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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표지이야기 > 표지이야기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4년06월30일 제5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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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복하는 대한민국이 아름다운가

김선일씨 참수 직후 인터넷을 수놓은 즉자적 분노… 정치권의 파병부대 강화론도 보복 응징 전제


“전투병을 빨리 보내 싹 쓸어버리자.” “대한민국에 대한 테러를 용서하지 말자.” 김선일씨 참수 소식과 함께 이라크 저항세력에 보복을 가하자는 여론도 들끓고 있다. 보수세력의 논객들은 “보복을 못하면 국가도 아니다”는 논리로 선동한다. 과연 어떻게 하는 게 현명한 대처일까.


▣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비탄, 분노, 애도.

6월23일 새벽 김선일씨의 참수 소식이 들려오자마자 여론은 들끓기 시작했다. 머릿속이 하얘지는 충격의 순간은 잠깐, 인터넷 세상도 요동쳤다. “군대를 빨리 보내 싹 쓸어버리자.” “대한민국에 대한 테러를 용서하지 말자.” 분노가 큰 만큼 인터넷 게시판엔 즉각 보복 응징을 주장하는 이들의 목소리로 뒤덮였다. “봉사단 격의 군대 아닌 전투병을 보내 국가의 위상을 높여야 할 때라고 본다. (열차 테러에 굴복해 군대를 철수한) 스페인은 우물 안 개구리마냥 테러리스트들의 숨소리만 들려도 고개를 숙이고 살아야 할 것이다.”(아이디 안준석) “고인의 원통함을 일부라도 풀어주는 방법의 하나로 살해범들에 대한 특수부대 파견으로 ‘피에는 피’라는 처절한 응징을 신속히 해야 한다. 한국인에 대한 테러는 곧 그들의 자멸이라는 공식을 보여주어야 한다.”(필명 박정희)


△ 지난 6월25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한 보수단체의 테러응징 촉구 집회.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즉자적 분노를 드러낸 보복응징론의 확산은 일단 주춤한 상태다.(사진/ 류우종 기자)

보복을 못하면 국가도 아니다?

참수 보도 직후 하루 동안 실시된 미디어다음의 네티즌 여론조사에선 파병 반대가 55.9%(21만2359명)으로 찬성(40.7%·15만4700여명)보다 많았으나, 파병 찬성 응답자 중 절반이 넘는 7만8천여명이 “김씨 피살 이후 반대에서 찬성으로 바뀌었다”고 답해 파병 결정이 국익 측면에서 고려하던 것에서, 국가적 실력 행사이자 응징 수단으로 바뀌고 있음을 시사했다.

네티즌만 들썩였을 리 없다. 우파의 대표논객 조갑제 <월간조선> 편집장은 ‘이스라엘이었다면 어떻게 할까’라는 글을 띄워,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이스라엘 선수단을 습격한 팔레스타인 테러단이 이후 10여년 동안 이스라엘 기관원에 의해 전원 사살됐음을 상기시켰다. 그는 “이스라엘은 자국민을 다치게 한 외부 세력에는 무자비한 보복을 감행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미워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이스라엘을 우습게 보는 이들은 없다. 김선일씨를 죽인 조직과 범인을 반드시 추적 검거하여 응징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다”라고 주장했다.

인터넷 게시판에 부지런히 퍼날라진 군사평론가 지만원씨의 글도 같은 맥락이다. “‘수만명 보내 싹 쓸어버리자’며 어린 중학교 남녀 학생들이 흥분해서 하는 말이 그렇게 고맙고 대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김선일씨는 대한민국 국민이고 국가가 있는 사람인 데 반해 김선일씨를 죽인 자들은 인간 이하의 짐승 마음을 가진 패거리일 뿐입니다. 패거리들도 자기네 멤버가 당하면 무섭게 보복합니다. 소위 국가라는 존재가 국민이 그렇게 당했는데도 보복할 마음이 없고 김선일씨가 죽은 곳은 무서운 곳이니 가지 말라는 소리를 한다면 그것은 국가가 아닙니다.”


