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를 부르는 사회, 난장판 정치, 자르고도 잘린 <거짓말>…
물고문 당해도 싼 한국사회

“고등학교 때 술 한번 안 마셔본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자리에 앉자마자 김어준씨가 짐짓 흥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꺼냈다.
“청소년 문제는 없어. 다 어른들 잘못이야.” 이들이
기성세대인가?
기성세대의 탈(?)을 쓴 대담자들의 ‘마음은 언제나
청춘’이었다.
이날의 대담은 단연 한주의 신문을 도배한 인천 화재사건 이야기로 시작됐다.
 
김어준 : 안전불감증, 경찰과 업주간의 유착관계 이야기가 많은데, 그 와중에 청소년이 그런 곳에
간 것 자체가 문제다, 이런 이야기도 나왔죠. 그러니까 씨랜드 경우와는 다르다, 씨랜드는 아무 죄 없는
아이들이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하다 일어난 일이고, 이번은 청소년들 스스로 가서 일어난 문제라
그 책임이 출입한 당사자에게도 있다는 이야기죠.
청소년들이 술 먹다 재수없어서 죽은 거 아니냐, 이런 맥락으로 얘기하는 사람도 많다구.
 
술 먹어서 죽은 거야 불 나서 죽은 거야
김규항 : 통신에서 나온 얘긴가?
김어준 : 그렇다니까. 청소년들 스스로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또 그게 일정 정도 먹혀들어간다는 거지. 이런 건 기성세대가 청소년들을
복종시키고 규제하고자 할 때, 내 잘못이 아니라 니들이 잘못했어 하고
써먹는 논리인데, 청소년들이 그걸 마치 자기의 논리인 양 내재화하고
있다는 거야.
복종과 규제의 논리를 말야. 오히려 청소년들은 그럼 우리더러 어딜
가란 말이냐라고 저항하고 반항해야 청소년다운 거라고 난 생각하는데,
자기 논리 없이 기성사회가 강제하고 있는 논리를 마치 자기 것인 양
생각하고 있는 거야.
김규항 : 불이 난 순간에 “불꺼, 나가지마” 그랬다는데,
그 고함소리야말로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처한 현실을 상징하지.
하여튼 청소년들이 미성년자출입금지 호프집에 간다는 얘기는 불 나기
전에나 했어야지.

김어준 : 난 십대들에게만 전문적으로 술 파는 사람은 당연히 비난하고 싶지만, 그런 곳을 가끔
드나드는 애들은 비난하고 싶지 않아. 그런 시절 안 겪은 사람 있나? 지금 성인들도 다 겪은 거 아냐?
이 사건에서 왜 이걸 정색하고 비난해?

김규항 : 이건 음주문제가 아니라 불문제란 말야. 아이들이 술 많이 먹어서 죽은 게 아니고 불 나서
죽은 거야.
사실 그런 끔찍한 사고는 준비된 것이었고 인천 그 술집이 아니라도 어디선가 일어났을 사건이란 말야.
문제는 이 사건이 상황을 바꾸는 계기가 되게 하는 건데, 업주만 파렴치한 인간으로 몰아 우리
어른들의 면죄부로 삼아선 곤란하지. 물론 그 사람이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그런 양심 없는 장사꾼들이
청소년을 상대로 돈을 벌고 있다는 건 우리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 뒷짐지고 개탄만 하면 뭘
하냔 말야.

김어준 : 평소에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비슷한 상황들을 묵인했던 어른들이 술집 주인 정말 나쁜
놈이다, 욕하는 데 동참함으로써 스스로 구원받고, 업주가 잡히면 ‘나의 분노는 여기서 종결시켜도
되겠지’ 하고 할 바를 다했다는 듯 마무리짓는 거지.

김규항 : 사실 사고는 언제든 날 수 있는데 사고난 다음에 당사자가 필요 이상으로 태연한 모습을
보이는 걸 보면 이게 텔레비전에 만날 나오는 큰 도둑놈들한테 배웠구나 싶어 서글퍼. 이번 호프집
주인도 자신은 경찰한테 뇌물 먹인 적 없고, 불법영업한 적 없다고 하더군. 지난번 씨랜드 사건 때도
어린이집 원장이나 교사들이 끝까지 발뺌만 했잖아.

