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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문화&과학 > 문화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8년09월04일 제7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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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턴트맨 보면서 웃으세요^^

액션배우 지망생 다섯 명의 ‘웃기는 다큐멘터리’ <우린 액션배우다>, 정병길 감독 인터뷰

▣ 김경욱 기자dash@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우리는 그들을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수십m 높이의 난간에서 맨몸으로 떨어져도, 차에 치여 몸이 튕겨 날아가도, 추억의 장면들 속에 그들은 대개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그 모습 위로 덧칠되는 주인공의 모습만 널리 기억될 뿐이다.


관객 설문조사에서 사상 최고 점수

8월28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우린 액션배우다>는 이처럼 이름 없이, 빛 없이 영화나 드라마의 한 컷을 위해 온몸을 내던진 다섯 청춘들의 이야기다. 권귀덕(31), 곽진석(29), 신성일(30), 전세진(32), 권문철(22). 2004년 서울액션스쿨 8기 출신들이 주인공이 되어 액션배우의 꿈을 가진(혹은 가졌던) 이들의 도전과 방황을 생생하게 풀어놓는다. 메가폰을 잡은 정병길(28) 감독 역시 서울액션스쿨 8기 출신. 지난 1년6개월 동안 끈덕지게 이들의 삶에 카메라의 초점을 맞춰가며 영화를 완성했다.

“1980년 병길이는 한 가정의 작은아들이 되었다.”

영화는 이 짤막한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병길이는 다름 아닌 정병길 감독이다. 영화 시작부터 자신의 사생활을 까발리는 ‘강수’를 둔 셈이다. 장동건도 아니고 김태희도 아닌 정병길이라니, <개그콘서트> 왕비호의 ‘누~구?’란 유행어가 입을 간질이는 ‘기가 찬’ 도입부다. 그런데 이게 장난이 아니다. 건조한 내레이션과 몇 장의 사진만으로 태어나서 영화를 만들기까지의 30년 가까운 세월을 단 몇 분에 압축해서 보여주는데, 마치 퍼즐 게임 하듯 기억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끼워간다. 그리고 감독은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관객을 뒤집어지게 만든다. 촌철살인의 내레이션을 무기로 앞세워 사진의 전체와 부분을 적절히 충돌시켜가며 폭소를 유발한다.

‘코미디보다 웃긴 다큐멘터리’라는 수식어가 전혀 낯설지 않은 것은 감독의 ‘기찬’ 센스 덕분일 터다. 개봉을 하루 앞둔 8월27일 서울 당산동 정 감독의 집을 찾은 것은 이 발랄한 20대 영화감독이 액션배우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영화를 찍은 이유가 못내 궁금해서였다.

“지금껏 스턴트맨들 이야기는 언제나 휴먼드라마였어요. 이상하게 동정심 비슷한 감정을 자극하죠. 그게 싫었어요.”

그는 동료들의 실제 모습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실제로는 어둡지 않더라고요. 밝고 자신감 넘치고 멋있고. 기존 다큐멘터리들이 스턴트맨들을 너무 어둡게만 그린 것 같아요.”

시종 유쾌함과 자신감으로 차고 넘치는 <우린 액션배우다>는 이미 지난 5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최고 인기상을 받으며 화제를 모았다. 관객 설문조사에서도 5점 만점 중 4.69점으로 영화제 사상 최고 점수를 얻었다. 뉴욕아시아 필름페스티벌, 밴쿠버 국제영화제, 일본 다나베 벤케이 영화제 등 해외 영화제에도 초청됐다.

하루에 주성치 영화 끼워 비디오 7편

호평이 ‘작렬’하는 영화지만 정작 정 감독은 정식으로 영화를 공부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영화 한번 찍어볼까’란 생각을 한 것은 불과 4년 전부터라고 한다. 액션스쿨 동기들의 수료 작품인 단편영화 <칼날 위에 서다>를 연출한 이래 ‘한 작품만, 한 작품만 더’ 하다가 이번 영화에까지 이르게 됐다. 벌써 네 번째 작품이다. 지금은 10월 초 크랭크인할 장편 상업영화 <청년폭도맹진가>(가제)를 준비 중이다. 10억원 정도의 예산이 준비됐고, 주인공으로 배우 이정진이 캐스팅됐다.


△ 주연배우들을 뒷받침해주는 역할로 등장했다고 해서 액션배우들의 감성이 우울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그들은 그저 움직이는 것이 좋아 액션배우를 꿈꿨고 그 꿈을 향해 몸을 던졌다. <우린 액션배우다>는 그런 청춘들의 꿈에 대한 이야기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곽진석, 신성일, 권귀덕, 권문철.

정 감독은 “학창 시절 미술을 공부한 것이 영화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화면의 구도를 잡고 장면을 만들어가는 것이 그림을 그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1999년, 2000년 미대 진학에 실패한 뒤 1년여를 할 일 없이 보냈다. 물론 숨만 쉰 것은 아니다. 매일 비디오테이프를 빌려다 영화를 봤다. 하루에 기본으로 4~5편을 봤다. 많이 볼 때는 7편도 봤다. 물론 나름의 원칙이 있었다. 저우싱츠(주성치) 영화 한 편은 반드시 봐야 하고 액션, 멜로,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를 섞어서 보는 것이었다. 그렇게 스스로 영화를 깨쳐갔다.

