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보험제도를 중환자실로!
원진녹색병원 김록호 원장과 함께 이야기 나눈 ‘의사폐업’의 본질

(사진/"모두가 허준처럼 되라고 할 수는 없어요. 그러나 최소한의 직업윤리는 있어야죠.")

난리가 났다.

환자들이 아우성쳤다. 제때 진료를 받지 못한 응급환자들의 인명사고도 잇따랐다. 이에 비해 의사들은 일사불란했다. 전체 병·의원의 90%가 넘는 숫자가 폐업에 동참했다. 이번주의 게스트는 그 집단행동에 참여하지 않았다. 김록호 (42). 85년부터 대표적인 민중병원인 사당의원을 운영했고, 현재는 경기도 구리시의 원진녹색병원 원장으로 있으면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로 재직중이기도 하다.

쾌도난담을 정리하는 현재 시각(6월26일 오전10시), 대한의사협회의 폐업철회 방침에 대한 의사들의 찬반투표가 끝났다. 결과는 근소한 차이의 ‘찬성’ 승리. 병·의원의 진료가 정상화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으로 모든 판이 끝난 것일까. 김록호 교수는 단순한 ‘의사폐업’ 문제를 넘어 우리나라 의료복지상황의 근본적인 지점을 더듬었다(쾌도난담 진행일은 6월22일. 의사들의 폐업이 한창인 상태에서 이뤄진 터라, 정리도 그 시점대로 그냥 했음을 밝힌다).

국가가 부당한 진료를 강요한다

김규항 선생님, 현재 인의협(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에 관여하고 계십니까?

김록호 그냥 평회원이죠.

김규항 인의협 의사분들은 폐업에 참여 안 하고 있죠?

김록호 다 그런 건 아니구요.

김규항 공식방침은….

김록호 집행부에서는 의약분업에 문제가 있긴 하지만 일단 선시행하고 보완할 수 있다는 태도인데, 워낙 의협에서 의쟁투까지 만들어 갖고 결사적으로 나가고 있으니까… 활동하기가 상당히 어렵죠.

김규항 개인적으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김록호 의약분업을 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지는 않아요. 물론 당연히 해야지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 지금 의사들이 폐업하고 있는 이유는 의약분업 하나를 놓고 “이걸 의사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어보자” 하는 데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근본원인은 우리나라 의료보험제도의 문제예요. 의사들은 국가가 자신들에게 부당한 진료를 강요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거기에 불만을 터뜨리는 거죠.

김규항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수익보장이 제대로 안 된다는 건가요.

김록호 단적으로 얘기하면 그렇죠. 저도 병원을 직접 운영하는 입장에서, 분명한 거는 현재 의료보험수가체계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병원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게 돼 있어요. 기본적으로 적자가 굉장합니다. 그래서 의사들이 여러 가지로 매출액을 높이는 방법을 개발했는데, 그 첫 번째 방법이 의료보험에 해당되지 않는 불요불급의 의료서비스를 개발하는 겁니다. 예를 들면 종합검진, 성형수술 등 비싼 것들 있잖아요. 개인적으로는 비윤리적이라고 느낄 정도로 마케팅을 지나치게 하는 경우도 있고요.

두 번째로 더 불행한 거는 진료 내용의 왜곡이에요. 지금 의료보험에서는 행위별 수가제라고 해서 의사가 하나하나 행위를 할 때마다 보수가 지불되게 돼 있어요. 약을 지어주면 처방료 얼마, 주사 놓으면 주사 처치료 얼마, 수술하면 수술비 얼마, 검사하면 검사비 얼마… 이렇게 돼 있다보니 아이템을 늘릴수록 의사들에게 유리하게 되죠. 그러다보니 과잉진료, 과잉투약의 문제가 생깁니다.

