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과학과 지성

“영남지방도 지역차별 희생양”

지역차별은 호남지방만의 문제인가.

해방 이후 영남 중심의 국가발전전략은 산업정책·인사에서 호남지역에 대한 차별을 불러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지역차별=호남’을 떠올 린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지역차별은 한반도 전역을 포괄하고 있다. 역사 문제연구소에서 9월23일부터 10월28일까지 매주 화요일 마련하는 한국사 교실은 지역차별의 과거와 현재를 새롭게 조명한다. ‘정치권력에 찢긴 지역차별의 역사’를 주제로 열리는 이번 강좌는 호남차별의 문제 뿐만 아니라 경상도, 제주도, 함경도와 평안도 등지의 차별 문제를 제기한다. 경상도 차별과 관련해 가톨릭대 사학과 박광용 교수는 1679년 기사환국( 己巳換局)이 결정적으로 작용해 정치적으로 소외됐었다고 지적한다. 박 교수에 따르면 기사환국 이후 남인은 1백년이 넘도록 정승에 기용되지 못 하는 등 노론의 견제를 당했다. 노론은 17세기말 장희빈을 왕비로 책봉하 고 인현왕후 민씨를 폐위하는 데 동조한 남인을 ‘명의죄인’(名義罪人) 이라는 이데올로기적 멍에를 씌웠다. 그런 영향으로 19세기 이후에도 남 인의 정치세력화는 사실상 막혀 있었다. 대한제국에 이르러서야 부분적으 로 해소됐다.

조선시대는 학벌과 문벌에 의해 움직이는 ‘가문국가’로 특권의 수혜층 과 피해층을 낳지만 일반인들도 가문의식에 영향을 받아 부를 축적할 기 회를 박탈당하기도 했다. 박 교수는 “서인 계열이 주도한 북벌론과 군비 확장 등으로 수공업과 시전체제가 강화되는 가운데 서울지역에 재화가 집 중되어 경상도 지역 사람들은 사회경제적인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근대사회 이후 사회경제적 차별이 뒤집어진 것은 많은 사람들의 노력에 따른 것이지 특정한 개인의 공과는 아니다”고 말한다.

조선의 정치는 농업생산력이 높은 하삼도(충청, 경상, 전라)와 경기 등지 출신 세력이 주도했다. 그래서 조선 왕실의 발상지로 다른 지역보다 우대 받을 수 있었던 함경도는 반역의 땅이 되기도 했다. 고려대 강사 오종록 씨는 “함경도는 강력한 군대가 버틴 국경지역이어서 중앙의 통제가 제대 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토호세력이 막강한 힘을 발휘했지만 농업생산성이 낮고 문화의 혜택이 없어 중앙의 대접을 받지 못했다. 거기에다 이시애의 반란 등 정치적 격변의 중심지 노릇을 해 지역적인 차별을 받았다”고 말 한다. 평안도 지역은 세도정권의 물질적 기반 노릇을 했지만 함경도와 함 께 과거제도를 통해 중앙으로 진출할 기회가 막혀 있었다. 홍경래의 난은 결국 중앙정부의 정치적 차별을 극복하기 위한 반봉건적 저항이었다.

제주도의 끝없는 민란과 4·3항쟁은 중앙의 가혹한 수탈에 따른 억눌린 민중의 분노였다. ‘푸대접’과 ‘무대접’은 백지장 차이일 뿐이다. 정 치권력이 지역을 장악하고 볼모로 삼으려는 가운데 지역차별은 현재진형 행일 수밖에 없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02일 제 1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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