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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경제 > 경제21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8년08월18일 제7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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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수 기업 열전] 달콤하고 영화같은 경쟁 ‘CJ vs 오리온’

설탕으로 동업하다 영화와 미디어 사업으로 영역 확장하며 맞부딪힌 두 회사의 반세기 인연

▣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 사진 이종찬 기자rhee@hani.co.kr

처음은 설탕이었다. 두 창업주는 반세기 전 첨단 상품인 설탕으로 동업을 맺었다.

1951년 부산에서 이양구 동양그룹 회장은 ‘설탕왕’으로 불렸다. 그는 설탕과 밀가루를 대규모로 수입해 판매하는 도매상 겸 무역회사인 ‘삼양물산’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 회장은 설탕을 수입해 팔기보다 자신이 직접 만들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제당 기술이 없었다. 기술과 자본이 빈약했던 시절, 설탕 만드는 기술은 지금 반도체를 만드는 것과 같은 첨단 기술이었다.


△ CJ가 투자한 영화 <놈놈놈>과 오리온이 투자한 <다찌마와리>가 걸린 극장의 풍경. 맨 왼쪽 사진은 제일제당 부산공장에서 설탕을 만드는 장면이다. 맨 오른쪽 사진은 오리온의 서울 문배동 공장.

CJ미디어-온미디어, 빕스-베니건스

당시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제일제당만이 국내에서 유일하게 제당 기술을 갖고 있었다. 이양구 회장은 이병철 회장을 찾아가 동업을 제안한다. “난 설탕을 만들 줄 모르지만 파는 재주는 있습니다. 우리 둘이 힘을 합치면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습니다. 제일제당 설탕을 독점 판매하게 해주세요.” 이병철 회장도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렇게 두 사람은 동업했다.

다음은 TV와 은막이었다. 창업주의 자손들은 엔터테인먼트라는 또 다른 첨단 사업으로 경쟁을 벌인다.

삼성과 동양에서 각각 계열 분리한 CJ와 오리온은 엔터테인먼트 사업으로 영토를 넓혀가고 있다. 그동안 CJ와 오리온은 다른 길을 걸어왔다. 서로 맞부딪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그룹에서 분리된 뒤 두 회사는 새로운 먹을거리 사업을 찾았고, 결국 모두 미디어 사업을 선택했다. 외환위기로 대기업들이 영화와 미디어 사업을 대부분 접었지만 두 회사는 엔터테인먼트 사업에서 ‘위기’를 ‘기회’로 일궈냈다. 두 회사의 경쟁도 본격화했다.

한때 두 회사는 영화 배급(CJ엔터테인먼트 대 미디어플렉스), 극장체인(CGV 대 메가박스), 케이블TV(CJ미디어 대 온미디어)에서 1~2위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였다. 외식사업(빕스 대 베니건스)에서도 겨뤘다.

외형상 영화는 CJ로 기울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오리온은 콘텐츠에서 앞선다.

먼저 영화 투자. CJ의 자회사인 CJ엔터테인먼트와 오리온의 자회사인 미디어플렉스(브랜드명 쇼박스)는 올해 여름 화제작에서도 맞붙었다. CJ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과 오리온의 <님은 먼 곳에>가 그것이다. 두 회사는 각각 200억원과 100억원 안팎의 제작비를 들였다. 승리의 여신은 CJ에게 키스했다. <놈놈놈>은 2008년 상반기 화제작 <추격자>의 512만 관객을 뛰어넘었다. <님은 먼 곳에>는 완성도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흥행은 따라가지 못했다. 200만 명 안팎의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쳤다.

올 1분기 CJ는 15편의 영화를 배급해 700만 명을 극장으로 불러모았다. 점유율 20.5%. 쇼박스는 6편을 배급해 594만 명을 동원했다. 점유율 16.7%. 그동안 CJ엔터테인먼트는 <왕의 남자> <라디오 스타> 등을 히트시켰다. 쇼박스는 <태극기 휘날리며> <웰컴 투 동막골> 등을 흥행작으로 갖고 있다.

