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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스포츠/건강 > 스포츠21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8년09월04일 제7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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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주의 주먹과 순자씨의 손바닥에 관하여

시끌벅적했던 올림픽 기간에 차마 다 전하지 못했던 선수들의 뒷 이야기

▣ 송호진 기자 한겨레 스포츠부 dmzsong@hani.co.kr

올림픽 취재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날, 휴대전화를 켜니 드르륵드르륵 밀린 문자 메시지가 들어왔다. 나이트클럽에서 무작위로 보낸 스팸문자도 보였다. 웨이터 ‘헐크’가 ‘박태환’으로 이름을 바꾼다는 문자였다. 박태환이 장미란과 같이 태극기를 들고 귀국한 날에 때맞춰 문자를 돌린 ‘헐크’의 기민함에 놀라고, 올림픽 때문에 수영장에서도 클럽에서도 바쁘신 몸이 된 박태환의 인기에 새삼 또 놀란다. 이제 성화는 꺼졌다. 하지만 그들이 선사한 감흥마저 서둘러 꺼버리기엔 그들이 남긴 전율이 강하고도 진하다.


△ 지난 8월17일 베이징올림픽 남자권투 웰터급 8강전 경기에서 미국의 드미트리우스 앤드레이드 선수를 물리친 한국의 김정주 선수가 주먹을 치켜들며 기뻐하고 있다. (사진/ AP RICK BOWMER)

◎ 김정주의 왼주먹

때리면 저쪽이 아파야 하는데, 때릴수록 자기 주먹이 아픈 복서가 있다. 김정주의 왼손 등뼈에 금이 갔다. 대회 직전 다친 것이다. 다 아문 듯했는데, 1회전에서 잽을 날리다 또 삐긋했다. 그래도 아픔을 참아야 한다. 관중석엔 엄마, 아니 엄마 같은 누나가 있다. 12살에 아버지를 간암으로, 16살에 어머니를 심장마비로 잃었다. 누나는 막내 정주를 거뒀고, 정주는 2002 부산아시안게임 포상금을 누나 결혼 밑천으로 내놓았다. 4년 전, 아테네올림픽 때는 갈비뼈에 금이 가 3등을 했다. 이번엔 손 등뼈라…, 지금까지 그에게 닥친 아픔들에 비하면, 그래, 견딜 만한 것이다. 상대 주먹은 빨랐다. 그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웰터급 출전선수 중 가장 작은 정주의 코에서 피까지 흐른다. 6 대 10, 종료 아웃, 그리고 다시 동메달. 눈가에 상처가 난 그가 링에서 내려와 얘기한다. “지금 우리 누나가 가장 보고 싶어요.”

◎ 순자씨의 손바닥

모든 뱃머리가 1번 레인 ‘순자씨’의 뱃머리를 앞서 지나간다. 조직위원회에서 빌린 배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노를 젓는 이순자는 출발부터 꼴찌다. 자력 출전권을 따내 올림픽 카누 종목에 나온 첫 한국 선수. “순자야, 포기하지 마라. 엄마는 널 믿는다.” 11남매 여덟째 딸 순자에게 엄마는 전화로 그렇게 얘기했고, 순자는 그 말을 손에 쥔 ‘노’에 가득 싣는다. 순자는 2번 레인 7위를 쫓는다. 7위를 제쳐 자신이 7위가 되면 준결승 진출이다. 모텔에서 먹고 자고 손수 빨래하며 같이 훈련한 후배들도 떠오른다. 7위와 0.412초 차. 1초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시간차까지 좁힌 순자는 8명 중 8등으로 들어왔다. 물집이 잡힌 그의 손바닥을 보았다. 얼마나 꽉 움켜쥐고 노를 저었던 걸까, 손바닥에 눌러붙었던 물집과 굳은살이 찢어지려 하고 있으니.

◎ 장미란과 흰 종이

장미란이 세계 신기록 5개를 세우며 세계를 들어올리던 날, 오승우 역도 여자대표팀 감독이 쇼핑백에 담아온 ‘하얀 종이’를 꺼내 만지며 눈시울을 붉힌다. 장미란을 가르치고 장미란이 힘겨울 때 상담해주던 김동희 코치에게 이 순간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하얀 종이는 지난 4월 암으로 숨진 김동희 코치의 유골함을 쌌던 종이다. 장미란이 투병 생활을 하던 김동희 코치 병실을 찾으면, 김 코치는 “이럴 시간에 훈련을 하라”고 돌려보냈다. 역도 코칭스태프들은 김 코치가 올림픽 전에 눈을 감은 건 “더 이상 날 찾아오지 말고 훈련에 집중하라”며 서둘러 떠난 것이라고, 김 코치가 하늘에서 장미란의 바벨을 함께 끌어당겨줬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제 그들은 흰 종이를 김 코치가 좋아했던 바다에 뿌려주기로 했다.


