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1997년03월27일 제 150호 한겨레21

김현철 의혹 총정리… 성역해체의 끝은 어디인가

(사진/기자들에 둘러싸인 G남성클리닉 원장 박경식씨. 그의 진술로 김현철씨의 여러 의혹은 구체적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김현철씨에게는 수많은 의혹의 꼬리표가 붙어 있다.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배경’을 힘으로 사사로운 민원에 개입한 것에서부터 굵직한 권력형 비 리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가장 최근에 붙은 꼬리표가 ‘깃털 수사’ 로 비난을 받고 있는 한보사건의 ‘몸체’라는 의혹이다.

그러나 김씨는 그동안 ‘성역’이라는 그림자 뒤에 가려져만 있었다. 의 혹만 무성할 뿐 지금까지 시원스레 밝혀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하지 만 이제 그 ‘성역’이 무너지고 있다. 그동안 ‘설’로만 떠돌던 김씨 관련 의혹들이 하나둘,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씨에 대한 정치권 차원의 조사와 사법당국의 수사가 이뤄질 전망이다. 이 제 의혹의 진실을 밝힐 때가 됐다는 얘기다. 김씨에 대한 그동안의 의혹 들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도 생긴 셈이다.


“각종 이권개입에 빠지지 않았다”

현철씨가 처음으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게 된 것은 새 정권 출범 초기 인 지난 93년이다. 이건개 의원(당시 대전고검장) 등 정·관계인사 10여 명이 구속된 ‘슬롯머신 사건’때였다. 당시 야당은 슬롯머신업계의 대부 인 정덕진·덕일 형제가 현철씨와의 친분을 이용해 각종 사업상 특혜를 보장받았다고 주장했다. 또 정씨 형제가 대선 과정에서 김영삼 당시 민자 당 대통령 후보에게 막대한 선거자금을 제공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하 지만 당시 검찰은 김씨를 소환조사하지 않은 채 이런 의혹을 덮어버렸다.

1년 뒤인 94년 5월 다시 김씨에게 의혹의 눈길이 집중되는 사건이 발생했 다. 당시 제1야당인 민주당이 “92년 대선을 앞두고 현철씨가 이충범 전 청와대 사정비서관을 통해 한약업자구제위원회로부터 무자격 한약업자들 을 구제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1억2천만원을 받았다”고 주장한 것이다. 민주당은 “한약업자구제위원회 고문 지모씨가 92년 12월12일 여의도 맨 하탄호텔의 현철씨 사무실에서 1억5백만원 상당의 어음을 건네줬다”며 현철씨 이름이 적혀 있는 어음부표와 지씨가 현철씨로부터 받았다는 자필 서신을 구체적인 물증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현철씨는 “그 돈은 변호사 인 이씨가 한약업자들의 소송을 맡으면서 받은 변호사 수임료”라며“자 필서신은 무자격 한약업자 구제건이 아니라 그린벨트 해제와 관련된 민원 ”이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민주당에 이를 제보한 한약업자 정재중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소했고, 지난 2월25일 자신과 관련한 모든 소송을 취하하기 전까지 3년 동안 지루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지난 96년 10월, 초음파 진단기 제조회사인 (주)메디슨 특혜 의혹사건을 둘러싸고 김씨는 또다시 의혹의 대상이 됐다. 국민회의 이성재 의원이 “ (주)메디슨이 허위광고와 사기혐의로 고소를 당했음에도 G7프로젝트 기업 으로 선정되는 등 청와대의 특혜를 받았다”며 현철씨가 개입했다는 의혹 을 제기했지만 이번에도 검찰은 김씨를 조사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1월 ‘해방 이후 최대의 사기극’이란 비난이 일었던 한보사 건이 터지면서 김씨를 둘러싼 의혹들이 봇물 터지듯 흘러나왔다. 1월25일 야당은 수서비리의 전력이 있는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에게 5조7천억원 에 이르는 천문학적 특혜 대출을 가능하게 해준 배후로 ‘민주계 부통령 ’을 지목했고, 2월11일 국민회의 한영애 의원 등 야권은 “한보사건의 몸체는 김현철”이라고 직격탄을 퍼부었다.

