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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특집 > 특집1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6년10월26일 제6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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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힘내세요, 마이크로 크레디트가 있잖아요~

사회연대은행 지원받아 ‘무지개 가게’ 운영하는 최헌주·문광석씨 이야기… 대출의 끝은 상환이 아니라 재활, 전문가가 상담 관리해주는 통합서비스도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엄마 힘내세요. 우리가 있어요∼. 힘내세요, 엄마!” 가게 한쪽 벽에 걸린 보드판에 ‘김치 2kg’ ‘알타리 1kg’ ‘밑반찬’, 도시락 주문 전화번호 등이 어지럽게 적혀 있는 사이로 또박또박 굵게 쓴 매직글씨가 눈길을 끈다. 딸 미경(여고생)이가 엄마한테 쓴 파이팅 글이다. 서울 신길동 신풍시장 안에 있는, 최헌주씨가 운영하는 주문음식점 ‘요리나라’. 사회연대은행이 무보증·무담보로 소액대출을 해준 전국 320여 개 ‘무지개 가게’ 중 한 곳이다.

꿈의 대출, 무담보·무보증, 금리 2.5%…

최씨는 11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27살에 혼자 되었다. 결혼을 약속한 다음날 남편은 사고로 뇌를 크게 다쳐 병을 앓다가 떠났다.


남편 병원비와 두 아이 양육비를 대려고 봉제공장 미싱도 타고 가스레인지 후드 청소도 해봤다. 대구로 내려가 주방 세제 방문판매를 시작했다. “영업 수입도 괜찮았어요. 차 두 대씩 굴리고 주부사원들 데리고 일했죠. 그런데 IMF 사태가 대구에는 늦게 와서 방직, 건축이 무너지니까 돈이 회전이 안 되고 결국 사업도 쓰러지고, 건강도 많이 해쳤어요.” 남은 돈 3천만원으로 셋방을 얻어 7년 전 신길동으로 왔다.

최씨는 그동안 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국비로 교육을 받아 출장요리사와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땄다. 취직할 곳은 없고, 창업하려면 자격증이 있어야 했다. 요리 실력을 발휘해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배달하는 일로 근근이 생활을 이어왔다. 그동안 자궁근종, 담석 등으로 4번이나 수술을 하고, 자궁경부암 투병생활도 해야 했다. 결국 암을 이겨냈다.

그런데 음식 솜씨에 대한 소문이 퍼진 것일까? 음식 주문이 여기저기서 밀려들기 시작했다. 창업해 가게를 얻어야 했다. 그래서 지난해 7월 찾아간 곳이 근로복지공단이다. 근로복지공단에서 모자가정의 점포 창업대출 자금으로 1천만원을 대출받아 이곳 30평 가게를 얻었다. 그러나 주문 도시락 사업을 하기에는 크게 모자란 돈이었다. “한 시중은행과 오랫동안 통장 거래를 해왔는데, 가게를 낼 때 대출받으려고 찾아가니까 담보가 없어서 돈을 빌려줄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이자 부담이 겁나기도 했어요. 그때 제가 애처로워 보였는지 지역 소상공인센터에 있는 사람이 사회연대은행을 소개해줬어요.” 당장 등기우편으로 사회연대은행에 대출 신청을 했다. 그러나 심사에서 탈락했다. “사회연대은행 사람이 나를 기억하고는 10월에 또 대출 사업 접수가 있으니 신청하라고 하더군요. 안양에 가 있는 저를 거기까지 찾아와서 근처 공원에서 면담하면서 용기를 잃지 말라고 말해주더라고요.” 최씨는 다시 신청했고 4개월간에 걸친 심사를 거쳐 올 3월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대출금은 1500만원이고 금리는 연 2.5%, 1년 거치 4년 원리금 분할상환 조건이다. 물론 무보증·무담보 대출이다. 자신의 5천만원짜리 전세계약서를 사회연대은행에 보여주긴 했지만 담보로 제공된 건 아니다.