김어준 : 대만에서 지진 났을 때, 그때 무너진 건물도 있었고 무너지지 않은 건물도 있었는데, 무너진
건물의 설계사들을 충분한 내진설계를 안 했다고 구속했다잖아. 그건 불가항력적인 천재지변인데도
말야. 귀감을 삼고, 사회적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는 거지. 그런데 우리는 명확히 책임의 선을 그을
줄 몰라. 대충 이 선에서 끝내자는 생각뿐이야. 어디까지 올라갈까? 말단만 몇명 잘리겠지.
일본에서 증권사 망했을 때 사장이 울고 빌고 하는데, 우린 그런 일 절대 없잖아.

김규항 : 그게 설사 쇼라 하더라도 말야, 사회적 사건은 사회적 정리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
역사에서는 그게 한번도 된 적이 없단 말야. 반민특위가 깨진 것부터 나라가 근본을 잃은 건데,
시스템이 그러니까 당사자는 나만 잘못했냐, 재수없으니까 당했다는 식이지. 프랑스에서는 2차대전
때 독일군 앞에서 노래했다는 이유만으로 여가수의 머리를 밀어 밧줄에 묶고 시내를 끌고 다녔다더군.
끔찍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런 단호함이 프랑스의 기품을 만드는 거지.

김어준 : 자기도 껄끄럽거든.

김규항 : 그래, 다들 비슷한 처지에 있기 때문이야. 그 업주는 지나친 데가 있지만 경찰이나
공무원한테 돈 안 주면 그런 장사 해먹기 힘들다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잖아. 그러니 누구도
당당하게 이야기 못하고 본인도 부끄러운지 모르고 말야. 얼마 전 우리 동네 아주머니가 남편이
교통사고를 내는 바람에 수습하러 며칠 다니더니 우리집에 와서 펑펑 울더라구. 충청도 어딘가
법원에 무슨 서류를 내러갔는데 몇 시간이 지나도 접수를 안 하더라는 거야.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어떤 사람이 그거 5만원이에요, 그러더래. 그래서 5만원과 같이 내니까 그 직원이 금방 달라져서
커피까지 뽑아다주더라는 거지. 하여튼 그걸 다 수습하는 보름 동안 가는 데마다 그랬던 모양이고,
이 순진한 아줌마가 굉장히 충격을 받은 거야. 비리라는 게 뿌리가 너무 깊어.
창구에서 5만원 받던 사람이 올라가면 사과박스로 받는 거지. 그 아주머니도 나중에 큰일 처리하려면
사과박스 준비하는 거구.
 
돈봉투가 결국 사과박스되는 거야
김어준 : 나는 이렇게 우리 사회가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발본색원 하지 못하고- 앗, 발본색원,
원천봉쇄!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다. (웃음)- 주변부만 건들며 빌빌거리는 것의 뿌리가 우리
사회가 일제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고 봐. 프랑스가 나치에 의해 점령당한 동안
비시 정권에서 총리였던 페탱이, 전쟁이 끝나고 민족배신자로 재판에 회부되자 했던 유명한 말이 있어.

김규항 : 어이구, 그런 것도 알아.

김어준 : 당연히 정확한 말은 모르지. (웃음) 근데 내용은 이런 거야. 자기는 프랑스를 최악으로부터
보호했다는 거야. 프랑스의 ‘칼’이 될 수 없다면 ‘방패’라도 되려고 했다는 거야. 그러니까
드골이 영국에서 싸워 프랑스의 칼이 되었다면, 자기는 프랑스 내부에서 점령군의 요구에 대항하며,
점령군과 프랑스 국민 사이에서 일반국민을 보호하는 방패가 됐다는 논리였는데, 나치가 각종
프랑스물자나 프랑스인을 징용, 징발하도록 허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또 레지스탕스를 탄압했던
것도 전부 좀더 많은 프랑스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상황논리를 전개한 거지. 사실
이런 상황논리가 어느 정도는 먹힐 구석이 없는 것도 아닌데, 이게 프랑스에선 씨도 안 먹혔잖아.
나치 협력자 7천명 이상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고, 수만명이 감옥에 가고…. 3년 부역했던 프랑스에선
그랬는데, 40년 부역했던 우리의 일제 부역자들에게 우린 사형선고는 고사하고 단 한명도 감옥도
안 갔다는 거, 단 한명도 감옥에 안 갔다는 게 말이 되냐고. 정말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잖아.

김규항 : 음, 눈치보지 말고 계속해봐. (웃음)

김어준 : 어쨌든 사회적 부정부패가 있을 경우, 정리하고 잘라내는 작업이 필요한데, 그렇게 커다란
범죄도 대충 넘어가고 그 사람들이 그대로 우리 사회의 기득권이 되고, 그런 걸 지켜보고 지나왔던
사람들이 일제 이후 수십년간 ‘대충대충’ ‘다 그런 거지 뭐’ 하고 자조하며 발본색원 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정리해오지 못한 건 역사의 필연이지 뭐.

