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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점 ] 2000년09월06일 제325호 

[초점] 태풍의 눈, 불법대출 괴담

외압설에 휘말린 박지원 장관, 의혹은 의혹을 낳고… 섣불리 얼버무리면 상처만 커진다


(9월1일 민주노동당이 청와대 앞에서 한빛은행의 권력형 부정대출비리규탄대회를 열고 있다)


한빛은행 거액 불법대출 의혹 사건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의혹의 핵심적인 대목은 두 가지. 최대 이슈는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의 개입 여부다. 당시 청와대 공보수석이었던 박 장관이 한빛은행 불법대출에 청탁 및 압력 등으로 개입을 했는지, 또 신용보증기금 영동지점장에게 보증외압을 가했느냐는 여부이다. 또다른 의혹은 한빛은행 불법대출금 580억원이 구체적으로 어디에, 어떻게 쓰였냐이다.

사직동팀이 조사에 착수한 이유는?

지금까지 그 어느 하나도 속시원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되레 사건 관련자들의 엇갈린 주장만 난무하며 의혹의 연기만 짙게 피어나고 있다. 이 때문에 이 사건은 벌써부터 각종 근거없는 괴담을 낳으며 제2의 옷로비사건 양상을 띠고 있다.

이에 따라 함께하는 시민행동, 정치개혁시민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특검제 등을 통해 박 장관에 대한 직접 수사를 촉구하고 있고, 야당 등 정치권도 박 장관 개입 여부를 둘러싸고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등 일대 공방을 벌이고 있다. 청와대는 아직 아무런 말이 없다. 도무지 일반인들로선 종잡을 수 없이 흐르고 있는 한빛은행 불법대출 의혹사건. 사건의 열쇠는 도주중인 이운영(52) 신용보증기금 전 영동지점장이 상당수 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현재 서울지검 동부지청에 5개조의 수사반을 편성하고 서울지검에도 검거전담반을 편성해 이씨 체포에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씨가 잡힌다고 해서 의혹이 완전 풀린다고 단정하긴 어렵다. 특히 박지원 장관의 보증외압 여부는 더욱 그렇다. 양쪽의 거친 주장만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과연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나. 이번 사건의 최대 키포인트는 바로 이 점이다. 만약 박 장관의 개입이 사실무근으로 밝혀진다면, 사건은 한빛은행 관악지점장 신창섭(47·구속)씨와 아크월드사 박혜룡(47·구속)씨가 공모한 단순한 대출사기극으로 종결처리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김대중 정부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가하는 핵폭탄이 될 수밖에 없다.

이를 살피기 위해서는 먼저 이씨의 행적과 관련한 여러 사실의 전개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99년 4월 어느 날, 경찰청 조사과(일명 사직동팀)에 하나의 첩보가 전해졌다. 첩보는 조사과 수사관 A씨의 후배 B씨한테서였다. 내용은 “신용보증기금 영동지점장(이운영)이 보증 과정에서 상당한 리베이트를 받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B씨는 두 사람을 건너 건너 알게 된 첩보라고 했다. 따지자면 제보자가 3명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이 첩보는 청와대 하명사건을 주로 조사하는 사직동팀으로서는 한마디로 “영양가 없는 건”이었다. 신용보증기금이 비록 정부출연기관이라고 하나 이사장급도 아닌 일개 지점장급에 대한 첩보는 사직동팀으로서는 자잘한 사건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 ‘자잘한’ 사건에 대해 어떤 이유에서였던지 사직동팀은 조사에 착수했다. 이 점이 첫 번째 의문부호이다.

이 지점장 리베이트 수사는 보복인가


(사진/이운영(오른쪽)전 신용보증기금 영동지점장은 수배중 기자회견을 열어 “박지원 장관이 직접 전화를 걸어와 지급보증을 하라고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여하튼 그뒤 지난해 4월22일 신용보증기금 영동지점에 경찰청 조사과에서 나왔다고 밝힌 3명의 수사관이 이운영 지점장을 찾았다. 수사관들은 이날 총 11시간에 걸쳐 조사했다. 조사 내용은 “신용보증기금이 대출보증을 설 때 리베이트를 받았는지, 그렇다면 얼마를 받았는지, 또 차명등기한 부동산을 소유했는지” 등이었다. 물론 “그런 일이 없다”는 게 이씨의 답변이었다. 사직동팀 조사는 영동지점 직원 및 이씨 주변인물에 대한 조사로 이어졌다.

당시 사직동팀 수사관계자는 “조사결과 이씨가 신용보증을 서는 과정에서 5개 업체로부터 보증액의 1%대의 리베이트를 받아 대략 1천여만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세간의 의혹의 하나인 조사배경에 대해서는 “첩보가 들어온 이상 일단 살펴보는 게 당연한 게 아니냐”고 말했다. 즉 아크월드 박혜룡 사장이 요청한 대출보증에 대해 거절한 것에 대한 보복이란 이씨의 주장과 달리 사직동팀은 단순 첩보파악 수준의 조사였다는 설명이다. 수사관계자는 “사정이 이런데도 엉뚱하게 오비이락격으로 한빛은행 대출압력 의혹과 관련 보복수사설 등에 휘말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여하튼, 사직동팀의 조사가 있은 뒤인 4월30일 이운영씨는 부인 편으로 영동지점으로 사표를 보냈다. 이씨는 이어 사표제출 52일만인 지난해 6월22일, 서울지검 동부지청의 정식수사 대상이 됐다. 그해 7월6일 이씨는 수배대상에 오르면서 출국금지조처를 당해다.

