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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표지이야기 > 표지이야기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7년03월22일 제6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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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가 ‘모범 사례’?

투발루 이민을 받아준다는 건 오보…대부분 방문비자로 온 저임금 노동자

엑소더스는 시작됐다. 이미 투발루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수가 뉴질랜드에 산다. 오클랜드 서부 와이타케레. 뉴질랜드에 사는 투발루인 중 절반이 커뮤니티를 이뤄 살고 있는 곳이다. 이들은 해수면 상승이 일으킨 최초의 ‘지구 온난화 난민’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오클랜드에서 만난 투발루인들의 삶과 생각을 그들의 육성으로 재구성했다. 편집자

▣ 오클랜드(뉴질랜드)=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두 아들 번 돈으로 일곱식구가 산다”

바이릴로 티마이오(50·푸나푸티섬 출신, 다섯 아이의 아빠)

난 투발루에서 살 적에 유일한 통신회사 ‘투발루 텔레콤’의 전무였다. 아내는 재정부 공무원이었고, 아들은 통계국에서 일했다. 10여 년 전부터 섬에 이상한 변화가 찾아왔다. 우리는 매년 높아지는 조수를 확인했고, 테니스장과 도로가 물에 잠기는 모습을 지켜봤다. 두려웠다. 그러던 중 기상청 연구원을 만났다. 그가 자료를 보여주면서 그랬다. 섬이 생각보다 빨리 사라질 거라고.


△ 80만원 월급으로 가족 부양의 큰 몫을 맡게 된 바이릴로 티마이오의 아들 안티파. 그래도 티마이오 가족에게는 투발루보다 뉴질랜드가 안전하다.

2005년 12월10일, 우리 가족은 기득권을 버리고 조국을 떠났다. 아내와 세 아들 그리고 두 딸 이렇게 일곱 식구는 뉴질랜드에서 새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투발루에서 피지까지는 1200뉴질랜드달러(80만원·이하 원화로 표기함)짜리 비행기 대신 3만원짜리 배를 탔다. 3시간 거리를 사흘 걸려서 갔다. 투발루에서 뉴질랜드 오클랜드까지 교통비로만 1200만원이 들었다. 피지에서 뉴질랜드까지는 왕복 항공권을 샀다. 돌아갈 계획은 없었지만, 공항 입국심사대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고국에서 모은 쌈짓돈은 구멍 난 독에 물 붓듯 없어진다. 그나마 싼 집으로 옮겨서 다행이다. 예전에는 주당 23만원을 냈는데, 지금은 13만원만 내면 된다. 다행히 지난해 말 두 아들이 일자리를 구했다. 큰아들 리토(22)는 코카콜라 공장의 경비원이다.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하루 12시간 일한다. 사흘 일하고 사흘 쉬고. 그래서 한 달에 130만원을 번다. 아들은 “좋은 직장”이라고 좋아한다. 고국에선 남들이 선망하는 공무원이었는데. 작은아들 안티파(18)는 핸더슨 쇼핑몰의 푸드코트에 일자리를 구했다. 한 달 80만원을 번다. 그러니까 두 아들이 번 210만원으로 일곱 식구가 산다. 나는 아직 실업자다. 글쎄,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지.

방문 비자로 들어왔기 때문에 4월5일까지 뉴질랜드를 떠나야 한다. 체류 기간이 석 달인데, 벌써 세 번을 연장했다. 중간에 잠깐 불법 체류자가 되기도 했다. 물론 어렵게 입국한 이 나라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2~3년 전 이민국 단속이 심했을 때를 이야기하며 앞으로 숨어 지내야 할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상관없다. 우리 가족은 여기서 불법 체류자가 될 것이다.

뉴질랜드가 힘들기는 해도 물에 잠기는 투발루보다 안전하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여기에 왔다. 투발루엔 미래가 없으니까. 사실 나는 벌써부터 투발루가 그립다. 아이들이 잘 정착해준다면 돌아가고 싶다. 그때까지 나의 조국은 남아 있을까.

“지구 온난화는 자본의 해결사 노릇한다”

팔라 하울랑기(42·뉴질랜드 서비스·음식업노조 활동가, NIU FM <투발루의 소리> 진행자)

나는 25살 때 뉴질랜드에 온 이민 1세대다. 1994년에 영주권도 받았다. 그때만 해도 지구 온난화라는 말은 없었다. 우리 가족은 그저 나은 삶을 위해서 건너왔다. 다른 사람이 그랬듯 난 딸기 농장에서 일을 시작했고, 수확철이 지나면 빌딩 청소를 했다. 노조 회의에 대표자로 나간 게 인연이 돼 노동운동을 시작했고, 2001년부터는 직업적인 노동운동가가 됐다.


