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유강문 기자의 인물탐험

‘컴뱃 키드’ 이대영

<플래툰>이란 잡지가 있다. 전쟁과 무기에 관한 잡다한 정보를 싣는 월간 지다. 거대한 항공모함을 요모조모 분석하기도 하고, 군복의 기원, 군용 기의 종류, 각국의 특수부대, 2차 세계대전의 야사 따위를 소개하기도 한 다. 책 끄트머리 독자란에는 이런 문답이 실리곤 한다. Q: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권총은 무엇입니까. A: 당시 안중근 의사는 벨기 에제 M1900 자동권총과 미국제 S&W44 러시안 리볼버를 갖고 있었습니다. 거사에 쓴 총은 M1900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탱크와 철모 속에서 놀던 기억

이대영(42)은 이처럼 시시콜콜한 군사지식을 담는 <플래툰>의 편집장이다 . 서바이벌 게임 동호인들에게는 우리나라에 서바이벌 게임을 처음 소개 한 원조로도 통한다. 그렇다고 그가 군대밥을 먹는 전문가도 아니다. 그 의 군 경력이라곤 공군사관학교 중퇴에 특전사 복무가 전부다. 그는 프로 야구에 미쳐 타자와 투수의 각종 기록을 줄줄이 꿰는 열성 팬 비슷하다. 사실 그게 책의 편집방향이기도 하다. “전쟁은 한판의 야구시합이고, 선 수들은 병정일 뿐이다. 야구를 관람하듯 전쟁을 들여다보자!”

이대영은 어떤 영화제목에 빗대면 ‘컴뱃 키드’다. 어려서부터 전쟁놀이 를 즐겼고 비록 모형이지만 무기를 만들고 제원과 성능을 달달 외우는 게 낙이었다. 그건 6·25전쟁의 상처가 고스란히 남은 유년의 추억이기도 했 다. “대구 변두리 깡촌에서 자랐어요. 6·25 때 낙동강 전투가 치열했던 곳이라 여기저기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었죠. 밭에는 탱크가 주저앉아 있 었고 산에는 지뢰 구덩이가 군데군데 패어 있었으니까요. 집에서 철모를 물바가지로 쓰고 박격포 포신이며 탄피 따위가 길바닥에 널려 있던 기억 이 납니다.”

어릴 적 꿈은 장군이 되는 거였다. 커서 무엇이 되고 싶냐고 물으면 열에 예닐곱은 장군을 꼽던 시절이었으니 탓할 일은 아니다. 요즘이야 컴퓨터 프로그래머, 가수, 모델, 운동선수가 되겠다고 난리지만 그땐 정말 꿈 같 은 얘기였다고 한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나무나 흙으로 무기를 만들기에 바빴다. 소년의 재산목록에는 그렇게 만든 장난감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구슬치기나 딱지치기에는 왠지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고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플라스틱 무기 모형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소년은 손가락을 꼽으 며 새 모형이 나오길 기다렸고, 용돈이 떨어지면 참고서 산다고 부모님께 거짓말을 해댔다.

그런 군사취미는 공군사관학교 입학으로 이어졌다. 야구를 좋아하다 야구 선수가 되기로 작정한 것과 같은 이치였다. 그나마 육사 해사가 아니었던 것은 전투기를 몰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사관학교 생활은 오래 가지 못했 다. 태권도 연습 도중 코뼈를 다친 게 화근이었다. 전투기 조종사는 신체 적으로 완벽해야 했기에 그만한 흠도 치명적이었다. 전투기를 몰고 창공 을 누비려던 소년의 꿈은 그렇게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미대에 진학한 것도 따지고 보면 무기가 맺어준 인연이었다. 장난감 무기 만든답시고 나무나 흙을 주물럭거린 게 제법 손 끝을 다듬었다. 게다가 그림 솜씨는 근방에서 신동 대접을 받았다. 다섯살 때인가, 한 화가가 그 림을 보더니 이 아이를 나에게 달라고 할 정도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는 꽤 유명한 화가였다고 한다. 사관학교 가기로 작심한 뒤로 미술공부는 뒷전이었지만 기댈 데라곤 그것밖에 없었다. 마침 디자이너가 되면 돈을 잘 번다기에 응용미술을 택했다. 늦깎이로 한 학기를 마치고 사병으로 입 대해 3년을 꽉 채웠다. 사관학교 동기들은 임관해 전투기를 몰았지만 그 는 특전사 대원으로 산골짜기를 훑어야 했다.

