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목차 지난호보기 독자마당 기사에대한의견

한겨레21 구독신청 sitemap

e-Book
표지이야기 특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문화/과학 인터뷰 스포츠/건강 사진/만평 칼럼 독자마당
Home > 표지이야기 > 표지이야기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5년02월28일 제549호
통합검색  검색
대한민국 초딩은 무엇으로 사는가

디지털 문화 접하며 강력한 소비 계층으로 등장… 휴대전화·MP3·게임 등 초등학생 대상 마케팅 번창

▣ 글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경기도 군포시 산본 신도시에 거주하는 양미란(42)씨는 맞벌이로 아이 둘을 키우며 요즘처럼 심란한 기분에 빠진 적이 없었다. 문제의 발단은 10년 동안 운행한 중소형 자동차를 바꾸려는 데서 출발했다. 차량 교체 의사를 밝혔을 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남편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어떤 기종이든 괜찮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초등학교 5학년인 첫째아들이 차를 바꾸려 한다는 말을 했을 때 차종에 사양까지 결정해서 날마다 ‘압력’을 넣었다.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 기종에 다양한 멀티미디어 기능을 구현할 수 있는 차량용 음향·영상(AV)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으레 하는 ‘떼’쯤으로 여겼다.

차 바꿀 때 아이들이 무섭다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이 되는 아들은 결사적이었다. 며칠은 침묵 시위를 벌이더니 학원을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오래된 차량용 VCD 플레이어로는 볼 게 별로 없으니 차량을 바꿀 때 터치스크린 LCD 모니터로 인터넷 접속까지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한마디로 말해 차량을 바꿀 것이면 널찍한 차에서 최신 기종의 멀티미디어 기기를 달아달라는 것이었다. 그에겐 자동차가 이동 수단이라기보다는 디지털 체험 공간이었던 셈이다. 기껏해야 일주일에 한두 차례 자동차를 타는 아들을 위해 3천여만원을 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들 탓만 할 일도 아니었다. 2년 전 VCD 플레이어를 설치해 이동 중에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영어를 가까이 하도록 한 것은 바로 자신이었다.

사실 아들 녀석의 디지털 기기에 대한 관심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시작됐다. 명절 때 만난 사촌형 어깨 너머로 비디오게임에 빠져든 아들은 할인매장의 게임 전용 콘솔인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매장을 그냥 지나지 못했다. 양씨가 매장을 둘러보는 시간 내내 게임기를 떠나지 못했다. 급기야 아무런 연락도 없이 홀로 할인매장을 찾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 이상 게임기 구입을 늦추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제품을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게임기를 구입한 뒤로 집에는 각종 비디오게임이 수북이 쌓여갔다. 물론 하루에 한 시간 이상 사용하지 않도록 했지만 완벽한 규제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 전자상가는 초등학생들을 디지털 세계로 유인한다. 초등학생들이 게임 체험대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게임폰 출시되며 1013세대에 관심

그러다가 지난해 늦가을부터는 하루가 멀다 하고 MP3 타령이었다. 당시 아이리버의 하드형 MP3 플레이어가 출시되자 아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MP3 구매욕을 내비쳤던 것이다. 수십만원짜리 기기를 들고 다니는 것은 범죄의 표적이 될 수도 있었다. 게다가 PC방을 전전하다 잃어버릴 수도 있었다. 그런데 성탄절을 앞두고 MP3까지 사주고 말았다. 아들은 인터넷을 통해 잃어버렸던 MP3를 망가진 채로 되찾아 땅에 묻은 뒤 제조사에 “기기에 위치추적 장치가 달려 있었다면 되찾을 수 있었다”며 생트집을 잡은 ‘아이리버 소년’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설령 기기를 잃어버려도 ‘보상’받을 길이 있다며 양씨의 마음을 돌리는 데 성공했다. 이런 엽기적인 일이 초등학생을 키우는 집에서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자식에 대해서라면 무엇 하나 소홀히 하고 싶지 않던 부모들이 자녀의 무차별적인 소비 공세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유아기 때부터 각종 비디오테이프에 길들여진 아이라면 대형 서점을 찾아도 DVD 코너를 지나치지 않는다. 뭐든지 해주는 부모 앞에서 떼를 쓰면 통하지 않는 게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시간에 쫓기며 사는 부모들이 많기에 매장 안에서 아이들을 설득하기에도 역부족이다. 일단 상황을 종료시키는 게 급선무다. 초등학생을 마케팅 대상으로 삼은 업체들은 자녀에게 무한 제공하려는 부모들의 마음을 움직일 필요가 없다. 따로 부모에게 접근할 방법을 찾지 않아도 아이가 알아서 판촉에 나서기 때문이다.