△ “보복으로 명복을 빌자.” 부산의료원의 김선일씨 빈소 방명록에 전투병 파병을 통한 보복을 주장하는 문구가 적혀 있다.(사진/ 류우종 기자)

조갑제씨는 <한겨레21>과의 전화 통화에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파병 반대 논리의 축이 무너졌다”며 “예전에 파병 반대 논리는 ‘미국은 악이고 미국에 저항하는 이라크 무장단체는 우리나라 옛 독립운동단체처럼 선이라는 인식이 기본이었는데, 김씨 참수 사건으로 막연하게 파병을 반대했던 여론이 찬성쪽으로 돌아서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파병 찬성은 건강한 민족주의로서 김씨가 매우 야만스러운 방식으로 살해당하면서 이같은 원초적이고 건강한 민족주의를 자극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즉자적 분노를 드러낸 보복응징론의 확산은 일단 주춤한 상태다. 김선일씨 유구가 도착한 6월26일을 기점으로 이라크 내 무장단체에 대한 비난이 정점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으나, 그동안 정부의 안일한 대책 등이 속속 드러나면서 오히려 응징 대상이 테러범에서 정부로 쏠리는 듯한 분위기다. 22일부터 실시하고 있는 프리챌의 파병 관련 인터넷 여론조사 결과, 3913명 가운데 ‘파병 반대’가 49.4%(1936명), ‘찬성’이 31.9%(1250명), ‘재검토 필요’가 16.9%(662명) 등으로 파병 반대 또는 신중론이 세를 얻었다. 또한 ‘원래 반대했으나 이제는 찬성한다’가 445명(11.3%), ‘원래 찬성했으나 이제는 반대한다’가 405명(10.3%)으로 엇비슷한 응답률을 보였다. 27일 <시사매거진 2580>에서 방영된 문화방송 여론조사 결과에선 ‘파병 반대’(56.5%)가 ‘찬성’(40.7%)을 앞질렀고 ‘반대에서 찬성’으로 돌아선 것(14.3%)보다 ‘찬성에서 반대’로 전향한 응답자(25.7%)가 더 많았다. 잔인한 죽음에 대한 분노가 보복 응징이나 실력 행사를 주장하는 것으로 곧바로 이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9·11 테러 이후 부시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면서 전 미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테러와의 전쟁’이란 전략은 우리나라에선 쉽게 먹혀들지 않고 있는 셈이다.

미국 대테러 전쟁 논리의 복사판

김동춘 교수(성공회대 사회학과)는 “13만 병력을 갖춘 미국도 무사할 수 없는데 테러범을 응징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테러와의 전쟁’은 국가와의 전면전이 아니기 때문에 다수 병력을 동원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가 이라크에 추가 파병한다 해도 사우디의 수천만 한국 교민까지 보호할 수 없는 것 아니냐. 보수 언론들을 포함해 우파 논객들이 보복 응징 또는 테러 응징을 거론하는 것은, 그들이 미국 주류 사회의 대테러 전쟁이란 시각을 그대로 복사해 되풀이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 경기도 광주 특전사교육단에서 테러 대비 주둔지 적응훈련을 벌이는 자이툰 부대원들.(사진/ 연합, 한겨레 이종찬 기자)

보복응징론의 뒤를 이어 현실적으로 힘을 얻고 있는 건 ‘파병철회 불가론’이다. 전대협 출신 초선의원으로 6월23일 파병 반대 결의안에 서명한 정청래 의원(열린우리당)도 “명분 없는 전쟁에 휘말려선 안 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기 때문에 결의안에 서명했지만, 김선일씨의 죽음 이후 지금 빼면 테러리즘에 굴복한다는 인상을 주기 쉽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철회의 여지가 줄어든 건 맞다”고 말한다. 지난주 파병 반대에서 찬성으로 돌아선 회사원 신아무개(34)씨도 “김씨가 납치됐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살해당할 가능성 속에서도 파병을 계속하겠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었다. 주검이 돌아온 마당에 파병을 철회하겠다는 건 명분이 안 선다”고 말했다.