사회연대은행은 창업자금을 대출해주면서 경제학 박사를 초빙해 1박2일간 사업 성공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제공했다. 서류만 보고 대출해준 뒤, 담보와 보증인이 있기 때문에 돈만 빌려주면 그만인 일반 시중은행과는 다르다. 한 달에 2∼3번 최씨의 요리나라를 담당하는 사회연대은행 매니저가 가게에 찾아와 사업이 잘되는지 필요한 것은 없는지 물어본다. 또 사회연대은행의 활동에 공감해 무료로 사업 자문을 해주는 호텔 주방장이 가게에 찾아와서 조리법을 알려주고 판로를 개척해주기도 한다. 돈만 대출해주고 끝이 아니다. 최씨는 “이번에 노벨평화상을 받은 사람이 사회연대은행 같은 마이크로 크레디트를 처음 시작한 분이라는데, 어제 우리 아들하고 얘기하면서 참 멋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말했다”며 “단체 도시락 주문이 갑자기 펑크나고 내가 힘들고 지쳐 있으면 사회연대은행에서 우리 가게를 담당하는 전재하 과장이라는 분이 전화를 해서 용기를 내라고 북돋워주는데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1달에 1번 방문해 매출과 수익 관리해줘

최씨가 가진 빚은 근로복지공단의 1천만원, 사회연대은행의 1500만원,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120만원이 전부다. “금리 2.5%는 굉장히 싼 거예요. 공짜 무이자는 말도 안 되죠. 이자를 갚아야 한다는 부담이 어느 정도 있어야 일 할 의욕도 생기죠. 내가 나중에 돈을 다 갚으면 대출금의 절반인 750만원을 사회연대은행이 사업확장 종자돈으로 그냥 저한테 돌려주는 것으로 압니다. 더 힘이 납니다.” 내년 3월부터 원리금 상환이 시작되는데 지금 수입으로 충분히 갚을 수 있다고 한다.


최씨는, 만에 하나 잘못되어 사업에 실패하면 사회연대은행이 자금 회수에 나서더라도 최씨의 전세보증금은 손을 대지 않고 적절한 선에서 상환 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믿고 있다.

경기도 광명시에서 광혜안마침술원을 운영하고 있는 문광석(42)씨도 사회연대은행의 ‘무지개 가게’ 창업자 중 한 사람이다. 문씨는 괌에서 중장비 기사로 일하던 중 27살에 풍토병 말라리아에 감염됐다. 사흘 만에 깨어나보니 열병으로 시신경이 손상돼 있었다. 귀국한 뒤 시력은 갈수록 나빠졌고, 결국 시각장애인으로 또 다른 인생을 시작해야 했다. “집에서 3∼4년간 바깥 출입을 못하고 고생하다가 안마 업계를 알게 됐어요. 점자·보행교육도 받고 안마사 자격증을 땄습니다. 안마가 원래 내 적성에 맞는 것도 아니고, 스포츠마사지도 해야 했고 그래서 더 공부를 해 이료전문학사를 받았죠.” 개원 자금을 마련하려고 은행을 찾아갔지만 보증도 담보도 없고 은행 문턱은 높기만 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저녁에 TV를 보다가 뉴스에서 사회연대은행을 듣게 되었다. 곧바로 사회연대은행에 전화를 걸어 창업하고 싶다고 했다. 급히 서류를 만들어 제출한 뒤, 담보도 없이 보증인도 세우지 않고 1천만원을 연리 2%로 빌렸다. 6개월 거치 36개월 분할상환이다. 이 대출자금과 자신이 갖고 있던 돈을 합쳐 지난해 7월 안마원을 개설했다. 문씨는 상환이 시작된 지난 1월부터 한 달 25만원 정도의 원리금을 한 번도 연체하지 않고 꼬박꼬박 갚고 있다. “어디 무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곳이 있습니까? 마이크로 크레디트가 있다는 것이 저희한테는 큰 도움이 됩니다.” 역시 시각장애인인 아내와 안마원을 같이 운영하던 중 비오는 날 아내가 계단에서 미끄러지는 바람에 크게 다쳐 수술까지 해야 했지만, 문씨는 요즘 ‘재활 성공’을 날마다 피부로 느끼며 산다. “원리금 상환하고, 가게 월세 한 달 50만원씩 내고, 집에 가져가는 돈도 한 달 150만∼200만원은 됩니다.”

