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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특집 > 특집1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8년08월11일 제7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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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역모의 과거는 뉴라이트의 미래

정확히 8년 차를 두고 출범한 한·일 우익단체의 놀랄 만한 유사성… ‘뉴라이트식 현대사’ 기반 다지기 시작되는가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 도쿄=황자혜 전문위원 jahyeh@hanmail.net

역사는 기억이다. 기억은 때로 정치적이다. ‘기억의 정치학’은 역사에 기반하지만, 그 역사는 치열한 논쟁을 피할 수 없다. 이유는 분명하다.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고, 또 평가하느냐에 따라 오늘의 ‘세’와 ‘편’이 갈리기 때문이다.

지난 1997년 1월30일 일본 우익단체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쓰쿠루카이)은 창립총회에서 “우리는 21세기에 태어난 아이들을 위해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들어, 역사교육을 근본적으로 재정립하기로 결의했다”고 선언했다. 새역모의 창립선언문은 이렇게 이어진다.


△ 지난 5월22일 오전 ‘건국 6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제1차 회의가 청와대에서 열렸다. ‘건국사관’은 뉴라이트식 역사 만들기가 본격화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세계 유일이 아니라 ‘세계 유이’?

“…세계 어떤 나라나 각기 고유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고유한 역사가 있다. 우리의 전통을 살려 서구 문명과 조화의 길을 찾아내고, 근대국가 건설과 독립 유지를 위해 노력했다. 그것은 제국과의 긴장과 마찰을 불러오는 엄중한 역사이기도 했다. 우리 부모들, 그리고 조상들의 이런 한결같은 노력으로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풍요로운 오늘의 우리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전후의 역사 교과서는 우리가 계승해야 할 문화와 전통을 잊고, 우리의 자랑을 잃어버리게 했다. …특히 근현대사는 우리를 자자손손 계속해서 사죄해야 할 운명을 타고난 죄인처럼 취급하고 있다. …세계에 이런 역사교육을 하는 나라는 없다.”

새역모의 ‘주장’이 적어도 한 가지 점에선 틀린 게 확실하다. 세계에 이런 ‘자학사관’에 바탕해 역사교육을 행하는 나라가 또 있다는 주장이 나왔기 때문이다. 바로 우리나라다. 지난 2005년 1월25일 뉴라이트 계열의 교과서포럼은 창립선언문에서 “우리의 미래 세대는 중·고등학교에서 교과서와 참고서를 통하여 대한민국이 잘못 태어났고 성장에 장애를 겪고 있는 국가라고 배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교과서포럼의 창립선언문을 마저 훑어보자.

“기존의 역사해석은 자기 비판·학대”

“…우리는 운명을 선택할 수는 없었지만, 운명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선택할 수 있었다. 분단과 전쟁, 빈곤이라는 가혹한 운명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며 치열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어떤 기준으로 가늠해보아도 대한민국은 ‘미션 임파서블’을 이루어내었다고 자부할 수 있다. 평화적으로 민주화를 이룩하고 가난을 가난이 아닌 것으로 바꾸며 세계 제12대 무역대국으로 성장한 것도 ‘사실’이고 ‘리얼리즘’이다.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역사 교과서를 비롯하여 각종 교과서들을 보면 응당 있어야 할 것이 빠져 있다. 나라를 세우고 지키며 가꾸기 위해 최선을 다한 우리의 모습,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피와 땀을 흘린 우리의 자화상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독재와 억압, 자본주의의 참담한 모순만이 있을 뿐이다. 대한민국의 미래 세대는 언제까지 주홍글씨가 쓰여진 옷을 입고 다녀야 할 것인가.”

일본과 한국에서, 꼭 8년의 시차를 두고 각기 출범한 새역모와 교과서포럼에서 묘한 유사성이 발견된다. 기존의 역사해석은 ‘자기 비판’ 또는 ‘자기 학대’로 여겨진다. 잘못된 역사 교과서 때문에 21세기에 태어난 아이들은 ‘자자손손 사죄해야 할 운명을 타고난 죄인’ 취급을 당하고, 미래 세대는 ‘주홍글씨가 쓰여진 옷을 입고 다녀야’ 한다는 인식이다. 이들에게 과거는 ‘영광’으로 기억된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풍요로운 오늘’의 기반이자, ‘평화적으로 민주화를 이룩하고 세계 제12대 무역대국으로 성장’한 터전이다. 이 때문일까? 후지오카 노부카쓰(65) 새역모 회장은 지난 7월18일 <한겨레21>과 만난 자리에서 “한국의 뉴라이트는 우리(새역모)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며 “만나 좌담회를 열면 ‘그림’이 될 것 같은데, 한국의 미디어가 한번 추진해보면 어떻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제안이다.