예를 들면 가장 흔한 문제가 감기환자들이에요. 감기환자들은 대개 일주일 안에 회복이 되고 큰 후유증이 없기 때문에 90% 이상이 물 많이 마시고 가끔 약국에서 진통해열제나 사먹으면 됩니다. 이게 교과서적 정답이에요. 근데 우리나라의 상당수 병원들은 감기환자에게 색색가지의 약을 두툼하게 주거나 주사까지 맞게 합니다. 심하면 양쪽 엉덩이에까지. (웃음) 그게 의과대 막 졸업한 의사들이 실제 환자를 보기 시작하면서 가장 황당해 하는 부분이거든요. 교과서에 없는 건데 왜 이렇게 하느냐. 다른 이유가 없죠. 그거 하나하나 할 때마다 얼마가 더 생기거든요. 수십년을 그러다보니 그런 식의 의료행태가 고착돼 버렸어요. 양심의 가책은 되지만 그렇다고 제대로 하자니 병원은 망하겠고… 그러다보니 의사로서 최소한의 양식이 어떻게 작용하냐면, 부작용 없는 약 골라쓰기 (웃음) 부작용 적은 주사약 골라주기… 이런 걸로 그나마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고들 있었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의약분업이 돼가지고 약이나 주사에서 생기는 마진이나 추가이익을 약사들에게 넘기겠다 그러니까 의사들은 졸지에 “우리는 모두 망한다”는 위기의식을 갖게 된 거죠.

김규항 우리 김어준 선생은 오늘까지 시종일관 의사편이었는데, 이번에는 의사편 들기가 애매하게 됐다. (웃음)

김어준 저는 이 사태를 보면서 의사를 일방적으로 공격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 업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고, 바보들이 아닌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배수진을 치고 폐업 정도까지 갈 사안이라면 미봉할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사건이 터져서 끝장을 보고 시스템을 전혀 새로 시작하는 게 낫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김록호 의료개혁의 한 계기가 되어줄 수도 있겠죠.

김어준 어설프게 가는 건 장기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의료적으로 위험한 상황에 노출시키는 거라는 생각도 들거든요.

김록호 저는 동의하지 않아요. 후세에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죄없는 사람을 지금 죽인다는 논리가 얼마나 무서운 겁니까. 거꾸로 두분 선생님께 제가 질문 하나 할게요. 히포크라테스 선서란 게 있잖아요. 일반 상도덕에서는 볼 수 없는 특수한 윤리강령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윤리가 아직도 의사들에게 필요하다고 보세요?

무서운 논리

김규항 강요할 순 없겠죠. 제가 듣기로는 우리나라 의료제공자의 90%가 민간이라고 하더군요. 저는 사실 이번 폐업사태의 원인은 정부라고 생각해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사태였거든요. 이를테면 의료보험수가만으로 의사들이 정상수입을 얻을 수 없다면 그건 복지문제니까 국가차원에서 분명한 책임을 져야 하는데, 이게 의사와 환자간의 대립으로 되는 건 불행한 일이죠.

김어준 저는 직업윤리 수준이면 적합하다고 생각해요. 근데 전통적인 직업윤리를 지킬 수 없는 상황을 가지고 직업윤리를 넘어선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하고, 그걸 빌미로 공격하는 건 잘못된 거라고 봅니다.

김록호 개인적으로 저는 굉장히 그 전통적 직업윤리에 애착을 갖고 있어요. 제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고요. 국민들한테는 박수를 받지만 의사사회에서 매장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전통적 의사윤리에 대한 애착, 향수, 미련을 갖고 있는 분들이에요. 하지만 다수가 그럴 순 없다는 겁니다. 우선은 먹고 살아야 하는데.

김규항 강요할 수는 없는 거죠.

김록호 모두가 허준이나 슈바이처처럼 되라는 건 무리거든요.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통하는 최소한의 직업윤리는 있거든요. 그 선에서 우리가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저는 그동안 국가가 제 역할을 못해왔다고 봐요. 그건 오늘 모인 세명이 다 일치하는 것 같은데… 의료보장 면에서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의사들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했고, 그런 가운데 값싼 서비스로 국민들을 만족시키는 쪽으로 왔어요. 총자본의 입장에서 볼 때는 의료서비스에 들어가는 비용이 손실이기 때문에 총자본을 대변하는 국가는 의료보장에 들어가는 부분을 최소화한 것이고… 결국은 이렇게 정치경제학적 분석틀로 충분히 설명되는 거거든요.