영화관 사업에서도 CJ가 앞섰다. 복합상영관인 CJ CGV는 극장 55곳에 445개 스크린을 갖고 있다. 계열사인 프리머스시네마까지 더하면 99곳 759개 스크린을 확보하고 있다. 오리온은 99년 대우영상사업단이 해체되면서 매물로 나온 케이블TV 영화 채널 ‘DCN’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복합상영관 메가박스를 떠안았다. 메가박스는 2006년 매출 1100억원을 기록하는 알짜배기 사업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오리온은 2007년 오스트레일리아계 투자회사인 맥쿼리가 만든 펀드에 메가박스를 전격 매각했다.

CJ <놈놈놈>, 쇼박스 <님은 먼 곳에>

케이블TV 분야에선 오리온이 우위를 보인다. 오리온의 자회사인 온미디어의 강점은 케이블TV 채널 가운데 1위가 많다는 점이다. 온미디어의 애니메이션 채널 ‘투니버스’, 영화 채널 ‘OCN’, 여성 채널 ‘온스타일’은 시청률에서 각 분야 1위를 달리고 있다. CJ미디어는 음악과 음식 분야에 강하다. 음악 채널인 ‘m.net’과 ‘KMTV’, 음식 전문 채널인 ‘올리브 네트워크’가 경쟁우위에 서 있다.

하지만 늘 그래왔듯, 분야별로 두 회사의 순위가 바뀔 수도 있고 앞으로 서로 다른 분야에서 경쟁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CJ의 옛 이름은 제일제당. 이병철 전 회장의 제일제당 사랑은 각별했다. 삼성그룹의 터전이 된 곳이기 때문이다. 이 전 회장은 53년 부산에서 제일제당을 세웠다. 전쟁 뒤 설탕의 씀씀이가 많아질 거라는 시대 변화를 읽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것이다. 60년엔 한국 설탕 시장의 70%를 점유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물론 제일제당의 ‘굴욕’도 있었다. 미원에 맞서 ‘미풍’이라는 조미료 브랜드를 맞들어냈으나 끝내 1위를 차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제일제당은 ‘다시다’라는 브랜드를 내놓으며 조미료 시장 1위 돌풍을 이어간다.

제일제당은 90년대 중반까지 설탕·조미료·밀가루 위주의 식품회사였다. 그러나 제일제당은 변신한다. 93년 삼성그룹에서 계열을 분리하면서부터다. 당시 제일제당은 삼성의 전자 및 중공업 위주 우선 투자전략에서 밀려 성장 한계를 보이고 있었다. 제일제당은 새로운 먹을거리 사업을 찾아나선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이병철 전 회장의 장남인 이맹희씨의 첫째아들이다. 그는 아버지가 못다 이룬 꿈을 2002년 CJ그룹의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일궈나가고 있다.

동양그룹은 이병철 회장과 동업을 맺으면서 사업을 키웠던 이양구 회장이 세웠다. 이 회장은 설탕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제과 사업에도 진출한다. 56년 동양제과공업을 만들어 껌·사탕·비스킷·웨하스·초코파이 등을 생산해낸다. 동양그룹은 57년 동양시멘트를 설립하며 한국전쟁 뒤 폐허가 된 도로·항만 재건에 뛰어든다. 80년대 들어 동양종합금융증권, 동양생명을 세우며 금융 분야에도 발을 들여 놓았다.

