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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국제 > 세계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8년07월10일 제7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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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에 초대받지 못한 사람들

지하 이발가게 장씨와 삼륜 인력거 모는 쉬씨를 쫓아보내는 베이징의 ‘외지인 철거 작전’

▣ 베이징(중국)=박현숙 전문위원 strugil15@hanmail.net

장씨 아저씨네 이발가게가 문을 닫았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딸아이와 남편이 단골로 이용하는, 아파트 지하실에 위치한 작은 이발가게다. 머리 자르는 데 드는 비용이 단돈 5~10위안(약 750~1500원)밖에 되지 않는 ‘저렴한’ 이발가게다. 하지만 늘 환한 미소로 손님을 맞는 그의 ‘고객 접대’ 수준만큼은 초일류였다. 친절하고 성실한 덕분에 그의 가게는 아파트 주민들 사이에서 꽤나 인기 있었다. 그랬는데, 며칠 전 느닷없이 문을 닫았다. 장씨 아저씨는 두 달 정도 고향에 가서 ‘푹 쉬다가’ 올림픽이 끝나고 10월께나 다시 오겠다고 했다.


△ 중국 베이징 외곽의 거리에서 자전거를 개조해 만든 삼륜차에 재활용 쓰레기를 가득 실은 남성이 힘겹게 페달을 밟고 있다. (사진/ REUTERS/ DAVID GRAY)

“10월에 돌아올게요”

쉬씨네 부부도 며칠 전 베이징을 ‘떴다’. 아파트 단지를 돌며 자전거에 리어커를 붙인 삼륜 인력거를 몰던 쉬씨와 가정집 청소 등을 하던 그의 아내는 베이징에 온 지 어언 10년이 넘은 베테랑 ‘농민공’(농촌에서 도시로 돈벌이를 떠나오는 농민)들이다. 1살도 안 된 아들을 고향 네이멍구 산골 마을에 두고 떠나왔던 부부는 2년 전 어느새 초등학생으로 커버린 아들을 베이징으로 데리고 왔다. 이를 악물고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그들은 베이징에 온 지 10여 년 만에 온전한 가족의 둥지를 틀고 한창 재미나게 살던 참이다. 그랬는데, 며칠 전 그들도 홀연히 베이징을 떠났다. 장씨처럼 그 부부도 올림픽 끝나고 10월께나 다시 올 것 같다고 했다.

한국인 유학생 ㄱ도 우울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그 역시 오랫동안 베이징을 ‘뜬다’는 것이다. 남자친구가 중국인인 그는 얼마 전 양가 부모님 상견례를 마치고 내년 초로 결혼 날짜를 잡았다며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싱글벙글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그랬는데, 느닷없이 “한 반년 정도 한국에 간다”는 게다. 7월 초에 만료되는 비자를 중국 정부가 더 이상 연장해주지 않은 게 그의 한국행을 ‘강요한’ 주원인이다. 다시 한국에 가 비자를 받아서 들어올 수는 있지만 올림픽이 끝날 때까지 중국 정부는 외국인들에게 한 달 이상의 복수비자를 발급해주지 않고 있다. 비자를 받고 온다고 해도 한 달 뒤에는 다시 한국이나 제3국 등으로 출국해서 비자를 재발급받아야 한다. 그래서 ㄱ은 여러 비용 등을 생각해 아예 반년 정도 한국에 나가서 아르바이트라도 해야겠다고 한다. 그의 목소리는 아주 우울했다.

장씨와 쉬씨네 부부, 그리고 한국인 유학생 ㄱ이 잘나가던 일거리를 접고 갑자기 베이징을 떠난 건 사실 예고된 일이다. 베이징시 정부는 올림픽 기간의 유동인구 억제와 안전 문제 등을 고려해 6월 중순께 베이징 내 모든 아파트 지하실을 잠정 폐쇄했다. 그동안 주로 지하실 쪽방 등을 얻어 살고 있던 장씨나 쉬씨네 부부 같은 농민공들은 졸지에 주거지를 잃고 대부분 고향으로 내려갔다. 말이야 한두 달 ‘푹 쉬다’ 온다지만 실은 ‘철거’를 당한 셈이다. 이른바 ‘외지인 철거 작전’이다. 철거 작전에 걸린 건 외국인도 마찬가지다. 특수비자 등을 소지한 사람들을 제외하고 모든 외국인들에게 한 달 이상 복수비자 발급이 중단됐다. ㄱ처럼 쫓겨나다시피 본국으로 ‘잠시’ 돌아가는 외국인들이 속속 증가하고 있다.

당신네도 올림픽 할 때 이랬나요?

외지인들과 외국인들이 떠나가는 베이징 거리 곳곳에선 새 손님들을 맞을 막바지 준비가 한창이다. 올림픽이 한 달도 채 안 남았기 때문이다. 거리 녹화 작업과 식당 등 공공장소에서의 흡연 금지, 버스 정류장마다 배치된 질서요원들, 담벽 가득 그려진 올림픽 벽화 등 베이징 거리 어디를 가더라도 이제 ‘잔치가 시작되려는’ 분위기를 쉽게 감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은 초대받은 귀빈들과 역시나 초대받은 내국인들 잔치로 치러질 모양이다. 연초부터 터진 갖은 악재와 테러 발생 가능성 등 안전 문제를 빌미로 베이징은 최대한 ‘안전한’ 올림픽을 치르기 위해 외지인들과 외국인들의 체류 제한 정책을 택했다. 독립 문제로 시끄러운 티베트나 신장웨이우얼인들도 올림픽 기간 중 베이징 입경이 제한될 것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며칠 전에 탄 택시의 기사는 한술 더 뜬 ‘농담 같은’ 얘기를 들려줬다. “회사에서 기사들 교육을 하는데, 담당자가 그럽디다. 올림픽 기간 중 노랑머리들은 되도록 멀리하래요. 혹시 탑승했다가 귀찮은 일이라도 발생하면 회사 이미지가 문제가 아니라 국가 이미지에 문제가 생긴다고요. 노랑머리들이 손 흔들면 그냥 모른 체하래요.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르겠어요. 당신네 나라(한국)에서도 올림픽 할 때 이랬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