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대중음악

유재하를 부른다

(사진/유재하 추모음반 제작에 참여한 음악인들이 <다시 돌아온 그대 위해>를 녹음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유재하’는 하나의 신화가 되었다. 외로웠던 청년 유재하가 떠난 지 꼭 10년. 그를 잊지 못하는 이들이 추모음반을 냈다. 유재하의 음악을 듣고 자란 이소라, 신해철, 유영석, 더 클래식, 이적, 일기예보, 베이시스, 전람회, 한동준, 손무현, 여행스케치, 조규찬, 그리고 프로듀 싱을 자청한 김현철 등이 그들이다.

87년 ‘유재하 1집’ <사랑하기 때문에>에 실린 9곡과 한영애와 이문세가 각각 불렀던 유재하 작곡의 <비애> <그대와 영원히>, 그리고 앨범참가자 들이 공동작곡한 추모곡 <다시 돌아온 그대 위해>를 담았다. <다시 돌아 온 그대 위해>는 식으로 참가자 전원이 코러스와 솔로 를 맡았는데 <사랑하기 때문에>를 기조로 했다. 또 <재하를 그리워하며> 엔 조용필, 조동진, 이문세, 한영애, 봄여름가을겨울 등 생전에 그와 함 께 했던 이들의 짤막한 멘트도 들어있다. 추모앨범에서 가장 먼저 느껴지 는 건 10년 세월이 만든 사운드의 차이와 김현철 특유의 재기발랄함이다. 하지만 이런 표면상의 무늬를 압도하며 아래로 흐르는 건 큰 여울로 전해 오는 유재하의 영혼이다. 참여가수들은 9월24일 경기 용인 천주교 공원묘 지를 찾아 막 나온 음반을 그의 곁에 묻어주었다.

요절이 때론 낭만적 색채를 띠고, 때문에 조금은 과대평가를 얻기도 한다 . 그러나 유재하 추모앨범에 참가한 가수들의 면모에서 입증되듯, 유재하 란 존재는 무척이나 커보인다. 62년 서울 출생. 한양대 작곡과(81학번). 84년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키보드. 86년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 울’에서 활동. 87년 8월 독집앨범 <사랑하기 때문에> 발표, 87년 11월1 일 새벽 강변도로에서 자동차 사고로 사망. 플루트를 전공하던 음대생 애 인을 남겨둔 채. 유재하의 짧은 이력 전부다. 유재하는 노래는 물론 피아 노, 바이올린, 기타, 건반, 드럼 등 다양한 악기를 다뤘으며 작사, 작곡, 편곡까지 모든 것을 갖춘 만능 뮤지션이었다. 그는 자신의 앨범에서 작사 ·작곡·편곡에 피아노, 기타, 신시사이저까지 맡았다. 그의 앨범은 지금 까지 1백50만장 가까이 팔려나갔다.

“별헤는 밤이면 들려오는 그대의 음성/ 하얗게 부서지는 꽃가루 되어/ 그대 꽃 위에 앉고 싶어라”(<그대 내품에>) “내곁을 떠나가던 날 가슴 에 품었던/ 분홍빛의 수많은 추억들이 푸르게 바래졌소”(<사랑하기 때문 에>) 등 시적인 노랫말, 서정적이면서도 도회적인 멜로디, 그리고 바이올 린, 비올라, 첼로,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호른 등 풍성한 클 래식 반주로 기존 대중가요의 벽을 뛰어넘은 그의 노래는 80년대 말 암울 했던 대학가와 젊은이들에게 이슬비와도 같은 촉촉한 정서를 심어주었고, 특히 운동권 학생들 사이에서 많이 불려졌다. 대중음악평론가 신현준씨는 그의 음악에 대해 “발라드에 뽕짝 스타일을 벗기고 지금같은 현대적 감 각을 입혔고, 대중가요에 완벽한 형태의 클래식 반주를 도입한 최초의 뮤 지션”이라면서 “또 언더그라운드적 요소를 띠어 오버그라운드와 거리를 두려는 당시 젊은이들의 정서를 지배했다”고 평가했다.

가수 한영애씨는 유재하에 대해 “음악과 친구와 술을 좋아했고, 밝고 순 수해 선배들로부터 많은 귀여움을 받았다. 또 노력이 남달라 어느날 갑자 기 발전된 모습으로 나타나곤 했다”고 술회했다. 유복한 집안, 평탄한 삶, 낙천적 성격으로 기억되는 그의 노래에 묻어나는 외로운 그림자의 연 유는 어쩌면 그 혼자만이 간직한 어떤 아픔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유재하는 죽음 이후가 더 찬란했다. 88년 ‘유재하음악장학회’가 만들어 지고, 89년 창작가요제 ‘유재하 음악경연대회’가 열려 올해로 9회째(11 .18, 라이브2관)를 맞았다. 이 대회를 통해 선발된 싱어송라이터들이 조 규찬, 고찬용(낯선 사람들), 유희열, 일기예보 등으로, 이번 앨범에 물론 참가했다. 한편 그의 막역한 술친구(선배)였던 김현식도 그로부터 꼭 4년 뒤 같은날인 11월1일 세상을 떠났다.

채 꽃을 피우기도 전에 사라진 유재하가 살아있었다면 우리 대중음악의 지형은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삶과 음악은 단 한 장의 앨범만으로도 완결성을 띠고 있기도 하다.

권태호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16일 제 1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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