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뜨거운 감동!
‘한국군 양민학살’ 사죄 노력, 한국에 대한 선입관을 전복하다

(사진/'구수정과의 교류'가 끝나자 베트남 청년들의 꽃다발이 이어졌다)

“베트남 교민들과 무슨 ‘웬수’라도 졌나.”

호치민에서 사업을 하는 박아무개(38)씨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한겨레21>이 사사건건 교민들에게 딴죽을 건다는 피해의식 때문이다. 지난 5월 ‘신라이따이한 문제’를 제기할 때는 그래도 참을 만했다. 한번쯤 경종을 울려줄 만한 교포사회의 현실 아니었던가. 그런데 6개월이 채 안 돼 ‘베트남전의 한국군 양민학살’ 문제가 또 터졌다. 더구나 이 기사는 베트남의 유력 언론인 <투오이쩨>와 <일요 투오이쩨>가 ‘받아’ 크게 보도하기 시작했다. 한달도 안 돼 호치민의 베트남인들 중 이 문제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돼버린 것이다. “30년이나 지난 과거의 일을 새삼스럽게 들추는 게 과연 누구에게 도움이 될지 답답하다”고 그는 말한다.

그렇다. <한겨레21>이 9월2일치(273호)로 보도한 ‘베트남 특별종단르포-베트남의 원혼을 기억하라’는 이제 베트남 국민 모두의 관심거리가 됐다. 호치민국가대학 교정에서 만난 넛(21·신문방송학과 2학년)은 <한겨레21> 르포를 소개한 <투오이쩨> 기사를 아예 복사해서 수첩에 지니고 있었다. “처음 보도됐을 때는 둘 이상만 모이면 ‘한국군의 양민학살’ 이야기를 했다. 북부지방 출신 친구들은 ‘처음 듣는다’고 하고 실제 양민학살이 있었던 중부지방 출신들은 ‘이미 부모로부터 들은 이야기’라고 해서 토론이 끊이지 않았다.” <일요 투오이쩨>가 관련기사를 3주 연속 보도하는 것은 물론 일간지 <투오이쩨>도 이 문제를 다루면서 그 위력은 더해갔다. 시클로(자전거 인력거) 운전사들 사이에서도, 시장통에서도, 미용실에서도 ‘한국군의 양민학살’이 화제로 떠올랐다.

(사진/호치민국가대학 한국어학과 3,4학년 학생들. 한국인들의 양민학살 사죄 노력으로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져 자신들도 기쁘다고 말했다)

한국 청년들, 고개를 숙이다

한국군의 양민학살. 그것은 정말 베트남 교민들에게 해롭기 짝이 없는 이슈인 것일까. 그러나 기자가 만난 베트남인 중에는 교민들 생각과는 정반대의 반응이 많았다. “한국인들이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들인 줄 몰랐다.” “한국이 왜 경제발전을 이룩했는지 이제야 알겠다.” 무슨 얼토당토않은 소리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사실이다. 많은 베트남인들은 지금 한국인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보내고 있다.

왜 그럴까.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지금 호치민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정확히 말해 ‘한국군의 양민학살’이 아니다. 베트남 언론이 30년 동안 단 한번도 주목하지 않았던 이 문제를 ‘한국 언론인이 최초로 용감하게 폭로했다’는 점을 그들은 높이 사는 것이다. 더불어 이 기사 이후 지금 한국에서 ‘사죄의 성금운동’이 진행되고 있다는 데에 놀라는 것이다.

11월28일 일요일 오후 3시, 호치민청년문화회관 2층 교류관. 외국인과의 교류행사가 자주 열리는 이곳에서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색다른 내용의 토론회가 열렸다. 제목은 ‘구수정과의 교류’. <한겨레21> 273호에 ‘한국군 양민학살 현장르포’를 썼던 호치민의 구수정 통신원이 이날의 주인공이었다. “한국 용병은 왜 그토록 잔인했고, 아이들까지 죽일 정도로 이성을 잃어야 했나”, “한국은 여전히 미국에 예속되어 있는가”, “한국이 노근리 사건에 대해 배상을 요구한다면 베트남에도 사죄해야 하는 것 아닌가.” 행사장을 가득 메운 200여명의 베트남 청년들이 던지는 질문은 무거웠다. 그러나 구수정 통신원의 말은 그들의 마음을 적셨다. “과거 우리 민족의 잘못을 이야기한다는 건 내게도 고통이었다. 그러나 내가 하지 않았더라도 머지않은 시기에 그 누군가 했을 것이다. 과거는 스스로 문을 닫을 수 없다.” 한국 유학생 대표는 사과문을 낭독하고 고개를 숙였다. 베트남 청년들은 “당신들의 용기를 사랑한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용서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30년 세월을 거슬러올라 아버지 세대의 상처와 부끄러움을 안고 만난 한국과 베트남의 젊은이들이 ‘화해의 가슴’을 열고 하나가 된 것이다.

