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목차 지난호보기 독자마당 기사에대한의견

한겨레21 구독신청 sitemap

e-Book
표지이야기 특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문화/과학 인터뷰 스포츠/건강 사진/만평 칼럼 독자마당
Home > 경제 > 경제21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6년08월23일 제624호
통합검색  검색
상하이차, 기술 갖고 튀는가

쌍용차 핵심 기술 빼낸 뒤 국내 투자 하지 않고 재매각 할 가능성 커… 자동차 원천기술을 향한 중국의 욕심은 매각 당시부터 예견된 일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옥쇄 파업’. 여러 사람들이 한데 모여 문을 안에서 걸어잠근 채 밀폐된 곳에서 먹고 자는 극한투쟁 방식의 점거농성이다. 경기도 평택에 있는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8월16일 밤부터 옥쇄 투쟁을 벌이고 있다.


△ 상하이자동차그룹은 쌍용차를 장기 육성할 의지가 있는가. 2005년 소진관 쌍용차 사장(왼쪽)과 장쯔웨이 대표이사가 상호협력을 뜻하는 ‘쌍영’ 현판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따라 평택공장의 차량 생산과 출고 모두 전면 중단됐다. 옥쇄 파업의 장기화에 대비해 노조는 비상식량으로 수만 봉지의 라면은 물론 쌀·옷가지·취사도구까지 준비했다.

구조조정 전문가 머터우 이사 영입

파업의 핵심 쟁점은 쌍용차 최대주주인 상하이자동차그룹(SAIC)의 ‘기술 유출’ 의혹과 ‘설비투자 약속’ 불이행이다. 중국 상하이에 본사를 두고 있는 상하이자동차그룹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중이던 쌍용차를 지난해 1월 최종 인수했다. 노조가 파업에 돌입한 것은 지난 8월11일. 이날 쌍용차는 554명을 정리해고하는 것을 포함한 인력 구조조정 방안을 노동부에 신고했다. 특히 쌍용차는 이날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잇따라 열고 자타가 공인하는 구조조정 전문가인 필립 머터우 상하이차 부사장을 새로운 공동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머터우 대표이사는 일본·영국 등 다양한 해외 자동차 회사에서 30여 년간 경력을 쌓았는데, 스스로 “나는 일본·영국·미국 등 모든 부임지에서 항상 인력 감축을 진행해왔다”고 밝혔다. 쌍용차노동조합 조영진 대외협력실장은 “노조와의 간담회에서조차 머터우 대표가 ‘내가 GM 등 전세계 공장을 돌아다니면서 어디서 몇 명 잘랐다’는 자랑만 늘어놓더라”고 말했다.

노동조합은 인력 감축 통보와 머터우 대표이사 선임을 “국내 쌍용차를 껍데기만 남기고, 중국으로 곶감(기술)을 빼내간 뒤 재매각하려는 수순”으로 보고 있다. 쌍용차가 30여 년간 축적한 자동차 생산 원천기술을 중국으로 빼돌리고, 공장을 팔고 떠나는 ‘먹튀’ 작업이 서서히 진행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노조와 투기자본감시센터는 곧바로 장쯔웨이 전 대표를 포함한 쌍용차 이사진 9명을 업무상 배임 혐의(기술유출 등)로 검찰에 고발했다. 쌍용차의 제조기술을 상하이자동차가 중국에 ‘헐값 유출’하려고 하는데도 이사진이 방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술 유출을 둘러싼 노사 간 갈등을 직접 촉발시킨 계기는 이른바 ‘L-프로젝트’다. L-프로젝트는 쌍용차의 ‘S-프로젝트’(상하이차와 쌍용차가 중국에 합작공장을 건설한 뒤 2007년까지 독자 브랜드로 생산하기로 계획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다. 쌍용차는 지난 6월 상하이차와 L-프로젝트를 체결해 중국 현지에 엔진 생산공장을 짓고 ‘카이런’ 디젤모델을 생산하기로 했다. 노조는 “이 프로젝트에서 라이선스 계약금액이 카이런 연구개발비의 10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치는 240억원으로 결정됐다. 이는 업계 관행에 비춰볼 때 있을 수 없는 계약”이라며 “L-프로젝트를 중국에서 진행하면서 스포츠실용차(SUV) 생산기술을 중국으로 빼내간 뒤 국내 투자는 하지 않고 재매각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8월17일 쌍용차 노동자들이 상하이자동차의 기술 유출 중단을 요구하며 서울 대학로에서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쌍용차 노조는 옥쇄 파업이라는 극단적 투쟁을 하고 있다.

