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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표지이야기 > 표지이야기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4년07월21일 제5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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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죄의 절망, 대체복무제의 희망!

대법원에서 패배한 ‘양심의 자유’… 병역거부운동은 결코 잠들지 않고 제2막을 시작한다


‘양심의 자유’는 대법원에서 패배했다. 비여호와의 증인을 포함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감옥행이 줄줄이 이어질 예정이다. 그러나 유죄 판결이 낳은 대체복무제의 가능성과 함께 병역거부운동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와 국회는 이들을 계속 외면할 것인가.


▣ 글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상고를 기각한다.”

2004년 7월15일 오후 2시, 최종영 대법원장의 한마디가 대법원 대법정에 울렸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최명진(23)씨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 판결이었다. 최씨는 2001년 11월 현역 입영 통지서를 받고 입영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다. 1·2심에서 징역 1년6개월형을 받고 지난 4월 대법원에 상고했다. 최 대법원장이 판결문을 읽어내려가자 방청석에는 희비가 엇갈렸다. 최씨를 비롯한 여호와의 증인과 병역거부 운동가들의 얼굴은 굳어졌고, 재향군인회 복장을 한 사람들의 얼굴에는 안도의 빛이 번졌다.

“…종교적 양심의 자유가 위와 같은 헌법적 법익(국방의 의무)보다 우월한 가치라고 할 수 없는 이상, 그 자유가 제한된다 하더라도 이는 헌법상 허용된 정당한 제한이라고 할 것이다. …”


△ 7월15일 대법원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 유죄 판결을 받은 최명진씨.

6명의 대법관 “대체복무제 필요”

대법원 판결문은 결국 “양심의 자유보다 국방의 의무가 우선한다”는 요지였다. 다만, 병역거부자들에게는 “1명의 대법관이 반대 의견을 제출했다”는 사실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2001년 <한겨레21>의 보도 등을 통해 수면 위로 떠오른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를 둘러싼 논란이 하나의 순환을 마감하는 순간이었다. 재판은 채 20분을 넘기지 않았다. 3년여의 논란을 마감하는 데 채 20분도 걸리지 않은 것이다. 그 전에 1만여명의 여호와의 증인들이 투옥되면서도 침묵해온 50여년의 역사가 있었다.

재판이 끝나자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병역거부권 연대회의) 관계자들과 여호와의 증인, 병역거부자들이 아쉬움을 나누었다. 예상한 결과지만 실망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최명진씨는 “아쉽지만 담담하게 받아들인다”고 짧게 말했다. 병역거부자 오태양(29)씨는 “대법원이 병역거부자를 전과자로 만드는 데 도장을 찍어준 셈”이라고 비판했다. 대법원 상고의 변호인을 맡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김수정 변호사는 “소수 의견이 1명밖에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욱 실망스럽다”고 아쉬워했다. 하지만 여호와의 증인인 성우 양지운씨는 “헌재의 전향적인 판결을 기대한다”며 “상황은 또 바뀌는 것 아니냐”고 희망을 놓치 않았다.

이날 저녁 판결문 전문이 알려지면서 절망에 빠져 있던 병역거부자들에게도 희망이 생겼다. 유지담 등 5명의 대법관이 보충 의견을 통해 유죄를 선고한 다수 의견에 동의하지만, “대체복무를 도입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에서는 반대 의견과 의견을 같이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법정에서 발표된 판결문 요지에는 생략돼 있던 내용이었다. 반대 의견을 밝힌 이강국 대법관까지 합치면, 12명의 대법관 중 6명의 대법관이 대체복무제 도입의 필요성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5명의 대법관은 “대체복무의 도입은 입법 정책상 바람직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를 국가의 헌법적 의무로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대체복무 도입에 대한 “광범위한 재량”이 입법부에 있지만, 대체복무제 도입 여부는 정치권의 ‘선택’의 문제라는 것이다.

