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1997년05월10일 제 156호 한겨레21

김현철과 아이들의 거짓말 행진



(사진/김현철 김기섭 박태중씨 등은 박경식(사진 왼쪽부터)씨의 증언으로 밝혀진 대부분의 의혹에 대해 발뱀과 부인으로 일관했다.)

국정 농단의 주역으로 지목된 ‘김현철과 그 아이들’의 청문회 태도는 한결같았다. 변명이 필요한 대목에선 “시간을 주시면 잠깐 말씀드리겠습 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라고 잔뜩 고개를 숙였다. 쥐꼬리만큼이긴 했지 만 이미 사실로 확인된 질문에 대해선 “용서를 구한다”거나 “사죄한다 ”며 납작 기는 모습을 보였다. 현철씨의 경우 세차레나 눈물을 보였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무엇을 사죄하고 왜 용서를 구하는 것인지는 입을 꾹 다물었다. 답변 내용만을 보면 그들은 별로 잘못한 짓도 용서받을 짓도 하지않았다. 그런데도 그들은 왜 눈물로 사죄했을까. 머잖아 훗날 드러날 잘못에 대한 사죄일까.


왜 눈물로 사죄해야 했을까.

이런 의문(솔직히 말해 그들의 거짓말)은 먼저 박경식(G 남성클리닉 원장 )씨의 증언과 비교해 보기만 하면 쉽게 확인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대목은 신라호텔에서 현철씨와 김기섭 안기부 운영차장, 그리고 오정소 1 차장이 만났는가 하는 점. 박씨는 4월21일 국회 증언에서 “95년 2월27일 현철씨가 신라호텔 647호에 오라고 해서 갔는데 그곳에는 현철씨와 김기 섭씨, 그리고 오정소씨가 있었다”며 오씨가 “현철씨에게 90도 각도로 인사하면서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철씨와 김기 섭씨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한마디로 부인했다. 어느 쪽인가는 거짓 말을 한 셈이다. 박씨는 이에 대해 25일 오후 “나는 분명이 봤는데 그 사람은 못봤다 하니 내가 허깨비를 봤다는 얘기냐”라면서 “허깨비가 이 나라를 망쳤나”는 말로 자신의 주장이 사실임을 강조했다.

또 “이홍구 전 신한국당 대표의 국무총리 임명 사실을 김씨로부터 귀띔 받아 알고 있었다”는 박씨의 주장에 대해서도 현철씨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잡아뗐다. 정보근 한보그룹 회장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마 찬가지였다. 박씨는 “95년 현철씨가 ‘태중이 보근이와 술 한잔 하자” 고 전화하는 것을 들었다”고 주장했지만 현철씨는 “고려대 동문모임에 서 만났을 뿐 통화 한번 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박씨의 형인 박경재 변호사의 공천문제에 관심을 가졌다는 주장에 대해서 도 “박씨의 제의로 만난 적은 있다”면서도 공천에 개입한 적은 없다고 했다. 두 사람의 사이를 벌어지게 한 매디슨사건 보고서에 대해서도 박씨 는 “현철씨가 무혐의 처리 문건을 가져와 보여줬다”고 진술한 데 대해 현철씨는 “박씨가 문건을 가져왔다”고 뒤집었다.

박태중씨도 박경식씨의 주장을 부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93년 3월 아 사도 건물 3층에서 현철씨가 나사본 사무국장이라고 소개해 인사를 했다 ”는 박씨의 증언에 데해 박태중씨는 ‘단 한차례도 만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김기섭씨 발언 현철씨와 조율 흔적

김기섭씨는 오히려 김현철씨와 사전조율을 거친 듯한 발언으로 박씨의 주 장을 반박했다. 현철씨와 1백번은 만났을 것이라는 전날 박씨의 주장에 대해 “어제(21일) 현철씨에 전화를 걸어 확인했는데 10번 정도 만났다고 하더라”고 부인했다.

누구나 심증은 가겠지만 과연 어느 쪽이 거짓을 말했는지 단정할 수는 없 다. 다만 박경식씨의 주장이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는 데 비해 현철씨쪽은 몇차례 자신의 주장을 번복했다는 점은 현철씨의 증언이 거짓일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현철씨는 박씨를 “10번 만났다고”주장하다 “더이상 만 났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병원에서 치료를 받지 왜 호텔로 부르 겠느냐”며 신라호텔로 박씨를 부른 사실을 천연덕스럽게 부인하다 추궁 이 계속되자 “치료를 위해 호텔로 불렀다”고 물러섰다. 현재 국민회의 등 야권은 이런 차이를 따지기 위해 현철씨와 박씨의 대질청문회를 요구 하고 있지만 여권은 난색을 짓고 있다.

박씨 증언과의 차이를 떠나서도 현철씨쪽의 증언엔 진실성을 의심할 만한 허점들이 허다하다.

먼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증언들.