야권 주장의 핵심은 “산업은행의 한보 관련 정책심사와 대출과정 등에 박재윤 전 통산부 장관, 이형구 전 산업은행 총재 등이 관련돼 있으며 이 단계에서 김현철씨가 개입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근거로 △현철씨 가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의 셋째아들이자 한보 회장인 보근씨와의 관계 가 심상치 않다는 것 △지난 93년부터 6차례 권면가 2천4백70억원어치가 발행된 한보철강의 전환사채의 소유자에 대한 의혹 △한보창고에서 김씨 의 책 `하고싶은 이야기, 듣고싶은 이야기' 1만여권이 나온 것 등을 제시 했다.


리베이트 2천억원 주머니에 넣었나

하지만 검찰은 정태수 총회장으로부터 8억원을 받은 신한국당의 홍인길 의원을 핵심으로 한 황병태 정재철 의원이 한보대출의 ‘정치 커넥션’이 며 이들이 은행에 압력을 가해 한보에 대한 특혜대출이 이루어졌다고 결 론지었다. 그리고 2월 21~22일 이틀 동안 이루어진 현철씨에 대한 조사를 통해 ‘면죄부’를 줬다.

하지만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는 검찰의 수사종결에도 임시국회 대정부 질 문 첫날인 2월24일부터 현철씨와 한보관련 의혹은 계속 폭로됐다. 24일 임채정 의원(국민회의)은 한보철강 설비도입 계약 과정에서 “현철씨가 개입하여 2중계약서를 작성하고 그 차액을 해외에 도피시켰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포철이 60만t 규모의 코렉스 설비를 2천9백24억에 도입했음에 도 한보는 동일한 설비 2기를 8천5백98억원에 들여와 3천억 정도 돈이 더 들었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그는 “독일 SMS사로부터 설비구매 과정에서 2천억 이상의 리베이트가 김현철씨에게 제공되었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26일 박광태 의원은 국회 본회의에서 “현철씨가 지난 대선 전부터 현재 까지 김석동(쌍용증권 사장) 이웅렬(코오롱 그룹회장) 신동빈(롯데그룹 회장 차남) 박경호(삼구통상 회장 아들)씨 등 재벌2세와 긴밀한 접촉을 통해 코오롱의 신세기통신, 대호건설의 서초유선방송, 삼구통상의 홈쇼핑 CA-TV, 애경유지의 수원민자역사 등 엄청난 이권에 개입했다”고 폭로했 다.

박 의원은 또 증권가에 소문으로 떠돌고 있는 ‘황태자주’에 대한 의혹 도 제기했다. “김영삼 대통령의 대선자금에서 지출되지 않고 남은 1천억 원이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에게 관리위탁됐으며, 이 돈이 증시에서 주식 시세 조정에 간여한 것으로 알려져 ‘황태자주’라는 말이 생겼다”며 “ 현철씨와 정태수 회장은 강원도 폐광지역에 관한 정보를 미리 입수해 이 지역의 부동산을 사들이고, 다시 ‘황태자주’에 투자해 돈을 불린 의혹 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성자원, 영풍산업, 동원, 만호제강, 일신 석재 등 93년 이후 추진된 카지노 설립허용방안 등 폐광지역 개발계획과 관련된 주식들을 구체적으로 ‘황태자주’로 지목했다.

한보철강 주식을 소유하고 있다는 의혹도 고개를 들고 있다. 국민회의 정 세균 의원은 3월14일 “현철씨가 한보철강 주식을 제3자 명의로 소유해 막대한 차익을 챙겼고, 한보철강 발행 전환사채를 뇌물로 받았다는 설까 지 등장하고 있다”며 의혹의 눈길을 보낸 것이다.


