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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경제인 ] 2003년10월30일 제482호 

두산그룹의 ‘꿩먹고 알먹기’

한국중공업 싼값에 넘겨받아 영토확장에 이용…노동자에겐 고통만 주는 민영화의 폐해

외환위기를 겪기 전 우리나라에서 이뤄진 공기업 민영화는 대부분 재벌의 배를 불려주는 것이었다. 공기업을 인수할 만한 자금력을 가진 곳은 재벌밖에 없었으므로 민영화는 곧 재벌에게 기업을 넘기는 것을 뜻했다. 수익성과 성장성이 뛰어난 공기업을 재벌이 싼값에 인수하는 것은 엄청난 특혜였다. 지난 2000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을 민영화할 때, 재벌에게 회사를 넘겨줘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거세게 일었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당시 신국환 산업자원부 장관은 “일정 규모 이상의 대기업은 참여시키지 않는다는 방침을 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4대 그룹만을 제외한 것이었다. 그 결과 한국중공업은 당시 재계 순위 12위의 두산에 넘어갔다. 그로부터 3년 가까이 흐른 지금 한국중공업의 민영화는 과연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을까?


사진/ 두산 박용만 전략기획본부 사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지난 2000년 12월13일 서울 동대문 두산타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중공업 인수배경 및 자금조달 계획 등에 대해 밝히고 있다.(연합)


인수 자금도 곧바로 회수

과거 공기업을 인수했던 재벌들이 늘 그랬듯이 두산그룹도 한국중공업을 “거저 주웠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지난 2000년 한국중공업은 적자를 내기는 했지만, 연말 순자산이 무려 1조6672억원(주당 순자산 1만6064원)에 이르는 알짜기업이었다. 두산그룹은 이런 회사의 지분 36%를 겨우 3057억원에 샀다. 경영권을 확보하면서도 주당 순자산의 절반 가격에 주식을 인수한 것이다. 이는 주식시장이 침체 국면인 상황에서 정부가 민영화를 강행한 덕을 톡톡히 본 것이다. 정부와 금융권이 한때 공모가를 4만원까지 생각했지만, 실제 매각가격이 주당 8150원에 그친 것이 이를 보여준다. 어쨌든 그해 상반기 자산규모가 2조3935억원에 불과하던 두산그룹은 자산규모 3조5500억원짜리 거대 공기업을 인수함으로써 재계 판도를 크게 바꿔놓았다.

두산그룹에 넘어간 한국중공업의 이후 경영성과는 비교적 좋은 편이다. 2000년 248억원의 적자에서, 2001년에는 251억원의 흑자로 돌아섰고, 2002년에는 773억원의 흑자를 냈다. 올해 상반기에도 426억원의 흑자를 냈다. 그것이 민영화의 효과인지, 외환위기 이후 경제가 정상화되면서 저절로 좋아진 것인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한국중공업은 1998년에도 768억원의 흑자를 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또 두산중공업은 98년 발전설비 사업이 일원화되면서 한국전력에 납품하는 보일러 가격을 1.5~2.7배까지 올리는 등 독점의 혜택을 톡톡히 누리기도 했다. 분명한 것은 정부가 한국중공업을 두산그룹에 넘긴 것이 결코 바람직한 민영화 모델이 못 된다는 점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다른 재벌들에게 ‘공기업 인수가 얼마나 좋은 일인지’를 증명해 보이고 있을 뿐이다.

두산이 한국중공업을 인수한 이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인수하는 데 든 돈을 회수한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두산그룹은 두산중공업으로 하여금 자회사인 두산메카텍에 두 차례 증자를 통해 800억원을 집어넣었다. 이어 두산메카텍에 두산기계를 2595억원에 인수하게 했다. 인수능력이 없던 메카텍은 두산기계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부채를 떠안아야 했다. 결과적으로 두산그룹은 두산중공업을 인수하는 데 든 돈을 두산중공업을 통해 거의 챙길 수 있었다. 특히 두산은 그 과정에서 두산기계에 대한 자산실사를 생략함으로써 수백억원이나 비싼 값에 두산기계를 넘겼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두산그룹의 중공업 인수는 이후에도 활발한 영토확장의 밑바탕이 되고 있다. 이는 타법인 출자현황을 보면 뚜렷하게 나타난다. 2000년 말 현재 두산중공업의 타법인 출자액은 취득원가를 기준으로 1500억원가량이었다. 그런데 지난 6월 말 현재에는 4162억원에 이른다.


