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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시각 2000년08월10일19시29분 KST
    제주 한겨레/사회/제주

    [제주] 첫 제주해녀상 고이화 할머니 인터뷰


    “사건이 발생한지 70년이 지났지만 일본인들의 착취에 항거했던게 마치 어제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제주도의 해녀 고이화(84)할머니는 일제하 최대의 여성운동으로 평가받는 1932년의 제주해녀항쟁에 참여했던 유일한 현역 해녀로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사업위원회(위원장 김전근)는 제주해녀로서의 표상을 기리기 위해 오는 15일 해녀항쟁의 진원지인 북제주군 구좌읍 세화리에서 처음으로 고 할머니에게 `제주해녀상(像)'과 상금을 주기로 했다.

    고 할머니는 해녀 가운데 최고의 기량을 갖춘 해녀들만이 가질 수 있는 `대상군'이다.

    “젊은 시절에는 경남 일대와 백령도는 물론 멀리 일본 쓰시마까지 나가 물질을 했어요. 풍선을 타고 망망대해를 건넜지요”

    제주해녀항쟁은 지난 31년과 32년 관제 어업조합의 수탈에 맞서 연인원 1만7000여명에 이르는 제주 동부지역 해녀들이 238차례의 크고 작은 시위를 벌인 운동이다.

    고 할머니도 16살 때인 32년 3월께 우도 해녀 270여명과 함께 10여척의 풍선에 나눠타고 구좌읍 종달리 두문포 해변에 내려 시위를 벌이다 일본경찰로부터 심한 구타를 당해 지금도 상처가 남아 있다.

    고 할머니의 삶은 제주 현대사를 살아온 제주여인들이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조숙한 탓에 9살 때부터 물질을 했다는 고 할머니는 일제 착취를 경험했고, 4·3 때는 시집식구가 6명이나 희생됐으며 그 바람에 남편이 홧병으로 숨지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그 뒤 4남1녀를 혼자 키우면서 마을해녀회장을 7년 동안이나 맡는 등 억척스럽게 해녀생활을 했다.

    “이제는 뭍에서보다 바닷속에서 생활한 시간이 많은 것 같아. 몸이 움직일 때까지 물질을 해야지”

    고 할머니는 오늘도 상군해녀들이 물질하는 깊은 바닷속 밭을 일구러 나간다.제주/허호준 기자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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