이신철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는 새역모와 뉴라이트의 유사성을 이렇게 지적한다. “새역모가 일제의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을 ‘자학사관’이라 매도하는 것처럼, 뉴라이트는 분단정부 수립과 군사독재에 대한 비판에 ‘대한민국은 잘못 태어난 국가냐?’고 따진다.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의 역할을 부각시키는 것과 매한가지다. 종군위안부를 바라보는 시각도 ‘상업적 이유에서 자발적으로 한 일’이라는 일본 쪽 주장을 뉴라이트는 그대로 가져왔다.”

‘반공·반북’의 그림자도 겹쳐진다. 새역모는 ‘자학사관’을 ‘코민테른(옛 소련이 주도한 국제공산주의 운동·제3인터내셔널) 사관’이라고도 부른다. 뉴라이트는 ‘분단사관’을 ‘통일 지상주의 사관’이자, ‘정체성이 모호한 사관’이라 비판한다. 남한 단독정부 수립 과정에 친일파의 득세가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건, ‘북한이 더 정통성 있는 정권이란 역사적 편견을 주입하는 것’이라 매도한다. 이는 곧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자학사관’에 대한 비판으로 연결된다. 심지어 참여정부 시절 만들어진 과거사 청산 관련 법들까지 한총련을 포함한 친북좌파가 만들어낸 법이라 주장한다. <산케이신문>을 포함한 일본 우익과 완벽히 일치하는 견해다.

“참람한 자들로부터 건국사를 지키자”

그러니 역사의 기억을 바꾸려는 시도는 정치적이다. 역사를 기념하려는 것도 마찬가지다. 1945년 8월15일을 광복절로 기념하는 것과 1948년 8월15일을 ‘건국절’로 만들려는 노력 사이엔, 그래서 치열한 현실의 투쟁이 도사리고 있다. 뉴라이트 진영에서 ‘건국절’ 논란의 불씨를 지핀 건 이영훈 교과서포럼 공동대표(서울대 교수·경제사)다. 그는 지난 2006년 7월31일 <동아일보>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정부가 편찬한 중·고등학교 역사책을 보면 ‘대한민국의 건국’이란 표현이 아예 없다. 대한민국의 건국은 민족의 통일 염원에도 불구하고 강행된 ‘남한만의 단독정부의 수립’이라는 불행한 사건으로 치부되어 있을 뿐이다. …1945년 8월의 광복에 나는 그리 흥분하지 않는다. 당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그 감격이야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그렇지만 후대에 태어난 사람의 입장이 반드시 같을 수는 없다. …내가 통설적인 의미의 광복절에 별로 신명이 나지 않은 또 한 가지 이유는 일제에 의해 병탄되기 이전에 이 땅에 마치 광명한 빛과도 같은 문명이 있었던 것처럼 그 말이 착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듣기엔 그럴듯하지만 그것은 역사적 진실이 아니다. 대다수의 민초에게 조선왕조는 행복을 약속하는 문명이 아니었다.”

이어 그는 “진정한 의미의 빛은 1948년 8월15일의 건국 그날에 찾아왔다”며 “우리도 그날에 국민 모두가 춤추고 노래하는 건국절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딴은 맞는 말이다. 다만 뒤따라 나오는 문장이 ‘건국절’의 현재적 의미를 새삼 도드라지게 해준다. “누가 이 나라를 잘못 세워진 나라라고 하는가. 누가 이 자랑스러운 건국사를 분열주의자들의 책동이었다고 하는가. 그런 망령된 소릴랑 훠이훠이 밤하늘로 물리치자. 그런 참람한 자들이 다시는 활개치지 못하도록 한목소리로 외치자.” 건국절 논란은 ‘참람한 자들’로부터 ‘자랑스러운 건국사’를 지키기 위한 ‘정치투쟁’인 게다.

“가장 중요한 점은 이른바 ‘국민국가’를 새롭게 재건하겠다는 게다. 국민국가는 언제 만들어졌나? 뉴라이트는 1948년 8월15일 건국됐다고 한다. 그럼 근대국가의 토대인 근대적 의미의 ‘국민’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나? 일제 식민지배 시절의 ‘학습’을 통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근대국가의 체계, 즉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장 기본적인 룰을 학습하고, 식민지 치하이긴 했지만 민법을 포함한 근대적 법제도를 경험하면서 나름대로 근대화 과정을 거쳤다는 게다. 이게 바로 식민지 근대화론이다. 그 시기에 근대 국민국가의 주체인 국민이 형성됐고, 그들에 의해 그 완성태로서 대한민국이 건국됐다는 논리다.”