이 회장은 딸만 둘 두었다. 첫째딸인 혜경씨는 검사 출신인 현재현 현 동양그룹 회장과 백년가약을 맺었다. 둘째딸 화경씨는 샐러리맨 출신의 담철곤 회장과 웨딩마치를 울렸다. 이 회장 작고 뒤 동양그룹은 시멘트·금융 등을 맡고, 오리온그룹은 제과·엔터테인먼트 부문을 맡으며 계열을 분리한다. 오리온은 부부가 공동으로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담 회장은 그룹을 총괄하고 이 사장은 외식과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오리온은 지난 2006년 영화관 사업인 메가박스를 오스트레일리아의 맥쿼리 펀드에 1455억원에 팔아치웠다. 지난해 3월 미디어플렉스는 <놈놈놈>의 제작·공급권도 바른손에 넘겼다. 당시 오리온이 미디어 사업을 포기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오리온은 2006년 자본금 50억원 규모의 건설회사인 메가마크를 세우기도 했다. 이 때문에 오리온이 건설 부문으로 주력을 옮기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오리온은 서울 용산 문배동 본사와 계열사가 갖고 있는 도곡동 땅을 주상복합 건물로 개발할 방침이다.

오리온 “메가박스 매각, 콘텐츠 사업 집중”

하지만 오리온 홍보실은 “메가박스 매각으로 콘텐츠 사업에 더욱 집중할 계획이다. 온미디어와 쇼박스를 중심으로 엔터테인먼트 그룹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설탕처럼 달콤하게 시작된 두 회사의 인연은 은막으로 이어졌다. 누가 은막의 별이 되고, 누가 은막 뒤로 쓸쓸히 사라질지는 온전히 두 회사에 달려 있다.


엔터테인먼트 맞수 여성 CEO

이미경 부회장 vs 이화경 사장


△ 이미경(CJ엔터테인먼트 부회장)·이화경(오리온 사장)

이미경(50·왼쪽) CJ엔터테인먼트 부회장과 이화경(52·오른쪽) 오리온 사장.

2살 차이의 두 여성 CEO는 이름도 닮았고 나이도 비슷하다. 두 사람 모두 창업주의 후손이기도 하다. 이 부회장은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손녀다. 이 사장은 이양구 동양그룹 회장의 둘째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두 여성 CEO는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맞수’라는 점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이 부회장은 시작부터 과감했다. 1995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함께 다국적 엔터테인먼트 기업 ‘드림웍스’ 설립을 주도하면서 한순간에 업계 스타로 떠올랐다. 우리나라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할리우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데 이바지했다. 건강 악화로 한동안 경영 일선에서 떠나 미국 로스앤젤레스 일대에서 머무르다 지난 2004년 12월 CJ그룹의 엔터테인먼트 총괄 부회장으로 복귀했다.

이 부회장은 열정적이고 치밀하다. CJ미디어 방송 채널과 CJ엔터테인먼트가 만든 영화는 빼놓지 않고 본다. 그는 또 채널 프로그램 선정에도 직접 참여하고 영화 시나리오 초고까지 꼼꼼히 읽는다. CJ엔터테인먼트는 투자·배급 부문 1위, CGV는 극장 부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맞수인 이화경 사장은 2001년 오리온그룹 외식 및 엔터테인먼트 담당 CEO로 부임하며 얼굴을 알렸다. 지난 2002년 설립한 쇼박스는 3년 만에 <태극기 휘날리며> <웰컴 투 동막골> 등 히트작을 잇달아 내놓으며 한국 영화 점유율 3위, 관객 동원 1위의 배급사로 급부상했다. 그 뒤 이 사장은 온미디어를 케이블TV 채널 점유율 30%대를 웃도는 기업으로 일궈냈다.

이같은 능력은 그가 밑바닥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오리온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이 사장은 75년 사원으로 동양제과 구매부에 입사한 뒤 차근차근 일을 배웠다. 26년 만에 동양제과 사장에 올랐다.

이 사장은 동양제과 마케팅 담당 상무 시절인 89년 ‘초코파이 신화’를 만들어냈다. 당시 초코파이는 경쟁사들의 따라하기식 ‘미투(Me Too) 상품’으로 고전하고 있었다. 이 사장은 오리온에 초콜릿을 덧입히듯 ‘정’(情)을 입힌다. 가장 한국적인 정서로 소비자에게 다가서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