딱히 할 일 없어 보기 시작한 영화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줬다. 막연히 누군가에게 즐거움 주는 일을 하고 싶었던 생각이 영화를 보면서 점차 또렸해졌다. 그는 ‘이런 걸 꿈이라고 하는구나’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군 제대 뒤 서울 보라매공원에 있던 서울액션스쿨을 찾아갔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영화를 해보자’는 뜻에서였다. 영상아카데미가 아닌 액션스쿨을 찾은 이유는 저우싱츠처럼 오락영화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락영화에서 액션은 기본이니까 배워두면 언젠가 필요할 날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오디션 보는 자리에서 “할 줄 아는 운동이 있냐”는 질문을 받았다. 발차기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배운 운동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초딩’ 때의 실력을 살려 군대에서 공 좀 찬 것이 전부였다. 그렇지만 영화에 대한 열정은 누구보다 크다고 자신했고, 그 점을 강조했다. 결과는 합격. 때는 2004년 3월이었다.

액션스쿨에서의 훈련 과정은 상상을 넘어섰다. 교육을 받다가 구토가 나올 정도로 살인적이었다. 한 달도 채 못 돼 합격자 36명 가운데 17명이 나가떨어졌다. 교육 다섯 달째에는 14명만 버텨냈다. 영화는 그렇게 ‘악’으로 ‘깡’으로 버티고 버텨낸 청춘들을 따라간다.

영화에서 리얼하게 그려지는 액션배우들의 일상은 고되고 험난하다. 어금니 하나를 잃고도 촬영이 지연될까봐 화장실에 들어가 조용히 이를 빼고 나오고(권귀덕), 드라마 <쩐의 전쟁>에서 박신양의 대역으로 종일 대기만 하다가 카메라 앞에 단 한 번 서는가 하면(신성일), 극에 몰입한 주인공이 잘못 휘두른 막대에 머리를 맞아 피를 쏟기도 한다(곽진석). 스턴트맨 보호를 위해 지붕이 찌그러지지 않도록 특수 제작된 스턴트용 차량이 실제 촬영에서 지붕이 찌그러져버린 아찔한 순간부터 액션배우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제멋대로 액션 장면을 찍고 마는 어느 감독의 답답한 모습까지도 영화는 고스란히 담는다. 한 장면을 위해 몸을 던지고,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감독이 이해하지 못해 담배 한 모금에 아쉬움을 달래야하는 이들인데, 눈 깜빡할 사이 지나가는 엔딩 크레디트조차 이들의 이름에 ‘삑사리’를 낸다. 그러나 영화는 이 구질구질한 순간에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는다. 감독은 권귀덕이 ‘권기덕’으로 나온 엔딩 크레디트를 멈춰 세우고 ‘기덕’의 ‘ㄱ’에 기어이 가로줄을 넣어 ‘귀덕’을 만들어낸다.

실제 스턴트맨 되기, 36대 1

그렇지만 이 ‘캔디’ 같은 영화는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비통함을 애써 감추지 않는다. 바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무술감독으로 참여했던 지중현 감독의 죽음에 이르러서다. 다만 카메라는 그 죽음의 풍경을 오래 머금지 않는다.

“못 찍었어요. 장례식장 쪽에서 촬영을 막더라고요. 고인이 스턴트맨이 아니라 유명인이나 연예인이었다면 그렇게 했을까요?”

총 36명으로 시작된 액션스쿨 8기생들 중 실제로 스턴트맨이 된 사람은 영화를 찍을 당시 3명으로 줄어 있었다. 촬영이 끝났을 때는 권귀덕 혼자 남았다. 신성일·곽진석은 지 감독이 숨지자 일을 그만뒀다. 한때 액션배우라는 꿈을 향해 달려갔던 영화 속 주인공들은 현재 ‘바’를 차려 장사를 하거나, 연극배우로 살고 있다. 누군가는 가수를 준비하고 있으며, 또 누군가는 여전히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찾고 있다. 그렇지만 정 감독은 “모두가 꿈을 포기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저마다 선택한 새로운 길에서 또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리하여 영화는 끝이 아니라 이제 다시 시작이다. 12살 이상 관람가.


서울액션스쿨에 가려면

텀블링 해야 하나요?

액션스쿨에 합격할 정도라면 공중 텀블링은 기본이요, 두 바퀴 회전 공중발차기 정도는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정병길 감독은 “꼭 그렇지는 않다”고 했다.

서울액션스쿨은 정기모집과 수시모집으로 수강생을 뽑는다. 정기모집은 매년 3월에 진행된다. 액션배우 지망과 스턴트맨 지망 두 부문으로 나눠 모집한다. 인원 제한은 없다. 수시모집에서는 스턴트맨 지망생들만 뽑는다. 서류심사와 면접을 거쳐 최종 합격자를 가리는데, 스턴트맨 지망생들에 한해 무술 실력과 운동신경을 테스트한다. 서울액션스쿨에서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신수진(30)씨는 “스턴트맨 지망생들과 달리 액션배우 지망생들은 무술 유단자가 아니어도 된다”고 말한다. “의지와 약간의 운동신경만 있으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정기모집에 응시해 합격되면 지망 부문에 관계없이 6개월 동안 매일 4시간씩 체력 훈련, 현대 액션, 사극 액션, 체조, 레펠, 승마, 스쿠버 등의 교육을 받는다. 스턴트맨 지망생들은 교육 기간이 끝난 뒤 추가로 테스트를 받는다. 여기에 합격하면 액션스쿨에 소속돼 스턴트맨으로 활동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2006년 서울 보라매 공원에서 경기 파주시 헤이리로 자리를 옮긴 서울액션스쿨은 비영리 법인이기 때문에 모든 교육은 무료로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