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사람과사회 기자가뛰어든세상 보도그뒤 이번호목차 지난호보기 독자마당 기사에대한의견

한겨레21 구독신청 sitemap

e-Book
표지이야기 특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문화/과학 인터뷰 스포츠/건강 사진/만평 칼럼 독자마당
Home > 사회 > 사람과 사회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6년03월09일 제600호
통합검색  검색
피를 토하며 보이차를 배우다

80년대 사회운동 이론가에서 보이차 생활운동가로 변신한 박현씨
‘상도’없는 차 유통현실 개탄, 누구나 차 마시는 집회소 꾸려

▣ 글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도예가, 중국문화 전문가, 박물학자, 차 전문가…. 중국에서 박현(49) 선생의 이름 앞에 붙이는 수식어들이다. 광저우의 차 도매시장에서도 중국 상인들이 얼굴을 알아볼 만큼 그는 중국에서 이름이 꽤 높다. 난징사범대학 명예교수이기도 하다.

“차를 마셔도 취합니다”

동양학자, 한국학연구소장, 한의학자, 고언어학자, 사회운동가, 차 전문가…. 한국에서도 그의 이름 앞에 붙는 호칭은 다양하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알 만한 사람들만 알 뿐이다.


△ 차 한잔 앞에 두고 맑게 웃는 박현씨. 한국과 중국에서 그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는 다르지만, 그는 그저 '보이차 생활운동가'로 불리는 데 만족한다.

요동치던 80년대에 쓴 <변증법적 지평의 확대> <한국경제사 입문>은 사회변혁 운동을 하는 이들에게, 90년대에 쓴 <나를 다시하는 동양학>은 동양학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분명 널리 읽혔지만 그렇다고 그의 이름이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든 중국에서든 보이차 전문가로 통하는 그를 지난 3월1일 찾아갔다. 중국의 술에 마오타이주가 있듯이 중국의 차에 보이차가 있지만, 아직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은 아니다. “그거 보리차 아니냐.” 그를 만나기 전 주위에서 보인 반응은 대체로 보이차와 보리차를 혼동하는 수준이다. 보이차를 알고 있거나 즐기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보이차는 차나무 잎을 오랫동안 발효시킨 것을 말한다. 애써 그를 찾아가 보이차에 대해 물은 것은 그가 보이차를 매개로 일종의 생활공동체를 꾸려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 6곳과 지방 2곳에 ‘지유명차’나 ‘호중일월장’의 이름으로 누구든지 찾아가 차를 마실 수 있는 집회소이자 판매소이기도 한 공간이 있다. 운영은 공동으로 한다. 이 차 회관에서 보이차를 팔지만 마진 개념은 없다. 인건비를 조금 얹을 뿐이다. “마진 개념이 존재하는 순간 착취 개념이 존재하게 됩니다.” 불편하게 듣는 사람도 있지만 그는 자신을 반자본주의자라고 부른다. 필요한 게 있으면 공동으로 사서 쓴다. 그의 이름으로 된 개인 재산도 한 푼이 없다.

그가 생활공동체의 매개로 삼은 보이차에 빠진 것은 7~8년 전이다. 몸의 독소를 빠지게 하는 보이차의 정화 기능에 주목했다. 공동체의 물질적 기반이자 생활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기대는 앞의 것에 따라붙은 것이었다. 그래서 차가 하나의 생활이 된 것이다. 일찍이 중국에서는 차를 ‘개문칠대사’(開門七大事)라고 해서, 쌀·땔감·소금·식초·장·기름과 더불어 집을 열 때 필요한 필수품으로 여겼다. 그는 보이차를 몸으로 공부했다. 부모님 옆에서 4살 때부터 한의학을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몸으로 임상실험을 한 것이다. “가짜 진짜를 구분하고 효능을 시험하느라 위아래로 피를 몇 번이나 토했어요.”


△ '후발효차' 보이차는 수십년이 넘게 묵혀두어야 독특한 맛을 낸다.

그만큼 몸에 민감한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 차였다. “나는 차를 무섭게 본다. 약재와 같은 것입니다.” 몇몇 한의사와 양의사들과 같이 차를 연구하면서 차와 약재를 병합해 처방하기도 하지만 아직 뭘 내놓기에는 이른 단계라고 한다. 차의 성질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그의 말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차 회관에서 보이차를 마시면서 사람들이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도 차의 성질에서 찾을 수 있다. “술을 마시면 취하는데 원래 취한다는 개념은 열린다는 뜻이에요. 오래 같이 차를 마시면 술을 마신 것 이상으로 취합니다.” 보이차가 비싸다는 선입관이 있지만 차 회관에서 마시는 것들은 100g에 3만원이 넘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윈난성 벗어나면 보이차가 아니다?