역시 전대협 출신이지만 결의안에 서명하지 않은 이철우 의원(열린우리당)은 “이라크 전쟁이 반인륜적 전쟁임은 틀림없으나, 미국의 요구에 직면하고 있는 대통령으로선 파병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다.클린턴의 최근 자서전에서도 보듯, 영변을 직접 폭격하겠다는 한마디에 한반도가 얼마나 위기감에 휩싸였느냐. 미국의 헛기침만으로도 한반도는 흔들거린다”며 파병 철회가 불가능한 이유를 밝혔다. 유시민 의원(열린우리당)도 페스트와 콜레라를 빗대며 “어차피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거라면 콜레라를 가볍게 앓는 것이 최선”이라며 파병을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파병이 가볍게 콜레라를 앓는 수준을 넘어, 할 수만 있다면 콜레라든 페스트든 예방을 확실하게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전투력 강화 뒤 파병’을 주장하는 쪽이다. 인터넷 포털 네이버가 23일부터 진행하고 있는 여론조사에선 ‘추가 파병 철회’(24.14%·4만1009명), ‘서희·제마 부대도 철군’(23.24%·3만9484명), ‘기존 정부 방침대로’(13.06%·2만2181명), ‘전투병도 파병해야’(36.93%·6만2732명) 등의 결과를 보였다. 파병 찬성과 반대로 갈라보면 49.97%와 47.37%로 비슷하지만, 파병의 내용을 살펴보면 공병·의료 중심의 재건부대 대신 전투병 파병을 주장하는 쪽이 더 높다.

정치권에선 파병철회 불가론이 대세인 가운데 안영근 의원(열린우리당 제1정책조정위원장)과 이해찬 의원(총리 내정자) 정도가 파병부대 강화론을 제기하고 있다. 알 자르카위가 한국군을 주적으로 삼고 테러 공세를 취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현재 부대의 무장력으론 위험하니 전투력을 강화하자는 주장이다. 또한 파병 반대 결의안에 서명한 50명 의원 가운데 한명인 주성영 의원(한나라당)도 “지금 정부처럼 준비가 안 돼 있는 상황에서 군대를 보내면 어떤 참사가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실무조사단을 다시 파견해 철저히 사태를 파악한 뒤 준비를 잘해서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 이라크로 파병될 자이툰 부대가 쓸 장갑차가 부산항에서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사진/ 연합)

보복 응징 전제로 한 병력 강화 요구

하지만 여당 내부에서 이런 움직임을 조직적으로 주도하는 움직임은 불분명한 상황이다. 김선일씨 사건에 대한 국정 조사와 감사원 조사 등이 진행되는 동안에 파병론을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것이 되레 ‘동티’ 나는 일이 될 수도 있을뿐더러, 전투병 강화론이 일정 부분 보수파들의 주장과 겹치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전투병 파병을 주장한 안영근 의원은 “응징 보복하자는 게 아니라 준비를 단단히 해서 파병해야 한다는 것이다. 멀리 가도록 결정했다면 여비를 든든하게 줘 보내려는 게 부모 마음”이라며 보복응징론과의 차이를 강조했다.

16대 국회 때 이라크 현지 시찰을 다녀온 장영달 의원은 “자이툰 부대는 이미 충분한 방어력을 갖췄다”고 반박한다.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가 6월18일 확정한 파병계획에 따르면 군인들의 휴대무기로 K-1, K-2 소총, K-6 중기관총, 81mm 박격포, 휴대용 60mmLAW 대전차 로켓, 토우 대전차 미사일을 갖춘 것에 더불어 △폭발물 탐지 로봇 4대 △군견 1마리 △폭발물 테러 방지를 위한 급조폭발물(원격조정 폭발장치) 무력화용 주파수 교란 차량 5대 등도 보강할 방침이다.

정부관계자들도 “특전사, 해병대의 비율을 늘리자는 요구의 밑바닥에는 김선일씨 사건 같은 일이 발생할 경우, 응징 보복할 수 있는 전력을 갖추자는 정서가 깔려 있다”며 “성급한 발상”이라고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다. 한 정부관계자는 “지금 나오는 병력 강화 요구는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바닥 정서엔 김선일씨처럼 교민들이 죽거나 다쳤을 때 응징 보복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본다”며 “아직은 김선일 피살과 미국의 공세, 이에 따른 이라크 내부의 반한감정 등이 어디까지 갈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강화론 주장은 섣부르다”고 말했다.

신성호 교수(서울대 국제대학원 국제정치 전공)는 “부시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으로 아프가니스타전, 이라크전을 시작할 때 대다수 미국민들이 지지했지만 과연 테러와의 전쟁이 얼마나 효과적인지에는 회의론이 짙어가고 있다. 파병한다고 해도 테러리스트와 본격적으로 싸워야 하는 것과는 다르다. 이라크 내부에서도 무장단체 규탄 분위기가 일고 있는 것에 비춰볼 때 추가 파병을 하더라도 기존 서희·제마 부대가 쌓아놓은 평화 재건 부대의 이미지를 계속 심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