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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버스토리 ] 2000년11월15일 제334호 

[표지이야기] 미국의 관심은 ‘학살은폐 책임’

최초공개된 미국 비밀보고서의 의미… 정부는 참전군인의 명예를 위해서 진상조사에 나서라



지난해 가을부터 <한겨레21>은 베트남전에서의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한 의혹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지금까지 한국군에 의한 학살 의혹이 제기된 사건은 80여건으로 피해자 수도 9천여명에 이른다. 이 사건들의 대부분은 피해자인 베트남인들에 의해 제기된 주장이고 가해자쪽이라 할 수 있는 한국군쪽에서는 극히 일부의 장교와 사병들만이 자신들의 경험을 증언한 바 있다. 한국 정부 당국은 공식적으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전혀 일어난 적이 없다고 완강히 부인했다. 따라서 이 사건들은 아직까지 의혹으로 남아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마침내 드러난 ‘한국 정부의 거짓말’


(사진/가족들이 피와 눈물이 가득한 죽음의 구렁텅이(퐁니·퐁넛촌).이 원혼들이 안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하는 길은 무엇일까)


그런데 2000년 6월1일 미국에서 기밀해제된 한국군의 만행 의혹에 관한 미군쪽의 조사보고서는 이런 의혹들 중 적어도 일부는 사실이었음을 입증해주는 최초의 문헌자료이다. 자료의 내용은 그동안 소문으로, 또는 피해자쪽의 증언에 의해 제기된 의혹들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확인해준다. 또한 이들 자료를 보면 미군 당국은 이번에 확인된 사건들에 대해 자체조사를 한 데 그치지 않고 주월한국군사령부나 주월한국대사관, 그리고 한국 정부에 통보했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이런 사건들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다는 주장은 성립될 수 없다.

필자는 지난 10월 숙명여대 한국사학과 이만열 교수를 통해 미군쪽 보고서 일부를 입수하고 자료의 분석에 착수했다. 이 무렵 <한겨레21>도 다른 경로를 통해 자료를 입수했고, 베트남전민간인 학살진실위원회는 차미경 집행위원장을 미국에 파견하여 필자와 <한겨레21>이 입수한 자료에 포함되지 않은 새로운 자료들을 찾아냈다. 그리고 이미 입수한 자료에서 복사상태가 나빠 판독할 수 없는 사진자료를 확보했다. 현재까지 입수한 550여쪽에 달하는 방대한 자료 중에서 특히 중요한 자료는 다음과 같다.

1) 다낭 주재 정치고문 제임스 맥(James Mack)의 ‘1968년 1월 ∼ 1969년 4월 기간의 한국 해병 제2여단(청룡부대- 편집자)의 쿠앙남성에서의 활동 개관’이라는 1969년 4월25일치 보고서

2) 1968년 2월12일 쿠앙남성 디엔반현 퐁니마을에서 민간인 69(또는 79명)명이 살해당한 사건에 대한 주월미군사령부 감찰부의 1969년 12월23일치 보고서

3) 1969년 4월15일 쿠앙남성 지 쑤옌현 푹미마을에서 민간인 4명이 살해당한 사건에 대한 주월미군사령부 감찰부의 1970년 1월10일치 보고서

4) 1968년 10월22일 쿠앙남성 호앙 쩌우에서 민간인 22명이 살해당한 사건에 대한 주월미군사령부 감찰부의 1970년 1월11일치 보고서

5) 한국군의 학살만행에 관한 주장을 담은 랜드재단의 보고서 내용의 진실성을 분석한 주월미군사령부 감찰부의 1970년 1월30일치 보고서

6) 한국군의 학살만행에 관한 주월미군사령부 감찰부의 1970년 2월18일치 최종보고서

실제 학살 가담자 밝히지 않은 이유는…


(사진/전소된 퐁니·퐁넛촌의 민가를 미군과 남베트남 지방군이 둘러보고 있다)


미 국무부가 주월미대사관에 황급히 정보를 보고하라는 훈령을 내린 이유는 1970년 1월에(실제 개최된 것은 2월24일부터 26일까지) 미국 상원외교관계위원회 사이밍턴(Symington) 소위원회에서 미국의 재정지원하에 베트남전에 참전한 동맹군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청문회가 개최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 내에서는 1968년 3월16일 미군이 선 미(Son My)마을에서 347명의 민간인을 학살한 ‘밀라이 사건’이 1969년 4월에 폭로되어 여론이 들끓고 있었고 피어스(Peers) 중장을 책임자로 한 조사단에 의한 조사활동이 한참 진행중이었다.

