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목차 지난호보기 독자마당 기사에대한의견

한겨레21 구독신청 sitemap

e-Book
표지이야기 특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문화/과학 인터뷰 스포츠/건강 사진/만평 칼럼 독자마당
Home > 표지이야기 > 표지이야기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4년07월21일 제519호
통합검색  검색
“기회를 달라, 삶으로 보여주겠다”

불교계 양심적 병역거부자 오태양씨가 어머니에게 올리는 편지

▣ 오태양/ 병역거부자 · '좋은 벗' 활동가

건강하시죠? 보내주신 약은 잘 먹고 있습니다. 전 평소와 다름없이 잘 지내고 있어요. 오늘도 어김없이 도반들과 함께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기도하고 청소하고 발우공양을 했답니다. 눈뜰 무렵 세찬 빗소리에 문득 홀로 지내실 어머니 생각이 나서 안부 전합니다. 대법원 판결로 걱정하실 것 같아서요.


△ 오태양씨(앞줄 오른쪽)와 그의 '친구'들인 다른 병역거부자들.(사진/ 박승화 기자)

어머니, 대법원 판결 소식 들으셨다고요? 그래요, 어머니. 아직까지는 어려운가 봐요. 저, 그날 법정에 가서 대법원 선고를 앞둔 두 친구를 보았거든요. 저만치서 고개 떨구시던 어머니들을 보면서 마음이 안쓰러웠답니다. 예전에 저도 그랬던 적 있잖아요? 첫 재판 마치고 수갑이 채워졌을 때, 어머니 참 많이 우셨지요. 저 그때 참 마음이 아팠지만, 단단히 다짐했지요. ‘지난 50여년 동안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전과자들이 1만명이었으니 얼마나 많은 어머니들이 자식을 감옥에 보내며 주위에서 자식을 비난하는 것을 보면서 속 태우셨을까’ 생각하니 후배들만은 더 이상 감옥에 보내지 않으리라고 말이죠. 그로부터 벌써 3년이 지나 저에게도 오래도록 예견된 인연의 시간이 다가오네요.

대체복무의 길이 불가능한 건 아닐 테죠?

그래도 시간이 덧없는 것만은 아닌지 많이 바뀌었다고 해요. 제가 병역거부를 처음 결심할 적만 해도 3년은 족히 감옥살이를 각오했는데, 이제는 많이 관대해졌거든요. 하지만 참 서글픈 현실이기도 하지요. 그것은 1만여명의 젊은 감옥살이의 결과라고도 할 수 있으니까요. 얼마나 더 많은 젊은이들이 감옥살이를 해야 우리 사회가 옭아놓은 양심의 족쇄가 풀어질까요.

기억나세요, 어머니? 교육대학 다닐 시절, 선생님이 부족해 한창 통폐합·폐교 바람이 일던 것을 안타까워하며 “군복무 대신 그런 곳에서 교원 자원봉사를 한다면 참 좋을 텐데…”라고 흘리듯 말했을 때, 어머니께서도 격려해주셨잖아요. 그 소박한 꿈이 어느새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어요. 그런데 이 꿈이 저만의 꿈은 아니거든요. 비슷한 처지에 있는 친구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꿈을 피울 때가 있어요. 어떤 친구는 부당한 전쟁으로 고통받는 이라크 사람들을 위해 지뢰를 제거하고 그 자리에 학교를 세우고 싶다 하고, 또 어떤 친구는 외로움에 지친 독거노인, 편견으로 고통받는 에이즈 환자, 차별받는 성매매 여성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도 하고요. 총을 겨누지 않겠다는 우리의 신념을 간직하면서도 군복무를 대신할 수 있는 대체복무의 길이 불가능한 건 아닐 테죠? 우리의 이 작지만 사무치는 열망이 언젠가는 평화의 꽃을 피워내고야 말 것을 확신해요. 머지않아 말이죠.

어머니, 그렇다고 저희들이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친구들과 공존하지 못할 것이라고 걱정하진 않으셔도 돼요. 어머니도 아시다시피 제 친구들도 어렵게 군대에 다녀왔지만, 우린 만나면 반가운 친구일 뿐이니까요. 얼마 전엔 오래된 친구 하나가 장교가 돼서 이라크에 간다면서도 저를 걱정해주더라고요. 저는 마음 한켠이 뜨거워졌지만, 진심으로 친구의 평화를 위해 기도해주었어요. 저는 병역거부자와 군복무자를 만날 수 없는 대립의 평행선으로 부추기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하곤 한답니다. “우리에게 기회를 달라! 우리의 삶으로 보여주겠다!” 이미 낡은 병역제도는 이제 피해갈 수 없는 우리 시대의 과제가 돼버렸고, 그것에 우리의 미래를 맡길 수는 없으니까요. 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젊은이들에게 당당히 제안하고 싶어요. “친구들이여, 우리 함께 바꾸어보자!”라고 말이죠. 그래서 자식을 군대에 보내고서 노심초사하는 어머니나 감옥에 보내고서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어머니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지혜를 모아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보자고요.

어머니, 물론 가슴 아프시겠지만 제가 선택한 길에 후회 없도록 온 몸과 마음으로 최선을 다할게요. 당신과 세상을 잠시나마 거스를 수밖에 없지만, 연어는 결코 제 근원을 잊지 않는다지요? 오늘 새벽 천둥 비바람 소리에 마음이 혼란스러웠는데 말 없이 고요한 부처님을 바라보니 금세 마음이 편안해졌답니다. 그리고 문득, ‘우리 어머니 부처님을 닮으셨네?’ 흐뭇해졌지요.

어머니, 사랑합니다.

비오는 날, 정토법당에서 태양 두손 모음

* 오태양씨는 평화 · 인권 · 난민지원센터 ‘좋은 벗’에서 통일사업 담당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다른 활동가들과 함께 정토회 회관에서 생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