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목차 지난호보기 독자마당 기사에대한의견

한겨레21 구독신청 sitemap

e-Book
표지이야기 특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문화/과학 인터뷰 스포츠/건강 사진/만평 칼럼 독자마당
Home > 국제 > 세계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8년06월19일 제715호
통합검색  검색
투명인간 대통령

2006년 이후 사실상 레임덕, 사상 최악의 지지율… 유럽 순방에서도 관심은 포스트 부시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본격 점화된 미 대선]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6월9일 유럽 순방길에 나섰다. 슬로베니아에서 열리는 미국-유럽연합 연례 정상회담 참석에 이어 영국과 프랑스, 독일과 이탈리아를 차례로 방문할 예정이다. 임기 중 마지막 유럽행일 터다.

2006년 중간선거 참패 이후 사실상 ‘레임덕’이었고, 올 들어선 지지율마저 30% 선를 밑돌고 있다. 이는 “현직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 조사가 도입된 이래 최악의 상황”이란 게 미국 언론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그의 이번 방문에 앞서 일부 현지 언론들은 “유럽은 부시의 퇴장이 반갑다”는 기사를 올리기도 했다. 부시 대통령의 순방 때마다 유럽 전역을 휩쓸던 거센 반대시위도 이번엔 찾아보기 어렵다. 회한일까? 부시 대통령은 유럽으로 향하는 기내에서 영국 <타임스>와 만나 “이제 와 돌이켜보니 언어 선택에 문제가 있었다”며 ‘전쟁광’으로 기억되는 걸 저어했다.

“예정돼 있었기 때문에 하는 것이지…”


△ ‘한 시대가 아쉬울 것 없이 저물고 있다.’ 이탈리아를 방문중인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6월12일 로마 퀴리날레궁을 방문해 벽화를 올려다보고 있다. (사진/REUTERS/ HO NEW)

부시 대통령을 맞이한 유럽 정치권과 여론의 반응은 차분했다. 아니 서늘했다. 이미 ‘포스트 부시’로 관심의 초점이 이동한 지 오래인 터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6월10일 인터넷판에서 익명을 요구한 유럽연합 외교 소식통의 말을 따 “이번 (미국-유럽연합) 정상회담은 미리 예정돼 있었기 때문에 진행하는 것이지, 특별히 다뤄야 할 의제가 있어서 하는 건 아니다”라며 “기후변화에 대한 대처 방안 등 대서양 양안 간 협력 가능한 의제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미 모두들 부시 행정부 이후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이를 두고 미 정치 전문 사이트 <허핑턴포스트>는 6월10일 “쓸데없는 욕심 부리지 말고 휴가나 즐기다 오라”고 냉소했다.

‘영구 집권당.’ 지난 2004년 부시 대통령의 재선을 성공시킨 뒤 그의 책사 칼 로브는 “공화당이 영구적으로 집권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고 호기를 부렸다. 불과 4년이 흘렀을 뿐인데, 네오콘의 파티는 쉽게도 막을 내렸다. 미국의 진보적 시사주간지 <네이션>은 지난 6월2일치에서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자가 공화당 지지자를 두 자릿수 이상으로 앞서고 있고, 미국민 81%가 미국이 심각하게 잘못된 길로 접어들고 있다고 답했다”며 “보수층에선 이를 두고 로브의 꿈이 악몽으로 바뀌었다고 한탄하고 있다”고 전했다.

공화당 주류 진영에서도 탄식이 새나온 지 이미 오래다. 뉴트 깅그리치 전 미 하원의장은 지난 5월6일 보수적 인터넷매체 <휴먼이벤츠>에 기고한 글에서 “특단의 변화가 없다면 올가을 대선에서 공화당은 파국적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깅그리치 전 의장이 누군가. 지난 1994년 중간선거에서 ‘미국과의 계약’을 내걸고 상하 양원을 휩쓸며 공화당 집권의 초석을 닦았던 공화당의 이데올로그다. 허투로 들을 얘기가 아닌 게다.

“공화당은 이미 한 세대에 해당하는 젊은 유권자를 송두리째 잃었다.” 부시 대통령의 연설문 보좌관을 지낸 데이비드 프럼은 올 초 펴낸 <귀환: 다시 이길 수 있는 보수주의>란 책에서 이렇게 썼다. 프럼은 지난 2월10일치 <뉴욕타임스>에 공개한 <귀환>의 서장에서 “2004년 대선에서 부시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그러니까 부시 대통령이 성공의 정점에 서 있을 때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적었다. 프럼은 ‘역사적 퇴장’을 앞둔 공화당 보수파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그 무렵 공화당은 승리감에 도취돼 있었고, 민주당은 패배감에 허우적대고 있었다. 보수 언론인 프레드 반스는 ‘공화당의 헤게모니가 앞으로 몇십 년은 이어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부질없는 소리였다. …지난 2000년 대선에서 부시 대통령은 어떤 공화당 후보도 이길 수 없는 선거를 이겼다. 2008년 부시 대통령은 공화당을 재난으로 인도했다. …공화당 출신 대통령을 다시 배출하기 위한 노력은 지독히도 일찍 시작됐지만, 언제 그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한숨이 새나오리만치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다음번 공화당 출신 대통령은 지혜와 용기, 인내와 원칙을 갖춰야 할 것이다. 새로운 세대의 생각을 껴안을 수도 있어야 하겠다.”

한 시대가 저물고 있다. 아쉬울 것 없다. 6월13일 현재 부시 대통령의 임기는 221일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