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과학 라이프&트렌드 이번호목차 지난호보기 독자마당 기사에대한의견

한겨레21 구독신청 sitemap

e-Book
표지이야기 특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문화/과학 인터뷰 스포츠/건강 사진/만평 칼럼 독자마당
Home > 문화&과학 > 문화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8년08월28일 제725호
통합검색  검색
금쪽같은 ‘나만의 올림픽’

트라이애슬론 농부, 미식 축구 사장님, ‘물찬 제비’ 미용실 원장, ‘당구 고수’ 할머니…아마추어 스포츠광이 뛴다

▣ 이상규 인턴기자 postdoal@hotmail.com
▣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내가 은퇴하는 날은 곧 내가 죽는 날입니다.” 18년째 ‘미친 듯이’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 경기)에 빠져 살아온 사람이 있다. 경기도 여주시 가남면의 토마토·배추 모종 농장에서 일하는 박유훈(40)씨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1시간씩 사이클과 조깅을 하고, 저녁에 퇴근한 뒤에는 1시간씩 수영을 한다. 검게 탄 피부에 군살 없는 몸매, 오랜 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한 근육. 누가 봐도 감탄할 만한 ‘몸짱’이다.


△ ‘철인’ 박유훈씨는 선수생활 이후에도 ‘죽을 때까지’ 트라이애슬론 경기에 도전하겠다고 한다. 미식축구 마니아 김길수씨는 수없이 부상을 당하면서도 격렬한 부딪침에서 오는 쾌감을 끝내 잊지 못해 29년째 선수로 뛰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박유훈·김길수 제공)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호흡한다는 점이 정말 매력적인 스포츠입니다. 경치도 즐기면서 수영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 안 해본 사람은 모르죠.”

그는 원래 농부는 아니었다. 한국 최초로 트라이애슬론 100회를 완주했을 정도로, 한국에서는 경쟁자가 없는 선수였다. 전국체전 우승 단골이었으며 국제대회에도 여러 차례 참가했다. 하지만 길이 평탄치만은 않았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 국가대표 코치 겸 선수로 활동했지만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만둬야 했고, 보수가 넉넉지 못해 짬짬이 공사장 인부나 배선공으로 일하기도 했다. 얼마 전까지 인천시청, 경기도체육회 등에서 선수 겸 코치 생활을 이어갔지만, 올해 새로운 팀으로 통폐합되는 과정에서 코치 자리에서 다시 물러났다.

직업선수 벗어나니 행복해진 운동

“우여곡절이 많았죠. 좋아하는 운동으로 먹고살고 싶었는데 그게 쉽지 않더라고요. 지금은 그냥 농사짓고 있습니다, 허허.”

영광스러웠던 과거가 그립지는 않을까?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죠. 직업선수였을 때는 성적 때문에 부담이 컸는데, 이제는 의무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으로 편안하게 할 수 있어서 오히려 좋아요. 사회적 성공이나 돈을 위해 운동해서는 놓치게 되는 것이 많은데, 이제 스스로 얼마나 단련됐고 노력했는지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정보기술(IT) 서적 출판업계 1위로, 한 해 수백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주)영진닷컴의 최고경영자(CEO) 김길수(50)씨는 29년째 미식축구를 즐기는 마니아다. 대학 입학 뒤 시작한 미식축구는 이후 그의 인생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돼버렸다.

“격렬한 부딪침에서 오는 쾌감 같은 게 있더라고요. 사실 요새는 나이가 들어서인지 부상도 끊이지 않아요. 시합하고 오면 절뚝거리고, 관절이 쑤셔 계속 끙끙거려서 직원들이 다 눈치를 채더라고요. 경추디스크 3개가 탈추돼 왼손에 마비가 온 적도 있는데, 중독은 어쩔 수 없나 봐요. 스스로 선택한 것이니까 그만큼 즐거움도 크고 자부심도 강한 것 같아요.”

그는 운동에서 삶의 스타일도 배운 듯했다.

“미식축구를 하는 사람들은 그냥 앉아서 구경하는 걸 제일 싫어해요. 직접 뛸 수 없다면 차라리 안 보고 말지.”

