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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표지이야기 > 표지이야기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8년08월07일 제7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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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리스크’인가 화해사회인가

극단의 자본주의와 극단의 사회주의가 만나는 위기… 올림픽 이후의 중국은 돌파구 찾을까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 베이징(중국)=박현숙 전문위원 strugil15@hanmail.net

올림픽은 애당초 ‘4년마다 인류가 우애를 나누는 지구촌의 스포츠 제전’이 아니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기적 같은 경제성장을 일군 한국인에게 서울올림픽이 그랬듯, 개혁·개방 30주년을 맞는 중국인에게 베이징올림픽 역시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길게 보면 1840~42년 제1차 아편전쟁으로 홍콩을 강제로 빼앗긴 채 ‘개항’을 당한 이후, 줄곧 서구 열강에 짓눌려온 게 중국의 근현대사다. 덩치에 걸맞지 않은 ‘민족적 피해의식’은 급격한 경제성장으로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티베트 시위와 뒤이은 성화 봉송 과정에서 불붙은 ‘애국주의 열풍’(상자기사 참조)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이런 올림픽을 치르리라고는…”


△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으로 상징된 집단동원 체제는 효율적이지 않았다. 그 반성에서 나온 개혁·개방 정책은 사회적 격차를 키웠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그 대안으로 ‘화해사회’를 강조한다. (사진/연합/REUTERS/ REINHARD KRAUSE)

그래서다. 올림픽은 중국인들에게 다층적 의미를 띨 수밖에 없었다. 오늘의 중국을 있게 한 개혁·개방 정책이 올해로 꼭 30주년을 맞는다. 사회주의혁명 이후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이란 격변의 세월을 거치며 흔들리던 중국을 다잡은 것은 덩샤오핑의 ‘실용’이었다. 이후 30년 세월 동안 중국은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룩하며 명실상부한 ‘세계의 공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9%를 넘나들었고, 미 경제전문지 <포천>이 선정한 500대 기업 가운데 2008년 현재 중국에 진출한 기업만도 460여 개에 이를 정도다. 중국인들에게 베이징올림픽은 ‘수모의 역사’를 딛고 당당한 경제대국으로 떠오른 조국이 세계 무대에서 화려하게 부활을 알리는 일종의 ‘통과의례’로 받아들여졌을 터다.

정치적으로도 서구의 ‘보편적 가치’가 올림픽을 계기로 중국으로 유입될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마련될 것이란 기대가 높았다. 최근 중국 내 좌파 학자들이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 등 ‘보편 가치’를 부쩍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중국 당국도 이러저러한 ‘올림픽 효과’를 톡톡히 보리란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국제무대에서의 위상 변화는 물론 국내적으로도 인민 대중과의 소통 부재를 극복하고 사회적 긴장도를 낮추는 돌파구로 올림픽을 활용하려는 의도마저 엿보였다. 이희옥 성균관대 교수(중국정치)는 중국 당국이 기대한 올림픽의 ‘정치적 효과’를 이렇게 지적한다.

“베이징올림픽을 유치한 2001년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다. 지난 30년간 이끌어온 중국의 성장모델을 세계화·국제화한 것이다. 후유증은 심각했다. 대표적인 게 사회적 격차의 극대화다. 이를 통합하지 않고선 중국에 미래는 없다. 무엇으로 통합할 것인가? 올림픽이란 ‘업적’을 통해 정당화해나갈 수 있다. 효과도 클 것이다. 이번 올림픽은 개혁·개방의 후폭풍으로 인한 체제 위기, 흔들리는 사회주의를 공고화하는 효과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 올림픽은 개혁·개방 30주년을 평가하고 향후 30년으로 나아가는 시금석이자 분기점이다. 그 초석을 쌓고 구조를 만드는 게 중국 당국이 노린 효과였을 것이다.”

하지만 올 들어 분위기가 급변했다. 올림픽을 목전에 두고 발생한 티베트 사태와 쓰촨 대지진 등 각종 자연재해, 그리고 각지에서 분출한 집단시위는 애초의 장밋빛 기대와는 달리 올림픽 이후 중국 사회의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공산당 내부에서조차 “경제적 효과는 이미 포기했다”거나 “경제적으로 이득은 보지 못하더라도, 베이징에서 테러만 발생하지 않으면 족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중국 언론에선 “이런 식으로 올림픽을 치르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는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세계인의 제전을 앞둔 도시치고는 기묘하기까지 한 풍경이다.