따라서 국무부가 미국이 거의 모든 경비를 지원하는 주월한국군에 의해 유사한 학살사건이 자행되었다는 사실이 사이밍턴 청문회에서나 그 이전에 폭로되는 것에 대해 크게 우려하게 된 것은 당연했다. 주한 미대사를 지냈으며 유명한 ‘브라운 각서’를 제출한 당사자인 윈드롭 브라운 동아시아ㆍ태평양 담당 부차관보는 이미 미군 당국이 일부 사건에 대해 조사를 행했고, 주월미군사령관 웨스트몰랜드 대장이 주월한국군사령관 채명신 중장에게 이 사건을 통보하였으며, 그 결과 한국군 해병여단장이 교체되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에 대한 확인을 번커(Bunker) 주월미국대사에게 요청했다. 브라운 부차관보는 또 포터(Porter) 주한미국대사에게 한국군의 학살 의혹과 관련하여 박정희 대통령에게 경고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자신의 의견을 표했다.

그런데 관련 보고서의 전체적인 내용과 미국 당국자들간에 오고간 전문을 보면 미국의 주된 관심사는 학살 자체보다도 학살과 미국의 관련성, 특히 학살의 은폐와 관련된 미국의 책임문제였다. 주월한국군에 대해 주월미군이 작전지휘권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지만, 미군의 조사는 한국군에 의해 학살이 일어난 사실만 인정했을 뿐 실제 민간인을 살해한 한국군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고 있다.

실제로 미 국무장관은 1970년 1월11일 <뉴욕타임스>가 ‘주월미군의 고위장성이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의혹에 대한 조사를 중단시키고, 이런 학살이 공표되는 것을 막았다’고 보도하자 당일로 사이공의 미대사관에 전문을 보내 “우리의 관심사는 주월미군사령부가 이 사건들을 은폐하려 했다는 비난”이라면서 “우리는 이런 의혹들을 사전에 알고 있었는가? 우리는 이에 대해 조사를 했는가? 조사를 안 했다면 왜 안 했는가? 우리는 이런 의혹이 사실이라고 결론지었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한국인들에 대해 어떤 조처를 취했는가? 그들은 상황을 바로잡기 위한 조처를 취했는가? 이런 사실들에 대해 우리는 어느 정도 언론에 이야기해도 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답변을 요구했다.

주월한국군의 효용성에 대한 의심


(사진/69년11월 국내 신문의 '밀라이학살'관련 재판보도 당시 미국은 이 문제로 여론이 들끓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 관리들은 이 사안이 갖고 있는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도 미칠 폭발성 때문에 기본적으로 이 사건들을 은폐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번커 주월미대사는 1970년 1월11일 국무부에 보낸 전문에서 미국은 “우방국 군대에 의해 베트남 민간인에 대한 학살 의혹이 가는 사건을 알게 된 군인이나 민간관료의 보고를 접수하면, 적절한 미군 예하 사령부를 통해 사건에 대한 예비조사를 실시하는 것이 제도화”돼 있으며, “예비조사의 결과는 (좀더 심층적인) 조사를 위해 우방군 사령부에 통보되고, 우방군 사령부에 대해 조사결과를 통보해줄 것을 권고”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우리는 과거에 우리가 입수한 한국군에 의한 학살 의혹에 관한 보고서와 정보에 대하여 비공식적으로 주월 한국대사관쪽에 주의를 환기시켜 왔으며, 한국대사에게 이런 비난이 발생한 사건들을 즉각 조사하라고 권고했다”고 미국이 최소한의 조치를 취했음을 밝혔다.

그러나 이 전문에서 주목해야 할 사항은 국무부에 대한 주월미대사관의 건의 사항이다. 번커 대사는 국무부에 대해 “한국군 관련 사건에 관한 보고서가 절대로 절대로 언론에 알려지지 않도록 할 것”과 “서울(의 미대사관)에 한국 정부에 대해 주월한국군의 민사활동, 특히 한국군에 의해 건립된 학교, 탑, 기타 등등의 정확한 숫자를 밝히는 등 외국언론의 관심을 끌도록 노력하라고 권고할 것” 등을 건의했다.

