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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문화&과학 > 문화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6년11월17일 제6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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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신기, 그대에게 신기한 사랑을

스타가 갖춰야 할 모든 조건을 보여주며 10대 팬덤의 최정점에 선 그룹…사랑의 연령대를 확장하며 ‘국민 아이돌’이라는 낯선 단어를 가져오다

▣ 이문혁 CJ미디어 기획특집팀 프로듀서

슬프지만 사랑은 혼자 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의 ‘연인’이 되는 것은 나를 사랑해주는 다른 어떤 사람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누구나 연예인이 될 수는 있지만, ‘스타’라고 불릴 수 있으려면 그를 혹은 그녀를 사랑해주는 어떤 이들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배용준을 배우로 만든 것은 그의 노력과 타고난 끼일지 몰라도, 그를 ‘욘사마’로 부를 수 있게 한 것은 일본 아주머니들의 거침없는 사랑 덕분이었다는 얘기다.


사랑을 하는 두 사람이 연인이 되는 것이 20세기의 방식이었다면, ‘사귈래?’라는 말 이후에 서로 사랑을 만들어가는 것이 지금의 연예 방정식이 되었듯, 이제 ‘스타’가 팬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팬들이 ‘스타’를 키워간다. 이제 팬이란 그저 ‘스타’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타를 만들어내는 주체다. 그리고 이런 변화된 상황의 최고 지점에 그룹 동방신기가 있다.

높아진 기대수준에 맞춘듯한 스타

‘오빠부대’란 약간은 살벌한 군대 용어를 ‘팬클럽’이라는 풋풋한 말로 바꾸어놓은 것도 서태지가 우리 대중문화계에 이루어놓은 업적이다. 이후 ‘스타’가 되었다는 것은 그들을 사랑하는 것으로만 뭉쳐진 사람들이 생겼다는 다른 말이었고, ‘팬클럽 창단식’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축하했다. 자신들을 풍선의 색으로 구별하는 ‘묘수’를 등장시키며, 흔들어대는 풍선의 바다에 자신들의 ‘스타’가 노래하는 것을 보고 열광하는 팬이란 우리 대중음악이 만들어낸 우리만의 풍경이 되었다. 하지만 세상에 무조건적인 사랑은 없고, 사랑을 하다 보면 항상 원하는 것이 많아지기 마련인 법. 우리 대중문화가 성장하는 만큼 팬들의 기대 수준도 높아졌고, 그것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자신의 연인을 떠나는 데 주저하지 않는 ‘쿨’한 팬들 또한 심심치 않게 생겼다. 한 개그 프로그램 식으로 얘기하면 ‘스타가 스타다워야 스타’일 수 있는 시대. 그룹 동방신기는 이때에 등장한 ‘맞춤형 스타’였다.

훤칠한 키에 깎아놓은 듯한 외모, 순정만화에서 툭 튀어나온 주인공들 같은 다섯 명을 한데 모은 것 자체가 전례 없었다. 하물며 아카펠라 그룹이라니. 노래까지 잘한단 얘기였다. 중국에서 탁구 국가대표가 되는 것보다 조금 덜 힘들다는 소속 기획사의 살벌한 경쟁을 뚫은 다섯 청년은, 지금까지의 아이돌 스타가 가져야 할 모든 조건의 종합선물세트로 세상에 등장했다. 마치 ‘이래도 안 좋아할래?’라고 말하는 듯한, 중국 무협소설의 주인공 같은 이름의 다섯 청년에게 먼저 반응한 것은 10대들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들에게까지 처음으로 대중가요를 듣게 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동방신기에 대한 어린 청소년들의 사랑은 폭발적이었다. 꿈에 그리던 왕자님들을 이제 만났다는 듯, 멋진 다섯 오빠들에 대한 그들의 헌신적인 사랑은 몇 년 만에 공연장 앞에 밤샘 돗자리를 다시 등장시켰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바탕에는 우리 대중문화의 성숙된 토양이 있었다.