김규항 : 역사적으로 큰 테두리에서 정리 안 된 상태가 내려오니까 그런 관행이 뿌리내렸고, 이제는
모든 사람이 익숙해져서 전혀 문제의식을 못 느끼다가 눈에 띄는 사건만 일어나면 그놈이 죽일
놈이다 이런 식으로 흥분하고 금장 잊어버리는 거지.

김어준 : 지금이라도 친일파 청산해야 하는 거 아냐?

김규항 : 나치는 지금도 도망다녀.

김어준 : 음… 불 이야기가 친일파까지 왔네. 친일파가 소화기 빼돌린 거 아냐. (웃음)

김규항 : 대가리만 탓하는 것도 문제야. 결국 국민들이 가만히 있으니까 그리 된 거지. 여론이
50%만 돼도 반민특위는 안 깨졌어. 그런 점에서 드골 정권은 참 본받을 만한 데가 많은데 그게
우파정권이잖아. 우리나라엔 그런 제대로 된 우파가 없지. 극우세력의 꼭두각시 노릇이나 하는 게
우파가 아니란 말야. 우리 사회를 우파가 장악하고 있지만 우파의 자정능력이 전무하지.
시민으로서의 자존이나 상식, 교양이 없다는 거지.

김어준 : 이야기가 너무 많이 나갔다.

김규항 : 진보지식인하고 얘기하다 보니까. (웃음) 사실 이런 얘기라는 게 전부 뿌리가 하나라
얘기하기가 팍팍하지.

김어준 :  그냥 ‘소화기를 갖다놔라’ ‘불불 불조심’ ‘불 나면 빨리 문을 열자’ 이 정도로
정리하자. (웃음)

김규항 : 정말 자조적인 말이지만 그 정도 대책밖에 없을 정도로 시스템이 공고해요. 나는 법원에서
서류 안 받으면 깽판을 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 아줌마를 비난할 순 없어. 암만 생각해도
너무 뿌리를 많이 내렸어. 뇌물이라는 건 이미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기본 동력이야. 봉투냐
사과박스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뇌물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은 등본이나 인감 떼는 것 정도지.
뾰족한 수가 안 나니 답답하다. 이제 다른 이야기해보자.
 
이근안은 한국판 안네 프랑크?
김어준 : 형, 나 이근안에 대해서 할 얘기 있다는 거 눈치챘지. (웃음)

김규항 : 그러고 보니 얼굴이 닮았네. (웃음)

김어준 : 이근안이 숨어 살면서 자서전도 썼다는 거 알죠?

김규항 : 다 합해서 서른아홉권인가 썼다며. 컴퓨터 서적까지 썼다고.

김어준 : 지가 안네 프랑크야? 이건 완전히 근안 프랑크네. (웃음)

김규항 : 자서전 요약을 보니 죄의식이 없더라고. 자신이 한 고문이 대공수사의 당연한 기법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시대와 함께 마감시켜야 돼!
김어준 : 이근안이 한편으로는 구조적 피해자일 수도 있지. 자기가 저지른 짓을 잘못으로 못 느끼도록
조직과 체계가 세뇌시킨 거 아냐.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양심이 작동했어야 할 부분에 대한 책임은
당연히 있지. 어쨌든 딴지 기자들은 이 사건을 이런 식으로 보지. ‘근안 프랑크의 일기’에서
정형근은 쉰들러, 즉 정들러로 나오고, <조선일보>는 지하독립신문인 레지스조선땅스로 나오는 거야.
근안 프랑크는 계속 숨어서 조선땅스를 보면서 양심, 우익, 멸공 세력이 다시 득세하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정들러의 활약을 보고 희망을 얻는 거야. (웃음)

김규항 : 이근안은 대공수사의 공로로 훈장도 여러개 받았어. 간첩 잡는다고 일년 동안 엿장수로
변장해서 잠복도 하고, 제임스 본드 같은 사람이지. (웃음)

김어준 : 이야기 다 안 끝났다니까. 그러다가 드디어 정들러가 국회의원이 되는 걸 보고 아…
이제 나도 나가도 되는구나… 하고 기어나온 거 아냐.

김규항 : 그럼 이근안이 국회의원 출마하려고 나온 거야? (웃음)

김어준 : 아니지. 정형근이 국회의원이니까 나 정도면 국회의장이 되겠구나 생각한 거지.

