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의 허위성’ 입증한 뒤엔 고통받는 이웃들 위해 싸워나갈 것 ”
 
사진/전직 앵커 백지연(가운데)씨는 9시뉴스를 진행하듯
분명한 어조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솔직히 말해주세요.”
자리에 앉자마자 그가 물었다. 뜻밖이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소문이 사실 같아요, 아닌 것 같아요?”
그는 요즘 만나는 사람들마다 이런 질문을 던진 뒤 대화를
시작한다고 했다.
김규항  :미안한 말이지만 저는 소문의 진위여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지금 당하는 것은 개인의
일이지만 사회의 모순을 반영하는 일이겠지요.

그러나 그는 더 구체적인 대답을 원했다. “다 그렇게만 얘기해요. 여성운동한다는 사람들도….”
김규항 : 그래요.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적으로 말하면….
 
“이건 아이의 인권문제”
백지연. 그가 왔다. 278호 쾌도난담은 그를 ‘제2의 오양’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가부장적
한국사회의 야만성이 만들어낸 대표적인 여성피해자라는 의미에서였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누명을
벗기 위해 게스트에 응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때문에 ‘양김’도 처음부터 백지연씨 개인의 문제로
서두를 풀어낼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그가 자연스럽게 말을 꺼낸 것이다. 그만큼 그는 당당했다.

백지연 : 이건 일부 언론이 만든 쓰레기 같은 사건이에요. 호기심 차원에서 마구 써대니까
확대재생산됐고 결국 국민들이 오해하게 만들었잖아요.

김어준 : 지금 형사,민사 다 걸었나요?

백지연 : 둘 다죠. 배부전씨는 형사고소했고, <스포츠투데이>엔 명예훼손 민사소송을 냈어요.

김규항 : 배부전씨는 만나보았나요?

백지연
: 법정에서 만났죠. 54살. 언론이 그 사람을 <미주통일신문> 발행인으로 깍듯이 예우하는 게
너무 어처구니없어요. 그러니까 국민들이 근거없는 헛소문이라는 생각을 못하지요. 그거 지금은
홈페이지조차 없어졌죠.

김어준 : 통신상에서는 몇년 전부터 알려진 사람이죠. <미주통일신문> 발행인에다 기자라고 하면서
<한국논단> 뺨치는 극우적 주장을 해대고, 홈페이지 가보면 내용도 몇 페이지 없는, 실체없는
황당한 유령신문사라는 걸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백지연 : 그 사람은 재판 때만 되면 패닉상태가 되나봐요. 재판 전엔 국선변호인을 통해 꼭 전화를
넣지요. “사과한다. 너무 미안하다. 소를 취하해달라”며 애걸을 해요. 그러나 막상 재판에 나가면
딴소리를 합니다. 좌석버스에서 만난 아줌마한테 처음 들었다고 하다가, 청와대 고위관계자, 검찰
고위관계자까지 들먹이지요.

김규항 : 배부전씨가 그 이야기를 통신망에 띄우기 전에도 소문이 있었다던데.

백지연 : 저도 들었어요.

김규항 : 대중에게 책임을 묻기에는 우리나라에선 소문이 사실인 경우가 너무 많았죠.
오죽하면 유비통신이라는 말도 있고. 가령 박성범씨와 결혼한 신은경씨도 계속 부인했고, 최원석씨와
사귄 장은영씨도 그랬죠. “사실이 아니다”며 <일간스포츠>를 상대로 소송까지 냈다가 “나는
회장님을 사랑한다”고 하니 참 황당한 일이죠.

백지연 : 배부전씨의 이야기가 먹힐 만한 그런 사회분위기나 정황이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김어준 : 이렇게 말하면 기분 나쁠지 모르겠지만, 오양과 서갑숙씨, 그리고 백지연씨를 묶어서 보려는
시각도 있습니다.

백지연 : 전 동의할 수 없어요. 물론 오양이나 서갑숙씨를 폄하할 생각은 절대 없습니다.
저는 그들보다 잘나지 않았고, 그들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제 문제랑은
본질적으로 달라요. 이건 아이의 인권에 관한 문제예요.

김어준 : 아… 그런 시각은 이 사건을 백지연씨 개인 차원의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시각,
그러니까 남성권력에 의한 여성에 대한 폭력, 사회적 권력 관계의 문제로보는 거죠. 백지연씨가
남자였다면 이건 이런 사회적 이슈가 안 되었을 테니까.

