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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경제인 ] 2001년10월24일 제381호 

민영화, 그 거대한 부실

특혜와 편법으로 얼룩진 공기업 매각… 정부 독단에 알짜 공기업도 복마전으로 전락


사진/ 공기업 민영화의 부작용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한국전력기술 노조원들이 무분별한 민영화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박승화 기자)


영국의 패딩턴 기차역은 사고 다발지역으로 악명이 높다. 사고 때마다 원인은 같다. 철로 시설을 운영하는 회사와 차량 운영회사 사이에 제어시스템이 서로 맞지 않아서이다. 예를 들면 한쪽에서는 기계로 신호를 보내는 반면에 한쪽은 아직도 사람 손짓 신호만 볼 줄 아는 꼴이다. 영국 국민들이 이용하는 대중교통인 만큼 정부가 나서서 제어시스템을 맞추도록 해야 할 터인데, 사고가 다반사로 나도 그게 그리 간단하지 않다. 철도 민영화의 결과이다. 사고를 일으킨 민간 철도회사에 영국 언론들이 “왜 제어시스템을 고치지 않아 또다시 인명피해를 내느냐”고 추궁을 하면 대답은 간단하다. “제어시스템을 고치는 비용보다 보험으로 사고피해를 보상해주는 게 더 경제적으로 낫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기업이 이익을 내겠다는데 어쩌겠나.

민영화 실험 중단하는 영국 철도의 사례

아주 극단적인 사례이지만, 공기업 민영화의 심각한 부작용 가운데 하나이다. 실제로 영국은 민영화 이후 철도서비스가 유럽에서 가장 형편없는 곳으로 전락했다. 그래서 승객들도 크게 줄고, 철도회사들의 수지도 떨어지고, 또 시설과 서비스는 더 떨어지는 악순환에 빠졌다. 급기야 지난 10월15일 영국 정부는 5년 동안 이뤄진 철도 민영화 실험을 중단하고 다시 공기업화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스티븐 바이어스 영국 교통장관은 이날 하원에서 “그동안 철도운영업체들이 어려울 때마다 수억파운드씩 공적자금을 지원했으나 밑빠진 독에 물붓기였다”면서 운영주체를 비영리법인으로 전환한 뒤 정부가 직접 통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지금 우리 정부는 영국의 철도 민영화를 모범으로 삼고 철도 민영화 관련 법안을 올해 안에 국회에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철도수송사업의 경쟁여건을 갖추기 위해 영국처럼, 시설과 운영부문을 분리해 민영화할 방침이다. 현재 철도(고속철도 포함)의 과도한 부채를 그대로 뒀을 때에는 분할된 운영부문을 인수할 사업자가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수조원 부채는 정부가 떠안고, 업체들에 적정 투자수익률을 보장해주는 조건으로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철도 민영화가 시작된다. 영국이 5년 동안의 실패한 실험을 접은 순간, 우리는 정권 말기에 들어서 과감하게 추진하는 것이다.

공기업 민영화는 김대중 정부가 추진하는 4대 부문 개혁과제의 하나이다. 김대중 정부의 많은 다른 정책과제들이 그렇듯이,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에 따른 요청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민영화는 ‘IMF 모범생’이라는 말을 듣기에 충분하게 과감하고도 대대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민영화를 추진해온 다른 어떤 나라보다, 과거 어느 정권보다 민영화 속도가 빠르고 광범위하다. 지난 98년 7월 기획예산처가 확정한 공기업 민영화 계획에 따라 지난해까지 포항제철 등 6개 공기업과 그 자회사 20개가 민영화 또는 통폐합·정리되었으며, 지난해 10월 확정된 2차 민영화계획도 밀어붙이기식으로 강행되고 있다. 특히 2차 민영화 대상에는 전력(한국전력), 통신(한국통신), 가스(한국가스공사) 등 기간산업에 속하는 공기업 5개와 자회사 36개가 포함되어 있다. 김대중 정부는 여기에다 철도까지 민영화 대상에 포함시켜, 만약 일정대로 추진한다면 훗날 ‘기간산업을 모두 민영화시킨 정권’으로 평가받게 됐다.