따지고 보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공생하는 중국은 분명 기묘한 나라다. 떠오르는 경제대국 중국의 수도 베이징은 이를 절묘히 형상화하고 있다. 고층 빌딩이 즐비한 팽창하는 ‘특대도시’의 한켠에 한 달 가구 수입이 우리 돈 10만원도 안 되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살고 있다. 한 중국 전문가는 이를 두고 “제2세계와 제3세계가 공존하는 복합 공간”이라고 표현했다.

개혁·개방의 지난 30년 세월 동안 중국 경제는 양적 성장에 치중해왔다. 물론 효과는 봤다. 하지만 급격한 경제성장의 피로도가 쌓여만 갔다. 성장이 몰고 온 사회적 격차가 지나치게 확대된 탓이다.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 농촌에 대한 직·간접적 착취 구조가 사회의 계층화·서열화를 부추겼다. 소득 불균등 분배를 지수로 나타낸 지니계수(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한 사회)가 0.5에 육박하고 있을 정도다. 사회주의국가란 말이 무색한 ‘극단의 자본주의’다. 1998년 3만여 건에 불과했던 대규모 집단시위 발생 건수가 2003년 6만여 건으로 급증한 것은 사회적 휘발성이 급격히 높아가고 있음을 경고하는 신호탄이다.

‘극단의 사회주의’도 있다. 만연한 부정부패, 관료적 억압 체제, 공산당 일당 체제 등이 그것이다. 물론 후진타오 주석-원자바오 총리 체제에 들어 소외된 하층민의 이해를 대변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집권 초기부터 ‘후-원 신정’(후진타오-원자바오의 새로운 정치)과 ‘화해사회’를 강조한 것도 개혁·개방이 몰고 온 도농간·계층간 격차를 해소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노동자의 권리를 대폭 강화한 노동계약법이 올 초 통과돼 최근 발효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저임금에 의지한 제조업 중심에서 친환경·지속 가능한 경제로 구조 변화를 꾀하고 있는 게다. 더는 개발독재식 성장모델을 지탱해나갈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정훈 이화여대 교수(중국학)는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개혁·개방은 말하자면, 사회주의 아래서 자본주의 방식을 일부 빌려와 경제를 발전시킨 것이다. 급격한 경제성장은 이뤘지만, 격차 문제가 발생했다. ‘후-원 신정’은 경제발전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만들어진 각종 사회적 격차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그동안 빌려왔던 자본주의적 방식 일부를 되돌려주고, 그 빈자리에 사회주의적 방식을 재도입하는 것을 뜻한다.”

올림픽 이후엔 어떨까? 중국 공산당은 2021년 창당 100주년을 맞는다. 2049년엔 건국 100주년을 맞는다. 중국 당국이 국가발전 전략을 논하는 각종 문건에서 2020년과 2050년을 ‘분수령’으로 지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 사이에서 치러지는 베이징올림픽은 개혁·개방의 지난 30년을 되돌아보고, 향후 30년을 기약하는 또 다른 분수령일 터다.

원자바오 총리는 지난 2007년 2월26일 <인민일보>에 ‘사회주의 초급 단계의 역사 임무와 중국의 대외정책에 관한 몇 가지 문제’란 기고문을 발표했다. 원 총리는 당시 기고문에서 “현재 중국은 경제발전을 시켜야 하고 공민권익 보장, 부패 반대, 정부 공신력 제고와 집행 능력 제고, 사회 조화를 증진시키는 것을 중심으로 민주를 확대하고 건전한 법제와 정치체제 개혁을 추진시키는 것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개혁’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 중국 내 대다수 전문가들도 “앞으로 3~5년 안에 중국 정치체제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급격한 정치개혁보다는 인민대표대회 제도 개선과 지방 차원의 민주주의 확대, 공무원 제도 개혁 등 간접적이고 완만한 정치개혁이 단계적으로 이뤄질 것이란 게다.

중국의 실험은 여전히 현재진행형

현재 중국 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높아만 가는 실업률과 사회보장 문제, 의료 및 교육 시스템 개혁 등을 꼽을 수 있다. 특히 올림픽을 통한 일자리 창출 기대는 접은 지 이미 오래다. 중국의 올 대졸자 취업률은 50%를 밑돌고 있다. 올해처럼 대규모 자연재해와 탄광 매몰 사건 등 인재, 그리고 곳곳에서 대규모 집단시위가 이어진다면, 당국의 위기관리 능력이 얼마나 오래 유지될지는 알 수 없다.