왜 하필 미식축구처럼 희귀한 종목에 빠져들었을까? 김씨가 소속돼 활동하는 미식축구 사회인팀 ‘바이킹스’의 남성남(37) 감독은 “미식축구가 야구보다도 체계적이고 재미있는 게임”이라고 말한다. “두뇌 플레이가 중요해요. 짧은 시간에 패스할 것인지 뛸 것인지, 길게 갈 것인지 짧게 갈 것인지 판단하고 일사불란하게 11명이 끈끈한 팀워크에 따라 움직여야 해요.” 즐기는 사람이 소수인 만큼 좋지 않은 여건에서 운동을 해야 하지만, 대신 소수이기에 그들만이 갖는 각별한 유대감도 있다.

“가끔 선수들끼리 텔레파시가 통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예를 들어 연습하기로 돼 있는 어느 날 비가 옵니다. ‘설마 이 날씨에 누가 오겠어?’ 하는 마음으로 흙탕물로 범벅이 된 운동장에 무거운 장비를 두르고 한번 나가봅니다. 그런데 누군가 하기 싫은 사람이 분명히 있을 만도 한데, 모두가 ‘그래도 한번 하자’는 분위기로 뛰고 있는 거예요. 그 순간의 일치감, 유대감을 한번 맛보면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맛에 하는 거죠.”

직장일로 바쁜 와중에도 150가지 이상의 전술이 담긴 ‘플레이북’을 늘 갖고 다닌다는 남 감독의 말이다.


△ ‘물찬 제비’ 이정희씨는 오늘도 힘차게 물살을 가르며 아줌마의 힘을 보여준다. 증손자까지 둔 장손태 할머니는 뒤늦게 당구에 입문했으나 탁월한 실력을 선보이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상규 인턴기자·한겨레21 윤운식 기자)

가위 내려 놓자마자 수영장으로 출근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서동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이정희(47)씨의 별명은 ‘물찬 제비’. 건강을 위해 시작했다가 수영이 재밌어서 푹 빠진 경우다. 오전에 가게에 나가 매일 밤 9시까지 서서 일하느라 다리도 아프고 어깨가 뻐근해져 앓기도 하지만, 거의 매일 퇴근길에 수영장에 들른다. “일단 피로와 스트레스가 풀리고 즐거워요. 수영이 활력소랄까요.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면서도 관절에 무리가 안 가잖아요.”

20년간 다져온 수영 실력은 이미 수준급이다. 타고난 체력에 오랜 노력이 더해져 국민생활체육대회를 비롯해 수원시, 성남시, 고양시 등 지역대회에서 35개의 메달을 땄을 정도다. 주종목은 접영 100m와 개인혼영 200m. 지금도 주말에 열리는 각종 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지난 8월15일에는 한강횡단수영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젊은 사람들이나 남성 참가자들도 많았지만, 이씨는 선두권으로 잠실에서 뚝섬까지 횡단에 성공했다. 본업이 미용사이고 고등학생 자녀를 둘씩이나 둔 주부지만 자세는 프로 못지않다.

“힘들죠. 그렇지만 고생한 만큼 성취감도 대단해요. 제가 승부욕이 강해서 그런지, 기록을 단축하고 메달을 땄을 때의 쾌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더라고요. TV 수영 중계를 보면서 어떻게 해야 더 빨리 갈 수 있을지 연구도 합니다. 팔의 각도, 팔을 젓는 속도, 허리를 어떻게 펼 것인지 등등을 유심히 살피며 조금씩 더 배우는 거죠.”

이씨가 수영을 즐기는 이유는 그저 좋아서다.

“수영만 생각하면 즐거워요. 어디를 가든 수영복과 물안경을 항상 가지고 다녀요. 물만 보면 뛰어들고 싶다니까요. 응원 받고 돈 받고 하는 전문 선수만 훌륭한 것은 아니죠. 일 때문에 바쁘고 누가 알아주는 사람 없어도 새벽부터 나와서 연습하는 아마추어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저도 100살까지, 누워서 못할 때까지 평생 할 거예요.”