현철씨는 “아버님께 대선 때 고생하신 분들 중 명망있는 분들을 추천한 바 있다”거나 “이원종 정무수석님과 인사 얘기를 했다”고 두루뭉수리 하게 국정개입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구체적인 사실에서는 철저하게 발뺌 했다. 그러다 한 의원이 지난 96년 12월 한 자선단체 모임에서 국회상임 위원장, 전직 의원 등을 좌우에 거느리고 찍은 사진을 들이대며 “학생신 분인 증인이 중심에 서서 지도층 인사들과 사진을 찍은 것은 무엇이냐” 고 추궁하자 “내가 맨 끝에 서 있었는데 이상하다. 다른 사진도 있을 것 ”이라는 웃지 못할 답변으로 얼버무렸다.

이뿐이 아니다. 자신의 ‘재산관리인’으로 알려진 박태중씨는 “국민학 교 4학년부터 만난, 30년 된 친구”라고 말했지만 현철씨는 “그의 가족 사항을 몰랐다”고 말했다. 더욱이 강남의 한 룸살롱에서 함께 술을 마신 절친한 사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박씨가 어떤 사업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잡아뗐다. 그는 한때 박씨의 건물에 사무실을 운영한 적이 있 다.

또 YTN 인사개입 관련 테이프에서 “현소환 사장에 대해 좋지못한 게 집 중적으로 올라온다”고 말한 것에 대해 “어디서 올라오더냐”고 의원들 이 질의하자 “그게 뭐 어딘가에서 특별히 올라온다는 얘기가 아니라 언 론계 친구나 선후배들로부터 들은 것”이라고 부인했다. 안기부나 청와대 등의 정보보고를 감추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런 때는 ‘들린 다’라고 말하는 것 아니냐”는 추궁이 이어지자 “올라온다는 말은 제가 쓰는 습관적인 용어”라는 궁색하게 변명했다.


안기부 차장과 만나 음악회만 갔다?

그의 거짓말 의혹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김씨는 정대희씨에 대해 “작 년 10월 청와대에서 일해보고 싶다고 애원해 인사비서관에게 부탁한 적이 있다”고 추천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정씨가 6개월 동안이나 무적 근 무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몰랐다”고 잡아뗐다. 또 스무살 윗연배인 김기섭 안기부 운영차장을 한두달에 한번씩 만났지만 “사적인 얘기를 나 누거나 음악회에 갔다”고 진술한 부분도 쉽게 믿기지 않는다.

갑작스런 답변 번복도 거짓 증언을 하고 있다는 의심을 더해 준다. 그는 오전내내 정보근 회장과 “고대 동문모임에서 만났을 뿐 통화 한번 한 적 도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었다. 하지만 오후에 94년 4월 롯데호텔 중식 당에서 청와대 민정비서실 오세천 비서관의 소개를 받고 만난 사실이 드 러나자 “식사를 함께 한 적이 있다”고 번복했다. “오래된 일이라서 정 확한 기억이 나지 않아 그렇게 됐다”는 게 그의 변명이었다.

이 밖에도 민방사업자 선정과정에서 부산지역 경쟁업체였던 (주)한창 관 계자를 만났다는 질문을 내내 부인하다가 저녁식사 뒤에서야 “언젠가 만 난 것으로 기억한다”고 바꿨다. 또 김 대통령으로부터 유학을 권유받은 사실도 내내 부인하다 “그런 사실이 있다”고 번복했다.

22일 박태중씨가 “95년 중반부터 96년 10월쯤까지 현철씨에게 사무실 인 건비를 매월 3백만원쯤 지원해줬다”고 실토했는데도 현철씨는 “돈을 주 고 받을 사이가 아니다”라며 사실을 부인했다.

이른바 ‘박태중 메모’에 대한 박태중씨의 변명도 상상을 초월했다. 보 고서 내용은 ‘현철씨가 증인으로 채택된 것과 관련해 야당에서는 김대중 총재, 김종필 총재 김홍일 의원을 증인으로 불러 맞불작전을 해야 한다’ 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그는 ‘개인메모’였다고 잡아뗐다. 하지만 “워 드프로세서로 예쁘게 타이핑해 청와대 행정관의 실명까지 기록한 것이 개 인메모”냐는 추궁이 이어지자 “현철씨가 한보사건으로 곤경에 빠져 도 와주기 위해 여직원에게 타이핑을 부탁한 것”이라고 얼버무렸다. 그는 끝까지 “현철씨에게 전달되지는 않았다”고 고집했다.

최고의 시청률 기록한 청문회 쇼

그들의 오리발 행진은 끝까지 계속됐다. “혐의 가운데 사법적인 처리의 대상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없느냐”는 질문에 현철씨는 “없다”고 자 신했다. 김기섭씨 역시 “현철씨가 한점 의혹이 없고 깨끗한 사람”이라 며 “현철이를 안 것은 행운”이라고 충성 발언으로 증언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이들이 그렇게 결백하고 서로를 알게된 게 정말 행운인지는 더 두 고 볼 일이다. 검찰은 이미 박태중씨의 주변인물에 대한 조사와 박씨 명 의의 계좌를 추적 결과 박씨가 돈을 받아 현철씨에게 제공한 사실을 확인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신승근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10일


커버스토리 포커스 문화시대 특집 지난호 전체보기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