50달러와 8400원의 사이

김규항 선생님을 빨갱이 의사라고들 이야기합니다. (웃음) 돈 덜 받고 공짜치료도 많이 해주고…. 사당의원 운영하실 때 제 선배들은 죄다 거기서 포경수술 했는데요. (웃음) 선생님, 보기엔 의사들이 어떻게 싸워야 한다고 봅니까.

김록호 최근에 충격적인 일 하나가 있었잖아요. 의약분업을 그렇게 강력히 추진하던 정부가 어느 날 너무 손쉽게 “주사제는 의약분업에서 예외로 한다”고 양보를 해버렸거든요. 폐업 돌입 전날에 발표한 겁니다. 급하니까. 근데 그건 의약분업의 본질을 확 훼손시키는 겁니다.

저도 처음 개업할 때가 생각나는데… 사당의원에서 환자들하고 싸워야 되는 거예요. “주사를 놔달라”고 해서 “주사 놀 필요없습니다. 그냥 가서 쉬세요” 했더니 진찰비를 안 내고 가는 거예요. 우리 직원이 “진찰비 주셔야죠.” 그러면 “약도 안 받고 주사도 안 맞고 왜 내냐”는 거예요. 그래서 뭐 할 수 없이 무료자문하고 보내는 수밖에 없었는데….

왜 이렇게 됐을까 고민을 해봤죠. 그건 병원에서 약국 서비스와의 차별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불요불급한 주사를 놓음으로써 병원의 진찰비는 주사값이다 하는 식으로 병원서비스의 가치를 이해하도록 만든 거예요. 오랫동안 의사와 환자 사이에 그런 관행이 형성된 거고, 그러다보니 의사 개인이 그걸 깨기가 굉장히 어렵게 돼버렸어요. 저도 그래서 일정한 타협을 할 수밖에 없었죠. 환자가 주사맞으러 왔다고 하면 고민하다가 부작용이 덜한 주사를 주고 돈을 받고… 아마도 많은 의사들이 그랬을 거예요. 의사들이 순전히 돈벌기 위해 모든 환자에게 일률적으로 주사나 약을 주지는 않았겠지만 약효에 관한 고려와 함께 마진이 많이 남는 약을 아무래도 더 주게 되고요. 근데 무슨 얘기하다 여기까지 왔나요?

김규항 이번 의사들의 대응방법에 대해서 어떤 대안이 있으신가 물어봤었죠.

김록호 이건 의사업계의 비밀 중 하나인데 약 하나 쓰면 적응증보다 부적응증이 더 많은 거예요. 의과대학에서 약리학 배울 때 황당한 것 중의 하나가, 예를 들어 위산분비억제제를 하나 배우려면 그에 따른 온갖 부적응증… 이를테면 성욕감퇴 (웃음) 등을 더 많이 알아야 되요. 독자들이 관심 많겠지만. (웃음)

김어준 절대로 먹지 말아야지. (웃음)

김록호 요새 약은 좀 달라요.

김규항 난 먹어야 될까봐. (웃음)

김록호 좋은 생각입니다. 옛날 약을 찾아야 해요, 그럴 땐. (웃음) 어쨌든 그래서 환자들에게 약을 처방한다는 건 굉장히 까다로운 거거든요. 게다가 주사약은 단시간에 많은 양이 들어가기 때문에 부작용이 증폭돼서 나타나요. 쇼크의 위험이 항상 있고. 실제로 몇년 동안 개업한 의사치고 한번쯤 주사쇼크로 고생 안 해본 사람 없어요. 보통 1천명에 한명은 피치 못할 대형사고가 생겨요. 그래서 되도록 국민들이 주사를 덜 쓰도록 하는 분위기가 돼야 하는 거구요. 그 방법 중 하나가 구태여 환자가 약국에 가서 주사를 사가지고 와서 맞게 하면 “내가 이러면서까지 주사를 맞아야 하나.” 생각할 것 아닙니까. 그래서 의약분업이 의약품 오·남용의 예방에 중요하다는 거지요. 근데 이번에 정부 스스로 의약분업의 본질을 확 훼손시키는 조치를, 즉 주사제를 의약분업에서 제외하고 처방료를 인상하는 조처를 해버린 겁니다. 이렇게 되면 주사제 남용과 약물 과잉처방을 억제하기 위한 의약분업의 본래 목적이 상실됩니다. 내 주변의 많은 의사들이 이러한 정부의 임기응변적 대응에 대해서 분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의료보험제도의 대안을 마련할 때 중요한 것은 의사들이 불요불급한 약과 주사를 처방하지 않아도 의사에게 오는 진료비 수입이 충분하도록 해주어야 해요. 미국 같은 경우 환자 한명을 보면 평균 진찰비가 50달러 내외예요. 그러니까 환자 한명당 30분에서 한 시간을 봐요. 충분히 모든 얘기 다하고.