“상상할 수 없었던 일”

“외국인과 정치적 주제를 가지고 토론회를 연 것은 회관이 생긴 이래 처음이다.” 호치민 청년문화회관장 응웬 쑤언(42)은 이날 자리가 “베트남 청년들의 요청”으로 이뤄졌다고 말했다. “<일요 투오이쩨>에 기사가 실린 뒤 많은 청년들이 ‘어떻게 하면 구수정을 만날 수 있는가’ 하고 물어왔다. 우리는 베트남 청년들이 기사를 통해 알게 된 구수정을 직접 만남으로써 깊은 감흥과 교훈을 얻기를 바랐다.”

덕분에 구수정 통신원은 베트남에서 ‘유명인사’가 됐다. 마치 ‘한국 젊은이를 대표하는 인물’처럼 된 것이다. <투오이쩨>에 그의 얼굴이 여러 차례 실리면서, 그의 얼굴을 알아본 호치민 시내 호텔 종업원들이 커피값을 안 받는 일까지 생겼다. 호치민을 벗어난 나짱·닌호아 등 중부지방에서도 그를 알아보는 이들 때문에 당황하기 일쑤다.

<일요 투오이쩨>의 기사를 작성했던 투이응아(37) 기자는 “<한겨레21> 기사소개와 한국인들이 사죄를 위해 성금을 모으고 있다는 글이 나간 뒤 당 위원회로부터 칭찬과 격려를 받았다”고 자랑했다. 그는 이 기사로 투오이쩨 신문사 전 기자들이 뽑는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했다. 상금은 그달치 월급을 두배로 받는 것.

투이응아 기자는 “이번 보도가 한국에 대한 베트남인들의 의식의 근저를 흔들어놓았다”고 말했다. 베트남 사람들 마음 밑바닥엔 한국인들에 대한 미움의 감정이 웅크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기본적으로 ‘베트남전 참전’이라는 역사에다 최근에는 한국기업 관리자들의 현지 노동자 구타사건까지 얽혀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몇년 전부터 베트남에 수입된 ‘한국드라마’들이 그 부정적 이미지를 상쇄하는 역할을 해주고 있다(요즘엔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가 대히트다. 하노이방송과 호치민방송은 물론 주요 지방방송의 황금시간대는 모두 한국드라마가 점령하고 있다). 투이응아 기자는 “드라마가 한국에 대한 인상을 극히 일부 ‘개선’하는 데 그쳤다면, 한국의 ‘한국군 양민학살’ 성금운동은 한국에 대한 기존의 선입관을 ‘전복’했다”고 풀이했다. 자기 나라의 역사적 죄악을 스스로 고백하고 사죄하는 모습에서 한국의 ‘아름다운 저력’을 느낀다는 것이다.

양민학살이 일어난 지역에서도 그랬다. 두달도 채 안 된 젖먹이 아들을 안고 있다가 집에 침입한 한국군에 욕을 보았고, 바로 옆에서 베트콩도 아닌 미군 소속의 남편이 사살당하는 기막힌 장면을 봤다는 칸호아성 닌호아현의 쩜티 육 할머니. 한국인들의 성금운동에 대해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에게 한국은 너무 ‘가혹한 기억’으로만 자리잡고 있었던 탓일까.

로이터 통신도 관심 표명

<한겨레21>이 제기한 ‘베트남전의 한국군 양민학살’ 문제는 작은 태풍이 되어 호치민을 때렸다. 그리고 덩치를 키우며 베트남 남부에서 중부로, 중부에서 북부로 조용하지만 빠르게 북상하고 있다. 아니 이젠 전세계로 향할지도 모른다. 세계 유수의 통신사인 영국의 <로이터 통신>까지 이 문제에 관심을 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이터 통신>쪽은 곧 구수정 통신원을 인터뷰한 뒤 12월 중순부터 취재에 들어갈 예정이다. <로이터 통신>의 하노이 주재사무소 관계자는 “빈딘성에서만 1천여명이 죽었다니…. 밀라이학살도 504명 아니냐. 이렇게 큰 규모의 학살이 어떻게 세계에 알려지지 않을 수 있는가” 하고 놀라워했다. <로이터 통신>은 그러나 “학살 자체에 대한 고발이 목적이 아니다. 우리는 한국인이 스스로 이 문제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한국인의 얼굴을 카메라에 담아 전세계에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제 문제는 한국 정부다. 정부차원의 ‘겸손한 사과’가 이어지지 않는다면 베트남인들의 감동은 배신감으로 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부는 전전긍긍할 뿐이다. 오히려 ‘베트남의 노근리’가 될까 숨기기에만 급급한 형편이다. 한국을 거쳐 호치민을 때리고, 하노이를 넘어 전세계로 향할 ‘한국군 양민학살’의 태풍은 언젠가 해일이 되어 한국 정부를 덮칠지도 모른다.


-한겨레21 제287호-      
 

호치민=고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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