반면 이강국 대법관은 반대 의견을 통해 “양심의 자유와 국방의 의무가 충돌할 때는 양심의 자유가 좀더 존중되고 보장돼야 한다”고 밝혔다. 양심의 자유와 국방의 의무의 충돌을 ‘조화’시킬 방법이 개인이 아니라 국가에 있고, 그 책임을 법으로 구현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라는 것이다. 이 대법관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소수의 국민을 관용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적 정당성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여 병역거부권의 보장이 자유민주주의를 정상화하는 일임을 분명히 했다. 보충 의견을 낸 5명의 대법관도 “(대체복무제가 도입되면)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의 정당성은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 여호와의 증인 병역거부자 최명진씨(앞줄 오른쪽)가 대법원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최씨와 함께 대법원에 재판이 계류 중인 윤여범씨(앞줄 가운데).

양심의 자유는 ‘초특급 기본권’

비록 ‘유죄’ 판결을 내리기는 했지만, 이번 대법원 판결은 지금까지의 대법원 판례에 비해서는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법원의 1969년, 85년, 92년의 판결은 한결같이 “종교의 교리를 내세워 법률이 규정한 병역의 의무를 거부하는 것은 헌법에서 보장한 종교와 양심의 자유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판시해왔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증인 정운영씨는 “대법원이 지금까지는 병역 거부를 ‘양심의 자유’의 영역이 아니라 이단의 교리로만 해석해왔다”며 “병역 거부를 양심의 자유에 해당한다고 인정한 것만으로도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또 “대체복무제에 대한 입법자의 광범위한 입법 재량권을 언급해 대체복부제 입법의 길을 열어주었다”고 덧붙였다. 양심의 자유를 우선한 소수 의견이 나온 것도, 대체복무제 도입의 필요성을 제기한 보충 의견이 덧붙여진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하지만 대법원의 다수 의견은 여전히 국방의 의무를 양심의 자유보다 앞세우고 있다. 대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양심의 자유는 법률에 의해 제한될 수 있는 ‘상대적 자유’이고, 국방의 의무는 국가의 존립을 가능하게 하는 ‘기본적인 의무’”라고 규정했다. 또 “특히 남북 분단의 현실을 고려하면 국방의 의무는 더 강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이재승 국민대 법대 교수는 “양심의 자유가 국방의 의무에 비해 ‘상대적 자유’라면, 양심의 자유가 국방의 의무에 우선할 때도 있어야 한다”며 “하지만 대법원은 지금껏 양심의 자유를 한번도 우선한 적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 보듯 국방의 ‘절대적’ 의무만 강조돼왔다는 것이다. 한인섭 서울대 교수는 <양심적 병역 거부>라는 책에서 “양심의 자유는 정신적 자유의 근원을 이루는 기본권, 심지어 ‘초특급 기본권’”이라고 강조했다.

대법원의 다수 의견은 사회적 평균인의 시각으로 소수자의 인권을 재단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다수 의견은 “사회적 평균인의 관점에서 피고인이 현역 입영에 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적법 행위의 기대 가능성이 없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평균인’의 시각으로 보면, 병역거부자들이 병역 의무를 이행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소수자의 문제는 평균인의 시각으로 보면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다”며 “이는 문제의 본질을 망각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다수 의견은 또 “병역법 88조 1항이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18조를 부당하게 침해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 내용은 유엔인권위원회의 병역거부권에 대한 결의안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1987년부터 2년마다 채택되는 유엔인권위의 결의안은 “모든 사람은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18조에 명시된 사상·양심·종교의 자유에 관한 합법적인 권리 행사인 병역거부권을 가지고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한국은 90년 유엔의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규약에 가입했고, 올해 유엔인권위에서 병역거부자에 대한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딱 ‘빵차림’이구만.”