공기업 및 공기업 자회사 민영화 추진 현황
공기업 공기업 자회사
(민영화 또는 통폐합)
민영화 완료   한국중공업, 국정교과서,
  대한송유관, 포항제철,
  한국종합화학, 종합기술금융
  한국통신카드(한국통신)
  한국가스해운(가스공사)
  한양(주택공사) 등 20개
민영화 진행중  한국통신, 한국전력
  담배공사, 지역난방공사
  한국가스공사
  노량진수산시장, 한국전력기술,
  한전기공, 한국냉장,
  고속도로관리공단,
  한국인삼공사 등 36개

충분한 합의 없이 무리하게 진행


사진/ 장재식 산자부 장관이 국회 산자위 국정감사에서 민영화에 관한 질의를 듣고 있다.(박승화 기자)


민영화의 목적은 태생적으로 독점체제여서 비효율과 부실을 낳고 있는 공기업에 시장경쟁원리를 도입하여 효율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공기업이 이익을 내고 좋아지면 그만큼 소비자인 국민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간다는 논리도 덧붙는다.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공공성도 향상된다는 얘기이다. 국민 세금을 기반으로 컸고, 또 직·간접적으로 국민 모두를 대상으로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하는 공기업은 경영의 효율성을 높여야 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민영화가 곧 효율성을 높인다는 보장이 없을뿐더러, 민영화한 다음에 효율성이 높아지더라도 공익성 제고로 이어진다는 것은 더욱 현실과 거리가 멀다. 공기업이 민간기업으로 전환해 잘 나가는 사례도 있지만, 대우에 넘어간 조선공사(대우조선)나 거평그룹의 대한중석과 새한종금, 현대에 넘어간 옛 국민투신(현대투신의 전신) 등 민영화 뒤 경영실패로 국민들에게 막대한 부담을 안긴 사례도 부지기수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위험이 뒤따르는 실험을 이해 당자자들이나 전문가들끼리 충분한 합의도 없이, 또 민영화에 따른 충격에 대한 완충장치도 제대로 마련하지 않고 추진한다는 데 있다. 민주노총 정책실의 오건호 박사는 “애초 계획을 잡을 때부터 정부는 노사정 공공부문특위의 합의사항조차 무시하고 민영화 일정을 독단적으로 확정했다”며 “그 다음에는 이런 무리한 일정에 맞추기 위해 국민 재산을 헐값에, 또 공익성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민영화가 추진되고 있다”고 말했다. 가령 거대 공기업 한전과 한국통신의 경우 해외에서 외국인들에게 발행한 주식예탁증서(DR)에 대해서는 정부 보유주식보다 3%포인트 더 높은 이익배당을 주고 있다. 민영화 일정에 구속된 나머지 외국자본에 특혜적 이익을 보장해주고서 주식을 처분한 결과이다.

국내 재벌에 공기업을 넘긴 경우에도 절차상의 문제로 특혜시비가 일거나 민영화 뒤의 부작용이 곧바로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민영화 이후 최소한 공공성 유지방안도 마련하지 않고 ‘일정에 맞춘 매각’에 얽매인 탓에 뒤늦게 매각가격의 헐값시비(두산의 한국중공업 인수 등)가 벌어지는가 하면, 안양·부천의 지역난방 및 열병합발전소를 인수한 LG파워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매각시 높은 투자수익률 보장으로 발목이 잡혀 민영화 다음에도 정부가 국민세금을 지원해주고 있는 실정이다.

2단계 민영화 과정에서는 정부의 또다른 개혁과제인 재벌개혁의 원칙을 저버리는 일도 있다. 안양·평촌 지역난방을 인수한 LG파워의 경우 총인수대금 7700억원 가운데 자기자본은 782억원이고 나머지 대부분은 12년짜리 회사채발행을 통해 조달했다. 물론 그 회사채는 정부가 대주주로 있는 국내 금융기관들이 대부분 인수해줬다. 한편으로는 재벌에 부채비율 200%를 맞추라고 요구하고, 공기업을 매각하면서는 처음부터 부채비율이 600%가 넘는 것을 눈감아 준 셈이다.