최근 디지털 기기 업체들은 소비의 심리 변화를 주목할 수밖에 없다. 가정에서 구매 결정권을 행사하는 데 여성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다는 것은 오래된 일이다. 실제로 여성은 판매상품의 80%에 영향을 미치거나 실제로 구매를 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면서 럭셔리하고, 예쁘고, 재미있고, 자신의 개성에 어울리는 감성적인 소비를 즐긴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정에서는 여성의 구매 결정권에 깊은 영향을 끼치는 게 아이들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만일 디지털 기기를 구입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초등학생 자녀에게 먼저 의사를 타진하는 게 순서로 자리잡고 있다.


△ 우리 아이를 위한 기기 선택. 부모는 디지털 기기 구입에 앞서 자녀가 필요성을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동안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은 13살에서 18살까지 혹은 20대 초반까지를 주요 고객으로 삼았다. 단말기 교체 주기가 가장 빠르기 때문이다. 카메라폰이나 MP3폰 등이 주류를 이룬 것도 이들을 공략하기 위한 제품 전략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하반기부터 게임폰이 잇따라 출시되면서 1013세대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게임폰은 3D 그래픽 가속칩을 탑재해 3차원 입체영상으로 각종 3D게임을 즐길 수 있다. 게임기를 떠올리게 하는 원형 휴대전화인 것이다. 초등학교 4학년인 이지환(11)군은 생일선물로 게임폰을 받았다. 요즘 이군의 PC방 친구들도 부모에게 게임폰을 사달라고 말할 것에 쏠려 있다.

물론 일반 가정에서 40만원대의 게임폰을 초등학생 자녀를 위해 쉽게 구입할 수는 없다. 하지만 휴대전화가 없으면 끼리끼리 어울리기 힘든 교우관계를 생각하면 게임폰 구입을 남의 일로만 여길 수도 없다. 서울 강남의 초등학교 고학년 학급이라면 적어도 절반가량의 학생이 휴대전화를 지니고 있다. 맞벌이를 하는 가정이라면 초등학생에게도 휴대전화가 필수품 구실을 한다. 주변에 휴대전화를 가진 친구들이 수두룩하다 보니 부모와 통화하는 것보다 친구끼리 연락을 주고받는 데 이용하는 게 많다. 인터넷에서 쪽지를 주고받듯이 이동 중에 문자를 보내며 쉽게 친구를 사귀기도 한다. 학교 앞 서점 게시판에 메모를 남겼던 부모들로선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서울 강남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김도연(11)양은 2학년 때부터 휴대전화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요즘 그의 통화료는 한달에 4만원가량 나온다. 여기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게 문자를 보낸 요금이다. 하루에 20~30개가량 보내니까 한달에 700개 이상 보내는 셈이다. 여기에서 매달 무료로 보낼 수 있는 100개를 빼더라도 600개 이상은 요금을 지급해야 한다. MP3폰 이용자를 위한 이벤트에 참여해 코요테의 <빙고>나 브리트니 스피어스 <톡식>(Toxic) 등을 공짜로 내려받았지만 가끔은 벨소리나 게임 등을 유료로 이용하기도 한다. 이런 정도의 휴대전화 이용은 다른 초등학생들에 비해 저렴한 편에 속한다.

캐주얼 게임에 열광하다

이처럼 초등학생들은 휴대전화의 부가 서비스를 많이 이용한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휴대전화를 통해 첨단 기술을 체험하며 다양한 문화를 즐기는 것이다. 대부분의 휴대전화에 카메라가 장착됐기에 초등학생들은 ‘버디버디’(www.buddybuddy.co.kr) 미니홈피에 사진을 스스로 올린다. 좋아하는 연예인이 있는 초등학생이라면 ‘싸이월드’(cyworld.nate.com)에 미니홈피를 장만하기도 한다. 이렇게 초등학생의 휴대전화 이용이 빈번해지면서 휴대전화 제조업체도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다. 팬택앤큐리텔 상품기획팀 한경동씨는 “기존 핵심 고객의 범위를 초등학생까지 넓혀가는 추세다. 어린이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시간표나 놀이 등의 기능이 있는 제품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한다.


△ 휴대전화는 초등학생의 필수품으로 자리잡고 있다. 휴대전화로 게임을 즐기는 학생을 친구들이 바라보고 있다.

