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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특집 > 특집1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8년08월07일 제7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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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장기 보수화는 없다

복지제도 등 안전판 없는 한국에서 신자유주의는 곧 중산층 사회 해체, 끊임없는 저항 불러

▣ 박노자 오슬로 국립대 교수·한국학

기적이라고나 할까? 불과 반년 전에 대한민국의 극우 진영은 승리의 기쁨으로 넘쳤다. 참여정부 말기에 ‘진보’를 자칭한 자유주의 좌파 집권당의 실정에 실망한 ‘88만원 세대’의 보수화, ‘386세대’의 분열, 자영업자 등 서민의 경제위기 인식 등에 힘입어 이명박 후보가 민주화 이후 전례가 없는 48.7%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되지 않았던가? 온갖 스캔들, 끝이 보이지 않는 의혹, “마사지 걸은 얼굴이 예쁘지 않아야 잘해준다” 등 믿기지 않을 정도의 저질 발언, 불교계의 반발을 사온 종교 편향 등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이 계속 고공 행진을 하는 것을 보고 진보 진영에서마저 많은 이들은 대한민국의 장기 보수화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언제 끝날지 모를 ‘정치적 겨울’을 준비해야 한다는 경고들이 심상치 않게 들렸다.


△ 왼쪽부터 대처 전 영국 총리,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고이즈미 전 일본 총리, 이명박 대통령. 한국은 신자유주의를 추진할 만한 물적 토대가 취약하다. (사진/ REUTERS/SIMON KREITEM·AFP PHOTO/ FILES/ MIKE SARGENT·AFP PHOTO/ POOL-KAZUHIRO NOGI·청와대사진단)

레이건·대처·고이즈미와 이명박

그러나 단지 몇 개월이 지난 지금, 상황은 거의 기적적으로 탈바꿈되고 말았다. ‘미친 소 정국’을 겨우 넘어간 이명박 대통령은 권력은 계속 쥐고 있어도 권위가 여지없이 무너졌다. 7% 연평균 성장률이니 세계 7대 경제대국 건설이니 그 화려했던 공약들은 이미 웃음거리가 됐고, 20%대에 고정돼 있으며 올라갈 것 같지도 않은 지지율로 대운하나 온갖 민영화 프로젝트들을 순조롭게 진행하지는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제도적으로 대통령에게 막강한 권한이 주어지는 대한민국의 ‘제왕적’ 권력구조상 아무리 인기가 없어도 ‘식물 대통령’은 되지 않지만, 이 정도로 빨리 권위를 상실한 대통령이 ‘장기 보수화’를 이끌 확률은 낮다. 지금 이상돈 교수 등 일부 보수 논객들이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강력한 불만을 피력하고 ‘하야’까지 언급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중산층을 중심으로 한 광범위한 대중의 지속적인 지지를 받으며 대한민국을 일본과 같은 극우파 일당(一黨)의 안정적 장기 지배체제로 이끌 지도자인데, 이명박 대통령은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나 대처 전 영국 총리 등 본보기 될 만한 신보수 리더에 비해 너무나 무게감이 떨어진다. 이미 패러디의 주인공이 되고 만 대통령 치하의 5년이 안정적 보수 체제로의 전환기가 되기보다 오히려 치열한 충돌의 연속이 되리란 것은 이상돈류의 보수 브레인들에게 불 보듯 뻔한 것이다.