통일이 되면 어떻게 ‘건국’을 이야기하나

하종문 한신대 교수(일본학)는 최근 뉴라이트 진영이 군불을 때고 있는 ‘건국절’ 논란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왜 이런 주장을 할까? 뉴라이트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사상 처음인 온전한 자주 국민국가 건설’이라고 강조한다. 이는 일제 치하 독립운동은 물론 조선과 연결되는 한반도 역사의 연속성을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을 절대 가치로 상정했으니, 통일의 방식은 당연히 흡수통일뿐이다. 통일국가가 되면 다시 어떻게 ‘건국’을 얘기할 것인가? 하 교수는 “(뉴라이트가 말하는 ‘건국사관’은) 독립운동과 해방의 의미를 부정하고, 한민족의 통일과 민족의 미래를 부인하는 시대착오적 단절사관”이라며 “그럼에도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박정희를 국민국가를 온전히 자리매김한 지도자로 평가하기 위해서라도 ‘건국’의 의미를 부각시킬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현대사 전반의 기억을 ‘뉴라이트식’으로 바꾸기 위한 기반 다지기가 본격 시작된 셈이다.


이시야마 일본 역교협 위원장

“지금 아시아의 큰 흐름은 평화 지향”

▣ 황자혜 전문위원 jahyeh@hanmail.net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 이시야마 일본 역교협 위원장

“역사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가기 위한 출발점이다. 한국에서 식민지배를 긍정하거나 식민지 근대화론을 동원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해선 안 된다.”

이시야마 히사오(72) 역사교육자협의회(역교협) 위원장은 역사교육 바로 세우기 작업에 매달려온 일본의 대표적 원로다. 그는 53살 되던 해인 1987년 교직에서 물러난 이후 근 20년 동안 역교협 활동에 전력을 다해왔다. 8월8일 오후 한국을 찾은 이시야마 위원장을 서울 화양동 건국대에서 만났다.

한국의 뉴라이트에 대해 알고 있나.

=자세히 알고 있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그들 주장의 핵심은 알고 있다. 일제의 식민통치가 한국의 근대화를 진전시켰다는 주장을 하는 것으로 안다. 한국의 뉴라이트는 일본의 식민지배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고, 그런 관점을 확산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단체 이름에 ‘뉴’자를 붙여 마치 새로운 사고인 양 말하는 것도 문제다.

일본의 새역모처럼 한국의 뉴라이트도 교과서포럼이란 단체를 통해 새 역사 교과서를 펴냈다.

=교과서를 직접 보지는 못했다. 새역모의 기관지라 할 <후미> 7월호에 한국 뉴라이트를 분석한 보고서가 실려서 읽어보기는 했다. 이번에 방한한 것은 전국역사교사모임 2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서지만, 한국의 뉴라이트가 펴낸 새 교과서 관련 자료를 모으고 토론도 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최근 10여 년 동안 교과서 왜곡을 비롯해 일본 극우진영의 논리가 일본 사회에 퍼진 느낌인데.

=우익세력이 힘을 키워왔고, 그 결과 교과서 검정을 통해 내용을 왜곡했다. 식민지 지배, 조선인 강제연행,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한 역사적 기술을 하지 않게 된 것이 최악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일본 사회가 전체적으로 우경화되고 있는 결과이기도 하다. 자위대 해외파병은 물론 결국 최후의 보루인 평화헌법 개악 움직임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본 우익의 지난 궤적이 한국 뉴라이트의 미래일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지금 아시아의 큰 흐름은 평화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역사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미래를 열어나가기 위한 출발점이다. ‘자유주의사관연구회’는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그로 인해 아시아에서 반평화 분위기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식민지 경험을 뼈저리게 했던 한국에서 식민지 지배를 긍정한다거나 식민지 근대화론을 동원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해선 안 된다.

새역모의 후지오카 회장은 지난 7월 <한겨레21>과 한 인터뷰에서 한국의 뉴라이트와 좌담회를 열어보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그들(새역모와 뉴라이트)은 분명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조선의 근대화를 촉진시켰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 얘기할 것이다. 그러나 식민지 근대화론이 식민지배의 폐해를 덮을 수는 없다. 식민지배는 인권유린과 강압통치가 가장 큰 특징이자 핵심이다. 근대화에 보탬이 된 측면이 있다고 해서, 식민지화 과정과 식민지배 시절 저지른 범죄행위를 지울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