중국 당국의 국가관리 능력, 체제관리 능력에 대한 회의론은 도처에서 ‘위기론’으로 증폭돼 떠돈다. 미국을 중심으로 몇 년 전부터 들먹여지는 ‘차이나 리스크’가 대표 격이다. 에너지 공급 부족과 만연한 실업 문제, 수자원 오염 등 환경 문제와 경작지 감소 등으로 인한 중국 농업의 괴멸, 급성중증호흡기증후군(사스)과 에이즈·조류독감 등 해마다 경제성장률을 1% 가까이 잠식해버리는 질병, 금융 불안, 관료사회의 만연한 부패, 격차 사회…. 이 모든 사회적 모순이 ‘병목’처럼 한 군데로 모이고 있다는 얘기다. 그나마 다행스런 것은 중국 당국의 체제·위기 관리 능력을 붕괴시킬 만한 사회적 불안정이 올림픽 이후에도 이어질 것으로 볼 근거는 없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중국 인민대의 한 교수는 “평형 속의 위기”라고 표현했다.

이희옥 교수는 “올림픽 이후 중국이 일대 혼란에 휩싸일 것이란 지적에 대해선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중국 당국이 옳은 방향에서 위기를 관리해낼 것인가에 대해선 판단을 유보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중국은 이제껏 그래왔듯 올림픽 이후에도 ‘중국식’으로 점진적 변화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좋은 발전’으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다. 30년 세월 진화를 거듭해온 ‘중국식 모델’의 실험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게다.


3인3색 ‘애국주의’를 말하다-① 문화대혁명 세대 리다퉁

너희는 허위를 믿고 있다, 우리처럼


△ 문화대혁명 세대 리다퉁

리다퉁은 해직 언론인이다. 중국 공산당 청년조직(공청단)의 기관지 <중국청년보>가 발행하는 주말판 부록 <빙점>의 편집장 출신이다. 지난 2006년 초, 중국의 공식 역사 교과서와 다른 시각으로 근대사를 기술한 광저우 중산대학의 위안웨이스 교수의 기고문을 게재해 큰 파문을 몰고 왔다. 이 사건으로 그는 편집장의 직위에서 해임됐다. 현재 그는 영국의 〈BBC방송〉 인터넷 중문판 등 주로 해외 매체에 글을 기고하는 독립언론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나는 홍위병 출신이다. 1966년 문화대혁명이 일어났을 때 고등학생이었다. 그 시절 누구나 그랬듯 마오쩌둥 주석의 말이 절대 진리라고 믿었다. 마오 주석의 말을 충실히 따르고 행하는 것은 나 같은 홍위병 세대들에게는 최고의 애국주의를 실천하는 것이었다. 마오 주석이 농촌으로 가서 기층민중의 삶을 이해하고 그들의 계급성을 배우라고 했을 때, 우리는 주저 없이 ‘하방’이라는 것을 했다. 당시 내가 하방했던 곳은 네이멍구 산골마을이다. 그곳에서 무려 11년간이나 양치기 생활을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우리 세대는 근 10년 이상 자신을 잃어버린 세대다. 문화대혁명의 광풍이 끝나고 나서야 모두들 ‘속았다’는 것을 알았고, 철저히 이용당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실 내가 현재 중국의 ‘80후세대’라고 불리는 신세대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도 그렇다. 너희가 알고 있는 사실, 진실이라고 믿는 것들은 대부분 허위일지도 모른다는 것. 우리도 그랬으니까.

당시의 중국과 지금의 중국은 천지개벽을 했을 만큼 다르다. 하지만 여전한 것은 공산당 일당독재와 ‘표준답안’을 강요하는 교육체계다. 그때나 지금이나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우리 중화민족은 예전에 서구 열강에 의해 많은 치욕과 굴욕을 당했다. 중화민족은 ‘굴기’해야 한다”라고 앵무새처럼 반복해서 말한다. 중국에서는 초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 정치 시험을 봐야 한다. 정치 시험은 세대를 거듭해서 중국 젊은이들에게 공산당이 전달해주는 일방적인 사고체계와 지식을 주입시키고 있다. 서로 다른 의견도 허용하지 않는다. 오로지 ‘표준답안‘에 근거해 사고해야 한다.