또 지난해 연말 한국중공업을 인수한 두산의 경우, 타법인 출자총액제한에 걸리게 되자 뒤늦게 정부가 ‘구조조정을 위한 타법인 출자는 예외로 인정해준다’는 것을 뼈대로 공정거래법을 고쳐 문어발 확장에 대해 사면을 받게 해줬다. 이렇게 되자 두산은 주력업종을 아예 중공업으로 바꿔 발전설비 기기를 제작하는 두산중공업뿐만 아니라 발전설계회사인 한전기술, 유지·관리회사인 한전기공의 인수에까지 나섰다. 이를 위해 지난 7월 OB맥주 보유지분 45%를 네덜란드의 ‘홉스’라는 투자회사에 5600억원에 팔아 핵심업종을 바꾸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아직도 공정위에는 OB맥주가 두산그룹 계열사로 신고되어 있다. 이 때문에 금융계에서는 네덜란드 투자회사와 일정기간이 지난 다음에는 지분을 다시 되산다는 이면계약이 있지 않느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만약 그렇다면 두산은 맥주사업을 버린 게 아니라 OB맥주 지분을 담보로 해외자금을 잠시 빌린 게 된다.

헐값 매각에 특혜 남발해 효용성 잃어


사진/ 알짜 공기업을 민간자본에 넘기면 특혜의혹을 떨치기 힘들다. 민영화 뒤 헐값 매각 논란이 벌어진 두산중공업의 발전설비 제작 모습.


최근 국회 산업자원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안영근 의원은 한전 자회사인 한전기술의 ‘입찰용 기밀매각 설명서’를 공개했다. 한전이 두산, 효성, 대림산업, 한진중공업 등 한전기술 입찰희망업체에 비공개 조건으로 전달한 이 기밀문서에는 “한전기술은 국내 유일의 원자력설계회사이고 정부는 이 회사가 개발한 한국 표준형 원전을 선호하고 있다”며 “늘어나는 전력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는 2015년까지 12기의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는 한전기술의 중기 수입기반을 탄탄하게 해준다”고 되어 있다. “기술이 복잡하고 경쟁상대가 없어 한전기술의 안정적 수익성은 보장돼 있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즉 한전기술을 사가면 적어도 10년 이상은 원자력 설계용역사업의 독점이 보장된다는 얘기이다.

이는 정부의 민영화 취지에 전혀 맞지 않는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하면서 버젓이 ‘알짜 공기업의 민간독점화’를 추진하는 것이다. 정부는 민영화 대상을 결정할 때 크게 세 가지 기준을 뒀다. 공공적 설립목적 부합 여부, 경영상태의 부실, 마지막으로 시장경쟁 원리를 통한 기업의 효율성 제고이다. 이 가운데 경쟁여건이 갖춰져 있느냐 아니냐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한전기술은 정부가 오랫동안 원자력 중심의 전력공급정책을 펴오면서 원자력발전소 건설 및 유지관리의 핵심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이다. 이 회사가 보유한 한국표준형 원전기술은 지난 20여년 동안 국가재정 4천억원을 투입하고 이 회사 자체 이익의 8∼12%를 해마다 연구개발에 투자해 얻은 성과이다. 이 회사의 기술은 1700여 인력들의 몸과 머리에 밴 자부심이고, 소중한 국민 재산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에 대한 소유권이 재벌에 넘어가 독점화하면 공익성만 해치는 결과를 초래한다. 재벌독점은 공공독점보다 더 최악이다.

DJ식 공기업 민영화, 심판대 오른다


사진/ 한전기술 민영화 과정에서 입찰희망업체에 비공개로 전달된 입찰용 기밀매각 설명서.


국민 재산을 인수능력이 있다고 해서 국내외 민간독점에 특혜적으로 넘기는 것은 개혁이 아니라 야합행위가 될 수도 있다. 뚜렷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절차를 마무리한 공기업 민영화, 현재 진행중인 민영화 과정에서 온갖 특혜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요즘 학계에서는 “김대중 정부가 위기를 맞은 시스템 공백상태의 구체제를 개혁하고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라잡기 위한 구조조정 실험을 해왔으나 지금은 구체제와 글로벌 스탠더드의 악조합(惡組合)을 선택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공기업 민영화가 딱 그 꼴이다. 안영근 의원은 “온갖 특혜의혹과 편법을 낳으며 무리하게 짜맞추기식 정책을 강행해 결국 소비자인 국민들에게 요금인상만 부담시키는 게 DJ식 공기업 민영화”라고 비판했다. 아무래도 이 정권이 끝난 다음에는 공기업 민영화를 놓고 또 한번 크게 푸닥거리를 해야 할 모양이다.

박순빈 기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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