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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문화&과학 > 문화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7년05월23일 제6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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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반 베르크’의 작별 인사

한국에서의 마지막 연주 펼칠 세계적인 실내악단 알반베르크 현악사중주단

▣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알반 베르크’는 음악동네에서 두 갈래 의미로 통하는 이름이다.

우선 20세기 초 오스트리아 빈에서 쇤베르크, 베베른 등과 ‘제2 빈 악파’라는 패를 지어 활동한 모더니즘 작곡가(1885~1935)의 이름이다. 외계인 음악처럼 괴팍한 현대 음악곡들을 만들었으며, 엽기·치정·살인사건을 다룬 괴짜 오페라 <보체크>를 내놓아 유명해졌다.


△ 무대에서 연주 중인 알반 베르크현악사중주단. 왼쪽부터 리더인 피클러(제1바이올린), 슐츠(제2바이올린), 카리지우스(비올라), 에르벤(첼로).

두 번째는 현악기 4개를 켜는 세계적인 실내악 연주단 이름이다. 바이올린 2개와 비올라, 첼로를 켜는 빈 국립음악원 교수 4명이 37년 전 현악사중주단을 꾸린 뒤 존경했던 작곡가 이름을 악단에 붙였다. 오히려 이제는 작곡가는 몰라도 악단의 명성에 열광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 초창기 일부 교체가 있었지만, 네 연주자가 30여 년간 호흡을 맞추며 고전기부터 현대음악, 탱고까지 레퍼토리 불문하며 용맹정진한 결과다. 특히 슈베르트 현악사중주 <죽음과 소녀>, 베토벤 현악사중주 연주 등에서 그들은 ‘절대’ 권위를 자랑한다.

내년 여름 이후 악단 해체 결정

불협화음도 조화롭게 빚어낸다는 고도의 합주력, 섬세한 활놀림 기교, 정교한 해석으로 이름난 알반베르크 현악사중주단이 한국 땅에서 마지막 연주를 한다. 5월31일 밤 8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차릴 내한 무대다. 전당 쪽은 한국 관객에게는 고별 연주 격이라고 밝혔다. 내년 여름까지만 활동한 뒤 악단을 해체하기로 결정했다는 전언이다. 1970년 음악의 본고장 빈에 국제적인 현악사중주단이 있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악단을 꾸렸던 연주자들은 구체적인 해체 이유를 거론한 바 없다. 악단의 노쇠화에 대한 우려를 짐작할 뿐이다. 리더 격인 바이올린 주자 귄터 피클러는 “누구든 최정상일 때 작별을 고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알반베르크 현악사중주단은 이 시대 실내악 연주의 ‘표준’ ‘전범’으로 인정받는다. 1981년 이래 피클러, 제2바이올린의 게르하르트 슐츠, 2005년 타계한 비올라의 토마스 카쿠스카, 첼로의 발렌틴 에르벤으로 짜인 협주팀은 음악사조를 종횡무진하며 숱한 명반을 남기고 명연주를 펼쳤다. 단단한 현악 기교를 바탕으로 4인4색의 개성을 음색 속에 모아내는 중용의 연주는 그들의 특장이었다. 베토벤, 브람스, 모차르트, 슈베르트, 하이든, 슈만, 라벨, 드뷔시, 버르토크 등의 주요 협주곡들을 대부분 녹음했으며 야나체크, 슈니트케, 림 등 현대 작곡가들의 작품 초연과 공동 작업에도 열정을 쏟았다. 카쿠스카 사후에 여제자 이자벨 카리지우스가 충원된 이 악단은 국내에도 2005년 이후 매년 방한한 바 있다.

비장한 감회를 일으킬 고별 레퍼토리

고별 레퍼토리는 하이든의 현악사중주 27번 <태양>, 현대음악 작곡가 볼프강 림의 창작곡 <무덤>(Grave), 베토벤 후기 현악사중주곡 13번, 그리고 원래 이 13번의 6악장이었다가 나중에 별도의 곡처럼 만든 <대푸가>다. 백미는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13번. 저 유명한 9번 합창 교향곡을 완성한 뒤 죽을 때까지 만사 제쳐놓고 작곡한 이 최후의 걸작은 만년의 그의 비감한 심정이 녹아 있는 <대푸가>와 서정미가 반짝이는 5악장 <카바티나>가 유명하다. ‘<태양> 사중주’는 현악사중주 장르의 형식을 정형화한 하이든의 걸작으로 꼽히는 4악장짜리 발랄한 무드의 곡이다. <무덤>은 현대음악 작곡가 볼프강 림이 전 멤버 카쿠스카를 기려 지은 곡으로, 1월 빈 초연 이래 네 달 만에 연주한다. 교향악단의 위세에 눌리기 십상이나, 실내악은 훨씬 진솔하게 청중 내면에 육박한다. 이 노장 실내악단의 은퇴 연주 또한 베토벤의 말년처럼 아쉬움과 비장한 감회를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4만~7만원. 02-580-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