문씨도 사업을 시작하기 이전에 사회연대은행에서 한 달에 2∼3번씩 창업교육을 받았다. 문씨의 가게를 관리하고 지도해주는 사회연대은행 담당자가 한 달에 한 번씩 와서 매출과 수익이 늘었는지, 사업 방향은 어떤지 상의하고 돌아간다. “만약 이곳 치료실이 잘 안 되더라도 안마 자격증이 있으니 밤에 다른 시술소에 가서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융자금은 상환할 수 있어요.”

예금 없이 국가와 기업의 지원으로 운영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과 이 은행 총재인 무하마드 유누스(66) 박사가 올해 노벨평화상을 받으면서 한국의 마이크로 크레디트에 대한 관심이 높다. 마이크로 크레디트(Micro credit·무보증 무담보 소액창업자금 대출)는 빈곤·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창업을 지원함으로써 빈곤 탈출과 경제적 자립·자활을 꾀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일종의 ‘대안금융’이다. 대출 심사 때 담보나 신용평가는 중시하지 않고 개인의 자활 의지에 무게를 둔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사회연대은행’과 ‘신나는조합’ 등 4곳이 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표 참조). 지금까지 사회연대은행이 지원한 업체는 320개 업체, 430여 가구에 달한다. 다른 마이크로 크레디트에서 지원한 것까지 합치면 대략 전국 700여 가구가 마이크로 크레디트를 통해 자활 기회를 다시 얻고 있다. 국내 마이크로 크레디트 대출잔액은 올해 1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저소득층이 자활할 수 있는 길은 창업과 취업인데, 취업은 막혀 있다. 물론 창업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그런데 취약계층의 ‘금융 소외’는 자본시장 실패에서 비롯된다. 국가와 공공 금융기관이 담당해야 할 역할을 민간 마이크로 크레디트가 보완하고 있는 것이다. 빈부격차 심화와 외국자본의 국내 금융기관 지배 등으로 금융 공공성이 취약해지고 있는 터라 마이크로 크레디트의 역할은 더욱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마이크로 크레디트는 정식 금융기관은 아니다. 따라서 예금을 받을 수는 없다. 현재 신나는조합이나 사회연대은행의 주요 대출기금 재원은 국가·기업으로부터 기존 빈곤층 창업사업을 위탁받거나, 개인들한테 기부금을 받아 마련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자활공동체 창업지원기금(20억원), 여성가족부의 성매매 피해여성 창업자활사업(6억원), 근로복지공단의 창업지원사업, 삼성의 여성가장사업, LG전자의 사회공헌사업, 국민·조흥·산업·신한은행의 기금 등을 위탁받아 운영하는 방식이다.

이른바 ‘없는 사람들’한테는 돈뿐만 아니라 자활을 위한 정보와 인맥, 신용도 빈곤하다. 그래서 마이크로 크레디트에서는 창업 기획에서 경영·기술자문, 판로 개척까지 전문가들이 돕는다. 사회연대은행의 경우 미용 서비스, 공예, 세무, 제과, IT(정보기술) 등에 걸쳐 ‘재능’을 출자한 자문위원 12명이 있다. 제과 자문을 하는 이승진씨는 국내 특급호텔 제과 담당자로서 창업 지도사로 봉사하고, 예삐꽃방 김진국 사장도 이 사람이 꽃집을 하면 성공할 수 있겠는지 여부를 판단해준다. 이들은 마케팅을 지도하고 상권도 분석해준다. 미용 자문을 맡은 미용아카데미의 신옥남 미용장은 미용실 창업자를 자신의 직장에 데려가서 직접 가르쳐주고 있다. 저소득·빈곤층이 창업에 성공하려면 사전교육을 철저히 받아 준비하고, 사후관리가 이뤄져야 하는 등 사회적 통합 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한다.