현재 MP3 플레이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초등학생들은 동영상 재생기(PMP)나 디지털 멀티미어디어 방송(DMB)폰의 잠재적 고객이 될 가능성이 크다. 요즘 초등학교에서는 4학년만 되면 과제물 발표를 할 때 도표와 사진 등을 넣어 만든 파워포인트로 ‘브리핑’을 하는 경우가 흔하다. 어려서부터 시각 영상물에 길들여져 단순한 텍스트나 음악 등을 뛰어넘어 멀티미디어적 사고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신기술의 직접적인 수혜자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이런 까닭에 PMP 제도업체들은 교과과정 학습이나 애니메이션 등에 관련된 콘텐츠를 확보해 초등학생들을 공략하려고 한다.

이미 막강한 소비력을 지닌 ‘소비자 그룹’에 합류한 초등학생들도 적지 않다. 주로 캐주얼풍의 ‘다중접속 온라인 게임’(MMORPG)을 통해 거대한 소비집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어려서부터 영상매체에 길들여진 초등학생이라 해도 유료 게임에 빠져드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인터넷 오락실 개념을 도입한 넥슨의 ‘크레이지 아케이드-비엔비’가 국내 동시 접속자 수 35만명을 기록해 ‘포트리스’와 ‘리니지’의 기록을 갈아치운 데 이어 ‘메이플스토리’는 초등학생들의 절대적 지지를 바탕으로 게임산업에서 원소스 멀티유스 시대를 선도하고 있다.

그동안 캐주얼 게임은 다른 게임에 비해 이용자들의 ‘충성도’가 높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다. 이용자들의 연령대가 낮다 보니 동시 접속자 수가 많아도 매출로 이어지기 힘들기도 했다. 그런데 아바타나 아이템 판매 등 소액 종량제 성격의 부분 유료화 모델을 도입하면서 동시 접속자가 매출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현재 메이플스토리만 해도 월 30억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메이플스토리 공략집, 캐릭터를 이용한 코믹북과 백과사전, 모바일 게임 등으로 쏠쏠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전국 10~14살 연령 300여만명 가운데 180여만명이 메이플스토리 회원으로 가입했다. 이들보다 어린 아이들도 코믹북에 열광하고 있다.

‘식탁 토론’이라도 벌여야

이렇게 초등학생 게이머가 늘면서 넥슨은 지난해 출판 완구 팬시상품 등의 저작권료로 10억원(총 매출액 100억원)을 챙겼다. 2003년에 견줘 40%가량 성장한 수치다. 캐주얼풍 게임으로 업계에서만 수익을 올리는 것은 아니다. 일단 높은 레벨까지 진출한 게이머들은 낮은 레벨에서 죽을 쑤는 초등학생들에게 아이디를 파는 일도 있다. 장거리에 주먹을 날리는 등 강력한 힘을 맛보려고 1만원을 주고 10레벨을 단박에 뛰어넘는 것이다. 서울시 마포구에 있는 한 PC방 주인은 “설 연휴를 보내며 세뱃돈을 챙긴 초등학생들이 게임카드를 구입하거나 아이디를 거래하는 일이 많아졌다”고 귀띔한다.

이렇게 초등학생들이 디지털 문화에 빠져들어 소비 계층으로 떠오르는 것은 바람직할까. 지난해 9월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천>은 우리나라가 앞선 브로드밴드 보급률을 이용한 초고속 인터넷으로 디지털 강국이 될 것을 예견했다. 이에 따른다면 초등학생들의 소비 문화는 디지털 강국의 ‘개국 공신’이 되려는 몸부림으로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나친 부모의 교육열이 부른 무분별한 소비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경기도 수원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수업 시간에 휴대전화로 문자를 주고받기에 혼냈더니 다음날 부모가 찾아와 ‘내 아이 문제에 끼어들지 말라’고 했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서구적 가치관도 전통적 가치관도 지니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고민을 토로했다.


△ 요즘 아파트 놀이터에서 초등학생을 찾기는 쉽지 않다. 지금 아이들은 학원과 PC방을 전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요즘 취학하는 아이들은 심각한 주의력 결핍증이 있다고 한다. 유아기 때부터 온갖 시각 영상물에 노출된 탓이다. 다양한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데 익숙하더라도 그 속에서 소비 욕구만 자극받는다면 헛일이다. 인터넷 게임을 넓은 화면에서 즐기고 싶다며 벽걸이형 PDP(Plasma Display Panel) 텔레비전 구입을 요구하는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언제까지 자녀와의 친밀도를 ‘경제력’으로 확인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 장은숙 사무처장은 “올바른 디지털 소비문화 기준을 세워서 적용해야 한다. 적어도 무엇 때문에 필요한지에 대해 ‘식탁 토론’이라도 벌이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초딩 폭풍’ 부는 정보의 바다

