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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표지이야기 > 표지이야기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8년08월11일 제7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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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OTL] 뿌리 깊어라, 부동산 6계급

<부동산계급사회> 펴낸 노동운동가 손낙구씨 “부동산 계급별 주택정책을 펴라”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사진 이종찬 기자rhee@hani.co.kr


△ ‘1계급과 6계급 사이, 하늘과 땅 차이.’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판자촌에 서면 저 멀리 최고급 아파트인 타워팰리스가 바라다보인다. (사진/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1083-819-577-521-476-471-412-405-403-341.’

네 자릿수에서 세 자릿수까지 등장한다. 로또복권 당첨번호는 아닐 터다. 10개의 숫자가 일렬로 나열돼 있다. 은행 계좌번호 치고는 너무 길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내림차순으로 정리됐다는 정도는 쉽게 알아챌 수 있겠다. 대체 무슨 숫자일까?

지난 2005년 8월12일을 기준으로 당시 행정자치부가 내놓은, 개인 명의로 집을 가장 많이 소유한 ‘최고 집 부자’ 상위 10명이 각각 소유하고 있는 주택 숫자를 나열한 게다. 이들 10명이 보유한 집만 모두 5508채에 이른다.

대한민국은 ‘부동산 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집’으로부터 나온다. 집이 없는 사람은 집을 가진 사람에게 꿀리고, 집을 1채 가진 사람은 여러 채 가진 사람에게 주눅이 든다. 이사철 셋방을 몇 차례 옮겨본 사람이라면, 그 위계서열의 강고함을 뼛속 깊이 실감하고 있을 터다. 내 집 마련은 ‘돈벌이’의 문제일 뿐 소중한 삶의 터전을 확보하는 ‘주거’의 문제로 여겨지지 않는다. 민주노총 교육선전실장을 지낸 노동운동가 손낙구(47)씨가 쓴 <부동산계급사회>(후마니타스 펴냄)는 부동산 투기로 미쳐 돌아가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10년 주기의 투기병 발작으로 계급 형성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한국의 부동산 투기, 그 역사는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손씨는 “이때부터 10년을 주기로 한번씩 벌어지는 부동산 투기라는 우리 사회의 발작”을 ‘망국병’이자 ‘고질병’이라 불렀다.

제1차 부동산 투기가 시작된 것은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한창이던 1960년대 말이다. 1965~69년 12개 주요 도시 땅값은 연평균 50%씩 올라 5년 만에 7배까지 뛰었다. 급격한 도시화와 통화량 팽창, 수출 대기업의 투기 참여 등에 뒤이어 1968년 경부고속도로 착공을 계기로 투기는 극에 달했다. 1차 투기의 정점은 1969년으로 한 해 동안 12개 도시 땅값이 80.7%, 서울 땅값은 84.1%가 올랐다. 그야말로 돈 놓고 돈 먹기의 노름판이었다. 손씨는 “당시 투기의 광기를 식힌 것은 경기불황과 1차 오일쇼크였다”며 “하지만 폭등세만 주춤했을 뿐, 한 번 올라간 가격은 좀처럼 내려오지 않았다”고 썼다.

197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부동산은 두 번째 ‘발작’을 일으켰다. 중화학공업 육성을 선언한 박정희 정권의 대규모 개발 정책과 각종 특혜를 받으며 땅 개발과 주택공급에 나선 민간 건설회사가 급성장하던 때였다. 중동 건설 붐으로 한국인 이주노동자들이 국내로 송금한 외화도 한몫을 했다. 1978년 한 해에만 전국 땅값은 49%가 올랐고, 서울의 땅값은 무려 136%가 올랐다. 같은 기간 집값도 연평균 33.4%씩 뛰었다. 1980년대 접어들면서 투기광풍은 서서히 잦아들었지만, 치솟은 부동산 가격의 ‘하방경직성’은 원칙으로 굳어지기 시작했다.

10년쯤 지난 1980년대 말에도 부동산 투기 열풍은 어김없이 불어닥쳤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 이른바 ‘3저(유가·금리·달러) 호황’과 주가 폭등으로 만들어진 여유 자금이 ‘묻지마 투기’의 실탄이 됐다. 1988~90년 전국 땅값은 연평균 26.7%, 집값은 16.3%가 올랐다. 3년 만에 땅값은 2배, 집값은 1.6배 뛴 것이다. 그 정점은 1989년이었다. 전국 땅값과 6대 도시 땅값은 평균 32.0%가 올랐고, 서울 땅값은 33.5%가 치솟았다. 이로 인해 전·월세 시장마저 요동을 치면서 1990년 봄 이사철엔 두 달 남짓한 사이 17명의 세입자들이 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한 것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1990년대 말로 예견됐던 4차 투기는 외환위기 충격으로 현실화하지 않았다. 물론 잠시 시기가 늦춰진 것에 불과했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 극복을 명분으로 부동산 경기 활성화에 나섰다. 투기 억제를 위한 각종 규제가 풀렸고, 값싼 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국민의 정부 말기와 참여정부 초기에 쏟아진 수도권 신도시와 기업도시, 행정복합도시 등 각종 개발정책도 주춤하던 투기의 불씨에 기름을 부었다. 1999년과 2000년 전국 평균 집값은 각각 3.4%와 0.4%가 올라 외환위기 때 떨어진 가격을 만회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뛰기 시작해 2007년 말까지 58.6%가 올랐다. 특히 아파트값은 88.4%나 치솟았다. 지금껏 여진이 계속되고 있는 제4차 부동산 투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손씨는 이렇게 지적한다.

