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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국제 > 세계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8년07월24일 제7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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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오늘을 걷다] 아시아의 몬도가네, 타이 왕실모독처벌법

왕실을 비방·모독·위협하면 3~15년형… 언론과 표현의 자유 위에 서서 국민으로부터 공포를 배양하다

▣ 방콕(타이)=글·사진 유재현 소설가 hyoooo@hanmail.net

[아시아의 오늘을 걷다 ②]

올해 방콕의 길거리에는 매머드 사이즈의 공주님 사진이 만발이다. 주인공은 다름 아닌 짜끄리왕조의 라마 9세인 푸미폰 국왕의 여동생 갈리아니 바다나(애칭 깐야니). 지난 1월2일에 사망해 보름 동안의 국장을 지냈으며, 100일 동안의 애도 기간을 이제 막 끝냈고, 오는 11월14일부터 6일간 900만달러 예산의 장례식을 또 치르게 된다. 향년 81살. 공주님 사진은 연말까지 내내 방콕 시내의 관공서들과 공공기관, 왕실을 흠모하는 사기업 앞이나 쇼윈도에서 치워지지 않을 양이다. 정말이지 괴로운 일은 사진이 30대 즈음에 찍힌 것인데다, 이른바 ‘포샵’으로 무겁게 떡칠을 해두었음에도 인상이 곱지 않아 만인의 정신건강을 무의식적으로 해친다는 것이다.

공주님을 향한 열한 달의 집단 광기


△ 푸미폰 국왕(위)과 깐야니 공주의 사진이 내걸린 방콕의 거리. 타이에선 국왕에 대한 사소한 ‘불경’도 종종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진다.

올해 초 타이의 모든 신문과 방송들은 공주님의 사망에 미친 듯이 지면과 전파를 할애하고, 공주의 일대기를 방영하는 등 왕실에 대한 충성 경쟁에 여념이 없었다. 방콕의 명성 높은 인터내셔널 유흥업소의 사장들 또한 자진해 문을 닫았고, 구멍가게 주인들은 상점을 철시한 것도 부족해 돈을 모아 왕실에 충성을 맹세하는 펼침막을 내걸었다. 시민들이 거리마다 세워진 공주님 추모제단에 꽃과 향을 갖다 바치기 위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줄을 서는 장면도 연출됐다.

이게 웬 ‘집단 광기’였을까. ‘방콕의 다이애나’라도 등장했던 것일까. 하지만 타이의 공주님은 다이애나처럼 비명에 횡사한 것도 아니거니와, 영국인들이 다이애나의 사진 앞에 무더기로 꽃다발을 쌓아놓은 이유 중의 으뜸은 근엄하게 ‘똥폼’을 잡으며 세금을 축내던 고루한 왕실을 그가 생전에 ‘엿 먹인’ 것에 대한 국민적 성원이었다.

깐야니 공주는 평생 그저 왕실의 공주로서 호의호식하고 부와 영예를 누리며 숨을 쉰 일 빼고는 왕실의 신민을 위해 도대체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인물이다. 이 할머니가 왕의 누이라는 이유만으로 천수를 몽땅 누리고 죽은 날인 1월2일부터 장장 열한 달 동안 방콕에서 누리는 이 방탕한 호사 아닌 호사가 21세기의 풍경으로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나만의 느낌은 아니었길 바란다.

무려 열한 달을 공주의 사진과 제단으로 수도의 거리를 도배하는 나라. 설날과 생일에 왕의 사진이 전 국토에 연꽃처럼 피어나는 나라. 아무 날이 아닌 날이라도 왕의 외눈 시선을 피할 수 없는 나라. 타이다. 오늘날 지구상에서는 근대국가로 호칭할 수 있는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왕실에 대한 타이의 오랜 미스터리적 경배 현상을 두고 외국인들은 ‘아시아적 몬도가네’쯤으로 취급하거나, 타이 특유의 문화라고 생각하거나, 남의 일이니까 하고 무심히 넘어간다. 그러다 가끔 큰코다친다. 2007년 3월 국왕인 푸미폰의 초상에 그래피티를 시도한 57살의 스위스 아저씨 올리버 유페는 10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천행으로 국왕의 사면을 받고 한 달의 옥살이 끝에 본국으로 추방당했다(전하, 성은이 망극하기가 밑도 없고 끝도 없나이다?). 장담컨대 그가 타이인이었다면 15년간 철창 신세를 피할 수 있는 길이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방법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만만세’가 아니면 아예 입을 닫아라

