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특집/세계의 영웅

프랑스/돌아온 앙리4세, 조스팽

(사진/조스팽의 인기도는 60%대를 유지하고 있다. 알랭 쥐페 전 총리가 역대 최악의 지지율을 기록했던 것과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영화관에서는 만화영화 속 헤라클레스가 영웅이지만, 텔레비전에서는 조스팽이 영웅이다.”

지난 11월27일치 프랑스 주간지 <렉스프레스>는 표지이야기로 리오넬 조 스팽 총리를 다루면서 그를 ‘영웅’으로 평가했다. 또 같은주에 발행된 주간신문 <쿠리에 엥테르나쇼날>도 앙리 4세 초상화의 얼굴을 조스팽 총 리로 바꿔 표지사진으로 내보냈다. 이 신문의 특집제목은 “새로운 앙리4 세 조스팽, 프랑스인을 화해시키다”였다. 앙리4세는 낭트 칙령을 발표해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화해를 극적으로 이뤄냈던 인물이다. 조스팽 총 리가 파국으로 치닫던 지난 11월 초 트럭운전사 파업에서 ‘사장님들’을 달래 화해에 이르도록 한 것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좌파적이면서도 현실의 요구 담아내

보통 프랑스에서 총리의 인기도는 집권 초반기에 반짝 50%를 넘길뿐 그 뒤로는 30%를 밑도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정치 현장에서 멀찍이 물러 나 있는 대통령이 인기도에서 총리를 넘어서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조스 팽의 경우 총리관저에 들어선 지 7개월째임에도 계속 인기도가 60%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알랭 쥐페 전 총리가 역대 최악의 지지율을 기록했 던 것과 극적인 대조를 이루며, 시라크 대통령의 인기도 50%대를 훨씬 능 가하는 것이기도 하다. 조스팽의 인기는 또 지난 5월 나란히 ‘좌파유럽 ’ 시대를 연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와도 비교된다. 블레어도 초기 조 스팽과 마찬가지로 높은 인기를 누렸으나, 현재 담배업계로부터 선거자금 을 받은 것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대중적 지지도는 주춤하고 있다.

‘정치인 조스팽’의 이런 높은 인기는 과연 어디에서 오는 걸까. 그것은 단 두마디로 요약된다. ‘청렴결백’과 ‘신뢰’가 그것이다. 조스팽의 청렴결백은 지난 대선 때 재산공개에서 후보 중 유일하게 자택 하나 가지 고 있지 않은 데서 잘 드러난다. 시라크나 발라뒤르는 수억프랑대의 저택 과 고성 별장을 소유하고 있고 심지어 공산당 후보 로베르 위도 자택을 가지고 있었다. 이와 비교할 때 임대주택에 살고 있는 정치인 조스팽의 청렴함은 단연 돋보이는 점이다.

조스팽은 또 신뢰의 정치인이다. 이는 무엇보다 취임 뒤 그가 하는 모든 연설이 “지난 봄 선거 공약대로 하겠다”로 끝맺는 데서 알 수 있다. ‘ 지키지 않을 공약’만 남발하는 기성 정치인과는 달리 선거공약에 가장 충실한 정치인에 국민들의 사랑이 쏠리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가 지난 총선 때 내걸었던 35시간 노동시간, 70만명 고용창출, 민영화 중지 등의 공약은 속속 정책으로 실현되고 있다.

그렇다고 조스팽이 독선적인 ‘원칙론자’는 아니다. 프랑스 국민들은 오 히려 그를 ‘원칙에 충실하면서도 현실적인 노선’을 걷는 정치인으로 평 가한다. 조스팽 정부의 노선은 좌파적이면서도 현실의 요구를 적절히 수 용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지난 11월23일 사회당 전당대회을 계기로 시 라크 대통령과 붙었던 설전에서 그가 승리한 데서 잘 나타난다. 당시 시 라크 대통령은 조스팽 정부의 좌파정책을 ‘무모한 실험’이라고 비난했 다가 철저히 백기를 들고 말았다.


어릴 때부터 가난한 아이들의 대장

총선직후 대중지 <파리마치>에서 조스팽 총리의 동생 올리비에 조스팽은 “조스팽은 이미 14살 때부터 부자 아이들 그룹에 맞서 가난한 아이들 그 룹을 형성해 대장 노릇을 했다”고 술회한 바 있다. 어린시절부터 드러낸 민중적 경향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증언이다. 하지만 그는 원칙에 입각한 좌파 정책으로 노조의 손을 들어주면서도 분쟁을 마무리하는 탁월한 설득 력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트럭운전사 파업 때 사용자 대표를 설득해 분 쟁을 마무리한 것이 대표적 예다.

60년대가 드골의 시대이고 80년대가 미테랑의 시대라면,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의 프랑스는 조스팽 시대를 열어젖히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파리=최연구 통신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25일 제 1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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