최근 ‘80후세대’들에게 나타나고 있는 민족주의·애국주의 광풍만 해도 그렇다. 우리 세대보다 더 개방적인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우리보다 더 많은 정보와 사실을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애국주의라는 미명 하에 서방 기업 불매운동에 참가하지 않거나 반대 의견을 내는 사람들을 거침없이 ‘매국노’라고 욕한다. ‘표준답안’에 길들여진 그들에게 자신과 다른 의견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은 상식 밖의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신세대들은 인터넷을 통해 세계의 모든 정보와 지식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이 보는 인터넷 정보가 당과 정부에 의해 통제된 것이라는 사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80후세대’들은 또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세대다. 그들은 카르푸 불매운동을 하며 반서방 구호를 외치지만, 집으로 돌아가면 토플이나 영어책을 펴놓고 유학을 준비하거나 더 수입이 좋은 직장을 구하려고 혈안이 된다. 그들이 사회적 약자를 위해 시위를 벌이거나 발언하는 걸 본 적이 있는가? 그들의 애국주의에는 진정성이 없다. 1998년에 유고슬라비아 중국대사관을 미군이 오폭했을 때, 수많은 대학생들이 미 대사관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다음날에는 바로 그 자리에 가서 미국행 비자를 받으려고 줄을 섰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그 어떤 세대보다도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계산할 줄 안다. 중국식 교육이 낳은 비극이다.



3인3색 ‘애국주의’를 말하다-② 톈안먼 세대 시옹웨이

꿈과 관용이 무너진 폐허


△ 톈안먼 세대 시옹웨이

시옹웨이는 중국 풀뿌리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혼자 악전고투하고 있는 ‘시민운동가’다. 1968년생인 그는 89년 톈안먼 사태를 경험한 이른바 ‘톈안먼 세대’이기도 하다. <후베이경제보> 기자와 <법제일보> 기자를 지내기도 했다. 2002년 신문사에 사표를 낸 뒤 베이징대 뒷골목 골방에 틀어박혀 ‘촌민위원회선거법’ 입법 건의안을 혼자 연구해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후 중국의 기층 민주주의 정착과 그것의 실현을 위한 법·제도 연구를 목표로 활동해왔다.

베이징대에 가면 ‘국가의 흥망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 우리 세대의 특성을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문구다. 개혁·개방 물결과 함께 자라난 우리는 국가와 사회에 많은 희망과 책임감을 느끼며 성장했다. 서방에 대해서도 비교적 친근한 느낌이었다. 서방의 이론과 관점, 책을 읽고 민주주의나 법제도 등을 배웠기 때문이다. 개혁·개방이 중국을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 믿었지만, 톈안먼 사건을 거치며 그런 꿈과 희망이 무너졌다. 많은 이들이 정치에 대한 관심을 끊었고, 심지어는 후배 세대에게 정치보다는 개인에 관심을 가지라고 조언하기도 한다. 중국의 정치 현실이 우리를 절망하게 했다고도 할 수 있다.

‘80후세대’는 확실히 우리 세대와는 다른 걸 느낀다. 국가나 사회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더 중요시한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을 구하고, 좋은 차와 집을 구하는 데 골몰해있다. 물론 환경적 차이는 있다. 우리만 해도 대학을 나오면 직장을 구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졸업을 하면 일자리를 국가가 분배해줬기 때문에 개인의 현실적인 문제는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세대는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직장 문제를 고민하고, 미래의 삶에 대해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80후세대’는 반서방주의자들이 많다. 서방국가가 뭐 대단하냐는 식이다. 이미 인터넷을 통해 또는 해외여행을 통해 다 알고 있다고 말한다. 미국이나 서구로 유학을 가는 이유는 개인적으로 좋은 직업을 갖고 많은 수입을 얻기 위해서다. 우리 세대는 유학을 가서 선진적인 것을 배워와 조국을 위해 일하기를 바랐다.

나 역시 티베트 독립에 반대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티베트인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점이다. 왜 우리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혹시 우리가 모르고 있는 사실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하는데 지금 젊은 세대들은 그런 생각은 안중에도 없다. 한 사회에 서로 다른 의견이 존재할 수 있고 그것들을 존중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태도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미국 유학생 왕첸위안(듀크대에 재학 중인 중국 유학생으로 티베트 사건 당시 티베트 지지 시위를 해서 중국 누리꾼들의 ‘마녀사냥’ 대상이 됨) 사건을 봐라. 얼마나 폭력적이고 맹목적인 행동인가.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들의 행동을 연상시켰다.

