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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스포츠/건강 > 스포츠21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8년08월14일 제7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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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엽이 형이 있어 든든하다”

베이징올림픽 야구 대표팀 유니폼 입은 이승엽 “태극마크는 국가와 후배, 그리고 나를 위한 선택”

▣ 김동환 <스포츠월드> 기자 hwany@sportsworldi.com

베이징올림픽 야구 대표팀이 쿠바와 평가전을 치른 8월6일 서울 잠실야구장의 3루 쪽 더그아웃에 한국 팀의 모자가 하나 떨어져 있었다. 챙 안쪽에는 반듯한 글씨체로 ‘금메달’이라고 적혀 있었다. 모자의 주인은 일본 프로야구에서 뛰고 있는 ‘국민타자’ 이승엽(32·요미우리 자이언츠)이었다.

일본 1군 복귀 앞두고 대표팀 합류 결정

그 세 글자가 그가 그 장소에 있는 이유를 고스란히 설명하고 있었다. 한 달 전만 해도 이승엽이 다시 대표팀 유니폼을 입을 거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가 아무리 책임감이 강하고 ‘의리’ 있는 선수일지라도 자기의 모든 것을 버리면서까지 별 이득도 없는 국가의 부름에 응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게 누가 보더라도 ‘이성’적인 판단이었다.


△ ‘영웅본색?’ 올림픽 대표 야구팀의 팀워크 강화훈련이 한창인 8월2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경기장에서 이승엽 선수(요미우리 자이언츠·왼쪽)가 후배인 이대호 선수(롯데 자이언츠)와 환한 얼굴로 몸을 풀고 있다. (사진/ 연합 김현태)

2008년 7월 이승엽은 그의 야구 인생 가운데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었다. 3월 초 대만에서 열린 올림픽 2차 예선에 참가해 한국을 8년 만에 본선에 진출시킨 이승엽은 일본으로 돌아가 왼손 엄지손가락 부상 후유증으로 급격히 타격 밸런스가 무너지면서 시즌 개막 뒤 15일간 홈런 없이 1할대의 타율에 허덕였다. 급기야 지난 4월13일 2군으로 추락해, 두 달이 넘도록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호화 군단 요미우리에서도 최고 연봉(6억엔)을 받는 외국인 선수가 시즌 절반이 넘도록 2군에서 썩고 있으니 구단에도 팬들에게도 면목이 없었다. ‘아시아 홈런왕’ 출신으로 지난해까지 일본 무대도 평정했던 이승엽 본인의 자존심도 상처를 입을 대로 입었다.

그럼에도 이승엽은 국내에서 “올림픽 메달 획득을 위해서는 본선에서도 반드시 이승엽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올 때마다 “요미우리 구단만 허락해준다면 후배들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꼭 본선에 참가하고 싶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그리고 1군 복귀가 임박한 7월12일 구단의 허락을 받고 전격 대표팀 합류 결정을 했다.

객관적으로 판단해도 결코 내리기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프로 선수들로 구성된 야구 대표팀에서 태극마크의 영광이나 자부심이라는 것은 퇴색된 지 오래다. 많은 선수들이 올림픽 출전을 단지 병역 면제 혜택의 기회 정도로만 인식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에서 뛰는 선수들조차도 군 면제를 받았거나 병역의무를 이행한 경우에는 공공연히 대표팀에서 빠지고 싶어하는 눈치다. 실제로 지난 1, 2차 예선 때는 일부 군필자 선수들이 부상을 이유로 대표팀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고, 지난해부터 일본에서 뛰고 있는 한 선수는 마지못해 참가했다가 불성실한 플레이로 빈축을 샀다.

