키 총리는 오바마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될 것으로 예상한다. 그래서 오바마 후보가 취임하기 전에 선수를 칠 필요가 있다고 느낀 게다. 오바마 후보의 정책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차기 행정부 출범 이후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부트 연구원의 주장을 쉽게 ‘억측’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실제로 말리키 총리의 최근 행보는 ‘정치적 의도’가 짙을 수밖에 없다. 이유는 두 가지다. 국내적으로 말리키 총리는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올해 안에 지방선거가 예정돼 있고, 내년엔 의회 선거도 앞두고 있다. 두 차례 중요한 선거에서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선 최소한 미국에 맞서는 듯한 모습을 유권자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이와 맞물려 이라크 주둔 미군의 주둔군지위협정(SOFA) 협상도 중요한 고려 요소다. 애초 지난 3월 협상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미국은 이라크 쪽에 ‘황당한’ 요구 조건을 내걸었다. 영국 <인디펜던트>가 지난 6월5일치에서 “미군이 이라크 영구 주둔을 계획하고 있다”고 비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신문 보도를 보면, 미국은 협상 초기 이라크 쪽에 △2만9천ft(약 8230m) 이하 영공 통제권 △일방적 군사작전 실행권 △이라크 주민 체포·구금권(이른바 ‘예방적 구금권’) △50여 개 영구 기지 사용권 △미군 및 민간업자에 대한 면책특권 등을 요구했다. 말리키 총리로선 미국 쪽 요구 조건을 다 들어줄 경우, 정치적 생명은 물론 자칫 목숨까지도 내놓아야 할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다. 그렇다고 자신의 든든한 후원자인 미국의 요구를 아예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줄타기’를 시작한 이유다.

협상은 난항을 거듭해왔다. 미군은 물론 이라크에 진출한 미 민간업체 직원들(주로 경비·용병 업체)에게도 면책특권을 요구했던 미 협상팀은 민간 용병업체 직원들이 연루된 총기 난사 사건이 잇따르면서 결국 민간인에 대한 면책특권 요구는 거둬들인 것으로 전해진다. 또 철군 시한에 대한 거론조차 금기시해온 것과는 달리 최근 들어 “대략적인 철군 시점에 대한 논의는 가능하다”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막판까지 남은 쟁점은 뭘까? 정치 전문 뉴스 사이트 <허핑턴포스트>는 지난 7월9일치에서 “미군의 자체 판단에 따라 일방적으로 군사행동을 개시할 수 있는 권리와 개전 이후 지금껏 해온 대로 ‘안전’상의 우려가 있을 때는 이라크인들을 ‘예방적 구금’에 처할 수 있는 권리 등 두 가지가 여전히 논란을 거듭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지난 6월13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보낸 항의 서한에서 열악한 수감 환경 아래서 변호사의 조력도 받지 못한 채, 기소 절차도 없이 무기한 억류당한 이라크인들은 최대 10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한 바 있다.

유엔이 정한 미군 주둔 시한은 연말

“미국과 이라크 정부는 앞으로 두 나라의 안보·정치·경제·외교 관계의 대강을 그려내는 전략 협상을 벌이고 있다. …아쉽게도 애초 기대와 달리 7월 안에 협상을 끝마치지는 못할 것이다.” 데이나 페리노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 7월21일 정례브리핑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봄부터 “7월 말까지 이라크 정부와 주둔군지위협정을 포함한 포괄적 전략동맹 협상을 마무리지을 것”이라던 부시 대통령의 공언이 물 건너갔음을 인정한 게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정한 미군의 이라크 주둔 시한은 올 12월31일까지다. 시한이 지나면 미군의 이라크 주둔은 국제법상 불법이 된다. 물론 이라크 정부의 ‘요청’이 있으면 주둔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결국 부시 행정부는 2009년까지 1년간 한시적으로 미군의 이라크 주둔 기간을 연장하는 선에서 만족해야 할 듯싶다. 차기 미 행정부는 ‘전제 조건’ 없이 이라크 정책을 고민할 수 있게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