백지연 : 오양, 손숙 장관, 주혜란, 백지연 이렇게 묶는 경우도 많지요. 그러나 너무나도 케이스가
달라요. 무슨 얘기하려는지는 알겠지만, 그렇게 묶으면 이 문제는 해결이 안돼요. 이건 각개로
해결해야 해요.
 
이혼한 여자가 애를 키우면 왜 안 되는가
김규항 : 왜 백지연씨 문제가 이렇게 커졌다 보세요?

백지연 : 저는 얼굴이 알려졌어요. 매일 TV에 나와요. 그런데 이혼했어요. 그러니까 호기심이
발동했어요. 이게 곰팡이가 자랄 수 있는 호조건이었어요. 제가 아이를 키우지 않았다면 그런 소문이
안 났을 거예요. 게다가 저는 이혼할 때 위자료와 양육비를 남편에게 받지 않았어요. 그게 곰팡이가
자라는 수분과 양분을 준 거예요. 남성위주의 지독하게 관습화된 편견과 고정관념….(지긋지긋한 표정)

김어준 : 화내도 됩니다. (웃음)

백지연 : 왜 이혼하면 엄마가 애를 못 키웁니까. 그게 왜 의심의 대상이에요? 제가 이혼할 때
판사가 그래요. 요즘 이혼할 때 서로 아이를 안 맡겠다고 싸우는 젊은 부부가 많데요. 제 모성으로는
내 목숨처럼 여기는 아이를 아빠에게 줄 수 없었어요. 그런데 그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 왜 화살을
던지는 거예요. 물론 주변 사람들이 그래요. 나이도 젊은데, 재혼도 해야 되는데 애를 키우면
콤플렉스가 되지 않겠나… 그러나 신경쓰지 않아요. 재혼 때문에 애를 안 맡아요? 말이 안 되잖아요.
근데 그게 소문의 온상이 됐어요. 결혼은 제 인생 최대의 실수였어요. 이혼요? 그건 제가 최대로
잘한 판단이라고 생각해요. 최대의 수습책이었고, 제가 평생 이만큼 잘한 판단이 없다고 믿어요.

김어준 : 이 자리에 온 것도 잘한 선택 중의 하나입니다.

김규항 : 이혼의 가능성은 모든 부부에게 있습니다. 저 역시 제 처와 그 문제를 염두에 두며 삽니다.
이혼 준비를 하는 건 아니지만, 만약의 경우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하는 거죠.
이를테면 객관적으로 상대가 악인이라서가 아니라 둘간에 뭔가 안 맞는 문제로 이혼을 하게 되었을 때,
저는 기본적으로 아이를 엄마가 키우는 편이 낫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제 마음이야 당연히
제가 아이를 키우고 싶죠.

김어준 : 합의이혼의 공식사유는 뭡니까.

백지연 : 성격차이죠. 그거 외에 뭐라고 하겠어요. 그랬더니 기자들이 뭐라는 줄 아세요?
그렇게 모호한 대답이 어디 있냐는 거예요. 얼마나 무례한 이야기에요. 제가 공인이라고 그런
이야기까지 해야 합니까?

김어준 : 미국에서 이런 사건이 있었어요. 파멜라 앤더슨이라는 캐나다 출신 배우 아시죠?
신혼여행가서 비디오 찍은 게 유출돼서 인터넷 사이트에 떴거든요. 또 하나는 닥터 로라라는 유명한
라디오 아나운서의 젊은 시절 누드사진이 인터넷에 공개되고. 이때 물론 사건 자체에 대한 관심도
컸지만, 국민들의 알 권리와 공인의 사생활, 언론보도의 선이 어디까지인가를 놓고 재판이 붙고
논쟁도 있었는데, 근데 우리나라는 하이에나 같은 언론들이 달겨들어 물어뜯기만 하고 이런 기본적인
논쟁은 없이 그냥 잊어버리거든요. 그러니 만날 이런 짓거리가 반복되는 거죠. 기본을 모르니
개념이 없는 거지요.

백지연 : 정말 터무니없는 것은 제 사건이 KBS 9시뉴스에 나갔다는 거예요. 배부전 1차 공판이 열린
8월18일이었는데… 배부전의 얘기만으로 리포트를 한 겁니다. 9시뉴스가 ‘연예가 중계’인가요?
그것도 ‘여 앵커 법정에 서게 돼’라는 제목으로.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미주통일신문 발행인
배부전씨’라고 하니까 국민들은 꽤 알아주는 신문인가보다 믿는 거지요. 그러나 제 말은 하나도
넣지 않았어요.

