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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표지이야기 > 표지이야기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4년07월21일 제5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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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는 건 무임 승차가 아냐”

대법원 유죄 판결을 받은 최명진씨가 수감을 하루 앞두고 벗에게 띄우는 편지


▣ 최명진/ 여호와의 증인 신자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아깝다 야, 내가 면회 갈게!”

신문과 방송의 쇄도하는 인터뷰도 잦아든 저녁 무렵, 휴대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네 배웅의 말에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리던 지난 3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면서 공연히 코끝이 찡했다. 영장을 받은 때부터 지금까지 너와 나누었던 수많은 이야기들이 결코 평행선을 그은 것만은 아니었음을 확인하는 뭉클한 마음이 내일이면 수감돼야 하는 착잡함과 뒤섞이면서 만감이 교차하는구나.

그동안 너와 참 많은 얘기들 나누었구나, 그렇지? 네가 군복무를 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의 희생을 말하면, 나는 병역 거부로 공산 국가에서 야만적인 박해를 받으면서 죽어간 여호와의 증인들에 대해 말하곤 했지. 네가 “군복무자들이 지키는 사회에서의 무임 승차”라고 말하면, 나는 병역거부자라고 밝히는 이들에게도 시민권을 부여하는 미국의 개방적인 자세를 말하곤 했지.

그래도 판결문에서 희망을 발견했다

지금 쏟아지는 비를 보노라니 또 어느 곳에선가 수해가 나지 않았을까 염려된다. 몇해 전 수해 복구 활동을 하는 군인들과 함께하던 일 기억나니? 평화에 대한 문제에서 서로 신념을 표현하는 방법은 달랐지만 사회의 안녕과 평화를 바라는 똑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했던 그 순간이 지금 내리는 비에 실려 다시 떠오른다. 네가 남자다워질 수 있다는 기대감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으로 군생활을 그려볼 때, 난 교도소에 수감된 병역거부자 형들을 내 모습으로 그려볼 수밖에 없었단다. ‘외국처럼 내게도 나의 신념에 부합하는 제도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혼잣말을 수없이 되뇌었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을 부여하는 것이 그리도 힘든 일인지…. 너는 휴가 때면 늘 힘든 군생활에 대해 토로했지만, 너 역시 평화와 사회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으로 그 시절을 인내해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 군인들이 수해 복구를 하는 모습. 최씨는 병역 거부를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사진/ 한겨레 임종진 기자)

50여년간 처벌 일변도였던 우리 사회에서 처음으로 위헌심판이 제청되고, 그 한달 뒤 내가 보석으로 풀려났을 때 나는 많은 기대를 했다. 처음 우리의 병역 거부 입장이 언론에 알려졌을 때 “그럼 군대 가는 사람은 비양심이냐?”고 반문하시던 분들이 지금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워도 누군가 자신의 인생관에 바탕을 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면 그게 양심”이라고까지 이해를 해주고 계시니 말이지. 그러나 결국 헌법재판소의 판결도 보지 못하고 내일이면 수감될 생각을 하니 나의 기대가 너무 성급했나 보다. 대체복무를 허용하는 어떤 나라에서도 안보에 문제가 없었고, 또 우리 같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급증한 예가 없는데, 유독 우리 사회는 부작용을 너무 염려하니 면제를 받기 위해 갖은 부정직한 방법을 쓰는 사람들에 대한 원망도 생기더구나. 부작용에 대한 염려를 온통 떠안아야 하는 우리 처지가 하늘을 어깨로 떠받쳤다는 신화 속의 헤라클레스 같다는 생각도 들고.

줄기차게 내리는 빗줄기 속에 처음으로 가본 대법원의 대법정 천장은 어찌 그리 높아 보이던지, “기각”이라는 대법원장의 첫 마디가 얼마나 크게 들리던지…. 그러나 이어지는 판결문 요지를 들으면서 혹 내 후배들에겐 이런 악순환이 끊어질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을 발견한다. 그리고 지난 3년 동안의 고단했던 법정 투쟁의 시간에 대한 보상감과 또 앞으로의 수감 생활을 인내할 힘을 얻게 되는구나. 지난 판결들과는 달리 우리의 병역 거부 입장이 양심의 자유에 속한다는 것을 분명히 해 주었고, 기각에 찬성했던 분들 가운데 다섯분이 대체복무 제도 마련이 바람직하다고 말씀해주셨지. 결국 대체복무의 필요성에는 12명의 대법관들이 6:6 판결을 해준 셈이니 네가 “아깝다”고 할 만도 했지.

그간 평행선을 달려온 것 같던 네가 그래도 이 문제의 해결을 바랐던 것에 쑥스럽지만 고마운 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사랑하는 친구야! 이제 당분간 우리가 만나려면 천생 네가 나 있는 곳으로 와야겠다. 네가 내 생각이 날 때가 내가 너를 보고 싶어할 때라는 것도 알지? 내가 나중에 출소해서 그 빚 꼭 갚을 테니 문득 보고 싶을 때는 와다오. 건강하고 남은 복학 생활 성실히 해서 취직에도 성공하기 바란다.

2004년 7월15일 밤 사랑하는 벗 명진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