그런데 과연 레이건이나 대처, 고이즈미 전 일본 총리 등에 비해 확연히 떨어지는 이명박 대통령의 인재 배치, 대중적 소통, 이미지 관리 능력만이 장기 보수화 프로젝트의 실패 원인인가? 물론 현대건설이나 서울시청에서 상명하복 명령체제에 익숙해진 이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은 합의 도출이 중요한 대통령직에 잘 맞지 않는 게 사실이지만, 그의 때이른 실패를 그것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이 대통령보다 강도는 덜했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코드’ ‘낙하산’ 인사와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무리한 밀어붙이기는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밑에서도 상당히 비슷한 모양으로 이루어지곤 했다. 정도의 차이를 인정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 대통령의 추태는 한국 보수 정치판의 전체적 추태를 압축적으로 대변할 뿐이다. 그러면 이 대통령은 왜 유달리 빠른 속도로 민심 이반의 쓴맛을 보게 됐는가? 여기서 한 가지 본격적인 질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한국에서 일본과 같이 거의 변함없는 극우파 정당의 일당 지배와 대사회적 헤게모니의 확보, 즉 보수적 ‘기업주의’ 사회의 공고화가 가능한가? 신자유주의적 체제에서의 각종 불평등 심화를 다수가 ‘개인적 능력 차이에 따른 결과’라고 순순히 받아들이는, 우정(우편) 민영화와 같은 초대형 민영화 프로젝트가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일본식 사회로 한국을 과연 바꿀 수 있는가?

보수 정당, 복지 퇴보 부추기며 경쟁

필자의 생각으로는, 극우들의 우두머리의 자질과 무관하게 일본형 장기 보수화는 한국에서 구조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한국 자본은 일본 자본과 달리 다수의 월급쟁이와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적자생존식의 신자유주의적 환경에 적응할 수 있게끔 복지제도 등을 통해 안전판을 제공하려 하지 않는다. 일본에서 신자유주의란 소수의 주변화와 다수의 추가적 어려움을 의미하지만, 한국형 신자유주의는 중산계층 중심의 기존 사회가 전반적으로 해체되는 것을 의미하는 만큼 그 속성상 장기화될 수 없다.

일본판 한나라당이라 부를 만한, 막강한 자민당의 장기 지배의 기원은 195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만 해도 농민과 자영업자들의 절반 이상은 자민당을 지지하는 반면, 생산직 노동자 중에서 자민당 지지층은 불과 33%였다. 이에 대한 자민당의 대응은? 바로 복지제도의 대폭적 개혁이었다. 1961년부터 자민당 정부는 국민의료보험의 대상자를 일부 대기업과 공공부문 근로자에서 거의 모든 국민으로 확산시켰다. 또한 같은해 국민연금도 의무적으로 적용돼 모든 일본인에게 기본적 노후보장이 생겼다. 물론 유럽의 복지국가에 비해서야 일본의 복지제도는 결함투성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1973년에 이르러서도 국민총생산 중에서 사회보장 비용의 비율은 5%밖에 안 돼 스웨덴의 약 4분의 1 수준이었으며, 사회보험 비용의 대부분을 사용자와 국가가 부담하는 유럽과 달리 근로자 본인 부담률이 턱없이 높았다. 그러나 동시에 정부 예산에서 사회보장 비용의 비중은 계속 늘어나 1960년대 초반 10~12%에서 1980년대 초반에 20% 안팎으로 오르는가 하면, 1973년부터 70살 이상의 노인들은 일체의 의료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하게 되는 등 괄목할 만한 발전도 있었다.


△ 한국은 장기 보수화되기보다는 촛불집회와 같은 중산계층의 운동과 비정규직, 농민, 학생 등의 치열한 국지적 투쟁의 도가니가 될 것이다. (사진/ 한겨레 김정효 기자)

1990년대의 장기 침체와 신자유주의적 사회 재편의 와중에서 연금의 보장성이 약화되는 등 일부 후퇴도 있었지만, 이미 잡아놓은 복지 시스템의 틀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예컨대 전체 보육시설 중에서 공립시설의 비율은 여전히 50% 이상이다. 올해 4월부터 70살 이상의 노인들까지도 의료비용의 20%까지 본인이 부담하게 되는 등 의료보험 체계가 개악됐지만, 의료보험 민영화와 같은 이야기는 전혀 없다.

