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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문화&과학 > 문화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8년01월24일 제6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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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머더 테레사, 성인 혹은 정치꾼

이유 있는 ‘신성모독’,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자비를 팔다>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아그네스 보야지우. 1910년 8월27일 지금은 마케도니아 공화국의 수도가 된 스코페의 알바니아계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나, 1928년 아일랜드에 본부를 둔 로레토 수녀원에 들어갔다. 인도 콜카타(옛 캘커타)에서 평생을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위해 봉사했다. ‘사랑의 선교수사회’를 설립했으며, 1979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빈자의 성녀’로 불린다.”


어려서 위인전에서 만났다. 헬렌 켈러, 퀴리 부인과 함께 그분, ‘머더 테러사’도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살아서 위인전에 등장한 흔치 않은 분이시다. 훌륭한 분임이 틀림없다. 각종 백과사전에도 그렇게 나와 있다. 1997년 9월5일 세상을 떠난 그가 ‘성인’의 반열에 다가선 이유다. 로마 교황청은 그를 성인으로 올리는 ‘시성’ 절차를 진행 중이다. 머더 테레사에 대한 비판은 이제 ‘신성모독’에 준하는 일인 셈이다.

그러니 <자비를 팔다>(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김정환 옮김, 모멘토 펴냄)에 대해 “지옥이란 게 있다면, 히친스는 이 책 때문에 거기 가게 될 터”라는 평론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게다. 그럼에도 ‘신화’가 돼버린 한 사람의 삶을 되짚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 신화가 한낱 우상에 불과하다면 더욱 그렇다. 환상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수많은 이들이 도구로 동원된 탓이다.

가톨릭에서 ‘성인’ 반열에 오르려면 4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적어도 한 번의 ‘기적’을 행하고, ‘선행’을 행하고, ‘영웅적 덕행’을 보이고, ‘편재성’(널리 퍼져 있음. 어디서나 존재함)이라는 물리적으로 어려운 속성을 지녀야” 한단다. 언론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지은이는 “로마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들조차 이미 마더 테레사가 성녀라고 단정해버린 상태”란 점에 비춰, 성인의 기준으로 제시된 4가지 조건을 근거로 머더 테레사의 일생을 분석했다.

먼저 ‘기적’이다. 1969년 〈BBC방송〉이 제작한 ‘하느님을 위한 아름다운 것’이란 다큐멘터리와 그 결과물을 바탕으로 2년 뒤 맬컴 머거리지가 펴낸 같은 제목의 책을 보면, ‘테레사의 기적’은 일찌감치 실현됐다. 빛이 거의 들지 않는 희미한 실내에서 찍은 장면이 “각별히 아름답고 부드러운 빛에 잠겨 있었다”는 게다. 이를 두고 머거리지는 “화가들이 성자의 머리 둘레에서 보아내고 가시화했던 후광”이며 기적이라고 주장했다. 정작 당시 촬영을 맡았던 켄 맥밀런은 “코닥 필름의 신제품을 위해 만세 삼창을 외칠 참이었다”고 딴소리를 했지만.

‘선행’과 ‘영웅적 덕행’에 대해선 몇 가지 사례로 족하다. 이를테면 “계획보다 섭리를 선호”하는 머더 테레사의 고집 때문에 그가 운영하는 의료시설에선 변변한 검사도 없이 환자들에게 항생제와 해열진통제를 무작위로 처방했다. 같은 이유로 말기암 환자에게조차 진통제 처방을 주저했다.

‘가난’에 대한 수녀들의 집착 때문에 고통받는 것은 다름 아닌 가난한 자들이었다. 오랜 세월 머더 테레사가 운영하는 시설에서 일했던 수전 실즈는 회고록에서 “기부금이 몰려오고 은행에 예치됐지만, 그것들은 우리의 금욕적인 생활이나 우리가 도우려 애쓰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며 “머더 테레사한테는 가난한 자들의 ‘영적인 복지’가 가장 중요했다”고 썼다. 비슷한 사례는 얼마든지 발견된다.

아이티에선 독재자를 옹호했고, 미국에선 희대의 사기꾼을 위해 탄원서를 써줬다. 모두 거액의 기부금을 낸 이들이다. 인도 보팔에선 인간의 탐욕이 부른 참사 앞에서 ‘용서’만을 말했고, 방글라데시 집단 성폭행 피해자들에겐 ‘낙태만은 안 된다’고 호소했다. 정치적이다. 세계 곳곳을 돌며 이런 행보를 보였으니, 분명 ‘편재’했다 하겠다. 이쯤 되면 ‘성인’의 자격을 갖춘 겐가? 155쪽의 자그마한 책 한 권을 읽어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오랜 ‘우상’ 하나가 여지없이 깨져나가는 걸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