김어준 : 가만히 있었나요?

백지연 : 언론중재위에 제소했지요. 언론중재위에 나온 KBS 방송책임자는 진실보도를 했다는 겁니다.
또 백지연씨는 공인이니까 괜찮다는 겁니다.

김어준 : 당시는 MBC가 KBS앵커와 PD의 뇌물사건을 보도한 직후였는데… 혹시 이거 복수혈전 아냐?
이경규가 뛰었나? (웃음)
 
배부전, 그리고 KBS
백지연 : 며칠 뒤엔 더 심했어요. 아주 ‘친자확인소송 는다’는 기획리포트를 하더군요.
저는 결정적 타격을 입었고, 그 소문은 사실인 것처럼 굳어진 셈이지요. 그러나 개인으로서 언론의
일방적 보도로 피해를 입어도 제대로 대응할 엄두를 낼 수 없는 게 현실이잖아요.

김어준 : 그럼 배부전 다음은 KBS다?

백지연 : 그러지 마세요. 전 프리랜서예요.

김규항 : 갑자기 약한 모습을 보이는군요. (웃음)

백지연 : 농담이고요. 저의 진정한 공격대상은 우리 사회의 잘못된 관습이에요. 물론 우리 사회가
참 불신이 심하죠. 언론공작 문건을 보면서도 “다 거짓말들 하고 있네” 하잖아요. 하지만 소문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한번쯤은 가정을 해야 하거든요. 더더군다나 이 소문이 아이랑
관련있을 때는, 사람들이 한번 말을 내뱉다가도 한번쯤은 주의를 해야 해요. 하물며 언론이라면 더더욱.

그는 요즘 MBC에서 진행하던 <백지연의 백야> 프로그램을 그만두었다. 당분간 현재진행중인
배부전씨 형사고소사건에 집중할 생각이다. “백지연의 아들은 전 남편의 아들이 아니다”는 소문.
그 소문이 허위임을 입증하기 위해 그는 전 남편의 유전자 감식을 법원에 신청해놓은 상태다.
하지만 전 남편은 거부하고 있다. 그러면서 다시 새로운 소문들이 새끼를 치기 시작했다.
가령 전 남편과 뒷거래가 있었을 거라는 식이다. 전 남편에게 검사에 응하지 말하고 해놓고
백지연이 앞에서 떠든다는. 또는 전 남편이 애를 낳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등등.

백지연 : 저도 DNA 검사하고 싶지 않아요. 내가 왜 내 아이에게 그렇게 험악한 검사를 시켜요.
내 아이가 맞는데 왜 소문에 장단을 맞춰줘야 해요. 그래서 안 한다고 했어요. 근데 방법이 없어요.
그럼 이 억울함을 벗을 길이 없잖아요. 그런데 그런 소문이 돌잖아요. 저는 그걸 들으면서 피눈물
흘리는 마음으로 내가 이걸 검사해서 차라리 진실을 밝히고 애를 잘 키우겠다는 생각을 한 거예요.

김어준 : 결국, 검사를 할 수 있을까요?

백지연 : 법원이 전 남편에게 강제구인장을 세번이나 보냈어요. 그런데 응하지 않아요.
과태료만 물고…. 상식적으로 아이의 아빠라면 이런 소문이 났을 때 바로 진화했어요 해요.
오히려 부풀리는 역할만 하잖아요.

김규항 : 남편에 대해 친권박탈 소송을 낸다면서요.

백지연 : 아이의 아빠로서 의무를 행사하지 않는다면 권리도 행사하지 말아야죠. 용납할 수 없어요.
그에 대해서 최대한 고려하려 했지만 더이상 고려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 이 상황이 너무 가슴아파요.
 
‘호주제’에 좍좍 가위표를
김규항 : 친권박탈이라….

백지연 : 생각해 보세요. 아빠가 아이에 대해서 의무를 다하지 않는데 아이는 그 사람의 호적에
들어가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제 호적엔 제 사랑하는 아이가 없어요. 제 빈 호적을 보면 기가 막혀요.
주민등록등본을 떼면 동거인으로 나오죠. 이건 사회구조적인 문제예요. 그래서 저는 앞으로
호주제 폐지에 적극 나설 겁니다. 남자들은 도대체 뭐하는 겁니까.