반면에 한국은 어떤가? 일본에서 자민당이 복지정책을 나름대로 유지 또는 제한적으로 발전시키며 다른 정당과 경쟁하는 것과 달리, 한국의 보수 정당들은 사실상 복지정책의 퇴보를 부추기며 서로 경쟁한다. 복지 강화를 이야기하기 좋아했던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도 실질적 국민총생산 대비 사회보장 비용 비율은 2001년 6.1%에서 2004년 5.7%로, 즉 30년 전의 일본 수준으로 떨어지기만 했는데, 이명박 정부 들어선 공공연히 복지보다 성장에 중점을 두어 복지예산의 증가가 막히고 말았다. 일본에서는 노인들이 기초노령연금만은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55%가 직장에서도 지역에서도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못해 노후가 막막하기만 하다. 일본의 노인과 달리 한국의 노인들이- 의료보호 대상자 1종 등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서- 국가의 전폭적 지원 없이 의료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더욱더 암담하다. 공립 보육원이 도처에서 보이는 일본과 달리 한국의 보육시설 중에서 공립시설의 비율은 5%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사회의 장기적 안정성을 고려하는 일본의 극우적 보수와 달리, 한국의 극우파는 오로지 기업의 단기적 이득만을 고려한다. 성장과 같은 거창한 단어로 포장돼 있는 이 전략은 아직까지 고속도 개발 시절에 대한 향수를 버리지 못하는 다수의 유권자들에게 호소력이 크지만, 과연 영원히 그럴 것인가? 노후도 의료도 보육도 보장받지 못해 본인의 힘으로 해결하느라 죽을 고생을 해야 하는 서민들은 과연 한나라당과 같은 반복지세력을 앞으로도 계속 지지할 것인가?

치열한 국지적 투쟁의 도가니

반복지적인 한국 보수는 복지비용의 증가에 반대하는 명분으로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 등 고용 늘리기를 내세우는데, 실제로 그들이 제공할 수 있는 고용의 질과 양은 일본에 비해서도 열악하기만 하다. 가령 일본에서도 최근 비정규직이 대량으로 양산돼 전체 근로자의 32%에 달했지만 이는 한국 노동시장에서의 비정규직 비율(56%)보다 거의 절반가량 적은 수다. 또 일본과 달리 대기업들의 직접 고용이 급속하게 줄어드는데다 대기업의 하청 노릇을 할 수밖에 없는 중소기업의 위기까지 겹쳐 비정규직·중소기업 노동자의 자리마저 조금씩 말라버리고 있다. 2000년 신규 고용이 86만 명이었는데, 지난해에는 28만 명에 그치지 않았던가? 이렇다 할 만한 복지체계가 정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직장’조차도 조금씩 사라지는 게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앞으로 대한민국 20~30대 인구의 다수를 차지할 비정규직과 백수, 영세 자영업자들은 과연 장기 보수 지배의 안정적 기반이 될 수 있을까?

이명박 대통령이 일찍부터 흔들리기 시작한 본격적인 이유는 시장의 질풍노도에 복지라는 따뜻한 ‘옷’을 입지 못한 채 알몸 그대로 노출돼 있는 대다수 한국인들의 생활 전반에 대한 불만 지수가 너무나 높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을 찍은 이들은 그에게 박정희 시대를 방불케 하는 고성장을 기대했지만, 그 기대의 허구성이 드러나자 그를 떠났거나 떠날 준비가 돼 있다. 지역 연고 등 각종 이유로 한나라당은 30% 정도의 지지를 아직도 받고 있지만, 이는 이번의 촛불집회와 같은 대중적 불만의 폭발을 앞으로도 막지 못할 것이다. 앞으로 대한민국은 장기 보수화되기보다는 몇 년간 촛불집회와 같은 중산계층의 전국적인 ‘생활정치적’ 운동과 비정규직, 농민, 학생 등의 각종 치열한 국지적 투쟁의 도가니가 될 것이다. 만약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 등 진보정당들이 그 와중에서 노동자와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복지 동맹’을 구축해 복지국가 건설이라는 구호로 당세를 크게 확장시킬 수만 있다면, 우리는 장기 보수화 대신 장기 진보화의 추세로 들어설지도 모른다.

* ‘박노자의 거꾸로 본 고대사’를 이 글로 대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