제약회사 광고장이로 시작한 직장생활은 따분하고 답답했다. 외국의 군사 전문지를 탐독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봉급 타는 대로 일본은 물론이 고 멀리 유럽과 미국에서 나온 군사전문지를 통신판매로 사들였다. 사람 이 뭔가에 빠진다는 게 아마 그럴 것이다. 군사전문지를 보며 무기와 전 쟁을 파고들어가는 것이 일보다 연애보다 백배나 재미있었다. 결혼하고 처가살이 3년 만에 1천1백만원짜리 집을 샀는데 짐이란 게 모두 책일 정 도였다. 그때 속으로 한번 셈을 해봤다. 한권에 평균 만원씩 잡으면 이게 모두 얼마나 갈까. 어림잡아 1천5백만원은 족히 나갈 것 같았다. 집값보 다 비싼 책값에 아내 몰래 웃고 말았다.

직장에 사표를 내고 충무로에 광고대행사를 차렸다. 돈은 안 됐지만 시간 이 엄청나게 남아 돌았다. 그러다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노느니 책 밑천으로 장사나 해볼까. 자기처럼 무기와 전쟁에 빠진 사람들이 분명 히 있을 것 같았다. 3천부면 원가는 뽑으리라 계산하고 도전했다. 그런데 그게 장난이 아니었다. 부업삼아 시작한 게 손익분기점은 멀기만 하고 격 월간인데도 숨이 가빴다. 90년 9월 사무실 문을 닫고 책을 만드는 데 전 념키로 했다. 직원 월급은커녕 필자들의 원고료도 제때 줄 수 없는 형편 이라 어떨 땐 혼자 책을 만들기도 했다. 책은 변변찮았지만 당시 일본에 서 유행하던 서바이벌 게임을 소개한 것만은 지금도 흐뭇하다.


옷장 가득한 군복, 보기만 해도 뿌듯

군복을 수집하는 취미도 그때 생겼다. 해외를 들락거리면서 하나둘씩 모 은 게 옷장에 가득하다. 팔 생각은 전혀 없고 보기만 해도 뿌듯하다. 군 복마다 깃들어 있는 그 나라 군대의 전술적 특성을 읽는 맛이 유별나서다 . “독일군복의 얼룩무늬는 독일의 숲 색깔과 똑같습니다. 독일의 숲은 아카시아처럼 동글동글한 잎사귀가 무성한 잡목이 우거져 거무스름하죠. 헌법에 따라 해외원정이 금지된 군대라 군복도 국내 지형에만 맞게 설계 된 탓입니다. 반면 세계를 작전무대로 삼는 미군복은 만국 공통의 위장색 을 띱니다. 사막, 평원, 숲 따위의 다양한 환경변화에 맞게 표준색을 추 출해 군복에 적용한 것이죠.”

그렇다고 그가 전쟁광은 아니다. 사실 그는 누구보다 전쟁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러나 전쟁은 엄연한 역사이기에 피할 수 없는 연구대상이라고 여긴다. “애초 국가와 민족을 수호하는 성전이 따로 있 고 더러운 침략전쟁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당시로선 피할 수 없는 선 택의 결과가 전쟁이기 때문이죠.” 전쟁은 그래서 배울 게 가득한 학교이 기도 한다. 하다못해 성공을 꿈꾸는 이들의 처세술로도 읽을 만하다. 목 숨걸고 벌이는 사업이 전쟁이니 인간이 할 수 있는 지혜는 모두 나오게 마련이다. 오히려 그가 보기엔 사람들의 전쟁에 대한 무지가 문제다. “ 전쟁에 대해 사람들이 아는 게 많을수록 전쟁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게 전쟁이 주는 가장 큰 교훈이죠.”

사진 정진환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02일 제 1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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