그는 차를 기의 작용의 관점에서 오행으로 풀어낸다. 보이차는 내림의 성질이 극대화된 흑차의 특수한 갈래다. 그래서 물, 쇠, 땅, 불, 나무의 오행 가운데 물의 기운으로 설명된다. 그 효능 또한 머리를 많이 쓰는 현대인들의 허열을 줄이고 마음의 부담을 덜어주는 데 좋다고 한다. 물의 성질은 미생물의 발효 조건을 형성한다. 발효 환경을 최대한 억제하는 다른 차들과 달리 보이차는 미생물의 발효 과정을 거친다. 제조 공정의 차이가 차의 성질을 결정짓는다고 한다. 보이차는 오랫동안 묵혀두기의 과정을 거친다. 후발효차라고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발효는 길게는 수십 년이 넘게 진행된다. 돌같이 단단하면서 심지어 100년이 된 보이차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무조건 오래된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보이차도 인공적으로 만든 것인데 수명이 없을 수 없습니다. 보이차가 건발효 상태에서 만들어진 보이 생차의 경우 50~60년, 습한 보관 상태에서 나온 보이 숙차의 경우 30~40년이 넘는 것은 유통기한이 지난 것으로 보시면 됩니다.” 거꾸로 10년이 안 된 보이 생차는 보이차의 독특한 맛을 내는 보이차균이 나타나지 않아 마실 수 없다.

원래 우리나라에서도 고려 때까지 발효차를 즐겼다고 한다. 용단과 봉병이 그것이다. 그러나 맥이 끊겼다. 찻잎을 이용해 황차를 끓여 먹던 조선시대의 황차 제조 비법과 문화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사라지고 대용으로 보리차와 옥수수차를 마신 것처럼. 녹차는 공납용으로 바쳐져 서민들과 거리가 먼 차였다.


△ 박현씨는 보이차의 효능을 시험하느라 "위 아래로 피를 몇 번이나 토했다"고 말했다.

생산 주체, 다시 말해 차 생산공장에 따라 차의 품질이 달라지기도 한다. 과거 멍하이차창, 샤관차창, 쿤밍차창 등 크게 3곳이었으나, 사유화 바람이 불면서 윈난성에만 500~600개의 차창이 생겼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보이차의 지역적 한계는 윈난성이다. 이를 벗어나면 보이차라고 보지 않는다. 보이차의 재료가 되는 차나무도 원래 야생 대엽종이었지만 지금은 소엽종 등 그 종류가 훨씬 다양해졌다. 그러나 여기에 열을 쐬어서 말리는 홍배 처리를 할 경우 진정한 보이차라고 보기 어렵다. 그가 상도를 강조하는 것은 진짜 보이차를 맛보기 어려운 유통 현실 때문이다. “사람과 생산한 것 사이를 연결하는 것이 상인입니다. 상에 도가 있으면 그 나라에 도가 있고, 상에 도가 없으면 그 나라에 도가 없습니다.” 그가 보이차의 유행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유행은 자본의 필요에 따른 형성과 이행 과정이에요. 여러 민족의 수천 가지 옷이 2차 대전 이후 거대 자본에 의해 단일한 패턴으로 흡수됐습니다. 웰빙 바람이 분다고 자기 몸과 생활을 고려하지 않은 채 오로지 녹차를 마시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보이차는 그의 생활이자 뿌리

그는 고몽골어, 고만주어 등 10개 이상의 소수민족어를 구사하고 30여 개 언어를 연구하는 언어학자이기도 하다. 그 지식을 바탕으로 보이차가 중국과 대만에서 ‘보이’라는 땅이름에서 나온 것이라는 중론과 달리, 보이차를 만들어온 윈난성의 소수민족들이 ‘떡차’라는 뜻의 물건을 부르는 ‘푸레’에서 나왔다고 해석한다. 그는 보이차를 만드는 소수민족인 떠앙족의 노래를 들려줬다. “차는 우리들 삶의 뿌리, 차는 우리들 땅신의 젖, 우리 생명 모두 거기에서 나온다네.” 그에게도 보이차는 생활이자 삶의 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