대법원 판결이 나온 다음날인 16일 오전 10시 서울동부지방검찰청 정문에 나타난 최명진씨를 보고 친구인 윤여범씨가 농담을 건넸다. 윤씨는 보석으로 풀려나기 전 최씨와 함께 성동 구치소에 수감됐던 ‘빵동료’이다. 최씨는 가벼운 티셔츠 차림에 남색 가방을 매고 있었다. 장맛비가 며칠째 그치지 않은 가운데, 최씨와 함께 대법원에 재판이 계류된 윤씨 등 동료 여호와의 증인 다섯명이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터였다. 최씨는 유죄 선고를 받은 지 하루 만에 형을 살기 위해 서울동부지검으로 출두했다. 유죄 선고를 받고 판결문이 관할 지검에 도착하면 바로 형 집행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최씨는 친구들과 함께 서울동부지검 집행과로 향했다. 집행과 직원은 “오늘 관할서 유치장에 잠시 머물렀다가 성동 구치소로 들어간다”고 말했다. 얼마 뒤 도착한 최씨의 아버지가 “며칠 말미를 주면 안 되느냐”고 물었지만, 직원은 “오늘 출두하지 않았으면 수배령이 떨어지는 상황이었다”고 답했다.


△ 대법원 판결이 나온 다음날인 16일, 병역거부자들과 연대회의 관계자, 각계 운동가들이 대체복무제 입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갑작스럽게 구치소 향한 최명진씨

최씨는 주변을 정리할 틈도 없이 감옥행을 맞이해야 했다. 최씨가 동부지검 집행과에 잠시 머무는 사이 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최씨가 담당하던 고객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최씨는 방향제를 설치해주고 관리해주는 회사에 근무했다. 그는 “이제는 다른 분에게 전화하셔야 한다”며 직장 동료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당분간은 성동 구치소에 머무르게 될 것”이라며 “내 여자친구에게 연락해서 함께 오라”고 당부했다. 여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눌 틈도 없이 감옥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마음이 아파서 차마 배웅을 나오지도 못했다고 한다. 대법원 선고일에도 담담했던 최씨는 이날 “마음이 많이 아프죠. 오래 기다렸는데…”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최씨는 2001년 11월 첫 재판부터 대법원 선고까지 2년9개월 동안 재판을 받았다. 오래 기다렸던 만큼 실망도 컸다. 오전 10시30분께 최씨가 경찰서 유치장으로 가기 위해 지검 검찰관실로 사라졌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아버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함께 배웅하던 동료들도 한 동안 말을 잃었다.

이날 오전 11시 병역거부권 연대회의는 서울 안국동의 느티나무 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법원 판결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대체복무제의 도입을 촉구하는 자리였다. 연대회의는 인권의 최후 보루로써 구실을 포기한 대법원에 대해 거세게 비판했다. 연대회의는 헌법재판소 판결과 대체복무제 입법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연대회의는 “헌재의 판단이 남아 있기 때문에 사법부의 판결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라며 “사법부의 이러한 판결과 별개로 정부는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 도입에 앞장서라”고 요구했다. 연대회의 공동집행위원장인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일부 언론의 보도처럼 대법원의 선고가 병역 거부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한 교수는 “이제 병역거부운동의 제2막이 시작됐을 뿐”이라고 선언했다.

“헌재 합헌 판결하면 유엔인권위에 제소”

연대회의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헌재에서 합헌 판결이 나올 경우 병역 거부 문제를 유엔인권위에 제소하겠다”고 밝혔다. 연대회의 참가단체인 민변과 함께 병역거부자 전원의 사례를 유엔인권위에 ‘대량’ 제소하겠다는 것이다. 최정민 연대회의 공동집행위원장은 “지금껏 한국에서 대량 제소는 없었던 일”이라며 “한국 정부가 국제적 망신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대회의는 또 정기국회에 앞서 8월 말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한 공청회를 열고 입법운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공청회 이전에 299명 국회의원 전원에게 대체복무제 도입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의서를 보낼 계획이다.

이날 기자회견은 병역거부자 나동혁씨의 편지로 마무리됐다. 그의 편지는 “대법원 판결 결과와 상관없이 인권과 평화를 향한 노력, 병역거부권 인정을 향한 노력은 계속될 것입니다”로 끝난다. 대법원의 유죄 판결로 그동안 보류돼 있던 220여건의 병역거부자 재판이 재개된다. 잠시 멈추었던 감옥행의 행렬이 다시 이어지게 된 것이다. 대법원 판결에는 유죄의 절망과 대체복무제의 희망이 뒤섞여 있다. 절망과 희망을 최후로 심판할 헌재의 판결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