하나회 몰아내고 만나회를 심다

현철씨와 관련한 또다른 의혹은 청와대와 정부의 각종 인사에 관련된 것 이다. 그가 방송사는 물론 군, 안기부, 경찰 등의 인사에 적극적으로 개 입했다는 것이다. 이런 의혹은 이권 개입과는 달리 상당부분 사실로 확인 되고 있다. 우선 지난 3월10일 <한겨레>가 단독입수해 보도한 녹음 테이 프를 통해 현철씨가 지난 95년 1월에 같은 해 3월 개국할 예정인 <연합텔 레비전뉴스>(YTN) 초대 사장에 연합통신 현소환 사장 대신, 현재 한보사 건과 관련해 구속돼 있는 김우석 전 건설장관을 임명하기 위해 개입했다 는 사실이 밝혀졌다. 더욱이 이 과정에서 이원종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과 사전에 협의한 사실이 밝혀져 이 수석이 청와대 김현철 인맥의 핵심이라 는 세간의 소문을 확인시켰다.

3월11일에는 육군참모총장 등 장관급 인사에 개입한 사실도 드러났다. 94 년 7월 이병태 국방장관이 유사시 일산아파트를 대전차 장애물로 삼을 수 있다는 새도시 발언 등으로 물의를 빚어 경질이 검토되고 있던 시점에서 당시 육군참모총장이며 경복고 동문인 김동진 장관을 서울 롯데호텔에서 만나 “국방장관을 맡으면 어떻겠느냐”고 취임의사를 물었다는 사실이 군 관계자의 증언을 통해 확인된 것이다. 현철씨가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 만이 지닌 ‘국방장관 낙점권한’에까지 개입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밝혀진 사실 말고도 현철씨가 각종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은 곳 곳에서 불거져 나오고 있다.

먼저 군인사와 관련한 것이다. 3월14일 <경향신문>은 군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현재 군 내부에는 하나회 척결을 실질적으로 주도해 육군 의 새로운 핵심세력으로 등장한 ‘만나회’라는 사조직이 존재하며 이 사 조직의 구성원들은 현철씨와 수시로 군인사 문제를 협의하면서 세력을 확 대해 왔다”고 보도했다. 현재 이 조직의 인맥은 청와대와 국방부는 물론 합참 등 군 핵심요직에 다수 포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방송계 장악 의혹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지난 3월12일 국회문체공위원 회에서 국민회의 정동채, 길승흠, 최재승 의원 등은 현철씨가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 오인환 공보처 장관, 김기섭 전 안기부 운영차장, 김원 룡(한국방송공사 이사) 성균관대 교수 등 이른바 ‘언론커넥션’을 통해 언론 다스리기를 전개해왔다고 폭로했다. 이들은 “현철씨가 한국방송공 사와 문화방송 사장 연임 확정을 2~3일 전부터 알고 있었고, 96년 3월에 확정된 강성구 문화방송 사장의 연임문제도 96년 1월에 이미 박경식씨에 게 이야기했다”며 “이는 K2(경복고 출신을 지칭)라인인 김현철-이원종 씨의 주도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현철씨는 94년 한국방송공 사 안아무개 본부장을 부사장으로 승진시키려다 이사회에서 부결되자 이 원종 전 정무수석이 홍두표 사장을 크게 질책하는 일까지 빚어졌으며, 김 원룡 이사는 현철씨와 이 수석의 의사를 홍 사장에게 전달하는 라인이라 고 주장했다.