“지난 50여 년간 부동산 가격은 한 번 크게 오른 뒤 내려가지 않고 유지되다가 10년이 지나면 다시 수직으로 튀어 오르기를 네 번 반복해 왔다. 그림으로 그린다면 계단 모양이다.… 부동산 가격 폭등의 역사를 정리하면서 그동안 들어왔던 ‘부동산 불패 신화’란 말이 실감났다. ‘민주화 이전과 이후’를 막론하고 역대 정권은 날만 새면 투기를 잡겠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모두 부동산에 패배했다.”

평균 5채 소유자 해체, 1가구1주택자 보호

그렇게 치솟아 오른 부동산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간격을 지속적으로 넓혀왔다. 부동산 투기라는 사회적 각축에 참여하지 못한 이들은 도심에서 변두리로 밀려났고, 서울에서 수도권으로 쫓겨갔다. 재개발과 철거의 폭력에도 삶의 터전을 떠나지 못한 이들은 산동네에서 지하로 스며들었다. 손씨는 이렇게 40년 세월 형성된 한국의 부동산 계급을 크게 6개로 분류했다.

제1계급은 집을 2채 이상 가진 105만 가구(전체의 6.6%)다. 이들이 소유한 주택 수는 총 477만 채로, 가구당 집을 평균 5채씩 소유하고 있다. 제2계급은 집을 1채 소유하고 그 집에서 현재 살고 있는 1가구1주택자 769만 가구(48.5%)다. 3계급은 대출을 받는 등 무리를 해 어딘가에 집을 마련해놨지만 이자 등 금융비용 때문에 자기 집은 세를 주고 남의 집을 옮겨다니며 셋방살이를 전전하는 계급이다. 전체 가구의 4.2%인 67만 가구가 여기에 속한다.


△ ‘대한민국, 부동산 계급사회.’ 손낙구씨는 “부동산 투기를 막으려면 매매차익과 임대소득 등 부동산을 통한 불로소득을 철저히 환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 한겨레21 이종찬 기자)

상위 3개 계급이 유주택자인 반면, 하위 3개 계급은 무주택자로 채워진다. 전세나 월세 보증금이 5천만원이 넘는 가구는 제4계급, 사글세·보증금 없는 월세·보증금이 5천만원 이하인 월세를 사는 사람은 제5계급이다. 전체 가구의 6.2%에 이르는 95만여 가구가 4계급으로, 30.3%에 이르는 481만 가구가 5계급으로 각각 분류된다.

마지막으로 지하방, 옥탑방, 판잣집, 비닐집, 움막, 업소 내 잠만 자는 방, 건설현장 임시막사 등에 사는 주거극빈층이 있다. 심지어 동굴·움막에 사는 이들도 있다. 전체 가구의 4.3%인 68만 가구, 인구 수로는 162만여명이 이렇게 ‘제6계급’으로 살아가고 있다.

몇 십억원짜리 초호화 아파트와 동굴·움막이 버젓이 동시대인의 주거 장소로 사용된다. 극단의 양극화가 부른 극단의 격차 사회, 부동산으로 계급을 이룬 21세기 한국의 현실이다. 어디서부터 문제를 풀 것인가? 손씨는 이렇게 지적했다.

“일단 집을 2채 이상, 평균 5채 갖고 있는 제1계급은 사회발전을 위해 해체해야 할 대상이다. 집은 거주 목적 이외에 투기 목적으로 소유할 수 없도록 하는 게 나라 살리는 길이다. 집값이 계속 오르니 이들은 매매차익을 통한 투기이익과 임대소득 등 두 가지 이익을 얻고 있다. 이런 불로소득은 마땅히 사회화해야 한다. 1가구1주택자인 제2계급은 보호해야 할 대상이다. 이들 중에는 집은 겨우 샀지만 식구가 많고 집은 낡고 위험해 최저 주거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가족과 안심하고 살 수 있을 만큼 주거환경을 개선할 수 있도록 지원해줘야 한다. 또 제3계급인 ‘유주택전월세’ 가구는 자기 집에 들어가 살 수 있도록 지원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하·움막 탈출할 ‘사다리 정책’ 필요

손씨의 말은 이어진다.

“제4계급은 집값이 현재의 절반 또는 3분의 2 수준만 돼도 돈을 좀 융통해 몇 년 안에 내 집 마련의 꿈에 도전해볼 만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주택정책이 마련돼야 한다. 전형적인 셋방살이 인생인 제5계급은 스스로의 힘으로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룰 수 없다. 공공임대주택을 많이 확보해 30년 이상 자기 집처럼 싼값에 살 수 있도록 지원해줘야 한다.

마지막으로 162만여 명에 이르는 제6계급 대책이 가장 급하다. ‘지하방’으로 상징되는 부적절한 주거공간, 동굴과 움막으로 상징되는 처참한 주거공간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주거의 상향이동을 지원하는 ‘사다리 정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