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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특집 > 특집1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8년07월31일 제7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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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장악 고지 앞, 네티즌 밟고 진격?

‘비지니스 프렌들리화’ 정책만으로도 방송 장악 가능한 정부, 결국엔 네티즌과 맞닥뜨릴 것

▣ 안영춘 <미디어스> 기자

언론인 가운데 2008년 최고의 대박 스타는 정연주 한국방송 사장이다. 한때 사내 노조와 맞서는 것도 벅차 보였던 그가, 지금은 개인 본위의 ‘은퇴’를 결정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상품성을 띠게 됐다. 프로그램 가운데는 단연 문화방송 〈PD수첩〉이 첫손 꼽힌다. 드리블 한두 번에 검사 5명이 전담 수비수로 달라붙을 만큼 화려한 명성을 얻었다. 그저 낙하산 불시착 하나 막으려 했을 뿐인데, YTN은, 영국 시인 바이런처럼, 어느 날 자고 일어나보니 유명해져 있었다. 팬들은 YTN의 무명 시절을 기억하지 않는다.


△ 구본홍 신임 YTN 사장이 지난 7월23일 오전 서울 남대문로 사옥 앞에서 조합원들의 반대에 막혀 출근이 어렵게 되자 난감한 표정으로 돌아서고 있다. (사진/ 한겨레 탁기형 기자)

낙하산 못 내렸다고 실패 단정 못해

‘배후’는 하나같이 이명박 정부다. 가만뒀으면 고만고만했을 것을, 이명박 정부는 한 개인에서부터 프로그램 한 꼭지, 방송사 전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범주에 걸쳐 강력한 대항권력을 육성하고 말았다. 불운한 기획사다. 결과를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정권의 방송 장악 시도는 지금까지는 패착이었다.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겠다고 폭식을 했다가 체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중은 이미 ‘고소영’과 ‘강부자’로 도배된 프로그램에 식상해 있는데, 겹치기 출연이 부를 시청률 저하를 전혀 내다보지 못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노무현 정부도 공영방송을 품에 안으려는 욕망 앞에서 나름대로 뻔뻔했다.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무릅쓰고 서동구 전 특보를 한국방송 사장에 임명했다. 이명박 정부와의 차이라면, 공영방송 내부가 ‘프렌들리’하지 않자 뜻을 접었다는 정도다. 방송을 탐하는 것은 권력의 기본 속성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전두환 정권은 방송사들을 떡 주무르듯 갖고 놀았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욕은 욕대로 먹고, 방송을 제대로 손아귀에 넣지도 못하고 있다. 덜 뻔뻔하거나 완력이 약해서만은 아니다.

방송사 바깥, 세상이 바뀌었다. 미디어 환경이 바뀌었고, 소통 방식은 아예 뒤집어졌다. 지금은 방송을 건드리면 찻잔 속 태풍에 그치지 않는다. 사회 전체가 일렁인다. 인터넷을 타고 흐르는 건 공급자의 정보만이 아니다. 공급자의 정보는 검증되고, 가공된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쫄바지 입고 자전거 타는 모습은 올드 미디어를 통해 공급됐지만, 네티즌에 의해 해체·재구성됐다. 유 장관은 벌거벗은 임금님이 되었다. 이제 네티즌은 스스로 의제를 설정하고, 행동을 조직한다. 방송에 대해서도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의 심약한 소녀팬이 아니다. ‘오빠’들을 지켜주기 위해 불 밝히고 한강 건너 달려가는 굳센 ‘금순이’다.