특히 L-프로젝트는 카이런 생산기술뿐 아니라 이에 기반해 설계 변경으로 만들어질 SUV 모델과 부품까지 중국에서 생산·유통할 수 있는 포괄적 계약이다. 쌍용차 디젤엔진의 노하우를 중국이 전부 가져가는 셈이 된다는 것이 노조 쪽 주장이다. 카이런은 쌍용차가 조흥은행 채권단 관리 아래 워크아웃 상태에 있던 시절에 이미 개발됐던 모델이다.

지난해 11월 사장 경질로 시작된 의혹

노조는 특히 상하이차와 쌍용차의 기술연구소 통합, 부품협약 체결을 통해 기술 유출이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의혹을 제기한다. 지난해 5월 쌍용차는 ‘중국 부품업체 2단계 서베이’를 진행해 자동차 부품별로 중국 부품업체에서 자체 생산이 가능한지 미리 타진했다. 쌍용차의 핵심기술이 집약된 수백 장의 카이런 기술부품 도면이 이미 중국에 넘어갔고, 중국의 상하이차 협력 부품공장들이 돌려보고 있다는 것이다. 투기자본감시센터 장화식 집행위원장은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들이 다들 중국에 합작공장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지만 원천기술 도면은 본사에서 갖고 있는데, 쌍용차는 국내 기술부품 도면을 이미 넘겨버렸다. 기술연구소 통합은 기술 유출을 합법화하기 위한 통로였다”고 말했다. 투기자본감시센터 쪽은 상하이자동차가 첫째 자동차 부품 조달선을 중국으로 바꾸고, 둘째 완성차 모델을 가져가고, 셋째 인력을 감축하고, 넷째 회사를 분할해 ‘체어맨’ 등 일부 생산라인만 국내에 남겨놓고 나머지 공장은 팔아넘기고 떠나는 순서로 먹튀가 진행될 공산이 크다고 보고 있다. 쌍용차의 기술 유출을 끝낸 뒤 손 털고 떠날 것이라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쌍용차 쪽은 “카이런 모델은 연구개발비뿐 아니라 생산라인 설비투자비까지 합쳐서 총 2400억원 정도 들었는데, 순수 연구개발비만 따질 경우 ‘라이선스 계약금액이 10분의 1에 불과하다’는 주장은 맞지 않다. 카이런은 지난해 여름에 출시된 모델이지만 대박을 터뜨린 모델도 아니고, 이럴 때 기술에 대한 대가를 받고 라이선스로 넘기는 것도 검토할 수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회사 쪽은 특히 “하루빨리 쌍용차가 거대한 중국시장에 진출해야 한다. 애초에 상하이차와 쌍용차가 50 대 50 합작법인을 중국에 설립하는 방식으로 현지 생산을 추진했지만 지금은 경영 사정상 그럴 형편이 안 되고,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다. L-프로젝트를 통해 일단 중국 시장에 발을 내밀어야 한다”고 말했다.


△ 쌍용차의 기술 유출 의혹은 매각 때부터 터져나왔다. 2004년 10월 서울 신라호텔에서 상하이자동차와 쌍용차 채권단이 인수계약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 김종수 기자)

