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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사회 > 사람과 사회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8년07월23일 제7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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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이여, 작당하러 오라

열여덟 살 김현중군이 창업한 ‘뭐든 시작하게 도와주는 카페’

▣ 남형석 인턴기자 justicia82@paran.com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사람들은 음식점에 배를 채우러 오잖아요. 저는 페페를 여유와 꿈을 채우러 오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요.”

서울 강북중학교 정문 옆 골목에 있는 카페 ‘페페’(FeFe)의 사장님 김현중군은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이국적인 고양이 인형과 다양한 인물 사진들로 가득 찬 아담한 카페의 주인인 그의 나이는 뜻밖에 열여덟. 그러나 그는 ‘학생’이 아니다. “중2 때 학교를 뛰쳐나왔어요. 꽉 막힌 공간에 정해진 틀에 모두가 따라야 하는 게 갑갑하더라고요.” 자퇴를 한 뒤 2년 동안 시행착오를 거친 그는 지난해 12월부터 3개월 동안 직접 테이블을 만들고 페인트칠을 해 카페 페페를 완성했다. 부모님에게 받은 200만원의 보증금으로 공간을 마련하고,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인테리어를 꾸몄다. 청소년 창업이 대개 사회단체의 지원을 받아 이뤄지는 것과 달리 현중이는 자기 힘으로 창업을 완성한 것이다.


△ 김현중군(맨 왼쪽)은 카페 ‘페페’를 “청소년들이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와플이 있는 카페, 문화공간, 공부방…

페페는 김군이 짝사랑하는 여자 친구의 이름이 들어간 화초 ‘글로리아 페페’에서 땄다. 인기 메뉴인 와플부터 에이드, 아이스티까지 다양한 메뉴가 마련돼 있는 페페는 여느 카페와 다른 점이 있다. 현중이는 이 카페를 청소년들이 뭔가 ‘작당’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꾸며가고 있다. 같은 관심사를 가진 손님을 엮어 그들만의 문화를 함께 만들어가도록 하는 일이 현중이의 역할. 이미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여기서 뭉쳐 뭔가를 꾸미고 있고, 시험 때는 튜터(Tutor)와 튜티(Tutee)가 만나는 공부방이 되기도 한다. “‘하고 싶은 거 해라’가 ‘공부하지 마라’는 아니잖아요. 공부든 놀이든 그들이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현중이가 이렇게 청소년 대안문화 카페를 차린 건 학교를 그만둔 뒤 겪었던 경험에서 비롯됐다. 다섯 곳의 중학교를 돌아다닌 끝에 2005년 학교 다니기를 포기한 그가 찾아간 곳은 친형인 김판중(22)씨가 당시 활동하던 청소년 문화공동체 ‘품’. 판중씨 역시 고1 때 학교를 그만둔 뒤, ‘품’에서 폭넓은 경험을 쌓은 끝에 다큐멘터리 작가가 됐다. 형의 영향을 받은 현중이는 ‘품’에서 지역축제 기획자로 활동하며 학교가 포용하지 못한 자신만의 상상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고민을 하는 청소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에 청소년 대안문화 카페를 차리게 된 것이다.

‘품’에는 또 다른 ‘현중이들’이 많이 있다. 핸드페인팅을 배우며 옷장사를 준비하는 정운호군, 지역 청소년축제 ‘추락’을 직접 기획하는 일명 ‘세 개’(김준혁·서인석·송성호군) 등은 모두 제도교육의 틀을 뛰어넘어 ‘품 안에서’ 그들의 삶을 기획하고 있다. ‘품’의 심한기 대표는 “10대들은 작은 것을 봐도 큰 상상력을 발휘한다”며 “교육제도가 오히려 이들의 에너지를 죽이는 게 아닌지”라고 우려했다.

“서른다섯까지 다섯 개 더 만들래요”

현중이네 동네인 서울 강북구에서는 지난해부터 ‘문화놀이터’라는 이름의 청소년 문화행사가 달마다 열린다. 사진전, 밴드 공연, 연극, 사물놀이에 핸드페인팅과 마술까지. 청소년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동네는 어느새 청소년 문화의 중심지가 돼가고 있다. 그 중심에는 ‘품’의 아이들이 있고 이들의 거점이 페페다. 현중이의 작은 공간이 이미 ‘동네 문화’를 바꿔가는 출발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서른다섯 살까지 페페를 다섯 개 정도 더 만들고 싶어요. 이런 문화 공간이 다른 지역에도 필요할 테니까요.” 현중이는 여전히 시행착오를 겪고 있지만, 남다른 경험을 통해 체득한 ‘직접 만들고, 함께 나누는’ 삶을 즐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