스포츠에서 가장 소외받는 계층 가운데 하나인 노인들 사이에서도 운동 마니아는 적지 않다. 77살 나이에 거의 매일 당구채를 잡는다는 장손태 할머니가 대표적이다. 지난 8월11일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서 만난 장 할머니는 마침 한 당구장에서 비슷한 또래 노인 6~7명과 포켓볼을 치는 중이었다.

“아이고~, 아깝게 안 들어갔네.”

“허허, 그러게 조금만 더 왼쪽으로 쳤어야지.”

끊이지 않는 훈수와 까르륵거리는 웃음소리 사이에서 왼손에는 당구 장갑을 끼고 오른손에는 채를 잡은 장 할머니가 나타났다. 약간 땀에 젖어 잠깐 숨을 돌린 장 할머니는 “뭐 볼 게 있다고 여기까지 왔어?”라며 웃음을 지었다. ‘언제부터 포켓볼을 치게 됐냐’는 질문에 장 할머니는 “10년 전에 영감이 먼저 가고, 며느리 따라 구청 복지관에 갔다가 포켓볼을 배우게 된 것이 한 7~8년 됐지. 그런데 젊은 애들과는 달리 늙은이는 아무리 쳐도 실력이 늘지 않아서 원~”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이때 옆에 있던 허영화(71) 할머니가 끼어들었다. “지난해에도 전국대회에 나가서 몇 등 했더라. 대회 나갈 때마다 입상하면서 무슨 말을 한대요?” 실제 장 할머니는 2003년부터 400~600명씩 참가하는 지역 구청장배 노년부 당구대회와 전국대회에 참가해 여러 차례 입상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 충남 천안시 성암문화체육관에서 지역주민들이 배드민턴을 치고 있다. 평소에는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지만, 운동할 때만큼은 프로 못지 않은 열정과 근성을 보여준다. (사진/ 한겨레 김정효 기자)

국가대표 선수가 동호회에 계속 나오는 이유

이날 장 할머니와 함께 포켓볼을 치던 노인들은 강서구 문화센터 체육교실 포켓볼 과정 수강생들. 강사인 김종석(서울시당구연합회 회장)씨가 자신의 당구장을 무료로 개방하는 매주 월·화·금요일에 장 할머니 등은 거의 하루 종일 당구장에서 지낸다. 장 할머니는 “두뇌 회전에 정신 집중도 해야 하는데다 어깨, 팔, 다리, 허리 안 쓰는 곳 없이 전신운동도 되니 이보다 좋은 운동이 어디 있겠어? 포켓볼을 배우니까 외로워할 일도 없고, 같이 치는 할머니들끼리 단결도 잘되니 너무 좋아”라며 웃음을 지었다. 증손자까지 본 할머니라고는 믿기지 않는 젊고 환한 웃음이었다.

부부가 함께 스포츠를 즐기며 건강과 애정을 동시에 챙기는 사람들도 있다. 서울 강북구 산악자전거(MTB) 동호인 모임인 ‘팀위드’(Team With)에서 활동하는 이경선(51)·홍인숙(46)씨 부부가 바로 그런 경우다. 이들은 5년째 함께 산악자전거를 타고 있다. 강화일주대회, 강촌대회, 무주대회 등 수많은 대회에 함께 참여해서 나란히 5위 안에 드는 등 동호인들 사이에서 나름대로 유명한 아마추어 선수 커플로 통한다. 부인 홍씨가 “갈 수 없을 것 같았던 곳에 올라갔을 때 성취감이 대단하죠. 심폐 기능도 향상되고, 하체도 튼튼해지고, 자신감도 생겼어요”라며 산악자전거의 즐거움을 예찬하자, 남편 이씨도 “자전거는 산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도 언제든 자연스럽게 탈 수 있고, 어디든 타고 갈 수 있어서 좋다”며 맞장구를 쳤다.