상하이자동차가 쌍용차를 인수할 당시 합의했던 ‘투자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점 역시 ‘기술 유출’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상하이차가 국내 평택공장의 시설투자는 외면한 채 기술만 빼가려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조는 “합법적 기술 이전이 필요하다면 상하이차가 투자를 먼저 하고 회사가 안정적으로 운영된 뒤에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하이자동차와 쌍용차, 쌍용차노조는 2004년 인수 양해각서(MOU)에서 고용안정, 국내 생산능력 향상, 생산설비 및 판매망 확장을 약속하는 ‘특별협약’을 맺었다. 지난해 5월에는 ‘특별 노사합의서’를 통해 생산규모 확장을 위해 4천여억원을 투자하고, 평택공장 30만 대 생산설비 증설을 위한 중·장기 계획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노조는 “상하이차가 이런 투자 약속을 전혀 이행하지 않고 있다. 일부 시설투자한 것이 있긴 하지만 국내에서 차를 팔아 들어온 내부유보 자금일 뿐 상하이차가 중국에서 추가로 들여와 투자한 자본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쌍용차 쪽은 “쌍용차의 신용으로는 국내 차입이 어렵고, 그래서 투자할 여력이 별로 없는 상태였다. 현재 홍콩상하이은행으로부터 2억달러를 차입해 투자 자금을 만드는 길을 모색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상하이차가 과연 쌍용차를 장기 육성할 의지가 있는가를 둘러싼 의혹은 이미 지난해 11월부터 터져나왔다. 당시 상하이차는 임기가 불과 넉 달 남은 소진관 쌍용차 사장을 전격 경질했는데, ‘실적 부진’을 이유로 내세웠지만 ‘다른 속셈’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기존 쌍용차 경영진을 대표하는 소 전 사장은 투자 약속 이행을 요구하며 번번이 상하이차 쪽과 마찰을 빚어왔고, 상하이차 쪽이 결국 소 사장을 내쫓고 기술 이전을 위한 L-프로젝트를 추진했다는 설명이다.

노조의 대응도 늦었다

사실 쌍용차를 둘러싼 기술 유출 논란은 2004년 매각 당시부터 예견됐던 일이다. 매각 당시 중국의 화학업체인 란싱이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는데 인수 조건도 매우 좋았고, 특히 화학업체라서 란싱은 쌍용차에 투자 정도만 하고 기존 쌍용차 경영진이 독자적 경영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막판에 돌연 란싱의 투자 승인을 내주지 않았고, 대신 상하이자동차그룹이 최종 인수했다. 그래서 당시 “중국 정부가 인수 조건을 떠보기 위한 바람잡이 역할로 란싱을 내세운 것 아니냐”는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중국 자동차산업의 독자 생산능력을 빨리 갖추기 위한 전략상의 필요(경영권 장악을 통한 조기 기술이전)에서 상하이차를 쌍용차 최종 인수자로 내밀었다는 것이다.


△ 상하이자동차 쪽의 카이런 차종 부품도면 요청서와 쌍용차 시설투자 합의서. 수백 장의 카이런 부품도면은 이미 중국에 넘어갔다.

상하이차는 중국의 최대 자동차그룹인데, 중국은 1990년대 이후 자동차산업을 국가 운명을 좌우할 핵심산업으로 정하고 해외 자동차업체들과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있다. 그러나 선진 해외 업체들은 중국에서 구형 모델만 생산하고 기술 이전은 극도로 꺼리고 있다. 독자적인 자동차모델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원천기술이 없는 상태에서 중국은 해외 업체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기술 수준 격차를 극복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산업연구원 조철 연구위원은 “GM 등 중국에 진출한 자동차 메이커들이 중국에 기술연구소를 만들고 있긴 하지만 어느 업체도 모양새만 취할 뿐 원천 핵심기술은 내주지 않고 있다”며 “상하이차가 위기에 빠진 쌍용차를 인수한 것이나 영국의 소형차 업체인 MG로버사를 인수한 건 핵심기술을 이전받으려는 목적이 강하다”고 말했다. 특히 중국 시장은 도로 포장이 잘 안 돼 있기 때문에 카이런 같은 SUV 차량 수요가 매우 크다. 장화식 집행위원장은 “중국은 상하이차를 통해 세계 시장에 메이드 인 차이나 자동차를 싼 가격으로 내놓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데, 쌍용차가 30년간 축적한 기술을 2년 만에 넘겨받으려는 상하이차의 욕심 때문에 쌍용차는 껍데기만 남고 재매각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며 “노조가 결국 파업에 나섰지만, 일은 이미 상당히 진행됐고 대응이 늦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