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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국가들의 모라토리엄…회복에만 10년 이상

모라토리엄(Moratorium)이란 ‘대외채무 지불유예’를 뜻하는 말로, 한 국가가 더이상 대외채무를 갚지 못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을 말한다. 만기 가 다가온 외채를 갚아야 하는데 대외신인도의 부족으로 외화차입이 끊기 고, 중앙은행의 외환보유고도 바닥나게 되면 정부가 최후수단으로 선택하 는 것이 모라토리엄이다.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면 외국과의 수출, 수입 등 무역이 전면 중단되므로 원유나 식량수입이 중단돼 모든 것을 자급자족으로 해결해야 한다. 대외 채무를 더이상 갚지 못하겠다고 선언했으므로 채권(수출대금)도 받지 못 한다. 이에 따라 달러값은 폭등하지만 원화는 국제시장에서 가치가 없는 휴짓조각으로 전락한다. 우리나라에 채권을 가진 외국도 그만큼 부실채권 이 늘어나 영향을 받게 된다. 82년 멕시코를 시작으로 중남미 국가들이 연쇄적으로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는 시련의 시기를 보냈다.

지난 79년 신유전발견 이후 석유수출에 대한 기대감으로 재정지출이 급증 한 멕시코는 81년 말 총외채 7백50억달러 중 단기외채가 2백26억달러에 달했다. 또 소비재 및 시설재 수입이 급증하는 가운데 석유 수출가격의 급락으로 경상수지 적자가 78년 27억달러에서 81년 1백25억달러로 폭증했 다. 페소화의 가치가 폭락했으며, 보유 외화가 부족해 82년 8월에는 외채 상환 불능상태에 빠졌다. 국제금융질서의 붕괴를 우려한 미국 및 국제기 구가 긴급지원에 나서, IMF가 39억2천만달러, 미국 20억달러, 국제결제은 행(BIS)이 18억달러를 긴급지원했다. 모라토리엄에 따른 채무조정협상(리 스케줄링)을 통해 국제민간은행채권단은 1백억달러의 단기채무 상환을 3 개월간 유예해줬다. 멕시코는 이후 재정지출 삭감, 환율의 평가절하와 적 극적인 수입억제 정책으로 무역수지 및 경상수지는 빠른 속도로 회복됐다 .

68∼73년 동안 ‘브라질의 기적’으로 불릴 정도로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 뤘던 브라질은 73년 1차 석유위기로 대규모 국제수지 적자를 기록, 경제 가 위기국면을 맞았다. 또 74년부터 외자에 의존한 고도성장정책으로 외 채가 급증해, 74년 1백70억달러이던 외채가 82년에는 8백63억달러로 늘어 났다. 82년 8월 멕시코의 외채위기 이후 국제민간은행들의 대출기피로 외 환사정이 극도로 악화된 브라질은 마침내 국제사회에 SOS를 요청했다. 우 선 그해 11∼12월 국제민간은행단 23억달러, 국제결제은행 5억달러, 미 재무부에서 8억8천만달러의 단기 브리지(Bridge) 차관을 도입했다. 83년 2월에는 국제민간은행단과 44억달러의 신규차관도입계약을 체결하고 IMF 에 구제금융을 신청, 49억달러를 들여왔다. 채무상환기일을 재조정하고 8 4년에는 총 2백80억달러 규모의 채무구제계획을 성공적으로 타결했다. 브 라질은 그 대가로 85년부터 정부보조금 삭감, 국영기업 민영화, 강력한 임금억제정책을 추진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불릴 정도의 가혹한 시 련을 겪으며 80년대를 보냈다.

이 밖에 아르헨티나가 80년대 초반부터 지속적인 대외채무 증가, 82년 포 클랜드 전쟁으로 인한 과도한 재정지출 등으로 외환부족사태를 빚었다. 아르헨티나는 83년 1월 IMF와 국제민간은행으로부터 20억달러의 대기성차 관을 도입했으나 상환이 계속 연체돼 그해 말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고 채 무상환일정 조정 협상을 벌였다. 결국 87년에 채권은행단과 5백20억달러 중 3백20억달러에 대한 채무재조정원칙에 합의했다. 이는 외채이자를 상 환하겠다는 약속을 분명히 하고 IMF 등 국제차관단의 구조조정 요구를 대 부분 수용했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상황이 다시 악화된 아르헨티나는 88 년 3월 IMF에서 다시 11억달러를 들여와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했고, 결국 93년 4월 채권은행단과 민간부문의 채무상환 재조정작업을 완료해 국제금 융시장에서의 대외신인도를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25일 제 1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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