인터넷 사이트들을 점령하고 해킹 비법까지 갈고 닦는 무서운 세력

어쩌다가 순진무구의 대명사로 통하던 초등학생들이 ‘초딩’이라는 이름으로 정보의 바다 대재앙의 근원으로 불리게 됐을까. 국민학교가 초등학교의 전신인 것은 맞지만 초딩 이전에 ‘국딩’은 없었다. 애당초 초딩이 인터넷에서 노는 초등학생에서 비롯됐으니 당연한 일이다. 공교롭게도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개명한 시점(1995)과 인터넷의 대중적 보급 시기가 맞아떨어진다. 그리고 10년이 흐른 지금, 부모 몰래 만화책을 보거나 텔레비전 앞에서 넋을 놓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머지않아 ‘달고나를 먹는 아이’에 버금가는 추억거리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초딩들이 추억을 만드는 속도는 국민학생에 견줘 훨씬 빠를 것이다.

최근 인터넷 사이트 ‘마이팬’(www.myfan.co.kr)의 ‘포토 드라마’ 가운데 눈을 사로잡는 게 있다. 그것은 유머작가 후삶이 만든 ‘대한민국 X파일- 초딩의 모든 것’이라는 작품이다. 여기에서 작가는 초딩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준다며 수배 사진에 초등학생을 세워놓고 특이사항을 알려준다. ‘인터넷의 과잉 정보로 초등학생이 변이를 일으킨 형태. 부모님을 동반할 경우 엄청난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인터넷상에서 무개념, 비매너 악플 등의 스킬을 사용하고 도배라는 무서운 신공으로 게시판 등을 점령. 초딩 발견 즉시 가까운 경찰서로 신고 하지 말고 패라.’

그러면서 작가는 초딩 문화에 드러난 초등학생의 실체를 파헤친다. 이에 따르면 초딩은 자유로운 사고방식으로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하며 어린이다운 순진함으로 포장한 무한한 배포를 지녔다고 한다. 그럼에도 초딩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자랑스런 꿈나무’라는 게 작가의 견해다. 후삶이 말하는 초딩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만 일컫는 것은 아니다. 여기엔 초등학생다운 정서를 간직한 사람 모두가 포함된다. 부모가 도서 구입비로 준 문화상품권을 현금으로 ‘깡’해 게임카드를 구입하는 초등학생은 물론 막강한 비논리로 인터넷 게시판의 ‘저격수’ 구실을 하며 초등학생인 척하는 사람들까지 말이다.

초등학생들은 인터넷에서 자료를 검색해서 작성한 보고서를 학급 게시판에 올리는 것으로 숙제를 대신하기도 한다. 학교에서 치른 시험문제지를 집에 들고 오는 일도 없다. 학교 홈페이지 자료실에서 내려받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각종 학급교재에 ‘동영상 강의 CD’가 부록으로 붙어 있고, 진위를 확인하기 힘든 지식정보가 인터넷에 넘쳐난다. 웬만한 초등학교의 홈페이지는 인터넷 교육 사이트 ‘에듀모아’(www.edumoa.com) 등에 연계되어 있어서 입학과 동시에 자동으로 회원가입이 이뤄진다. 매달 3300원만 내면 다양한 교육 콘텐츠를 무제한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초등학생들이 교육 사이트에서 지식 탐구에 열을 올릴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미니홈피 게시판은 ‘드라마 동영상 퍼옴’ 일색이다. 그나마 에듀모아 같은 사이트는 교육용이어서 아이들이 오래 체류하지도 않는다. 놀이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사이트로 이동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채팅이 지루하거나 게임 레벨이 제자리이면 ‘디시인사이드’나 ‘웃긴대학’ 등을 기웃댄다. 이런 곳에서 아이들은 ‘버릇없고 무례한 초딩’이라는 선입견에 완강히 저항하거나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에 마구 덤벼들기도 한다. 아쉬운 것은 15살 미만 제한으로 인해 인터넷 서핑에 한계가 있다는 것.

실제로 한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만든 문집 ‘이것만은 하고 싶다’란에 ‘부모 동의 없이 사이트 회원 가입’을 적은 학생이 많았다. 그것도 완벽한 장벽은 아니다. PC방에서 중·고등학생들의 눈에 들면 ‘성역’에 들어갈 비법을 터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의 0교시 컴퓨터 수업에서 배울 수 없었던 ‘해킹’의 맛을 보는 것이다. 이들은 해킹 비법을 갈고닦아 학교 컴퓨터를 감염시키고, 맘에 들지 않는 친구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아내 거짓 정보를 흘리기도 한다. 그렇게 단련된 초등학생들이 ‘원조 초딩’으로 악명을 날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인터넷에 초딩이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