수배중이던 이운영씨는 올해 3월 장문의 탄원서를 청와대에 보내 자신의 억울함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씨는 탄원서에서 “업무와 관련해 부정한 행위를 하거나 고객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은 사실은 추호도 없다”고 사직동팀의 조사결과를 전면 부인했다. 나아가 이씨는 자신이 조사를 받게 된 데는 “아크월드의 박혜룡 사장과 그의 친동생인 박현룡(전 청와대 행정관), 그리고 박사장과 경북고 동기동창인 김아무개 신용보증기금 영동지점 차장이 저를 음해하고자 허위사실을 제보해 표적사정으로 몰아가려는 데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씨는 또 이 탄원서에서 “이들 두 형제가 박지원 장관의 힘을 이용해 위협적인 보증압력을 행사했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더욱이 8월31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박 장관이 직접 전화를 걸어와 아크월드사에 지급보증을 해라고 요구했다”고 주장해 박 장관 개입을 처음으로 공개 언급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에 대해 박 장관은 9월1일 기자들에게 “일개 지점장에게 내가 왜 전화를 하나? 설사 내가 부탁할 일이 있었다고 해도 평소 잘 아는 최수병 이사장에게 하지 왜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했겠냐”며 이씨 주장을 일축했다.

누구의 말이 맞는가. 이와 관련해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이씨와 박씨 양쪽의 의견이 크게 엇갈리는 만큼 사직동팀의 조사배경에 대한 검찰 조사가 철저히 이뤄진다면 어느 정도 가닥을 잡을 수 있지 않겠냐”면서 “이 조사결과가 박 장관의 외압의혹에 대한 주요한 열쇠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즉 사직동팀의 조사배경이 순전히 제보에 따른 것인지, 대출보증을 거절한 이씨에 대한 박씨 형제의 보복연출극에 따른 것인지를 가릴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행방 묘연한 불법대출금

한빛은행 불법대출 사건을 주도한 아크월드(주) 대표 박혜룡(47·구속)씨는 과연 수백억원에 이르는 불법대출금을 어디에 사용했을까. 이것이 수많은 괴담을 낳게 하는 두 번째 의혹이다. 한빛은행이 자체 조사를 통해 밝힌 관악지점의 불법대출금은 총 580억원. 그 중에서 사실상 아크월드로 흘러간 불법대출금은 지금까지 확인된 것만 287억원이다. 이런 엄청난 액수인데도 검찰은 아직까지 박씨의 대출금 사용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검찰 관계자는 “아크월드의 장부를 확인해보니 대부분 사업자금으로 사용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대출금 사용처가 누락된 것이 많아 자금추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다보니 아크월드로 들어간 대출금 가운데 상당액수가 회계장부에 누락돼 있어 이 중 많은 액수가 정·관계 고위인사쪽으로 흘러들어갔을지 모른다는 설도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구속중인 신창섭 한빛은행 관악지점장이 9월3일 검찰조사과정에서 이수길(55) 부행장이 “세 차례 전화해 아크월드사를 도와주라”고 말했다고 진술해 이 부행장이 새로운 의혹의 인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서울지검 조사부가 올 3∼5월 박 장관이 이 부행장에게 3차례 전화를 건 사실을 새로 확인해 박 장관의 한빛은행 불법대출 개입 여부와 관련해 이 부행장과 박 장관의 전화내용이 주목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부행장은 “첫 번째는 영자신문 사장 교체설에 대한 문의전화였고, 나머지 두번은 우리 은행 자회사 직원과 거래업체 사외이사에 대한 인사청탁 전화였다”고 말해 대출과는 전혀 무관한 전화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인사청탁을 맘대로 할 수 있는 사이라면 대출 청탁도 마찬가지로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닌가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설사 이 부행장의 해명이 맞다고 하더라도 청와대 공보수석이 은행 부행장에게 인사청탁을 했다는 사실 자체도 썩 유쾌하지 않은 대목이다.

9월4일 현재 검찰은 전 관악지점장 신창섭씨가 고위인사와의 친분을 과시하는 아크월드사 대표 박혜룡씨와 공모해 벌인 대출사기극으로 사실상 잠정결론 짓고 곧 중간수사를 발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검찰의 이같은 결론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에 대한 세간의 의혹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신씨가 과연 혼자서 무려 500억원에 이르는 불법대출을 감행할 수 있느냐는 대목과 범행동기, 사용처 등도 여전히 불분명하고 사직동의 조사배경에 대한 의혹 등 갖은 의혹이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대충 얼버무리며 국민의 눈과 귀를 막으려 하다간 더 큰 낭패를 볼 수 있다는 건 지난해 온통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옷로비사건에서 이미 확인된 바 있다.




이창곤 기자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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