△ 팔라 하울랑기는 투발루어 방송 프로그램의 진행자다. 그는 투발루인 이주 노동자들이 뉴질랜드 노동자와 똑같은 대우를 받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뉴질랜드에 사는 투발루인들은 대부분 저임금 노동자다. 불법 체류자들은 취업 비자 증빙을 요구하지 않는 농장에서 딸기와 포도를 딴다. 취업 비자가 있거나 영주권이 있는 투발루인들은 빌딩 청소나 양로원 도우미를 한다. 법정 최저임금을 가까스로 면한 직업들이다. 이 나라 법정 최저임금은 시간당 10.25달러(6700원)다. 청소용역 노동자는 이보다 70센트 많은 10.95달러를 받는다. 이 돈을 받고 생활이 될까. 그래서 나의 투발루 형제들은 투 잡스, 스리 잡스가 기본이다. 낮에는 농장에서 딸기를 뽑고, 밤에는 불 꺼진 빌딩에서 버퍼질을 한다. 이렇게 일하니 삶의 질은 바닥을 기고 있다. 이들이 건강을 챙길 시간이 있겠는가? 부모와 자식이 대화할 시간이 있겠는가? 섬나라 전통문화를 지킬 여유가 있겠는가? 난 매주 금요일 밤 9시에 투발루어 방송을 진행한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이민자들이 안식을 얻길 바란다.

제1세계가 일으킨 지구 온난화는 제3세계의 값싼 노동력을 제1세계로 공급시키는, 자본의 해결사 노릇을 하고 있다. 넘치는 바닷물에 쫓겨나다시피 온 나의 투발루 형제들이 뉴질랜드 노동자와 똑같은 대우를 받고 살면 좋겠다.

“인간과 지구의 관계가 깨졌다”

수아말리 이오세파(49·누이섬 출신·오클랜드 투발루인 교회 목사)

1991년 누이섬에 사이클론이 불었다. 파도가 양 방향에서 다가오더니 하나로 만나 섬으로 몰아닥쳤다. 만조인 4시가 되자 작은 섬은 바닷물에 잠겼다. 코코넛나무가 쓰러지고 마누아파(마을회관)의 벽이 무너졌다. 목사였던 나는 주민들에게 생필품과 식료품을 모아 교회로 모이라고 했다. 나도 카누를 타고 마을 곳곳을 헤집으며 생필품을 모았다. 밤 10시, 밀물이 물러나고서야 나는 안심할 수 있었다. 그 뒤로 사람들은 달을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둥근 원에 노란빛이 더해질수록 사람들은 긴장하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지구 온난화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투발루보다 평화로운 나라는 없다. 우리의 자원은 열대 숲이고 코코넛나무이며, 섬 앞의 초호(lagoon)이고 거기서 하늘거리는 물고기들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술 취한 사람이 생기고 바닷물이 차올랐다. 세계화의 물결이 온난화와 함께 들이닥쳤다. 난 1999년 투발루를 떠났다. 이곳에서 나의 사명은 인간과 지구, 하나님 이렇게 세 주체의 관계를 온전하게 회복하는 것이다. 지금은 인간과 지구의 관계가 깨졌다.

나는 주중엔 병원에서 일하고 주말엔 교회에서 동포들을 돌본다. 투발루인 97%가 기독교인이다. 고국에서처럼 동포들은 토요일에 축구공을 차고 일요일에 예배를 드린다. 투발루인들은 교육·노동·주택 등 모든 분야에서 약자다. 뉴질랜드는 투발루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 길 가다가 뺨 맞는 사람을 그냥 쳐다보고 가는 게 뉴질랜드의 행태다. 뉴질랜드는 투발루인들을 돌볼 의무가 있다.


뉴질랜드 “어떤 이주 협정도 체결 안 해”

2001년 11월 몇몇 국내외 언론에는 뉴질랜드가 지구 온난화로 섬이 사라지는 투발루 국민을 받아들인다는 기사가 났다. “투발루 지도부는 수년 전부터 오스트레일리아에 주민들을 받아달라고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대신 뉴질랜드에서 내년부터 이민 쿼터만큼 받아들이기로 해 투발루 주민들의 ‘탈출’이 가능해졌다.”(<동아일보> 11월17일 10면)

미국 워싱턴에 있는 환경단체 ‘지구정책연구소’의 발표는 국내외 언론의 인용과 인용을 거듭하면서 사실로 굳어졌다. 이제는 웬만한 지구 온난화 자료에는 ‘뉴질랜드의 모범사례’가 인용된다.

그런데 이상했다. 오클랜드에서 만난 투발루인들의 상당수는 불법 체류자들이었다. 그들은 석 달짜리 방문 비자를 어렵사리 받고 입국해 친척이나 친구 집에서 얹혀살았다. 투발루와 뉴질랜드 정부가 ‘아름답게’ 합의한 기후난민 이주대책의 결과라면, 이들의 삶은 안정적이고 행복해야 했다.