올림픽을 앞두고 현재 중국은 극도의 안보비상에 걸려 있다. 우리가 왜 신장이나 티베트의 테러분자들의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올림픽 테러에 떨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는 대부분 ‘기껏 먹여주고 재워줬더니 이제 와서 뒤통수를 친다’고 그들에게 분노하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얼마만큼 그들에게 관용을 베풀었는가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을 욕하기에 앞서 우리는, 그리고 신세대들은 우리 안의 비이성적이고 맹목적인 애국주의의 폐해부터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



3인3색 ‘애국주의’를 말하다-③ 80후세대 선쩐화

중국은 서방세계를 닮아선 안된다


△ 80후세대 선쩐화

선쩐화는 각 경기장에서 다양한 올림픽 풍경을 기록하는 ‘사진 자원봉사자’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그는 역사적인 현장을 자신의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해 있다. 올해 7월 베이징대를 졸업한 그는 올림픽이 끝나고 9월에 같은 대학 전자과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이다. 3년 뒤 석사 학위를 받고는 미련 없이 학교를 떠나 ‘돈 버는 데’ 주력할 생각이다. 인터뷰 사진을 찍으려 하자, 그는 입고 있던 웃옷을 벗고 ‘아이 러브 차이나’ 로고가 새겨진 옷으로 갈아입었다. ‘사진 효과’가 훨씬 좋기 때문이라며.

‘3·14 티베트 사건’을 통해 서방 매체의 진면목을 알게 됐다. 예전에는 서방 매체가 중국 매체보다 훨씬 더 사실 보도를 하고 객관적이라고 생각했지만, 티베트 사건은 이런 생각이 완전히 잘못됐다는 것을 일깨워줬다. 카르푸 불매운동 등 일련의 반서방·민족주의 조류를 불러일으킨 것은 서방 매체의 왜곡 보도가 주요한 원인이다. 우리는 불매운동을 통해 중국인들의 분노와 항의를 표현하고자 했다. 우리 행동이 유치하고 비이성적인 측면이 있다는 건 알지만, 서방 매체의 악의적인 반중국 보도는 더 유치하고 악랄하다.

우리는 서방세계에 대해 이전 세대들보다 비교적 자세하고 객관적으로 알고 있다. 세계화된 분위기에서 자랐고 또 우리 중 상당수는 해외에 가봤기 때문이다. 나 역시 유럽 대부분 국가를 가봤다. 내가 본 서구는 우리에 비해 그다지 대단하거나 놀랄 만한 세계가 아니었다. 물질적으로 좀더 풍요롭고 더 질서 있는 사회라는 외형적인 차이 외에 그들에게서 배울 만한 것은 딱히 발견하지 못했다.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 기성세대들은 우리를 ‘소황제 세대’로 칭하면서 개인적이고 이기적이라고 비판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에 쓰촨에서 지진이 일어났을 때, 주변의 많은 친구들은 쓰촨으로 봉사활동을 떠났다. 학생회 소속 한 협회는 일주일 동안 약 100만위안(약 1억5천만원)이나 모금을 했다. 우린 국가나 이웃의 아픔에 결코 무관심한 세대가 아니다.

내가 잠시 실습생으로 있던 회사의 사장은 1989년 톈안먼 사태의 주력군이었다. 하루는 그와 얘기를 나누던 중 나에게 이런 말을 들려줬다. “톈안먼 사건 뒤 우리는 모두 생각을 바꿨다. 그전만 해도 국가가 가장 중요하고 개인의 운명은 곧 국가의 운명에 달렸다고 여겼다. 이 때문에 어떤 일을 하건 또는 어떤 생각을 하건 가장 먼저 국가에 무슨 이익을 가져올 수 있을지를 고려했다. 하지만 톈안먼 사건을 겪으면서 우리는 국가의 실체를 알았다. 그 뒤 나는 정치에 대한 일체의 관심을 끊고 오로지 돈 버는 데만 주력했다”고. 톈안먼 세대의 아픔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보기에 너무 순진하고 단순했던 것 같다. 정치만으로는 아무 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 경제가 발전해야 정치도 변하고 사회도 바뀐다. 경제가 발전하지 않으면 민주정치 발전도 없다.

인터넷을 믿는다. 인터넷을 통해 중국 안팎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진상을 알 수 있다. 중국은 언론자유가 많이 제약돼 있다는 것도 알고, 인터넷 역시 통제 대상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런 통제와 감시망이 인터넷 세계를 완전히 가둘 수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우린 수시로 외국에 나가 있는 친구들과 전자우편으로 연락하고, 외국 위성 텔레비전도 시청할 수 있다. 직접 해외여행을 가기도 한다. 정부는 더 이상 정보를 차단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