김규항 우리나라는 얼마죠?

김록호 놀라지 마세요. 의원급 초진료가 8400원이에요. 재진인 경우는 4200원. 정부의 즉흥적인 대응이라는 것은 의약분업의 본 목적도 점차 훼손시키는 것이고, 그런 면에서 굵직한 방향을 잘 잡아야 해요. 전체 의료보험제도, 그 중에서도 적정한 진료의 질을 유지하기 위한 적정한 진료수가 체계를 고민해야 한다는 거죠.

그리고 의료보험제도에 대한 김록호 원장의 이야기가 좀 길게 이어졌다. 한국에서 의료보험제도가 정착된 역사와 사회적 배경, 현실 등등. 가령 우리나라 국민들이 부담하는 의료보험요율은 5% 이하로서 OECD 국가의 8∼20%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다는 것, 그러다보니 산부인과의 불필요한 제왕절개 시술 등 비정상적 과잉진료 상황이 초래된다는 것. 결국 문제는 우리 사회의 의료보장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시스템은 어떻게 개선돼야 하는가.

“솔직히 모두 약장사들인데…”

김록호 의사가 퇴근할 때까지 피곤을 느끼지 않고 환자에게 열과 성을 다할 수 있는 수준, 허준 같지는 않더라도 사람들이 은행이나 백화점에서 받는 서비스의 수준만큼 할 수 있다면, 환자 1인당 진료시간이 얼마쯤 돼야 할까요. 제가 실사구시로 돈 계산을 해볼게요. 제가 우리나라의 사회 경제수준에서 판타지로 생각하는 의사 1인당 환자 수는 매일 평균 30명 정도예요. 물론 선진국의 10∼20명에 비하면 많은 겁니다. 하루에 8시간 근무한다고 할 때 환자 한 사람에게 할애하는 시간은 480분 나누기 30하면 한 16분 정도… 중간에 쉬고 왔다갔다 하는 시간 빼면 한 15분 정도 되지 않겠어요? 충분하지 않지만 환자 1인당 그 정도의 시간을 가지고 진료할 수 있다면 큰 오진은 피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면 요즘같이 3시간 기다려서 3분 진료 받았다는 이야기도 안 나오겠죠. 그리고 수가를 지금보다 올려서 초진 경우엔 2만원, 재진 경우엔 1만원으로 하면 획기적인 겁니다. 그럼 환자 30명에 초·재진비 평균 1만5천원을 곱하면 45만원이죠. 한달 20일 일한다고 보면 900만원이에요. 여기서 사무실 운영비와 직원들 월급 이것저것 떼면 450만원 정도 남아요. 요즘엔 부동산비가 비싸니까 결국 200만원 정도의 순익이 진찰비에 의해서 발생하겠죠.

여기에다가 추가 수입으로 약 처방료가 있으니까… 그런데 약 처방료 올린 게 걱정이에요. 상업적 유혹에 빠지지 않고 오로지 의학적 필요에 의해서 처방하고 임상검사와 엑스레이 등을 시행한다면 모두 합해 500만원의 순수입이 생긴다고 할 수 있죠. 이 정도라면 아주 욕심이 많은 의사를 뺀 대부분의 의사는 만족스러운 보수가 아닐까 합니다. 의과대학 나와서 전문의 과정 등을 마치는 데 들어가는 11년의 고된 훈련과정과 의료사고와 분쟁의 위험 등을 생각할 때 국민들도 납득할 수 있는 보수 수준일 겁니다.