김규항 : 이근안은 노가다고 정형근은 십장이지. 그런 사람이 요즘 언론 민주화투쟁에 매진한다니
이게 미친 세상이지 뭐야.

김어준 : 형 말대로 정형근이 이근안보다 훨씬 나빠요. 이근안은 옳건 그르건 자기 나름의 신념을
가진 기술자인데, 정형근은 이근안이 기술자로서 신념을 갖도록 논리를 제공하고 승인, 추인해주는
역할을 한 사람이잖아요. 이근안도 비난받아야 하지만 정형근은 그런 사람을 양산, 세뇌한 사람이기
때문에 질적으로 비교가 안 될 정도지. 이런 사람이 국회의원이라는 게 정말 망신스러운 거야.

김규항 : 우리가 지금 정색하고 고문 이야기 하지만 사실 얼마 전만 해도 우리도 다 아는 관행이었어.
빨갱이는 때려죽여서라도 박멸해야 한다는 게 국민 일반의 신념이었지. 이근안도 그런 신념에 따라
행동했고, 광주에 투입된 특전사 요원들도 광주 시민들이 전부 간첩인 줄 알았거든. 문제는 그런
신념을 만들어낸 사람들인데 아무 걱정없이 호의호식하고 있지.

김어준 : 그런 분위기가 지배적이도록 만들어내는 결정적인 역할을 정형근 같은 사람들이 했던 거
아닙니까, 정형근 같은 사람은 시대와 함께 마감돼야 하는데 절대 마감이 안 돼.

김규항 : 그런 비합리적인 정서를 가능하게 했던 게 6.25전쟁인데 그건 정말 불행한 일이었지만
이젠 서로 용서할 필요가 있어. 잔인하긴 양쪽이 매한가지였는데 서로 내 부모형제 죽인 놈들, 하며
복수할 생각만 하면 끝이 없지. 그게 다 그런 원한을 부추겨 제 배만 채우는 놈들한테 이용만 당하는
건데 참 순진한 사람들이지.

김어준 : 그런데 정형근 나오면 문건 이야기도 해야지, 형은 어떻게 생각해?


김규항 : 코미디지. 정형근 같은 사람이 언론공작이 어떻고 한다는 게 우선 우습고. 정형근은
언론탄압을 말하는 게 아니라 계속 공작정치를 하고 있을 뿐이야. 한나라당이라는 데가 건전한
보수주의를 말하려면 그런 인간들을 솎아내야 할 텐데, 이부영이니 이신범이니 재야 출신이라는
사람들이 되레 앞장서서 싸고도니 참….
 
일만 터지면 부산으로 쪼르르…
김어준 : 내가 보기에 문일현 기자가 작성한 문건은 PC통신 게시판 수준이야. 내용 보면 진짜 별거
아니잖아.
어쨌든 이도준 기자가 이걸 보고 이거 ‘껀수된다’ 생각하고 빼가서 정형근에게 줬어. 이런 초보적인
내용을 보고 공작을 주로 하던 정형근이 이건 대통령한테 보고될 내용이다 아니다라는 판단이 안
섰겠냐 이거야. 백번 알고도 남잖아. 사건은 거기서 종결되어야 정상인데, 정반대로 바로 거기서부터
사건이 거대해지는 거야. 이걸 빌미로 멱살 잡고, 치고 받고. 이게 국민들 민생과 무슨 상관이며
게다가 언론까지 끼어들어서 떠들어 사건을 더욱더 크게 만들어 가는데, 정말 꼴도 보기 싫어. 사실
정론지라면 기자윤리, 언권유착. 뭐 이런 단어를 떠들 것이 아니라, ‘정치가들 니들 제발 놀지 좀 마라,
이 사건 X도 아니다’라고 하는 게 정론 아니냐 이 말이야.

김규항 : 사건의 실제 가치에는 관심없고 여당과 야당, 언론 모두 이 사건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만
머리를 쓰고 있지. <한겨레21>은 표지에다 대문짝만하게 매매춘이라 썼던데 그것도 고깝게 보면
나만 아니다 유세하는 거란 말야. (웃음) 그 문건이라는 거 나도 봤는데 초등학교 줄반장 선거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웃음) 그걸 왈가왈부 해줄 필요 없는 거지. 초등학생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회창이 부산집회가 지역감정 일으키는 거 아니냐는 질문에 ‘부산이 현 정권에 경각심을 주는 데
효과적인 지역이다’고 했더라. 그게 부산이 지역감정 일으키기에 가장 효과적인 지역이다 라는
말과 뭐가 다른지 모르는 걸 보면 초등학생은 초등학생이야.