전두환·허문도 방식으로 방송을 접수하려는 시도는 확실히 시대착오적이다. 방송사에 낙하산 몇 개 떨어뜨리는 것조차 쉽지 않은 현실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실패를 단정하기는 이르다. 역으로, 이명박 정부가 개국 공신 몇몇의 공복을 채워줄 목적이 아닌 것이 훨씬 큰 문제다. 미디어 환경과 소통 방식의 변화는 이명박 정부에도 새로운 카드를 제공한다. 방송사에 낙하산을 직접 떨어뜨려 장악하지 않아도 통제할 수 있다면, 굳이 위험 부담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 세상이 탈영토화됐는데, 끝까지 영토를 고집할 이유는 없다. 물리적 힘에 입각한 하드 파워보다는 손 안 대고도 코 풀 수 있는 소프트 파워가 훨씬 유용한 시대다.


△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7월14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보고를 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 김진수 기자)

한국방송2와 문화방송 민영화 만지작

이명박 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는 이념이나 취향의 문제를 넘어선다. 이들은 기업인 출신이어서 기업을 챙기고, 부자여서 부자를 챙기는 소박한 영혼의 정치집단이 아니다. 오히려 소박한 건 그렇게 바라보는 눈길이다. 이명박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방침은 효율성과 경쟁력만을 위한 카드가 아니다. 80근이나 나가는 관운장의 청룡언월도는 아무나 쓸 수 있는 무기가 아니다. 근력이 안 받쳐주면 청룡언월도를 녹여 날렵한 칼 열 자루를 만드는 게 낫다. 이명박 정부가 한국방송2와 문화방송 민영화 카드를 계속 만지작거리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한국방송과 문화방송은 이들에게 청룡언월도일 수 있다.

공영방송을 손아귀에 넣었을 때와 공영방송을 없앴을 때의 손익 비교는 쉽지 않다. 그러나 손에 넣을 수 없다면, 있는 것보다는 없는 것이 확실히 이익이다. 1980년 후반 프랑스의 자크 시라크 총리는 공영방송 민영화 정책을 밀어붙였다. 7개 공영방송 매체 가운데 그가 선택한 매체는 〈TF1〉이었다. 〈TF1〉은 시라크를 비롯한 우파 정치인과 지지자들로부터 ‘좌파 정부 편향적인 방송’으로 지목받아왔다. 민영화 뒤 〈TF1〉은 심층 보도 프로그램이 축소되고 오락 프로그램이 늘어났다. 또 어느 정권이 들어서든 친정부적인 보도 성향을 보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방송에 대한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은 한국방송2와 문화방송의 민영화 말고도 얼마든지 많다. 이명박 정부는 올해 안에 방송 관련 정책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비즈니스 프렌들리화한다는 방침을 세워두고 있다. 여기에는 △국가기간방송법 제정을 통한 한국방송공사 개편(EBS와 KTV를 한국방송1과 묶고 한국방송2를 민영화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과 문화방송 민영화 △신문·방송 겸영 허용 △한국방송광고공사 해체 및 미디어랩 도입 등이 모두 포함된다. 이미 미디어 소유 대기업 기준을 자산 3조원에서 10조원으로 크게 완화하는 방침을 내놓았고, 지상파 방송과 경쟁하는 통신 자본에 유리한 정책들을 속속 쏟아내고 있다.

이런 정책이 현실화하면 한국 사회의 매체 지형도는 지금과 확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한국방송2와 문화방송이 어느 대자본 품에 들어갈지는 모르지만, (방송사를 새로 세우든 기존 지역방송을 인수하든) 조·중·동이 지상파 방송을 보유하는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한국방송광고공사가 해체되고 미디어랩 경쟁 체제가 도입되면 방송사들은 광고 수익을 올리기 위해 시청률이 높은 연예·오락 프로그램 제작에만 매달릴 것이다. 재허가를 받기 위해 가뜩이나 대통령 직속 방송통신위원회의 눈치를 봐야 하는 민영 방송사들이 정권의 심기를 건드리는 프로그램을 제작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렇듯 이명박 정부는 강력한 물리력을 쓸 이유가 전혀 없다. 미디어 기술과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정책의 칼자루를 쥐고 휘두르면 뭐든 다 할 수 있다. 국회에서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한나라당과, 대통령 형님의 죽마고우이자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인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기대대로 쌍두마차 돌격대 노릇만 해주면 된다. 민간기구의 외피를 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도 굴러들어온 복덩이다. 문화방송 〈PD수첩〉과 한국방송 <뉴스 9>를 중징계하기에 앞서 다음커뮤니케이션을 손본 결과, ‘아고리언의 성지’는 게시글이 무시로 삭제되는 원형감옥(파놉티콘)이 되어가고 있다. 전두환·허문도도 부러워할 꽃놀이패다.