멋진 오빠들, 귀여운 동생되다

H.O.T 프로젝트의 성공 이후 한 번도 10대들이라는 시장을 놓쳐본 적이 없는 동방신기의 소속 기획사는 무엇을 만들고 어떻게 보여줘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10년의 노하우가 제공한 가장 영양가 있는 것은 대중은 좋아할 이유보다는 싫어할 이유를 먼저 찾는다는 교훈이었다. 무대를 날아다녀도 시원치 않을 춤솜씨를 가진 다섯 청년을 아카펠라 그룹으로 소개한 그들의 전략은 잘생긴 아이돌 그룹은 노래를 못한다는 선입견을 단숨에 날려버릴 수 있었고, 팬들에게 자신의 사랑을 의심할 여지를 봉쇄했다. 대중의 까다로운 눈높이에 맞춰 더 정교하고 세련된 어떤 것을 제공할 수 있을 만큼 우리 대중문화가 성장했다는 것을 그들은 증명했고, 그에 대해서 대중은 반응했다. 그리고 그 반응은 이제 10대들을 넘어서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아이돌 스타란 10대들이 좋아하는 이들의 다른 말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벗어버려야 할 것은 교복뿐이 아니라 당시에 좋아하고 즐겼던 문화라고 강요받았다. 초, 중, 고라는 글자 뒤에 ‘딩’이라고 붙이며, 개구리가 되면 올챙이 시절은 당연히 잊어야지 하면서 어른스럽게 좋아할 어떤 것을 뿌듯하게 찾았다. 이런 줄긋기는 좋아하는 가수들조차 나이에 따라서 줄 세우고, 양복을 입고 핑클 CD를 사러 가면 마치 비디오 가게에서 야한 비디오를 내미는 기분으로 계산대에 올려놓게 만들었다. 이렇게 강요된 취향의 세대 간 벽에서 동방신기는 처음으로 약간 비껴서 있다. 서태지조차도 후에 반납해야 했던 ‘아이돌 스타’라는 이름을 그대로 유지한 상태로 그들을 좋아하는 사람의 영역을 점점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10대들의 ‘멋진’ 오빠들이 이제 그들보다 세상을 좀더 많이 산 사람들에게까지 ‘귀여운’ 동생들로 비쳐지기 시작했다고 할까. 아니면 노래 잘하고 춤 잘 추는 그리고 오락 프로그램에서 귀엽게 웃는 잘생긴 청년들을 내놓고 좋아해도 상관없는 시대적 변화랄까. 동방신기를 ‘국민 아이돌’이라고 부를 수 있게 만든 것은 꽤 오랜만에 10대의 문화를 그 윗세대가 행복하게 수용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동방신기를 가장 좋아하는 가수라고 부르지는 않더라도, ‘믹키유천’의 혹은 ‘영웅재중’의 팬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폭이 넓어졌다는 것은 이제 ‘스타’를 수용하는 방식이 이전보다 훨씬 여유로워졌음을 방증한다고 볼 수 있다. 단순히 세대 간의 문제를 떠나서 말이다.

21세기 팬덤의 여유로운 사랑

변화는 아주 단순하다. 누구‘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사랑한다는 것. 남녀 간의 연애에서 이러면 큰일나겠지만, 스타와 팬의 관계에서는 혹은 ‘스타’를 수용하는 대중의 관계에서는 이는 더욱 성숙한 팬덤의 형태로 나타난다. 예전에 풍선의 색깔은 내 적이 얼마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디 앉아 있는가의 구별로 바뀌어가고 있다. 동방신기가 누구라도 사랑할 만한 준비된 스타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수용할 만큼 우리 대중문화가 성숙했다는 방증이어서 더욱 반갑다. 한 축구감독이 월드컵 해설을 하면서 “스타는 경기가 소강상태일 때 경기의 흐름을 바꿔주는 선수”라고 말했다. 동방신기는 그들의 탁월한 자질과 노력, 그리고 준비된 전략으로 새로운 21세기의 팬덤 문화라는 선물을 주었다면, 대중은 그들의 자질을 알아보고 여유롭게 사랑해주며 ‘팬클럽 100만 시대’라는 선물로 화답했다. 마지막으로 단단히 각오하고 한마디만. 옷은 좀더 잘 입을 수 있을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