적정 진료에 근거한 이 정도의 적정 보수를 보장해준다면 정부도 과감하게 부당한 진료, 부당한 수술에 대해 치고 들어올 수 있어요. 정확한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몇년 전부터 검찰에서 종합병원의 의료보험 부당징수 실태를 다 파악하고 있다고 해요. 몇 군데 손을 댔었는데 병원들이 그렇게 하지 않고는 도저히 운영이 안 된다는 것을 알고서 손을 못 댔다고 들었는데, 제도가 바뀐다면 의료윤리와 법의 잣대를 원칙대로 들이댈 수가 있겠죠. 이런 판타지,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규항 김어준 (한목소리로) 그렇게 해야 한다고 봅니다. (웃음)

김록호 지금 폐업에 들어간 의사들이나 그에 대응하는 정부나 형식주의가 좀 있어요. “우리가 돈 때문에 이러는 줄 아는냐”라고 하는데 솔직히 돈 때문에 그런 거죠. (웃음) 좀 냉정을 찾고 방금 말했던 그런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봅니다.

김규항 의사 업계에서 실현가능한 수준의 합리적 대안제시가 부족했다는 말씀인가요?

김록호 오늘은 벌거벗는 자리니까 솔직히 이야길 하면… 의사들끼리 모이면 까놓고 말해요. 너도 약장사, 나도 약장사, 모두 약장사들인데… 솔직히 그렇다고 대놓고 국민들에게 우리 모두는 약장사라고 선언할 수는 없고, 약을 팔긴 팔아야 먹고 살겠고… 결국 의권이나 국민건강권이라는 말들을 내걸었지만 약장사를 계속하기 위한 공허한 빈말이 되는 상황이었거든요. 차라리 “약장사 않고 먹고살게 해달라, 우리의 노동의 대가를 지불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설득력이 있었을 겁니다. 정부도 그러니까 이젠 “의사들이 먼저 진짜 약장사가 아니라면 의약분업에 순순히 응해라”라고 형식논리로 몰아세우기보다는, 그럼 이런 제도가 어떻겠느냐 던져놓고 받고 하면서 대타협을 하면 좋겠다는 거죠.

의사사회의 엘리트주의

(사진/"차라리 약장사 않고 먹고살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설득력 있었을 겁니다." 집단사표를 낸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벗어놓은 가운들)

김어준 선생님 말씀하는 대로 하자면 일반 국민들의 의료보험 부담이 더 늘어날 텐데요.

김록호 현재 의료보험 수가에 의해서 의사들에게 지급하는 의료비는 적정진료비가 아니에요. 단가로 볼 땐 싸지만 불필요한 진료가 많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예를 들어 산부인과에서 의학적으로 진짜 제왕절개가 필요한 산모는 열명에 하나, 둘이에요. 엄격하게 하면 스무명에 하나구요. 근데 현실은 40%거든요. 거의 반이 된다는 건데, 양심적인 의사들이 “이제 우리 적정진료만 해도 먹고 사는데 과잉진료 하지 말자”고 하면 줄일 수 있어요. 물론 어느 직종이나 마찬가지로 아주 괴팍한 의사들은 여전하겠지만 그건 그것대로 따로 손을 보면 되죠.

김어준 진료비 늘어나는 부분과 상쇄되는 게 있다는 말씀이군요.

김록호 상쇄가 되는 것도 있고, 제도가 바뀌면 적정진료 감시위원회를 만들 수도 있죠. 지금 같은 상황에서 감시기구가 생긴다고 할 때는 또 폐업이 일어나겠지만. 그리고 또 의료보험료를 누진적으로 하는 방법도 있어요. 월수 300만원인 사람의 1%와 월수 100만원인 사람의 1%는 다르잖아요. 근데 우리는 똑같은 정률제로 돼 있거든요. 남북정상회담 얘기 나오면서는 국방비 줄여서 사회보장에 쓰자는 말도 나오고 있구요.

김규항 누진제는 사회복지의 기본이죠. 많이 버는 사람은 많이 내고 적게 버는 사람은 적게 내서 결과적으로 고른 삶을 지향한다는 거니까.