취재진은 확인에 들어갔다. 파나파세 넬레손네 투발루 정부 총비서는 “정부가 투발루 국민의 집단이주를 뉴질랜드에 공식적으로 요청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취재진은 뉴질랜드 정부에도 사실 확인을 요청했다. 외교통상부 환경국의 스튜어트 다이몬드 수석정책담당관이 이메일을 보내왔다. “뉴질랜드는 투발루와 해수면 상승과 관련한 어떤 이주 협정도 체결한 적이 없습니다. 언론과 인터넷에서 떠도는 이야기입니다.”

언론의 오해는 2002년 7월부터 뉴질랜드가 시행한 태평양이주규정(PAC)에서 비롯됐다. 뉴질랜드는 불법 체류자가 급증하자 남태평양 국가에 무비자 제도를 폐지하고 엄격한 조건에서 발급하는 방문 비자 제도를 도입했다. 대신 PAC를 시행했다. PAC는 피지, 사모아, 통가, 키리바시, 투발루 등 5개 섬나라에 매년 ‘취업 이민 쿼터’를 할당하는 것이다.


△ 수아말리 이오세파는 오클랜드 투발루인 교회의 ‘자원봉사’ 목사다. 그는 “뉴질랜드가 투발루인들을 돌볼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투발루에는 매년 75명이 할당된다. 하지만 조건은 까다롭다. 영어 능력이 우수한 18~45살의 젊은이로서 뉴질랜드 기업의 ‘취업 초청’이 있어야 하며, 연봉 2만8천달러(1800만원) 이상을 벌어야 한다. 이 조건을 3년 동안 만족시켜야 영주권 신청 자격을 준다. 수아말리 이오세파 목사는 “영구 체류할 기회를 제공하기는 하지만, 평범한 투발루인들이 취업 초청을 받는 건 여간 힘들지 않다”고 말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투발루인들은 바이릴로처럼 방문 비자로 일단 들어온 뒤 무작정 눌러앉는 방법을 택한다. 그리고 방문 비자를 취업 비자로 전환해 체류 기간을 연장하거나, 영주권을 지닌 동포와 결혼해 영주권을 얻거나 아니면 아이를 낳아 뉴질랜드 시민으로 만드는 방법을 시도한다. 이도저도 못하면 이민국 직원의 눈을 피해다녀야 한다.

뉴질랜드에 사는 투발루인은 늘어나고 있다. 1991년 430명이던 것이 2001년 1960명, 2006년 2628명으로 껑충 뛰었다. 2001년에는 한 해 42명이었던 이주 인구가 2003년 267명, 2005년 160명이었다. 하지만 불법 체류자까지 포함하면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투발루인들은 뉴질랜드 사회의 저임금 계층을 형성하고 있다. 2001년 인구센서스 보고서를 보면, 투발루인 노동자의 연평균 임금은 1만6300달러(1060만원)로 뉴질랜드인 노동자의 연평균 임금 2만7700달러(1800만원)의 절반을 조금 넘는다. 급증하는 이주로 인해 가구 내 과밀현상은 이들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다. 와이타케레의 조그만 주택 하나에 투발루인 10명 안팎이 모여 산다. 2001년 조사에서도 두 가족이나 그 이상이 한집에 모여 사는 비율이 38%에 이르렀다. 태평양 이주민 그룹 가운데 최고다. 수아말리 이오세파 목사는 인상 깊은 말을 했다. “처음 뉴질랜드에 들어온 사람은 친척이나 친구 집에 얹혀산다. 그래서 작은 집에 8~10명이 산다. 그중에 일하는 사람은 2~3명뿐이고, 불법 체류자는 5~6명이다. 피선거권을 가진 사람은 극소수다.”

가해자의 나라로 이주해 빈곤층 형성

지구는 따뜻해지고 바닷물은 차오르고 투발루인들은 뉴질랜드로 향한다. 하지만 뉴질랜드 정부는 이들의 인도적 수용에 대해서 별 말이 없다. 마이 말라우말라우 이민국 담당관은 “현재로서 태평양 국가들과 역사·문화적 관계를 고려해 취업·이주 프로그램인 PAC를 시행하고 있을 뿐”이라며 “그 밖에 기후난민을 받아들일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지구 온난화는 일부 지역의 선진 공업국가들이 일으킨 지구적인 피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가장 큰 피해자는 산업화의 과실을 맛보지 못한 투발루와 같은 나라다. 지금 투발루인들은 가해자의 나라로 이주해 빈곤층을 형성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구 온난화의 희생양임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큰 보상을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좀더 쉽게 다른 나라에서 살 수 있기를 바란다. 투발루인들의 작은 소망 대로, 21세기의 ‘기후난민’을 조건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지구 온난화 시대의 역사적 정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