사진/ 지난 2001년5월4일 경남 창원 두산중공업에서 열린 새 출발 기념식에서 박용성 회장(왼쪽에서 두 번째)과 윤영석 사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새 로고 조형물 제막식 행사를 하고 있다.(창원/연합)


고려산업개발 인수, 두산중공업 부담

두산그룹은 최근 또 한차례 영토확장에 성공했다. 두산건설과 두산중공업이 참가한 두산건설 컨소시엄이 지난 10월2일 법정관리 중인 고려산업개발 인수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자금줄은 이번에도 두산중공업이다. 두산건설 컨소시엄은 고려산업개발이 제3자 배정방식으로 발행하는 주식 2198억원어치를 인수하기로 했다. 표면적으로 보면 두산건설이 1118억원(59%), 두산중공업이 1080억원(49%)으로 두산건설쪽이 주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두산중공업은 주식 인수와는 별도로 고려산업개발이 발행하는 회사채도 1166억원어치를 인수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총인수자금 3364억원의 3분의 2가 두산중공업에서 나가게 된다.

금융계 관계자들은 두산건설이 내는 1118억원조차 일시적으로만 두산이 부담하는 자금일 뿐, 결국 두산중공업이 모든 인수부담을 지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두산그룹이 고려산업개발을 인수한 뒤 두산건설과 고려산업개발을 합병하는 경우를 가정해보라”고 말했다. 만약 두 기업이 합병할 경우 고려산업개발의 자산은 사실상 두산건설의 것이 된다. 결과적으로 두산건설은 고려산업개발 인수에 거의 아무런 부담을 지지 않은 셈이 된다. 두산 관계자는 “두개의 건설업체를 그대로 운영할 수 있으며, 합병은 아직 구체적으로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관리의 편의를 생각하면 머지않아 합병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공개경쟁 입찰을 통한 인수이기는 하지만, 고려산업개발의 인수도 두산에게는 ‘횡재’의 가능성이 커 보인다. 국내 도급순위 29위인 고려산업개발은 지난 6월 말 현재 주당 순자산이 2만3725원이다. 이에 비해 두산이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주식값은 액면가인 5천원이다. 고려산업개발은 2001년 말 감자와 출자전환으로 구조조정이 마무리돼 올해 상반기에만 393억원의 흑자를 내는 등 실적이 빠른 속도로 호전되고 있다. 두산그룹 전체 계열사의 상반기 순이익이 713억원에 불과했고, 그 중 절반이상을 두산중공업(426억원)이 차지했다는 점에서 고려산업개발은 두산중공업과 더불어 두산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 지난 1월13일 오전 두산중공업 해고 노동자들이 분신 사망한 배달호 노조위원장의 영정을 들고 집회를 하고 있다. 두산그룹이 한국중공업을 인수한 뒤 1200명이 회사를 떠났고 고용감축은 계속되고 있다.(박승화 기자)


공기업을 재벌에 넘겼을 때…

민영화된 두산중공업이 이처럼 두산그룹의 덩치를 키우는 핵심 구실을 하고 있지만, 두산중공업의 노동자들은 민영화로 가장 큰 타격을 입고 있다. 두산은 한국중공업 인수 뒤 1200명가량을 희망퇴직시켰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2001년 이들을 퇴직시키는 데 든 비용(위로금)은 384억원이다. 두산중공업은 올해도 10월31일자로 365명을 추가로 명예퇴직시킬 예정이다. 두산중공업 노조 관계자는 “최근 회사쪽이 조합원들에게까지 희망퇴직 신청을 추가로 받겠다고 공문을 보내, 현재 협의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이로 인한 노사간 갈등도 심각하다. 지난 1월에는 회사쪽으로부터 재산과 월급을 가압류당한 배달호 노조위원장이 노조탄압에 항의하며 분신자살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국중공업의 민영화는 지분을 판 정부에 별 이득을 안겨주지도 못했고, 소비자들에게 제품값을 떨어뜨려주지도 못했다. 또 노동자들에게는 더 많은 일자리와 복지를 제공하기는커녕 실업의 고통만 안겨주었다. 민영화의 수혜자는 오직 그것을 인수한 두산그룹의 대주주들뿐이다. 인수에 든 자금은 즉시 회수했고, 두산중공업의 대규모 자산을 활용해 영토확장의 기회를 확보했다. 공기업을 재벌에 넘겼을 때 생기는 문제점은 인수한 재벌이 4대 그룹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특별히 달라질 것이 없었던 셈이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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