김어준 : 호주제 그거 폐지돼야죠. 전 호주제 폐지하라고 쓴 적 있는데, 형은?

김규항 : 난 남자 아냐. (웃음)

백지연 : 이 나라엔 변변치 못한 남자들이 많거든요.

김어준 : 너무 비분강개하지 말고…. 변변한 남자들도 많습니다.

김규항 : 말 나온 김에 호주제 문제를 짚고 넘어갈까요.

백지연 : 우리나라는 남자가 호주죠. 남편이 결혼하고서도 분가신청을 안 하면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아들 딸 배우자 어머니 순으로 호주의 승계순위가 매겨지지요.

김어준 : 좀더 세분화하면 아들 다음에 서자, 다시 말하면 바람 피워서 난 아들… 그런데 둘 다
아들이 아닐 땐 결혼 안 한 딸… 그 다음엔 결혼 한 딸, 배우자, 어머니 순서지요, 아마.

백지연 : 한 집안에 아들이 없다고 쳐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세살짜리 서자가 있어도 호주가
돼버려요. 그러면서 본부인과 어머니와 모든 딸들이 그 서자의 밑으로 들어가요. 여자는 결혼하면
호적에서 가위표가 그려져요. 아주 기분나쁘게 좍좍. 시집으로 갔다가 또 이혼하면 마찬가지로
좍좍 가위표가 그어져요. 근데 요즘 ‘일가창립’이란 게 생겼더군요. 일가창립을 하면, 저도 호주가
될 수 있어요. 전 일가창립을 했어요.

김어준 : 호주제는 수천년 전 중국 은나라 시절 정통성확보, 왕권강화, 정권안정을 위해 실시한
종법제에서 유래한 건데 이게 조선말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식민지배를 용이하게 하려는 일제의
정책에 의해 변형, 정착된 것이라죠. 결국 미풍양속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거죠.

백지연 : 대학교의 여학생 비율이 높아진다고 걱정하는 어른들도 있어요. 그러니까 해마다 공부
잘하는 여학생이 졸업해도 갈 데가 없죠. 결국 이것이 여아에 대한 낙태로 이어지고…. 최근
부패지수에서 한국이 최악으로 나왔지만 여성문제도 마찬가지에요. 이 뿌리깊은 관습이 바뀌지
않으면 우리나라 선진국 멀었어요.

김규항 : 백지연씨는 시쳇말로 잘난 여자입니다. 자기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자신의 자존을 지키기
위해 싸울 수 있는 물리적 조건을 가지고 있죠. 그런데 그런 물리적 조건을 못 가져서 억울함을
겪는 여성들도 많거든요. 가령 백지연씨와 비슷한 처지 혹은 더 곤란한 처지에 놓였지만 변호사조차
살 수 없는 사람들, 이혼을 해서 양육권을 갖고 싶어도 경제적 능력이 없어서 못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백지연 : 제가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정말 현실주의자가 됐어요. 행동주의자가 됐어요.
너무나도 속절없이 당하는 억울함과 분노가 있었잖아요. 그래도 어떤 면에서 저는 좋은 편이죠.
인터뷰는 거절하지만, 실어주겠다는 언론도 많고. 그런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얼마나 더 억울할까…
저는 그걸 생각해요… 그래서 제 일이 마무리되면 저는 호주제를 고치는 것부터 시작해서 고통받는
여성들을 위해 나서겠어요.

김어준 : 방향을 틀어 서갑숙씨 이야기를 해보죠. 백지연씨 개인의 문제와 상관없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백지연 : 저는 우리 사회가 전환기에 있는 것 같아요. 요즘 출판계의 최대 화두가 성이잖아요.
몇년 전만 해도 점잖지 못한 것으로 금기시했는데. 제 입장은 그래요. 놔둬라! 건전한 상식의
공론화를 통해 충분히 걸러질 것이라고 봐요. 그렇지만 이건 있어요. 대중을 상대로 미디어의 주체가
되는 사람에겐 책임도 따른다. 표현하고 싶은 대로 하되, 자기 스크린이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거지요.
 
서갑숙 사건의 진보적 효과
김규항 : 일반론적으로 얘기했고… 저는 개인적으로 서갑숙씨를 지지하는 편입니다.
마광수나 장정일씨도 그렇지만 이 문제 역시 우리 사회의 진보-보수간의 갈등을 나타내죠.
저는 성담론 분야에서 한발이라도 더 나아가는 것이 정치사회 영역에서의 진보에 기여한다고 봅니다.
이와 관련해서 백지연씨에게 한 가지 물어보면… 근래의 개인적 체험을 통해 여성문제에 관해 의식이
투철해졌는데 다른 문제에 관해서는 어떤지.
여성문제말고도 우리 사회엔 아주 비슷한 일들이 많잖아요. 가령 국가보안법에 관해선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지요.