△ 물집이 잡히도록 노를 젓고 또 저었다. 결과는 8명 중에 8등이다. 조직위에서 빌린 카누로 경기에 나선 이순자 선수는 그래도 마냥 행복해 보였다. (사진/ 한겨레 조소영 기자)

◎ 조미선의 도복끈

노르웨이 국기를 몸에 두르고, 노르웨이 기자들과 그들의 언어로 은메달 소감을 얘기하는 선수, 니나 솔하임. 그의 허리 밑으로 검정색 도복끈이 보였다. 노란색 실밥으로 새겨진 또 하나의 이름 조미선(CHO MEE SUN). 태어난 지 8개월 만에 그는 쌍둥이 동생과 함께 노르웨이로 입양됐다. “자기 방어는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노르웨이 부모님 권유로 9살에 태권도를 했다. 쌍둥이 자매는 노르웨이 국가대표로 컸다. 동생은 손 부상으로 이번 대회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과하지 못했고, 2004 아테네올림픽 8위를 했던 언니 조미선만 다시 올림픽에 나왔다. 자신이 태어난 한국을 도복끈에 새기고, 자신을 키워준 노르웨이 국기를 도복에 새기고 나온 니나 솔하임 혹은 조미선은 “난 한국 사람이다. 한국을 사랑한다”고 했다. 미움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것이다.

◎ 백종섭과 깍두기

16강전이 끝나고 깍두기를 먹었다. 목 넘김이 이상했고, 가슴이 답답했다. 깍두기는 메달의 꿈을 앗아가겠다는 신호였고, 대신 생명은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는 경고였다. 16강전에서 주먹으로 목을 맞아 기관지가 찢어졌고, 그 틈으로 공기가 새나와 식도와 심장 등을 누르고 있다는 것이다. 4살 딸 민주에게 메달을 걸어주고 싶었고, 둘째를 임신한 아내를 위해 정식 결혼식도 올려주고 싶었다. “죽을 각오로 뛰겠다”며 감독에게 애원한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죽으려고 하느냐”는 만류 앞에 경기 12시간여를 남기고 시합을 접어야 했다. 8강만 이기면 메달인데. 백종섭이 귀국한 날, “우리 아빠 다치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던 딸이 아빠를 맞이했다. 아빠 목에 메달이 없는데도, 딸은 아빠 목에 매달려 아빠를 꼬옥 껴안았다. 4살 딸이지만, 그 어린 것이 아빠가 베이징에 있는 동안 이런 자랑을 했다지 않은가. “우리 아빠 베이징 가셨다. 우리 아빠 권투선수다.”

◎ 황지만과 불효자

동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누가 고향 형·동생 아니랄까봐 무릎 꿇고 상체를 뒤로 젖혀 환호하는 것까지 닮았다. 밀양초·중·고 2년 선후배 사이인 배드민턴 남자복식 황지만과 이재진. 올림픽 이전 그들은 관심을 받지 못했고, 그래서 카메라 밖으로 밀려났다. 동메달을 따고 그 무관심이 서운하지 않았냐고 묻자, “에이, 괜찮아요. 한두 번도 아닌데요”라고 웃던 두 사람. 그 좋은 날 황지만이 고개를 잠시 든다. 눈물을 누르려는 것이다. “자궁암으로 시작해 암이 다른 곳으로 전이가 되셨어요. 1년 반 투병생활을 하셨죠.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신 다음날 학교로 와서 전지훈련을 떠났는데 그 다음날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왔어요. 이런 날 어머니가 계셨으면 좋아하셨을 텐데.” 그는 자신의 미니홈피에 이런 글을 남겼다. “동메달을 따기까지 얼마나 많이 참고 인내하며 울고 또 울었던가. 어머니 곁을 지켜드리지 못한 불효자식이란 죄책감에 힘겨웠고, 발목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할 수 없다는 판정을 받았을 때 난 절망했다. 선수로서 삶을 포기하려 했을 때, 난 꿈꿀 수 있는 20대라는 걸 알았고, 그때부터 나의 도전은 또 시작됐다.”

◎ 오영란의 태극기

3·4위전에서 이기고 나오며 골키퍼 오영란이 운다. 감독이 마지막 1분을 남기고 작전타임을 불러 아줌마 선수, 고참 선수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너희들이 마지막을 장식하라”고 했던 얘기를 하면서 울고, 집에 두고 온 21개월 된 딸 서희를 생각하며 “서희야, 금메달은 아니지만 엄마의 동메달을 받아주겠니?” 하며 또 운다. TV에 엄마가 나오자 딸 서희가 TV 앞으로 다가가 엄마 얼굴을 쓰다듬었다는 것까지 그에게 전해줬으면, 아마 오영란은 주저앉아 울었을지도 모른다. 36살 엄마 선수의 마지막 올림픽. 태극기가 이제 그의 유니폼에서 지워질 것이지만, 그 태극기를 물려받은 후배가 또 다른 감흥의 이야기를 채우고 채워갈 것이다. 김정주의 주먹처럼, 순자씨의 손바닥처럼, 오영란의 눈물처럼, 그렇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