한편 1970년 2월 버거 부대사가 브라운 부차관보에게 보낸 전문에서 버거는 지난 몇년간 한국군의 베트남전 참전과 증파가 미국의 주요 관심사였기 때문에 미국은 베트남 현지에서도 한국군에 대해 그런 입장을 고려하여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지난 시기에 좀더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대처할 수 있었고 대처해야만 했다고 주장했다. 이상을 보면 미국의 의도는 베트남전 수행에 꼭 필요했던 한국군과 정부를 자극하지 않고 이 문제를 가능한 한 조용히 처리하되, 만약의 경우 이 문제가 언론에 공개되거나 미군쪽 조사보고서가 유출될 경우 미국이 사건의 은폐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인상을 주려는 데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미국 외교당국이 한국군의 효용성 때문에 가급적 한국군의 학살 의혹을 조용히 처리하려고 한 반면, 학살이 일어난 현지의 베트남 지방정부에 파견되어 있던 미군 고문관들은 주월한국군의 효용성 자체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한국 해병의 학살뿐 아니라 전반적인 행태를 개선하기 위한 특별연구반 책임자인 퍼켓(Puckett) 중령을 비롯한 미군 참모들은 “한국군의 주민통제 방법은 오히려 한국군 책임전술지역 내에서의 베트콩에 대한 동조자를 증가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면서 “한국군 해병 제2여단을 이 지역에서 철수시키고 이와 거의 유사한 규모의 부대로 대체하는 것이 (평정작전에서) 극적인 놀라운 발전을 촉발할 것이라는 데에 한국을 제외한 다른 모든 참전 국가들도 전반적으로 동의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제 덮을래야 덮을 수 없다


(사진/퐁니·퐁넛촌에서 다행히 살아남은 생존자 소녀.총상을 입은 두팔에 붕대를 감고 있다)


필자는 지난 11월11일 이 세건의 학살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주월한국군 사령관이었던 채명신 장군을 그의 자택에서 만났다. 채 장군은 전쟁이라는 속성상 불가피하게 민간인 피해가 발생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피해가 조직적인 학살과는 다른 것이라며, 베트남전민간인 학살진실위원회와 <한겨레21>이 모든 민간인 피해를 학살로 몰고간다며 강력히 불만을 표시했다. 채 장군과 필자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의견이 달랐지만 몇 가지 점에서는 생각이 일치했다. 바로 민간인 학살 의혹 때문에 30여만 전체 참전용사의 명예가 실추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과 민간인 학살 의혹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한국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번 미군쪽 자료의 공개로 베트남에서의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의 문제는 이제 덮을래야 덮을 수 있는 단계를 지나갔다. 이 문제는 인권선진국을 표방하는 김대중 정부와 군사독재의 사슬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된 우리 시민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중대한 과제이다.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 당시 야당의 청년의원이었던 김대중 대통령은 박정희 정부의 파병 방침을 “승리의 전망이 거의 막연한 상태, 마치 침몰직전의 선박과 같은 이런 상태에 뛰어든다는 것은 결국 월남인과 미국이 지금같이 들어가고 있는 시궁창에 우리도 같이 들어가고 있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우리가 빠져든 베트남의 정글은 단지 구정물이 흐르는 시궁창이 아니었다. 그곳은 5천여명의 한국군 사망자, 1만여명의 부상자, 2만여명의 고엽제 피해자, 그리고 약 5천여명의 민간인 학살 의혹의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피와 눈물이 가득한 죽음의 구렁텅이였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는 베트남전의 후유증을 치유하는 대신,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독재자 박정희의 기념관을 세우는 데 국고보조를 할 생각을 하고 있다.

이제는 정부가 나서야 한다. 학살 의혹이 제기된 사건들에 대해 정부와 군당국이 보유하고 있는 자료를 공개하고, 적극적으로 조사에 착수해야 한다. 진실을 위하여, 인권과 평화를 위하여, 전쟁 피해자들을 위하여, 국가의 부름을 받고 머나먼 이국의 전선으로 달려간 참전용사 전체의 명예를 위하여, 그리고 노근리사건 등 한국전쟁 동안 미군에 의한 한국 민간인 학살 문제의 정당한 해결을 위하여, 일제강점 시기 일제에 의한 학살만행과 일본군 성노예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이제는 정부가 나서야 한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ㆍ베트남전민간인 학살진실위원회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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