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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경제 > 경제21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8년07월03일 제7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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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기즈칸’의 슬픈 추억

김우중 회장의 ‘세계경영’ 교두보가 된 우즈베키스탄…“방만한 경영 안 했다면 러시아까지 시장 넓혔을 것”

▣ 타슈켄트(우즈베키스탄)=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 시내에선 대우차를 자주 보게 된다. 마티즈와 라세티, 넥시아(한국 모델명 시에로), 티코, 다마스와 같은 낯익은 브랜드다. 현지 주재원들은 시내에서 보는 자동차 10대 가운데 9대가량이 대우차라고 말한다. 우즈베키스탄의 이웃 나라인 카자흐스탄만 해도 도요타·혼다와 같은 일제 차가 휩쓸었다. 하지만 우즈베키스탄 골목골목에는 여전히 대우 마크를 단 차들이 돌아다닌다.


△ ㈜대우의 후신 대우인터내셔널의 우즈베키스탄 현지 면방직 공장 전경. 대우인터내셔널은 최근 우즈베키스탄 광구권을 획득하는 등 대우의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사진/ 대우인터내셔널)

비행기 이륙까지 늦추던 대우 파워

대우는 1992년 국내 기업 최초로 우즈베키스탄에 들어왔다. 이곳은 이른바 ‘세계경영’의 교두보가 됐다. 대우는 96년에는 자동차 조립공장을 세웠다. 자동차를 앞세우고 전자·중공업·건설·금융도 따라 들어왔다. ‘대우’라는 선단으로 합쳐진 대우군단의 전진이었다. 이 때문에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은 김우중 당시 대우그룹 회장을 ‘킴기즈칸’으로 부를 정도로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우즈베키스탄에선 대우와 관련해 전설 같은 얘기가 많다. 현지에서 만난 전 대우맨 정유상 HIC 사장의 말이다. “90년대 중반 대우의 한 임원이 우즈베키스탄의 고위 공무원을 만나 얘기를 나눴다. 임원의 비행기 출국 시간이 됐다. 그 임원이 ‘비행기 출국 때문에 일어서야 한다’고 하니, 고위 공무원은 공항에 전화를 걸어 ‘비행기 이륙 시간을 늦추라’고 했다.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어서 놀랐지만 대우의 위상이 그 정도로 높다는 생각에 뿌듯해했다.”

그러나 99년 대우그룹이 부도 사태를 맞자, 대우차를 생산하던 ‘우즈대우’는 우즈베키스탄 정부로 소유권이 넘어갔다. 대우인터내셔널이 96년 설립해 이동통신시장 점유율 1위까지 차지했던 ‘대우 유니텔’도 2004년 네덜란드의 실크웨이홀딩사에 팔렸다. 대우은행도 산업은행으로 소유권이 넘어가 우즈KDB로 이름을 바꿔달고 영업하고 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경영철학은 ‘세계경영’이었다. 김 전 회장은 부실기업을 잇달아 인수·합병(M&A)하면서 창업 15년 만에 대우를 자산 순위 국내 4대 재벌로 거듭나게 만들었다.

90년대엔 선진국 기업조차 관심을 갖지 않았던 동유럽과 중앙아시아로 진출했다. 당시 대우의 해외 현지법인은 전세계 360여 곳에 이르렀다. 김 전 회장은 전세계 100여 개국에 600여 사업장을 거느린 ‘글로벌 총수’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상당수 해외 법인들은 ‘대우제국’ 몰락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알리모프 우즈베키스탄 동방대 경제학과장은 “김우중 회장의 방만한 경영과 비자금 문제는, 결국 중앙아시아에서의 대우 몰락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외국기업과 우즈벡 정부로 뿔뿔이

김 회장은 2005년 6월 5년8개월간의 해외 도피 생활을 끝내고 귀국했다. 그는 곧바로 사기대출 등의 혐의로 구속돼 2006년 11월 징역 8년6개월에 추징금 17조9천억여원의 형이 확정됐다. 그러다 지난해 말 특별사면을 받았다.

우즈베키스탄 경제주간지 <비즈니스베스닉 바스토카>의 스베플라나 브도비나 편집장은 “대우차나 이동통신사가 지금까지 꾸준히 사업을 했다면 우즈베키스탄은 물론 러시아 등 독립국가연합(CIS) 지역까지 시장을 넓힐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