국가대표로 나간다고 해서 대단한 금전적 보상이 있는 것도 아니다. 행여 다치기라도 한다면 자신만 손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시간에 쉬거나 개인 훈련에 더 충실해서 소속팀의 성적 향상에 기여한다면 연봉 상승과 직결될 수 있다. 그러나 이승엽은 이번에도 달랐다. 지난해 10월에 수술받은 왼쪽 엄지손가락이 채 완전하지 않은 가운데도 2차 예선 때 출전을 강행했던 이승엽이다. 이번에는 정신적 스승 김성근 SK 감독조차도 “본인을 위해서는 올림픽에 참가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말하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대표팀의 부름에 응했다. 본인은 돈 얘기를 하고 싶어하지 않지만 올림픽 참가를 위해 소속팀 경기 출전에 걸린 상당액의 옵션 수당도 포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거의 모든 국제대회에 빠지지 않고 있는 이승엽은 지난 2차 예선까지 37경기에 나서 이번 대표팀 선수들 중 박진만(43경기)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경기 수를 자랑한다. 지난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는 무릎 부상을 참고 출전해 동메달의 명운이 걸린 일본과의 3, 4위전에서 8회 ‘괴물’ 마쓰자카 다이스케에게 결승 2타점 적시타를 뽑아내 승리의 주역이 됐다.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는 아시아예선 일본전 역전 결승 홈런으로 본선행을 이끈 데 이어 본선 조별 리그 미국전에서 메이저리그 특급 투수 돈트렐 윌리스를 2점 홈런으로 두들겨 한국의 4강 신화를 일궜다.

이승엽은 대표팀 합류를 ‘국가와 후배, 그리고 자신을 위한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7월12일 대표팀 합류 선언을 하면서 이승엽은 “2차 예선 때 후배들에게 꼭 본선에도 함께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메달 획득을 도와서 후배들에게 병역 혜택을 선물하고 싶다”고 했다. 7월30일 입국하면서는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 올림픽과 남은 시즌 동안 최고의 선수임을 다시 한 번 증명하겠다”고 했다. 지난 3일 훈련을 마치고 나서는 “어릴 적부터 태극마크를 다는 것은 내 인생의 꿈이자 목표였다. 그 꿈을 계속 이뤄나갈 수 있는 국가대표는 언제나 내게 힘을 준다”고 말했다.

8월1일 소집 뒤 사흘간의 팀워크 강화 훈련을 거쳐 4일부터 네덜란드와 쿠바를 상대로 한 세 차례의 평가전을 가진 대표팀은 왜 이승엽이 있어야 하는지 절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국내파 중심타자 이대호(롯데)의 부진과 김동주(두산)의 부상으로 불안감이 드리우던 대표팀 중심 타선에 갑자기 힘이 실리며 신뢰감이 급상승했다. 젊은 선수가 대부분인 전체 선수단에 믿음과 자신감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승엽’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안정감이 생겼고 팀워크를 중시하는 그의 카리스마가 선수들을 하나로 만들었다.

후배 왼손 타자들에 타격 기술 전수

이승엽은 일단 실력으로 존재감을 확인시켰다. 세 차례 평가전에서 모두 4번 타자로 나선 이승엽은 4일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큼직한 2루타 등 2타수 2안타와 몸을 사리지 않는 주루 플레이로 대표팀의 10-2 완승을 이끌어냈다. 이어 5, 6일 쿠바와의 경기에서도 합계 5타수 2안타 3사사구를 기록하며 아마추어 야구의 최강 쿠바를 10년 만에 처음으로 꺾는 쾌거를 주도했다.

어린 선수들의 긴장 완화와 화목한 팀 분위기 조성에 미치는 영향은 더 대단하다. 2차 예선 참가차 대만으로 이동할 때 한국야구위원회가 이승엽을 예우하기 위해 혼자만 비행기 좌석을 비즈니스석으로 준비했을 때 “나 하나 때문에 팀워크를 해치면 안 된다. 다른 선수들과 똑같이 이코노미석으로 가겠다”며 사양했던 이승엽이다.

이번 평가전 중에도 이승엽은 류현진(한화), 김광현(SK) 등 10살 이상 어린 후배들과 스스럼없이 장난을 치면서 김현수(두산), 이용규(기아) 등 자신과 같이 왼손을 쓰는 후배 타자들에게 타격 기술을 전수했다. 이택근(우리)은 “승엽이 형은 우리 팀의 정신적 지주다. 형이 있어서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야구를 해오면서 많은 선배들의 장단점을 봐왔는데 승엽이 형은 장점만 가진 선배인 것 같다”며 진심 어린 ‘존경’을 표했다.

팬들은 이승엽이 있어 야구 대표팀을 더욱 믿고 응원한다. 이승엽이 있는 곳에는 항상 팬들이 몰리고 그가 타석에 설 차례가 되면 몇 배로 큰 함성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팬들은 이미 알고 있다. 이승엽이 왜 홈런을 잘 치는 한 명의 야구 선수를 넘어선 진정한 ‘영웅’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