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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사회 > 사람과 사회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8년02월14일 제6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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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지 마라, 아파도 말하지 마라”

최종 역학조사 결과 발표 앞둔 한국타이어…침묵하는 노조, 산재 신청도 적어

▣ 대전=글 김경욱 기자dash@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에서 18년 동안 일한 유종원(61)씨는 바지를 걷어올리고 엄지손가락으로 다리를 눌러 보였다. 손을 뗐지만 그의 다리에는 움푹 팬 손가락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보통 사람의 경우 손을 떼자마자 살이 올라오지만 그는 달랐다. 그는 “유지용제 중독으로 온몸이 항상 부어 있다”고 말했다.

유씨는 “타이어의 원료가 되는 벤젠, 톨루엔, 자이렌 등의 화학약품을 다루면서 머리가 어지럽고 아프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1998년 12월27일 공장에서 쓰러져 사내 병원으로 옮겨졌다. 회사 환경안전팀 관계자들이 찾아와 “시위하는 거냐.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빨리 일어나라”고 채근했다. 그 뒤로 10년 동안 그는 서울 아산병원, 서울대병원, 경기도 구리 원진병원 등을 다니며 치료를 받았다. 유기용제 중독, 말초신경염, 뇌경색 의증, 발기부전, 신체화 장애, 우울증 등의 진단이 내려졌다. 병은 낫지 않는다. 그는 현재 매일 스물다섯 가지가 넘는 약을 먹으며 치료받는 중이다.


△ 한국타이어 해고 노동자들이 1월30일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앞에서 ‘해고자 복직’을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다.

‘코드 맞추기’ 식 노조 대의원 선거

2006년 5월부터 2007년 11월까지 한국타이어에서 근무하는 노동자 15명이 심장질환, 폐암, 식도암, 간세포암, 뇌수막종양 등으로 사망했다. 심장질환으로 돌연사한 사람은 7명이다. 그들의 집단사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하 연구원)은 2007년 10월1일 노동부의 의뢰로 한국타이어 공장의 작업환경 전반에 대한 역학조사를 했다.

한국타이어 노동자들은 오매불망 연구원의 역학조사 결과만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11월28일 열린 첫 설명회의 결과는 납득할 만한 것이었다. 연구원은 “심장질환으로 숨진 이들은 같은 부서에서 동시에 같은 질병에 걸렸다”며 “죽음이 업무와 연관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 1월8일 열린 2차 설명회에서 말이 뒤집혔다. 연구원은 “작업환경 조사에서 심장병 돌연사를 일으키거나 관상동맥 질환에 악영향을 미치는 공통적인 위험 요인을 찾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숨죽인 노동자들은 가슴을 쳤고, 숨진 이들의 가족은 분노에 몸을 떨었다. 사회는 다시 발칵 뒤집혔다. 언론들은 비판 기사들을 토해냈고, 비난 성명이 쏟아졌다. 연구원은 “노동 강도, 직무 스트레스, 타이어 제작에 쓰는 화학물질의 영향에 대한 조사는 최종 발표에 포함될 것”이라며 “이번 조사는 집단적 질병의 원인을 찾으려고 한 결과일 뿐”이라며 한발 물러났다. 연구원은 애초 1월31일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발표 하루 전에 2월20일로 날짜를 변경했다. 김은아 연구원 역학조사팀장은 “유가족들과 자문위원회, 역학조사평가위원회가 제시한 의견을 반영하고 확인 작업을 거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타이어 노동자들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 한국타이어 노동자 이아무개씨는 ‘억압된 노동환경’을 그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유해 환경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노동자에 대한 억압”이라고 말했다. “공장에서 동료의 죽음에 대해 직접적으로 얘기하지 못한다. 술자리에서 가끔 얘기가 오갈 뿐이다. 회사 쪽의 통제와 감시가 심해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워서다.” <한겨레21> 취재진은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앞에서 노동자들과 접촉을 시도했지만 한결같이 말문을 닫았다. 전화 인터뷰 요청에도 마찬가지였다. 노동자들은 “할 말이 없다”며 군중 속으로 숨었다.

노동조합은 동료들이 주검으로 작업장을 빠져나갈 때 노조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숨진 노동자의 유가족과 동료들은 “노조는 회사와 한통속”이라고 말했다. 한국타이어에서 노조 대의원 후보는 대부분 단일 후보다. 노조에서 미리 후보자를 선별하기 때문이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질까.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한 한국타이어 노동자는 “노조와 ‘코드’가 맞지 않는 노동자가 대의원 선거에 후보로 나서면 팀장과 주임이 나서서 말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해당 노동자의 집으로 찾아가 가족들을 설득하기도 한다. 그래서 회사와 노조와 같은 생각을 갖는 사람이 아니면 대의원이 될 수 없다. 반대표를 던질 수도 없다. 후보자 이름 옆에 동그란 모양의 도장을 찍지 않고 자필로 후보자의 이름을 적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문기선 한국타이어 노조위원장은 “우리는 노조규약대로 일을 진행할 뿐”이라며 “노조원들의 불만이 제기된 부분은 앞으로 고쳐나가겠다”고 말했다.

금호타이어 산재 신청은 20배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아프다”고 말할 권리마저 봉쇄한다. 팀별로 운영되는 무재해 인센티브 때문이다. 회사는 무재해 목표일을 달성한 팀에 상품을 주거나 1호봉을 올려준다. 1호봉이 오르면 시급 100원이 오른다. 인센티브제가 팀별로 운영되다 보니, 노동자들은 아파도 참고 다쳐도 참는다. 정말로 참기 힘든 경우에는 휴가를 내고 병원에 다녀온다. 산재 신청을 하는 경우도 드물다.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쪽은 “인센티브제는 사원들의 안전사고 예방과 자율 안전관리를 활성화하기 위해 시작했지만 2007년 중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아직도 시행 중”이라도 맞서고 있다. 1년 반 남짓하는 시간에 15명이 죽은 회사에서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산재 신청 건수는 해마다 15~29건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금호타이어의 산재 신청 건수는 그 20배에 해당하는 200~560건에 이른다. 한국타이어의 노동자 수는 금호타이어의 60% 수준이다.

회사는 건강진단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노동자들을 옥죈다. 이씨는 “간 수치가 높게 나온 노동자는 추적관리 대상”이라고 말했다. 술을 마시지 말라는 뜻이다. 그는 “해당 노동자가 술을 마시는 사람이라면 회사에 ‘다시 간 수치가 높아지면 사표를 쓴다’는 내용의 각서를 써야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주장에 회사 관계자는 “처음 들어본 말”이라고 일축했다.

1월30일 오후 2시 박응용, 노주호씨 등 한국타이어 해고 노동자들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회원 10여 명은 대전 대덕구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앞에서 ‘해고자 복직’을 주장하며 1시간 동안 시위를 벌였다. 1995년 한국타이어 민주노조 건설을 외치다 쫓겨난 박응용씨는 “회사는 부당노동 행위를 중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동자들은 2월20일 나오는 연구원 역학조사에 목을 매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 얘기를 직접 못합니다. 외부에서라도 우리 얘기를 좀 해줬으면 좋겠네요.” 이씨가 말했다. 해고자들이 시위를 벌이던 날 한국타이어는 2011년까지 매출액 5조원, 생산량 1억 개를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