대출금 미상환 때도 ‘복지금융’으로 접근

물론 기존에 금리가 너무 높은 사채를 끌어다 썼다든지 다른 금융기관에서 빌려쓴 채무가 너무 많으면 마이크로 크레디트 창업을 통해 열심히 일해 돈을 벌어도 러닝머신에 올라타고 뛰는 것처럼 제자리걸음만 하게 될 수밖에 없다. 사회연대은행 임은의 팀장은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할 경우 이렇게 처리한다는 정해진 원칙은 딱히 없다. 대책회의를 거쳐 개별 사례별로 ‘복지금융’으로 접근해 채무를 상당 부분 탕감해줄 것인지, 아니면 ‘채무 상환’을 중심으로 접근해서 임대보증금 등을 최대한 회수할 것인지 결정하게 된다”고 말했다. 아무튼 분명한 건 마이크로 크레디트는 대출해준 소액의 돈이 정말로 소중하고 의미 있는 곳에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마이크로 크레디트는 “복지금융기관”(사회연대은행 이종수 상임이사의 말)이다.


그라민은행의 놀라운 성공

원금 상환율 99%, 전세계 58개 국가에 융자 모델 확산

마이크로 크레디트의 효시는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이다. 그라민은행의 저소득·빈곤층 소액융자 사업은 무하마드 유누스 그라민은행 총재(당시 방글라데시 치타공대학 경제학과 교수)에 의해 1976년 농촌에서부터 시작됐다. 대나무 제품을 만들어 생계를 꾸려가는 농촌 마을 사람이 단돈 27달러가 없어 일을 못하게 될 딱한 처지에 놓인 것을 보고 유누스 박사가 호주머니를 털어 돈을 빌려준 것이 그라민은행으로 발전한 것이다. 농촌에서 큰 성공을 거두자 그라민은행 프로그램은 도시 지역으로 확산됐고, 2003년 현재 그라민은행의 규모는 회원 312만 명, 공동체 57만 개, 회원 수신 잔액 1억7천만달러에 달한다. 누적상환액은 무려 37억달러(약 3조7천억원)에 이른다. 그라민은행은 주로 농촌 여성들을 대상으로 대출해주고 있는데, 현재 1170개 지점에서 평균 75달러씩 대출해줬으며 원금 상환율이 99%에 이른다.

융자사업이 성공하자 그라민은행은 융자금 지원과 훈련·기술 지원을 전담할 ‘그라민 트러스트’를 설립해 전세계 58개 국가에 그라민은행식 융자 모델을 확산시켰다. 이에 따라 현재 223개 조직에서 각 나라의 실정에 맞게 빈민층을 대상으로 자영 창업지원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남미·아프리카에서 전개되고 있는 다국적 마이크로 크레디트기관인 액시온(ACCION)은 1979년 브라질에서 시작됐다. 이 무보증·무담보 소액대출 프로그램이 성공을 거두자 사업은 남미 14개 국가로 확산됐고, 1991년에 미국으로 전파돼 미국 액시온이 설립됐다. 액시온 프로그램 융자 상환율은 95∼98%에 이른다. 액시온그룹은 2003년 미국·남미·아프리카에서 대출 고객 총 117만 명, 총 대출누계액 11억7천만달러(약 1조1천억원), 미국 기준 평균 대출액 5400달러 수준으로 성장했다.

프랑스의 아디(ADIE)는 경제·금융 서비스로부터 소외된 취약계층 소액대출 금융기관이다. 아디는 은행법 때문에 여·수신 업무를 수행하는 데 한계가 드러나자 1994년 은행과 파트너 계약을 맺는 방식을 도입했다. 아디가 은행에 신용보증을 하고, 은행이 창업자금을 대출해주는 방식이다. 개인한테 최대 1만유로를 대출해주고, 대출금의 50%를 보증할 5명을 보증인으로 세워야 한다. 2005년 기준으로 아디 고객은 1만 명이고, 지원받은 업체의 창업 3년 뒤 생존율은 54%로 독자적인 경영기업의 생존율보다 높다.

이렇듯 전세계적으로 저소득·빈곤층 3천만 가구가 1만여 개의 마이크로 크레디트 기관을 통해 자활을 꾀하고 있다. 유엔은 2005년을 ‘세계 마이크로 크레디트의 해’로 지정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