김록호 근데 이런 생각은 안 드세요. 의사사회의 엘리트주의가 너무 조급한 행동을 낳게 된 것은 아닌가….

김어준 맞아요. 저는 사실 폐업에 대해서 부분적으로는 지지할 수 있는 여지도 있다는 편임에도 마음에 정말 안 드는 것이, “우리가 이럴려고 의사가 됐냐” 그러는데… 누가 하라고 했냐고! (웃음) 의대를 가려면 상대적으로 성적도 높고, 또 그 성적이면 이른바 잘 나가는 코스를 지나고 있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는가 본데… 근데 그거 누가 하라고 했냐고! (웃음) 그건 개인의 선택이었고 의료 시스템의 문제였는데 그걸 전 국민 혹은 약사들만을 향해서 발산하는 듯한 느낌….

김록호 그러니까 엘리트주의와 약간 유아적인 반응의 결합이랄까. 사실 의대생들이 공부는 굉장히 잘 하는데 사회성은 좀 둔하거든요.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뭔가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믿고 있는 학생들도 많고. 입시 경쟁으로 왜곡된 교육제도의 문제이기도 한데.

김어준 얘기가 이상하게 막 나가는데요. 교육문제까지. (웃음)

김규항 “유아적”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웃음)

폐업투쟁을 이끄는 의쟁투 신상진 위원장은 김록호 원장과 서울대 의대를 함께 다녔다. 김록호 원장은 76학번이고 신상진 위원장은 77학번이다. 김 원장은 신상진 위원장을 “매우 뛰어났던 운동권 리더”로 기억했다. “학교 다닐 때 구속되고 학교에서도 쫓겨나고… 그러다 성남에서 노동운동도 했을 거예요. 나중에 다시 의과대학에 아마 91학번으로 입학했죠.”

신상진 위원장은 원래는 김록호 원장과 같은 인의협 회원이었다. 그러나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면서 ‘청년의사’ 그룹으로 분리돼나간다. 당시 신상진 위원장은 “미 제국주의가 있는 한 의료인도 피해자”라는 논리를 전개하면서 의사대중노선의 기치를 걸었다고 한다. 김록호 원장은 그를 “존경할 만한 친구”로 회상했지만 “안타깝다”고 말했다. “잘못된 대중노선의 덫에 걸려 지금 국민을 상대로 살인행위를 하고 있다”며 냉정한 평가를 내리는 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일본에선 300명이 죽었다는 헛소문

김록호 아무리 그래도 이게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볼모로 한 투쟁이란 거, 그거 부인할 수 없어요.

김규항 저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고, 어준인 좀 덜 그렇게 생각하죠. (웃음)

김록호 의사협회에서 어떤 헛소문이 돌았냐면 “일본에서도 의약분업을 할때 의사들이 한달간 파업을 했다. 그때 수천명이 죽었다”는 거예요. 한마디로 선동하는 이야기였죠.

김규항 우리는 별거 아니다?

김록호 차지철이가 “캄보디아에선 200만명 죽었답니다” 하는 것과 비슷한 논리가 되고 마는 건데. “나도 죽겠는데 너희들도 죽어봐라.” 또는 “폐업하면 사람 죽는 거 아는데, 이거 해야지만 더 많은 사람을 살린다”는 논리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김규항 원인은 국가인데 의사와 약사의 지분 싸움이 되면 문제는 사라질 수 없겠죠. 어준아, 오늘의 결론.

김어준 잘 하자. (썰렁)

김규항 뭐야? 다시!

김어준 좀더 잘하자. (더욱 썰렁) 아, 씨… 오늘은 안 되네.

김규항 선생님이 맺어주시죠.

김록호 국민 복지를 위해 국가가 나서야 한다는 거죠.

김규항 의료보험제도라는 중환자가 기다리는데, 수술을 집도할 국가라는 의사가 폐업중인 셈입니다. 국가는 당장 폐업을 철회하라?



  • <한겨레 특집> 병의원 집단폐업사태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  


    Copyright 1995-1998 한겨레신문사
    webmaster@news.hani.co.kr