김어준 : 제가 또 부산 출신 아닙니까. 지역감정도 나쁜 것이지만 이걸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더 나쁜 짓이죠. 역사 앞에 대역죄를 짓는 것이라 생각해. 이게 도대체 몇 번째야, 만날 일만 있으면
부산으로 쪼르르 내려가고 지들이 고향 찾아 내려가는 백구야? 세진 컴퓨터랜드 선전에 나오는
진돗개냐고. (웃음) 논리로 해결 안 되는 감정은 더욱더 영향력과 권위가 있는 사람들이 바로잡아야
하는데, 그 역할을 해야 할 정치인들이 오히려 자신의 정치적 잇속 때문에 그런 비논리에 정당성만
부여해주고 있으니….
귀에서 김이 나기 시작한 김어준씨의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이야기를 바꿔보기로 했다.
이번주에 영화사에서 김규항씨를 위해 <거짓말>의 특별시사회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꺼내니 김어준씨의 눈이 다시 초롱초롱 빛나기 시작했다.

김규항 : <거짓말>이 또 등급보류 됐지. 그 이야기를 해볼까. 안 보고 하는 말이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 얘기론 검열문제는 비판적으로 이야기하면서도 <거짓말>이라는 영화가 싸움의 소재로
내걸 만한 영화는 못된다고 하더란 말야.

김어준 : 그래도 최소한 싸움의 빌미가 돼주는 역할을 했잖아.

김규항 : 30년 전에 김수영이 말한 대로 최고의 문화정책은 그냥 냅두는 거고 그건 영구불변의 진리야.
하여튼 나는 영화인은 아니지만 장선우씨가 국내에서 이야기할 때는 큰스님하고 약속을 했다느니
하면서 선문답만 하다가 베니스에 가서 외국기자들 앞에선 굉장히 성실하게 자기 입장을 얘기하더라구.
자기 영화가 검열 철폐 싸움의 의제가 되었다면 최소한의 예의가 있어야지.

김어준 : 내가 마음에 안 드는 건 장 감독이 처음에는 절대로 자를 수 없다고 하다가 결국 잘랐잖아.
이건 이 영화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영화상영을 지지해주며 싸웠던 사람들에 대한 배신이지.
 
<거짓말> 못난 진보진영의 거짓말
김규항 : 영화의 이해당사자들은 자기 이해만 생각하는 식이고. <거짓말>을 소재로 한 싸움은 전혀
다른 건데 그런 차원에서 이야기하자면 난 이번에 영진위에서 사퇴한 세 사람 인터뷰한 걸 보고 낙심
했어. 그 사람들은 우리가 영화 영역의 수구기득권 세력과의 싸움에 내보낸 대표선수들이란 말야.
처음 김지미 같은 사람이 출석 거부할 때는 꽤 여유가 있었는데 어느새 밀려버렸어. 완패한 거지.
그리고 나와서 하는 이야기라는 게 다들 한숨 덜었다는 식이야. 이건 염치에 관련한 얘기야. 하다못해
청소년대표 축구선수들도 외국하고 지고 오면 국민들에게 머리 조아려 사과하고 다음에 열심히
해보겠다고 하는데 말야. 세 사람 다 개인적으로는 존경하는 처지지만 이번 일은 이해가 안 가.

김어준 : 인터뷰가 잘못 나온 건 아냐?

김규항 : 아냐. 민족주의 영화잡지 <씨네21>에 실린 건데. (웃음) 진보진영의 역량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비판과 선언에는 익숙한데 대중을 설득하고 기획하는 실제 살림은 준비가 아직 멀었다 싶어.
지난번 10월26일에 텔레비전에서 조갑제하고 손호철이 붙었는데 게임이 안 되더라구. 다음날 동네
아줌마들한테 물어보니까, 조갑제 이야기가 설득력 있다는 거야. 우리의 주장이 이미 우리 편인
사람들한테나 통해선 아무런 소용이 없어요. 저쪽은 부동층을 설득하고 대중을 끌어들이는 언어능력이
있어. 우리가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려면 아직 우리 편이 아닌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언어가 필요해.

김어준 : 바로 딴지일보지. (웃음)

김규항 : 어준이 더이상 오바하기 전에 오늘의 결론 내리자.

김어준 : 오늘의 결론, 이근안은 근안 프랑크다. 정형근은 정들러고. 다음주에는 정들러를 게스트로
불러서 이야기해 보는 건 어떨까?

김규항 : 좋아, 욕조는 내가 준비하지. 억 소리 한번 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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