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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사회 > 사람과 사회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8년01월10일 제6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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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먼저 보여준 ‘위안부 만화’

위안부 문제 다룬 만화가 권태성의 <다시 태어나 꽃으로>, 일본어판 이어 한국어판 나와

▣ 글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여자들까지도 정신대라는 명목으로 끌려가 희생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방대한 암기 분량 탓에 국사 과목을 싫어했음에도 국사책에 실린 그 한 줄만은 유난히 잊히지 않고 머릿속을 맴돌았단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두고 언젠가는 ‘만화’로 풀어내리라고 결심한 실마리였다.


△ 만화가 권태성씨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위안부’ 문제를 다룬 만화를 그리겠다는 결심을 했다.

나눔의 집에서 만난 일본인이 출판 제안

“부모님께서 서울 안암동에서 만화 가게를 했거든요. 만화를 많이 봤고, 따라 그리기도 했습니다. 잘 그린다는 얘기도 들었고….” 그런 권태성(34)씨가 만화가로 진로를 잡은 것은 군에 입대한 뒤였다. 일찍 여읜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는 만화가 지망에 별 반대가 없었다. 오히려 하고 싶은 것 한 가지를 정해 집중하라고 힘을 실어줬다.

한-일 월드컵 축구대회가 열린 2002년, 서울 남산 부근에 있는 애니메이션센터에 등록해 만화 공부를 전문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박제동, 오세영 화백이 당시 그의 스승들이었다. 애니메이션센터에서 만화 그리기 공부를 한 이듬해 홈페이지(www.overkwon.com)를 열고 온라인 작품들을 잇따라 선보였다. ‘미선·효순 사건’을 담은 ‘소파’라는 웹상 작품을 내놓았으며, 이는 <추억연필>이란 단행본의 일부로 묶여 나왔다.

늘 마음에 두고 있던 위안부 관련 만화는 그로부터 몇 년 뒤인 2006년 5월에야 그리게 됐다. 그는 실력 부족으로 감히 손을 못 대고 있었다고 했다. “만화를 그리기 위해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을 방문해서 사진과 관련 자료를 협조받고, ‘나눔의 집’을 방문해 역사체험관의 사진을 찍고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때 그 상황으로 들어가는 것이 중요했기에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기를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가슴 아픈 사연의 수기와 역사 자료는 웹상에서 ‘다시 태어나 꽃으로’라는 작품으로 거듭났고, 많은 이들이 공감을 표했다. 그중에는 일본의 시민운동가로 ‘나눔의 집’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무라야마 잇페이(村山一兵)도 끼어 있었다. 무라야마는 ‘다시 태어나 꽃으로’ 일본어판을 만들어 일본 쪽에도 보여주자고 제안했고, 권씨는 흔쾌히 응했다. 일본어판은 ‘네이버 재팬’에 실리고 무라야마의 도움으로 ‘야후 재팬’ 사이트에도 공개됐다. 예상대로 엄청난 ‘악플’이 쏟아졌지만, 공감해준 일본인들도 꽤 있었다. 웹상의 일본어판은 <戰爭と性-韓國で ‘慰安婦’ と向き合う>(전쟁과 성-한국에서 ‘위안부’와 마주본다)라는 이름의 단행본에 실렸다.

‘다시 태어나 꽃으로’는 영어판 ‘Born again as a flower’로도 만들어졌다. 이 또한 무라야마의 도움 덕이었다. 영어판은 동영상으로 제작돼 ‘유튜브’에 공개되기도 했다.

버려진 강아지·좌절된 꿈… 옴니버스 형식

권씨는 올 1월 들어 웹상의 ‘다시 태어나 꽃으로’를 한 부분으로 담은 옴니버스 형식의 카툰 에세이집 <다시 태어나 꽃으로>(두리미디어 펴냄) 한국어판을 냈다. 섬세한 연필화의 이 만화집은 초등학생을 비롯해 어린 학생층을 겨냥하고 있다. 위안부 할머니의 실상과 고통을 담은 내용 외에 버려진 강아지 이야기인 ‘괜찮아요’, 현실과 꿈의 갈등에서 희망을 보는 ‘별빛 속에’ 등 11편이 더 실려 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사연은) 분명히 유쾌한 일도 아니고, 어쩌면 이제는 역사 속에, 그저 한 조각의 불행한 일이라고 묻어버리자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은 명확한 사실입니다. 누구나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 그 문제를 알리고, 좀더 기억에 각인시키는 데 만화 ‘다시 태어나 꽃으로’가 작으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