국가대표 산악자전거 선수인 곽미희(34)씨도 이 동호회에서 활동 중이다. 본래 취미로 뒤늦게 시작했다가 실력이 일취월장해 국가대표에까지 발탁됐다. 지난해에는 60연승 축하연을 열었을 정도로 잘나가는 선수인 그가 이 동호회에 계속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곽씨는 “실업팀이나 대표팀에 있으면 성적을 의식하게 되고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큰데, 여기 오면 순수하게 MTB를 좋아해서 타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잖아요. 사람들이 서로 배려해주면서 격려해주기 때문에 더 잘할 수 있게 됐어요”라고 말한다.

아마추어는 배고프다. 누가 돈을 주지도 않으며, 응원하는 사람도, 마땅한 연습장도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운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얻는다고 한결같이 말한다. 냉혹한 승부의 세계를 떠나 함께 연습하고 대회에 참가하면서 느끼는 유대감과 소통의 기쁨. 바로 아마추어 스포츠만이 줄 수 있는 금빛 메달이다.


균형발전 필요한 ‘생활체육’ 실태

체육의 엘리트·대도시 중심주의여

▣ 이상규 인턴기자 postdoal@hotmail.com

문화체육관광부의 <2007 체육백서>를 보면, 2007년 현재 생활체육 동호인 클럽은 축구, 배드민턴, 자전거, 탁구, 트라이애슬론 등 9만2688개로, 291만3806명이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6% 규모다. 2000년엔 4만1986개 클럽에 144만2145명이 등록돼 있었다고 하니, 불과 7년 사이에 스포츠 동호인이 두 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발표한 ‘2006년도 국민생활체육활동 참여실태’를 보면, 여가활동에서 운동 및 스포츠가 차지하는 비중이 2000년 12.2%에서 2006년 20.5%로 증가했다.

<2007 체육백서>에 따르면, 최근 주5일제가 정착되면서 그동안 생소했던 퓨전형 스포츠도 각광을 받고 있다. 요가·발레·헬스를 접목시켜 요가보다 운동량을 더 늘린 ‘필라테스’, 좁은 장소에서 상황에 맞게 코스를 선정해 자유롭게 경기할 수 있게 골프를 변형시킨 ‘그라운드골프’, 태권도·복싱·에어로빅을 합쳐 만든 ‘태보’ 등이 그것이다. 인라인스케이팅, 암벽 등반, 산악자전거 등 레저스포츠도 인기를 더해가고 있다.

이렇듯 생활체육이 양적·질적으로 많은 성장을 해왔지만 개선해야 할 점도 많은 것으로 지적된다. 우선 다양한 체육시설의 확충과 개방이 시급하다. 국민생활체육협의회의 자료를 보면, 국민 1인당 체육시설 면적은 0.33㎡로, 2.83㎡에 이르는 독일과 큰 차이를 보인다. 체육시설들이 대도시에 편중돼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국민생활체육협의회 전략기획실 심상보 대리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서 아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전문적인 교육과 시설을 제공받고 더 많은 대회에 참가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프로스포츠나 엘리트 체육이 생활체육과 균형 발전을 이룰 수 있게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상철 한국체대 명예교수는 “유럽에서는 취미로 시작했다가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하는 사례가 많았는데, 우리 선수들은 ‘운동기계’로의 길만을 강요받았다”며 “생활체육 발전을 위한 핵심 고리는 스포츠클럽”이라고 강조했다.

독일의 경우 국민의 30%가 넘는 사람들이 전문성을 갖춘 책임감 있는 지도자에게 스포츠 교육을 받고, 충분히 확보된 시설에서 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포츠클럽을 중심으로 생활체육을 활성화하기 위해선 시설 확충과 지도자 육성에 지속적으로 예산이 투입돼야 하고, 특히 서울 등 대도시와 지방 간 예산에 균형을 맞춰 지방에 더 많은 스포츠클럽을 세워야 한다는 게 이 교수의 지적이다. 이를 위해 더 전문화된 스포츠정책 전담 중앙부서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 교수는 “독일, 스웨덴 등 스포츠 선진국의 생활체육 시스템을 우리 체질과 정서에 맞게 독창적으로 받아들여 생활체육의 질을 끌어올려야 한다”며 “내년부터 시행될 ‘전통무예진흥법’처럼 태껸, 국궁 등 우리나라 고유의 스포츠를 선진국의 스포츠클럽 방식에 접목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