또 현철씨가 지역민방과 케이블텔레비전 업체 선정에 개입했고 이 과정에 서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 등을 통해 업체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의혹 까지 제기되고 있다. 국민회의 최재승 의원은 3월12일 공보처에 대한 정 책질의에서 “구속중인 홍인길 전 수석과 유선방송 관련 협회장을 지낸 김재길씨가 민방참여업체들로부터 돈을 받는 구실을 했고 오인환 장관과 이원종 전 정무수석은 행정편의 제공과 타사 지원세력의 견제 구실을 맡 았으며, 한국방송공사 김원룡 이사는 김현철이 지원하는 희망업체의 방송 계획서 작성 자문구실을 전담한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정동채 의원 도 “현철씨가 지역민방 1차허가 당시 ㅎ기업의 부산민방 허가와 ㅊ기업 의 대구방송 허가에 직접 개입했으며, 2차허가에서도 울산 방송대주주인 ㅈ기업, 청주방송의 ㄴ기업의 실세 사주들과 깊은 관계가 있고 인천방송 사장 선임에도 개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신한국당에 광범위한 공천권

이 밖에도 안기부, 민정수석실 등 국가기관을 사유화했다는 의혹도 끊이 지 않고 있다. 임채정 의원은 현철씨가 재벌2세와 젊은 벤처기업가들을 중심으로 재계를 체계적으로 관리해 왔으며 이 과정에서 안기부 인맥을 이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한보 정보근 회장, 코오롱 이아무개, 한라 그룹 정아무개, 쌍용증권 김아무개씨 등 재벌2세로 구성된 ‘황태자 그룹 ’과 ‘한글과컴퓨터사’ 이아무개씨 등이 포함된 벤처 기업산업 회장단 으로 구성된 ‘제2그룹’을 관리하면서 안기부 오정소 차장과 김기섭 운 영차장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지난 2월28일 안기부 김기섭 운영차장이 현철씨에게 고급 정보를 보고하고 현철씨를 배경으로 각종 이 권 및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면직돼 상당히 설득력을 가지고 있 다는 게 입증됐다.

이 밖에도 현철씨는 지난해 8월 초 박경식(김영삼 대통령의 민자당 대표 시절 주치의)씨의 개인소송에 개입해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을 쥐락펴 락했음을 알려주는 사실이 드러났다. 박씨는 자신이 사기혐의로 고소한 의료기기 제조업체 (주)메디슨을 검찰이 무혐의 처리하자 현철씨에게 “ 재수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했고, 현철씨가 청와대 민정수 석비서관실에 수사 과정과 결과를 조사하도록 지시해 만들어진 ‘박경식 고소사건 확인결과’라는 보고서가 3월13일 <한겨레>에 의해 폭로됐다. 이 보고서는 특히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와 수사관을 상대로 수사과정에서 외압 여부와 무혐의 처리 이유를 신문한 내용까지 포함하고 있어 현철씨 가 개인의 청탁을 받아 공무원을 지휘감독하고, 기밀로 다뤄져야 할 수사 자료를 외부로 유출하는 불법행위를 저지른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하지 만 청와대와 검찰은 “그런 일이 없다”며 부인했다.

이 밖에도 정치권에서는 지난 4·11 총선 때 현철씨가 신한국당에 대한 광범위한 공천권을 행사했고, 낙선한 인사들 가운데는 “현철씨에게 줄을 대지 못해 줄을 댄 사람에게 밀려 떨어졌다”고 불평하는 사례까지 있다 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2월25일 김영삼 대통령의 대국민사과담화와 ‘현철씨와의 절연 선언 ’으로 마무리되는 듯했던 현철씨를 둘러싼 의혹은 이렇게 끝간 데 없이 확대되고 있다. 더이상 물증이 필요없다며 즉각적인 수사와 현철씨 인맥 정리를 요구하고 나선 야당, 의혹에 대한 재수사에 들어간 검찰, 그리고 ‘법대로 처리’를 선언한 신한국당.

무너져 내리는 ‘성역’. 그 끝은 어디인가. 국민들은 이번에야말로 ‘성 역’이 속시원하게 파헤쳐지기를 바라고 있다.

신승근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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