△ 한국방송의 기자협회, PD협회, 아나운서협회 등 7개 직능단체 소속 사원들이 7월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 본사 3층 대회의실 앞에 앉아 이사회를 마치고 나오는 이사들을 향해 ‘방송 장악 음모 중단’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한겨레 김진수 기자)

여기까지만 보면 이명박 정부의 방송 장악 시나리오는 7부 능선을 넘어섰다. 하지만 마침내 고지에 오를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다. 네티즌과의 대회전이 불가피하다. 지난 22일 발표한 ‘인터넷 정보보호 종합대책’은 대회전을 앞두고 ‘선빵’을 날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종합대책은 강력한 처벌조항으로 중무장하고 있다. 포털 쪽에 모니터링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위반하면 처벌하도록 한 규정은 가뜩이나 겁 많은 포털 자본을 지금보다 훨씬 동작 빠른 삭제꾼으로 만들 것이다. 심지어 누군가 명예를 훼손당했다고 주장만 해도 방통심의위를 거치지 않고 임시 삭제하도록 했는데, 이 규정을 누가 애용할지는 불 보듯 뻔하다.

그러나 탈영토의 인터넷 공간은 국가의 통치 영역 밖에 무한대로 펼쳐져 있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이 미치지 않는 곳이다. 지난 7월24일 <서울신문> 보도를 보면, 최근 네이버와 다음 이용자들이 구글로 ‘사이버 망명’을 떠나고 있다. 네이버와 다음 모두 순이용자 수가 350여만 명이 줄어든 데 반해, 구글은 지난해 6월과 비교해 130만 명이 늘어났다. 네티즌의 ‘사이버 망명’ 사태는 △불법 게시물 삭제 명령 위반 때 정부가 사이트를 폐쇄할 수 있는 법 제정 예고 △인터넷 실명제 확대 적용 △사이버 모욕죄 신설 등 ‘사이버 공안정국’에 맞선 네티즌의 타개책으로 풀이된다.

‘P2P 방식의 아고라’까지 나간 네티즌

이명박 정부가 눈앞에 보이는 고지를 오르기 위해 네티즌을 밟고 넘어가려 한다면 그 싸움은 뜻밖에 길어질 수도 있다. 네티즌들은 이미 사이버 망명을 넘어서 대안공간을 창출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있다. 일부 네티즌은 ‘P2P 방식의 아고라’를 제안하고 있다. P2P 방식의 아고라는 단일 서버(회사)에 저장(소속)되지 않기 때문에, 인터넷을 모두 끊어버리지 않는 한 어떠한 방법으로도 차단될 수 없다는 것이다. 언론사나 시민단체에서도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인 비상업적 포털을 만들려는 고민을 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새로운 소통 방식에 통제를 가하려고 할수록 방송의 공영성을 둘러싼 네티즌과의 대치선은 폭발적으로 확장될 수밖에 없다. 이제 그들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통제가 정부의 방송 장악 의도와 어떻게 닿아 있는지 이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부의 방송 정책과 관련한 모든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태풍의 눈처럼 빨아들일지 모른다. 더 무서운 건 그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확실한 건 얼마 전 방학에 들어간 초·중·고 학생들도 그들 가운데 일부라는 것이다. 설 건드렸다가는 정연주·〈PD수첩〉·YTN을 스타로 만들 때보다 더 심각한 패착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