백지연 : 저는 단지 저의 문제를 여성의 문제로만 나누고 싶지는 않아요. 이건 강자와 약자의 문제예요.
국가보안법이나 빨갱이 사냥도 마찬가지고. 약자들이 강자의 힘과 논리에 의해 고개 한번 들어볼
기회조차 없이 죽어가는 것에 대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나서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규항 : 그러니까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에 대해 개인적인 입장을 밝힌다면….

백지연 : 지난호 쾌도난담에도 나왔잖아요. 말도 안 되죠.

김규항 : 예상보다 분명한 답변이군요. 방송 생활에 어려움을 줄 수도 있는 문제인데….

백지연 : 저는 모든 문제를 인권의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권의 이익에 따라
‘국가보안법 7조’가 악용되는 경우가 있다면 묵과할 수 없겠죠.

김어준 : 다시 서갑숙씨 얘기로 돌리면… 최근에 만난 어떤 독일 할머니한테 물어본 말이 있어요.
“50년 전쯤 할머니가 젊었을 때 독일에서는, 길거리에서 키스도 하고 그랬냐” 했더니 그렇지
않았다는 거예요. 60년대 말까지는 지금 우리나라의 분위기와 비슷했다는 겁니다. 근데 68운동을
기화로 독일사회가 바뀌기 시작하는데, 그 운동의 선두에 섰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성담론이었습니다.
그게 사실 기본권인 행복추구권과 관계된 본능이잖아요. 성적 억압을 벗고 섹스의 자기 주장을 펴는
것으로부터 개인의 정치적 권리와 사고의 자유까지 얻어냈다는 겁니다. 사실 서갑숙씨가 그런 의도가
있든 없든, 의식을 가졌든 안 가졌든, 이 사건은 정치적으로 바라봐야 옳다는 거지요. 만약 백지연씨가
여성운동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려 한다면 오양, 서갑숙 사건을 보는 시각도 “호불호를 떠나
개인의 문제”라고 하는 차원을 넘어 거기까지 넓혀져야 하지 않을까요?

김규항 : 서갑숙씨의 행동이 진보운동이랄 수는 없지만 진보운동의 효과를 갖는 건 분명하죠.
그래서 나는 지지합니다. 현실의 껍질을 깨는 거니까. 어준이 말을 거꾸로 얘기하면, 68운동 전엔
독일의 보수세력이 성담론을 억누름으로써 정치적 억압의 효과를 누렸다는 거지요.

김어준 : 생각을 막는 거니까… 사실 진보운동을 쉽게 이야기하면 개인의 생각을 권위나 권력으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핵심 중 하난데… 국가보안법 7조 고무찬양도 생각을 막는 거고.

김규항 : 어쨌든 백지연씨의 얘기가 인상적입니다. 지금은 아이의 인권에 집중하고, 이게 해결되면
이 문제로 얻어진 의식을 여성운동에 쓰겠다….

백지연 : 선언해요. 분명히 선언해요. ‘선언’이라고 했어요. 아파 보니까 아픈 사람의 처지를
알겠어요. 우리 사회의 불합리가 너무나도 두드러지고….

김어준 : 오늘의 결론은 확실히 나왔네… 백지연의 양심선언!

다시 백지연씨 문제로 돌아가보자. 백지연씨는 “사건은 지금부터”라고 말했다. 전 남편의
유전자 감식이 이뤄지느냐 마느냐, 계속 거부할 경우 재판부의 강제채혈이 이뤄지냐 마느냐.
진실은 이제부터 갈림길에 섰다는 것이다. 물론 그에 관련된 소문이 대중 사이에서 ‘사실’처럼
회자되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냐’와 관련해, 이름 석자만 대면
알 만한 MBC 전현직 고위간부들이 여럿 거명되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뒤집겠다”고 자신했다. 만약 진실이 밝혀지고, 그가 그 기운을 정말 우리 사회의 고통받는
여성들과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쓰게 될지… 글쎄 그건 모르겠다. 따라서 김규항,김어준의
마지막 결론은 이렇게 났다.
“지켜보겠습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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