짜끄리왕조의 라마 9세인 푸미폰 아둔야뎃. 재위 62년으로 세계 최장기 국왕의 타이틀을 갖고 있다. 방콕 안팎을 포함해 5260ha의 토지를 소유한 타이 최고의 지주이며, 알짜 기업의 대주주로 100억에서 200억달러로 추정되는 재산을 가진 부자다. 푸미폰이 성역에 자리를 차고 앉아 있게 하는 일등공신은 올리버 아저씨에게 10년의 실형을 선고한 형법 112조, 이른바 ‘왕실모독’에 대한 처벌법이다. 말하자면 1970년대 남한의 국가보안법이 타이에서는 지난 60년 동안 왕실모독처벌법으로 변주돼왔다.

“왕과 왕비, 왕실의 후계자 또는 왕실을 비방·모독하거나 위협하는 자는 3년에서 15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이게 왕실모독죄로 일컫는 타이 형법 112조, 군주보안법의 실체이다. 비방·모독·위협과 관련한 광폭의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다.


△ 방콕 중심가에 푸미폰 국왕의 후계자로 거론되고 있는 시리돈 공주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지난해 9월 쿤 초티삭 온숭이란 이름의 청년이 방콕의 쇼핑센터인 센트럴월드 극장에서 영화가 상영되기 전 왕실 애국가가 울려퍼지는 동안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았다. 왕실모독 처벌법으로 고발당한 이 청년은 청춘을 철창 안에서 보낼 위기에 처했다. 올해 6월 <천일의 앤>이 상영되던 극장에선 랏차핀이란 이름의 여성이 초티삭의 뒤를 따랐다.

타이에서 영화를 보고 싶지만 동시에 초티삭과 같은 궁지에 빠지기를 원치 않는다면, 제때에 제꺼덕 일어서야 한다. 일어서야 할 타임은 알아서 알려준다. 타이어와 영어로 ‘전하에 대해 존경을 표하시오’(Pay respect to His Majesty the King)라는 문구가 스크린을 채우면 잽싸게 일어서야 한다. 그럼 알아서 왕과 왕실을 찬양하는 애국가가 흘러나온다.

영국 〈BBC〉 방콕 지국장인 조너선 헤드는 지난해 12월 외신기자클럽의 공개토론회에서 사회를 보던 중 왕실을 모독하는 발언을 한 혐의로 관할지 경찰서장에 의해 고발됐다. 〈BBC〉 방콕 지국과 런던 본사는 본의가 아니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진땀을 빼고 있지만 궁지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세계 유수의 미디어도 속절없이 당하고 있는 셈이다.

타이에서 왕에 대해 말하는 것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는 이래서 만들어진다. ‘국왕폐하 만만세’를 떠들 생각이 없으면 닥치고 있는 것이 상책이다. 방콕에 도착한 다음날 만났던 노동운동가 2명은 푸미폰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주위를 두리번거리기에 바빴고 대화 볼륨을 10분의 1로 낮추었다. 재수 좋으면 징역 3년, 없으면 15년의 위력은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반면 일체의 비판이 불법으로 처단되는 공포의 고랑에 존경을 일구는 일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공포에서 벗어나려는 욕망이 점증하는 탓에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전통과 문화, 종교에 책임을 미루고 존경을 택해버린다. 그 세월이 대를 넘어 60년에 이르게 되면 자기최면은 도를 넘어서는데, 이게 왕실을 마음에서 우러러 지극정성으로 섬기는 타이 전통 문화의 실체다.

공포를 배양함으로써 존경을 강압하는 이 악법이 정치적 용도와 무관할 리 없다. 원래 태생부터 그 용도였다. 대표적 사례로는 노벨평화상 후보로 오르락거리는 불교학자 술락 시바락사 탄압 사건이다. 1984년 이 법으로 구속됐던 술락은 국제적 비난이 쇄도한 끝에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1991년 탐마삿대학에서의 강연으로 다시 기소될 위기에 처하자 망명을 택했다. 가장 최근의 피해자는 사막 순다라벳 정권의 총리실 장관인 작라폽 펜카이르이다. 작라폽은 지난해 8월 외신기자클럽에서 기자들을 상대로 한 발언이 문제가 돼 올해 5월 왕실모독죄로 고발당했다. 작라폽은 이 일로 장관직에서 사임했지만, 재판을 피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탁신을 등에 업은 사막 정권을 겨냥한 본때 보이기로 해석되고 있다(<한겨레21> 718호 세계 ‘타이 엘리트 좌파의 자가당착’ 참조). 평민은 말할 것도 없고 집권당마저도 희롱하는 이 무소불위의 법에 타이의 지식인들은 일찍부터 입에 방성구를 채우고, 혹여 헛소리(?)가 새어나오지 않도록 조심을 거듭하는 전통적 미덕을 완성시킨 지 오래다.


△ 지난 1월2일 숨진 깐야니 공주를 추모하는 펼침막은 방콕 시내 도처에 내걸려 있다.

1976년 탐마삿대학의 학살

언론과 표현의 자유는 당연히 이 법 아래 존재한다. 타이의 모든 미디어는 왕실과 야합하거나 충성을 맹세하는 ‘타이 왕실판 조·중·동’이지만, 이 법이 존재하는 고로 최소한의 면죄부를 얻고 있다. 인터넷도 예외는 아니다. 왕실에 삐딱한 시선을 보내는 콘텐츠는 웹이건 유튜브건 타이 국경을 넘어갈 수 없다. 영화? 주윤발의 <왕과 나>는 왕실을 시원찮게 묘사했다고 해서 애당초 상영 금지였다. 책? 두말하면 잔소리가 된다. 최초로 푸미폰을 제대로 된 도마 위에 올려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폴 핸들리의 <절대 웃지 않는 왕>(King Never Smiles)은 출간 전부터 판금의 처지를 피할 수 없었다. 출라롱콘대학의 교수인 길레 지 웅파콘의 <부자를 위한 쿠데타>는 핸들리를 인용했다고 해서 배본을 거부당했다. 웅파콘은 이 책을 통틀어 핸들리의 책에서 단 한 문장을 인용했을 뿐이다.

1976년 10월 민주항쟁의 목을 조른 탐마삿대학의 학살은 왕실모독과 관련된 가장 끔찍한 사건으로 남아 있다. 경찰이 2명의 학생을 나무에 목매단 사건이 발생한 뒤 학생들은 이 끔찍한 만행을 허수아비로 재현했다. 우익 신문 중 하나가 이 현장을 사진으로 찍은 뒤 허수아비의 얼굴을 왕세자의 것으로 변조해 실었다. 왕실모독을 명분으로 우익 폭도들이 탐마삿대학에 난입해 몇백 명을 학살한 뒤 쿠데타로 타닌 군부독재 정권이 들어섰고, 진상은 지금까지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푸미폰은 피로 물든 쿠데타를 추인하고 타놈 정권에 이어 타닌 정권을 품에 안았다.

왕실모독 처벌법은 타이 최초의 군부독재 정권인 피분 시대에 만들어졌다. 1932년 혁명으로 군주제가 붕괴된 뒤 우여곡절 끝에 1947년 본격 군부독재 시대를 개막한 피분은 우민정치의 도구로 쫓겨난 왕을 데려와 써먹었다. 미국 보스턴에서 태어나 주로 유럽에서 살다 방콕으로 돌아온 푸미폰은 군부와 손을 잡고 무너진 왕궁을 보수할 수 있었다. 그러길 60년. 20명의 총리와 16개의 헌법, 18번의 쿠데타를 거치면서 푸미폰은 군부를 뛰어넘어 직접 쿠데타를 사주하는 위치에 등극했다.

우민정치의 도구로 데려온 왕

그러므로 타이 국민들이 왕실에 허리를 굽히는 이유에 대해서 언어도단의 해설을 주워 섬기지 말았으면 한다. 타이 왕실의 신민들이 진정으로 왕실을 섬기고 사랑한다면 국가보안법을 뺨치는 왕실모독처벌법과 같은 빌어먹을 악법이 도대체 왜 필요하단 말인가. 그래도 세상은 더디게라도 조금씩 변한다. 초티삭의 저항은 10년 전이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용기였다.

한편 만고불변의 법칙에 따라 공주의 다음 차례는 오빠이다. 타이는 머지않아 60년 동안 군부와 함께 자신의 몸과 정신을 지배해온 ‘괴물’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결정적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